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79화 (79/212)

15. 여기서 만나네?

루드비히 가문의 본가.

커튼이 모두 드리워진 캄캄한 방에서 데미안 루드비히는 그자와 마주했다.

“당신이 준 임무는 이번에도 완수했어.”

“당신? 버릇없는 동생아, 형님이라고 불러야지.”

“…좀 묻자. 대체 목적이 뭐야? 우리 가문을 위해서라는 헛소리는 하지 말아 줘.”

“하하… 모두가 탐낼 만한 던전을 알려 줬는데, 입에서 나오는 게 고맙다 소리가 아니야?”

“하필이면 나를 지명했지.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던전을 직접 탐사하라고. 그건 루드비히의 방식이 아니야.”

“하하하. 데미안.”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깍지 낀 손에 턱을 괴고 상체를 앞으로 당겼다. 그의 눈이 말라붙은 피와 같은 적갈색으로 빛났다. 루드비히의 황금색 눈동자와는 딴판이었다.

“너는 정말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해?”

꿀꺽.

동문서답이었지만, 데미안은 마른침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뭐를?’이라고 되물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건 너무 위험했으니까. 하지만 만약… 만약 그가 정말 비밀을 알고 있다면 왜? 왜 침묵하고 있는 거지?

루드비히 가문의 장남, 자크 루드비히가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음을 던졌다.

“너무 긴장하지 마. 재미있어서 그래, 그냥. 누누이 말했잖아? 이 모든 건 그저 멋진 쇼일 뿐이야. 그러니까, 잘하고 있어. 계속 그렇게 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두려워하란 말이야.”

한 마디, 한 마디가 유리 조각이 섞인 해변가 같았다. 맨발로 그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자크 루드비히가 데미안의 어깨를 툭툭 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방문을 열고 나가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던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 편이 더 재미있으니까.”

딸깍.

잠깐 열렸던 방문이 다시 닫히자 방 안은 다시 캄캄해졌다. 데미안은 바닥을 쾅! 한 번 굴렀다. 충격 흡수 능력이 탁월한 최고급 구두 밑창을 통해서도 얼얼함이 느껴졌다.

데미안은 중얼거렸다.

“강해져야 돼.”

그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소시민이었다. 거대한 밤을 향해 거침없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던 뒷모습.

본래 루드비히는 스스로 강해지는 것보다는 강한 자를 보다 많이 거느리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젠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어중간한 재능으로 되도 않는 노력을 하는 것 역시 루드비히 답지 않았다. 다행히 이 문제의 해답도 역시 소시민이었다.

‘그는 대체 어디서 그런 물건들을 가져오는 걸까?’

볼 때마다 장비가 하나씩 늘어나고, 그만큼 더 강해지는 소시민. 그의 강해지는 방식은 상당히 구미가 당겼다. 나도 그런 식으로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생각이 문득 최치국에까지 미쳤다.

‘최치국. 열여섯 살이라고 했나? 나보다 두 살이 많네.’

고작 두 살 많았지만, 그는 지나치게 강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걸까? 어쩌면 그는 역사상 최고의 천재일지도 몰랐다. 원래대로라면 데미안이 그의 실력을 따라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소시민처럼 장비의 힘을 빌리는 방식이라면 어쩌면…….

“적어도 최치국만큼은 해야지. …살아남으려면.”

데미안은 입술을 꾹 깨물고 캄캄한 방을 벗어났다.

* * *

상점 <베짱이의 비밀 가방>의 사장인 차고르 씨는 인간종의 외차원인이었다. 피부가 회색이고 날카로운 눈매와 톡 튀어나온 이마를 지녔다는 것만 제외하면 지구인과 큰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 만큼 그가 쉬는 한숨은 지구인들의 한숨과 동일한 의미였다.

[후… 원래 여기에는 아무나 안 데려옵니다. 돈 있다고 올 수 있는 곳도 아니에요. 상위 시장에 올라가려고 모아 놓은 컬렉션들이라……. 후, 워낙 안목이 좋으시니 보여 드리는 겁니다.]

그는 자꾸만 이 상황이 예외적임을 강조했다. 얼결에 VIP 전시관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 결정에 확신이 안 생기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가격 협상은 꿈도 꾸지 말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따라오십쇼.]

차고르 씨의 뒤를 따라 그림자 계단을 밟고 이동했다. 머지않아 어두운 상점 거리가 우리의 눈앞에 펼쳐졌다.

[특정한 암호를 떠올려야만 도착할 수 있는 비밀 상점가입니다. 여기 갯펄 시장에서 가장 진귀한 물건들이 모이지요. 주요 고객은 상위 시장의 상인들과 손님들입니다.]

“상위 시장에서 찾아온다고요?”

[워낙 좋은 물건들만 선별해 놓기 때문에 상위 시장에서나 볼 법한 물건들도 더러 나오거든요. 그걸 싼값에 사러 오는 것이죠.]

“그런 걸 싸게 팔면 손해 아닙니까?”

[남길 만큼은 남깁니다. 하지만 마진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귀한 물건을 다뤄 보는 경험이죠. 상위 시장으로 가고자 하는 상인은 결국 이곳으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같이 시작한 사람이 100명이라면 끝까지 살아남아서 상위 시장으로 올라가는 이는 한 명 정도겠죠. 못난 놈은 미끄러지고 어중간하게 잘난 놈은 여기 주저앉는 겁니다.]

차고르 씨의 목소리에는 ‘나는 반드시 위로 올라가겠다.’ 하는 기백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의 단단한 목소리와 달리 이곳 비밀 상점가에서 그의 입지는 아직 튼튼하지 못한 듯했다.

어두운 상점 앞에 그림자처럼 앉아 있던 상인들이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차고르? 똥 벌레 등급을 여기에 데려와?]

심지어 가게를 둘러보던 손님들도 나를 보며 한마디씩 했다.

[똥 먹는 벌레 등급? 그런 등급도 있나?]

[있어. 거지 차원에서 온 애들은 그런 등급부터 시작한다더라.]

한 대씩 때려 주고 싶은 말본새였다.

[무시하십쇼. 여기 타키넷에서는 등급이 곧 인격 아닙니까.]

차고르 씨는 내 귀에 그렇게 속삭이고는 묵묵히 걸었다.

그의 비밀 전시관도 다른 전시관들처럼 불 꺼진 어두운 상점이었다. 평균보다 더 작고 좀 더 허름해 보이긴 했지만, 겉의 허름하게 위장된 공간을 지나서 전시관 내부의 불을 켜자, 상황은 달라졌다. 정갈하고 고급스럽게 꾸며진 전시관 내부를 휘황찬란한 물건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물론 규모는 여전히 좁았다. 3평 남짓할 정도로. 하지만 그 안에 걸린 가방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오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기가 제 최고의 컬렉션을 모아 놓은 전시관입니다. 이곳 비밀 상점가에서도 아공간 가방에 한한다면, 여기보다 나은 컬렉션을 가진 곳은 없을 겁니다.]

차고르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전시관 중앙에 결계 주문으로 보호되고 있는 가방들 중 하나를 꺼내 보였다.

[3,000타키온을 예산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 가방이 좋을 겁니다.]

훌륭한 가방이었다.

하얀색 테두리를 가진 오라가 힘차게 타오르고 있다. 가방에 걸린 인챈트도 아주 꼼꼼하게 마감되어 있었다. 여태까지 보아 온 가방이 오징어로 보일 정도의 엄청난 퀄리티 차이.

“가방 용량은요?”

아무리 [만상공감]으로 대상을 완벽하게 읽어 낸다고 해도, 인챈트된 마법의 종류와 효능을 모조리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감각’의 영역으로 알 수 있는 게 있고, 영능학적 ‘지식’으로 알 수 있는 영역이 있다. [만상공감]을 통해 가방의 내부가 다른 공간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공간의 넓이까지 느낄 수는 없었다.

물론 경험이 쌓이고 체계적인 공부가 더해진다면 나중에는 인챈트된 술식만 보고도 미루어 파악할 수 있겠지만… 그런 지식을 쌓으려면 아직 멀었다.

[높이 3미터, 바닥 면적은 50평짜리 창고쯤 됩니다. 물론 아공간의 형태는 물처럼 자유자재로 바뀝니다. 하지만 이 물건의 진가는 고작 그런 저장 용량에 있지 않지요.]

미친……. 지금 쓰는 가방의 용량은 높이 2미터에 바닥은 1.5평 규모였다. 심지어 아공간의 형태도 고정형이어서 지나치게 길쭉하거나 넓은 물건은 집어넣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3미터에 50평? 형태도 변화해?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아공간 가방을 그냥 가방으로만 생각하면 곤란하죠. 가방이란 게 무엇입니까? 지구에서 오셨다고 했죠? 들어 본 적 없는 동네긴 하지만… 거기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가방은 ‘대비’입니다. 탐험가들이 가방을 메고 군인들이 가방을 멥니다. 그 어떤 환경에 떨어지더라도 생존하기 위한 준비……. 그게 바로 가방 아닙니까?]

“그래서요?”

[이 가방에는 생존 키트가 있습니다.]

“생존 키트?”

[상위 시장의 가방에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기능이죠. 단순한 아공간이 아닌 유사 정령계 또한 품고 있습니다. 불의 정령, 물의 정령, 바람의 정령이 상시 거주하며, 그들의 힘을 끌어 쓸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물론 정령술사들처럼 정령의 힘으로 상대를 공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령들의 가호는 받을 수 있죠. 식수가 부족하거나, 혈류에 문제가 생기거나, 저체온증이 오는 일 따위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바람 정령의 가호 덕분에 바람이 부는 곳이라면 근방 1km까지는 직접 보지 않아도 본 것처럼 상세하게 정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유사 정령계의 용량은 아까 말한 3미터, 50평에 들어가지 않고 별도입니다.]

……!

무슨 생존 키트 스케일이……. 유사 정령계?

차고르의 말에 따르면 절대영도에 가까운 우주에 떨어져도 불의 정령의 가호로 체온을 유지하고 물의 정령의 가호로 신체의 압력을 유지하며, 바람 정령의 가호로 숨을 쉴 수 있는 그런 대단한 물건이었다. 사실상 텅 빈 가방 하나만 덜렁 들고 나가도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였다.

지구에 나타난다면 세계 최고급 아공간 아이템 BEST 10에 들어가고도 남을 것이다.

이게 타키넷의 위엄이었다. VIP 비밀 전시관이라고는 하지만, 그래 봤자 타키넷 시장 중 최하위 시장인 갯펄 시장에서도 이런 물건을 구할 수 있다!

[딱 4,000알에 드리겠습니다. 이걸로 가져가시죠.]

차고르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나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예산이 3,000알이라고 말했는데도 4,000알?’

하지만 차고르가 나를 바라보는 감각은 순수한 만족감에 가까웠다. 가격을 올려 받기 위해 뻥카를 칠 때 특유의 긴장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물건을 알아주는 손님이니 제값을 받겠다는 생각인 걸까?

나쁘진 않다. 좋은 물건에는 얼마든지 좋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기왕 비싼 돈을 쓸 거라면 진짜 마음에 드는 물건에 쓰고 싶다.

나는 차고르가 들고 있는 가방에서 시선을 떼고 손가락을 뻗어 옆을 가리켰다. 전시관 한구석에 평범하게 걸려 있는 가방.

“그럼 저건 얼마죠?”

내 말이 떨어지는 순간 차고르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 저것보다는 이게 더 좋으실 겁니다. 이런 생존 키트를 가진 가방은…….]

“그래서, 저기에는 생존 키트가 없나요?”

[네, 없습니다.]

“그럼 뭐가 있죠?”

[아니, 그러니까…….]

자꾸 말을 돌리려는 차고르에게 나는 확실하게 말했다.

“저 물건이 마음에 듭니다. 저걸로 주세요.”

결국 차고르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후… 정말 눈썰미가 상상 이상이군요. 저 물건을 알아볼 줄은 몰랐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휴…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그건 판매용이 아닙니다. 상위 시장의 상인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서 보관하고 있는 겁니다. 그건 그냥 아공간 가방이 아니에요. 아공간의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서 만든… 혁신적인 상품입니다. 장담컨대, 신전 거리에 가도 귀한 물건일 겁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이 방에 있는 그 어떤 물건보다도 수준 높게 인챈트된 물건이었다. 심지어 타오르고 있는 오라의 크기도 가장 컸다.

장인의 혼이 담긴 명품이자, 여태까지 내가 본 물건 중에 가장 수준 높은 영능학 기술이 적용된 물건.

상위 시장의 상인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이런 물건도 취급한다! 하고 눈도장을 찍기 위한 용도로 가져온 물건이겠지. 아무한테나 덜컥 판매하려고 가져온 물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내 입장은 그렇다. 이런 물건이 버젓이 걸려 있는데 다른 물건에 눈이 갈 리가 없지.

“저한테 파시죠. 상위 시장 상인한테 눈도장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타키온이 있어야 상위 시장으로 올라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타키온만 많다고 살아남나요? 당장 바로 위의 시장인 ‘신전 거리’만 해도 미리 거래처를 만들어 두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렵습니다.]

“파시고 또 하나 구해서 가져다 두세요. 물건은 두고 썩히는 게 아닙니다. 계속 사고파는 게 상인의 일 아닙니까?”

[그래도…….]

“그냥 가능성 넘치는 상인하고 거래를 뚫는다 생각하고 파세요.”

나는 그에게 명함을 하나 찔러주었다. 나타르 씨가 만든 우리의 브랜드, <테라>의 명함이었다. 내 직책은 최고 생산 관리자(CPO).

그걸 본 차고르 씨의 표정이 바뀌었다.

[테라?]

“들어 보셨을까요? 신생 업체지만 신발 사업 잘하고 있습니다.”

[아… 저주 저항 작업화? 거기에 꽤 흥미로운 신생 브랜드가 생겼다고 듣기는 했는데…….]

잠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차고르가 고민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너무 비쌀 겁니다. 애초에 아공간 가방을 사러 오셨던 거면 굳이 이런 혁신 상품을 사실 필요는 없습니다. 가방 그 자체의 성능에 충실한 물건을 사시면 돼요.]

“꼭 이걸 사고 싶어요.”

내가 의지를 보이자 차고르는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팔죠. 하지만 할인은 안 됩니다.]

팔지 않으려던 것을 팔아 달라고 간청한 입장에서 가격까지 깎을 수는 없겠지. 좋아. 바라는 바였다.

“좋습니다. 얼마죠?”

[12,000타키온은 받아야겠습니다.]

…네?

* * *

[구매자 등급: 부스러기 먹는 벌레]

1만 타키온 이상의 구매 이력이 생기자 구매자 등급이 올랐다.

빌어먹을.

너무 비싸잖아.

젠장.

하지만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차고르의 설명을 듣고 내가 직접 만져 보며 [만상공감]으로 확인하면 할수록 나는 이 가방과 완전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니까.

이 백팩은 ‘탐貪’이라고 불렸다. 영롱하게 타오르는 오라만 해도 가치가 있었다. 여태까지 내가 보아 온 모든 오라들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크게 타오르는 오라. 틀림없이 내 영력을 급속 성장 시켜 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탐에게 인챈트된 주문이었다.

차고르의 말이 맞았다. 이걸 아공간 가방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아공간의 개념을 한 단계 승격시킨 혁신.

이 녀석을 살 수 있어서 기쁘다.

“하지만 지출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네…….”

오락가락하는 기분 탓에 감정적으로 너덜너덜해졌다. 하지만 차고르는 오히려 힘이 생기는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지금 가는 가게는 캐스터에 관해서는 이곳 갯펄 시장에서 가장 빠삭한 사장님이 운영하는 가게입니다. 비밀 상점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모도 엄청나지요. 조만간 신전 거리로 진출할 거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현재 나는 차고르 씨에게 비밀 상점가 최고의 캐스터 가게를 안내해 달라고 부탁한 상태였다.

캐스터는 차원 문명인들에게 있어서는 어쩌면 현대인의 스마트폰과도 비교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신비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 항상 들고 다니는 가장 기초적이며 가장 유용한 도구.

‘예상보다 지출이 너무 컸지만… 그렇다고 캐스터에 돈을 아낄 수는 없어.’

원래는 카탈로그에 있는 물건들 중에서 구매하려고 했지만, 비밀 상점가를 알게 된 이상 그럴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공간 가방과 캐스터만큼은 구할 수 있는 한, 가장 하이엔드 제품을 사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으니까.

하지만 속이 탄다. 가방에 12,000타키온을 태웠는데… 일반적으로 가방보다 비싼 캐스터에는 대체 얼마나 태워야 한다는 말인가?

‘차라리 그냥 적당한, 그래서 가격도 적당한 그런 캐스터만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 좋은 물건이 있다면 또 정신 못 차리고 가격 상관없이 사 버릴지도 몰랐다. 그러다 파산할까 걱정이었다.

그렇게 상반된 기대와 걱정으로 내 속이 바짝바짝 타고 있는데, 차고르는 무심하게 걸음을 옮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무려 3층에 이르는 커다란 가게 앞에 서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작고 어두운 상점들이 늘어선 이 비밀 상점가에서 무려 3층짜리 가게라니…….

[여기입니다.]

차고르 씨가 선망에 찬 얼굴이 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이곳은 가게만 큰 게 아니었다. 다른 곳과 달리 손님마저 북적이고 있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큰손님만 맞이한다는 VIP 비밀 상점이 이렇게 성업 중이라니……. 이곳 사장이 조만간 상위 시장인 신전 거리로 진출할 거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닌 듯했다. 아마 신전 거리로 진출하더라도 단숨에 시장을 긴장시키는 다크호스가 되지 않을까?

우우웅-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품에 있던 휘오의 가지가 진동했다.

- 익숙하안 냄새야! 알고 있는 차원이야아!

휘오의 목소리에 긴장이 묻어 있었다. 가지가 진동하며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얼굴도 저절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차고르 씨가 안내해 준 가게의 1층 홀이 보였다. 손님들로 북적이는 그곳에, 낯익은 슈트를 입은 일단의 무리가 심각하게 분위기를 잡으며 서 있었다.

‘아갈타 군인들……!’

그들이 입고 있는 슈트는 지구를 집어삼키려고 하는 문명, 아갈타의 군인들이 입는 전투 슈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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