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갯펄 시장에 진출하다
물속에 잠수하고 있다가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어 본 적 있는가?
타키넷 시스템에 접속했을 때 들려온 목소리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 12만 타키온의 입금을 확인합니다.
- 새로운 사용자 계정이 생성되었습니다.
- 계정의 타키온이 10만 타키온을 초과합니다. 하수인을 세 명까지 지정할 수 있습니다.
- 하수인 계정 ‘까막이’ 생성이 완료되었습니다.
- 사용자 ‘소시민’ 님, 타키넷 시스템의 최초 접속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끝인가?’
먹먹한 목소리가 귀에서 일렁일렁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사위가 조용해졌다.
이제 갯펄 시장에 출입할 수 있게 된 건가 싶어서 막 발을 크게 한 번 내디디려는 순간,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목소리 자체는 동일했지만, 이번엔 내 귓가에 바짝 입을 붙이고 속삭이는 듯 선명하기 짝이 없었다.
“당신을 이끈 운명의 궤적이 이곳에서 의미를 만들어 내길…….”
흠칫!
“뭐, 뭐야?”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뒤엔 아무도 없었다. 온몸에 닭살이 돋아났다. 착각? 그럴 리 없었다. 아직도 귓볼에 닿았던 그 숨결이 생생했으니까. 무엇보다 [만상공감]을 가진 내가 감각에 있어서 틀릴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놀랍다. 어떻게 [만상공감]을 가진 나를 놀래킬 수가 있는 거지? 귀신이라 해도 이렇게까지 기척이 없을 수 있을까? 허공에 갑자기 목소리만 나타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 옆에 있던 까막이는 그저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혀, 형? 갑자기 왜요?”
나를 한 번 보고 내 뒤를 다시 한 번 본다. 내가 물었다.
“못 들었어?”
“네? 뭘요?”
“방금 누가 그랬잖아. 운명이니 궤적이니 운운…….”
“네? 최초 접속을 환영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깜빡깜빡. 까막이와 눈을 마주쳤다. 까막이가 주춤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왜, 왜 그래요. 저 귀신 얘기 안 좋아해요.”
아무래도 나만 들은 모양이다. 하수인은 못 듣고 사용자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인 걸까? 아… 모르겠다. 일단 화제를 넘기자.
“귀신 무서운 놈이 킬러 짓을 했냐?”
“예에? 제가 무슨 킬러 짓을 했다고……. 첫 번째 살인도 못 해 보고 이 꼴 난 거잖아요.”
“그래서 아쉬워?”
“아뇨. 너무 행복합니다.”
“그렇지.”
나는 까막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비눗방울처럼 아롱거리는 벽면이 우리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쓰레기 거리와 갯펄 시장을 나누는 경계였다.
진정한 타키넷은 바로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무튼, 이제 시작이구나.’
잠시의 찝찝함은 금세 잊혀졌다.
갯펄 시장으로의 진출. 그것이 내게 가지는 의미는 명백했다.
‘회귀 이후 세운 첫 번째 목표는… 완료!’
갯펄 시장에 들어가면, 나는 지구와 운명을 함께하지 않을 수 있다.
최소한의 자유 획득.
이미 이 시점에서 작은 꿈 하나는 이루었다. 강해졌고, 지구의 멸망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돈도 있고 나름의 권세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입안을 적시는 달콤한 기분과 달리, 배는 여전히 굶주림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쉽다. 배가 고프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
‘1차를 이뤘으니 2차 목표를 이룰 때인가?’
근데 그게 뭘까? 무엇을 2차 목표로 삼아야 할까? 아직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내가 바라는 게 당초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커졌다는 것. 그 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나조차 상상을 못 하겠고, 그저 가슴만 미친 듯이 뛴다는 것.
나는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앞으로 크게 크게 걸음을 내디뎠다. 내 뒤로 까막이의 긴장한 발걸음이 따라붙는다.
* * *
그럴 때가 있다.
한때 자주 다녔던 장소여서 속속들이 잘 알고 있고, 아주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장소에 어쩌다 보니 오랜만에 찾아가게 되었을 때.
그런 때, 그 익숙하던 장소에 새삼 감탄하거나 놀라곤 한다.
맞다. 여기가 이랬었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시간을 거슬러 다시 현재가 되어 버린 과거의 시간 속에서 또다시 갯펄 시장을 찾은 내 기분이 딱 그랬다.
갯펄 시장.
그곳은 타키넷 속의 여러 시장 중 가장 외곽에 위치한 시장이었다.
그건 이곳에서 파는 물건들이 타키넷 전체의 상품들 중에서 가장 급이 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갯펄 시장이 타키넷의 시장들 중 규모 면에서는 가장 크다는 의미도 되었다.
갯펄 시장으로는 온갖 차원 문명에서 모여든 원자재, 1차 가공품, 저가의 도매 상품 등등이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당연히 이곳에 들어서면 갖게 되는 첫 번째 인상은 ‘크다.’일 수밖에 없었다.
“와! 이게 뭐야! 뭐가 이렇게 커!”
까막이가 입을 쩍 벌렸다. 너무나 예상 밖의 풍경이었는지, 뺨이라도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목소리가 다급하고 공격적이었다.
갯펄 시장은 그만큼이나 컸다.
보통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크다.’라고 말하면 거대한 건물을 상상하곤 한다. 고개를 수직으로 꺾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마천루를 떠올린다.
반면에 푸르른 산등성이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장엄한 산맥 같은… 그런 종류의 ‘거대함’을 상상하는 이는 없었다. ‘크다.’라는 말에 대뜸 거대한 항성들이 끝도 없이 들어찬 은하수를 떠올리는 이 역시 드물 것이다.
결국 자신의 크기를 기준으로 세상을 재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높고 너무나 넓은 것들이 연달아 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의 크기를 상상하기보다는 그 전체를 그저 하나의 풍경으로 받아들이곤 했다.
갯펄 시장은 바로 그런 비인간적인 척도에서 거대한 장소였다. 수십, 수백억 개의 가게가 기묘한 통로를 통해 절묘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곳. 시장이라기보다는 도시. 도시라기보다는 가게의 집합체로 이루어진 산맥이나 은하처럼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회귀 전에 그래도 꽤 자주 봤던 풍경이었는데, 다시 보니 새삼 감탄스럽다.
“근데… 길은 어디 있을까요?”
까막이는 풍경에 압도당했는지 어쩐지 주눅 든 태도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상하다……. 나타르 씨가 분명 요즘 잘나가는 작업화, 저주 저항. 이런 키워드로 찾아오면 된다고 했는데, 무슨 표지 하나도 안 보이잖아요? 아니, 표지가 문제가 아니라 길 자체가 없는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장 고개만 살짝 들어 봐도 별처럼 많은 가게가 산맥처럼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가게와 가게를 잇는 길은 보이질 않았으니 녀석이 당황한 것도 당연했다.
가게들은 그저 공중에 떠 있거나 또는 자기들끼리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지점에서 한 지점으로 이어지는 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고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곳을 처음 방문한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까막이처럼 생각할 것이다. 여기에는 길이 없는 것 같다고.
심지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쿵! 쿠우웅!
“어어어? 건물들이 움직여요!”
테트리스처럼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건물들.
“쟤는 막 휘기도 하고 분열되기도 하고……!”
공간이 이리저리 왜곡되는지, 하나의 건물이 분열되어 보이기도 하고 길쭉하게 커지기도 했다. 크게 보면 하나의 풍경 같지만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복잡하고 쉼 없이 움직이는 미궁 그 자체.
까막이가 진땀을 닦아 냈다.
“여기서 길을 어떻게 찾아……. 안 되겠다. 제가 연락해 볼게요.”
녀석이 휘오의 가지를 꺼내려고 하길래 말렸다.
“됐어. 가는 방법 알아.”
“네? 방법을 안다고요?”
“그래. 네가 방금 말했잖아. 작업화, 저주 저항. 이런 키워드면 된다며.”
“근데 그게…….”
혼란스러워하는 까막이를 보며 나는 웃었다.
“저기,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외계인들 보여?”
“네? 아… 네! 보이네요. 무슨 마법인가? 그냥 막 허공을 밟고 다녀요. 어? 사라졌다.”
“저게 길이야.”
“…길 안 보이는데요…….”
“상상력을 좀 발휘해 봐. 길이 꼭 따로 있어야 돼? 건물을 제외한 모든 빈 공간이 길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이렇게.”
말을 끝내는 동시에 나는 앞의 허공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머릿속으로는 한 가지만을 떠올린다.
‘신발. 저주 저항이 좋은 작업화. 요즘 잘나가는 거로.’
일렁-
그러자 허공으로 뻗은 내 발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것이 내 발밑에 나타나 계단을 만들었다.
“어? 형, 지금 허공을 밟았어요?”
“너도 할 수 있어. 속으로 ‘소시민을 따라간다.’라고 강하게 생각하면서 내 뒤를 따라와. 그러면 저절로 길이 나타날 거야.”
“오, 오? 진짜 된다! 와! 대박 신기!”
일렁-
일렁일렁-
우리는 한동안 허공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까막이는 쉼 없이 감탄을 토해 냈다.
“와! 형은 어떻게 이런 걸 다 아는 거예요? 전에도 여기 와 보셨어요?”
항상 다음 발걸음을 떼기 전에 새로운 그림자 계단이 내 앞으로 스르륵 나타났다.
이 길은 내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키워드에 맞게 나를 인도한다. 바로 ‘그림자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태고의 주문이었다.
수도 없이 많은 차원 문명이 모이는 갯펄 시장에서 별다른 탈 없이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 가게들이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있어도, 그림자 시스템은 방문객들을 각자가 원하는 가게로 인도했다.
심지어 구매 패턴, 상품의 인기도, 리뷰 등등을 종합해 최적의 가게 앞으로 이끌어 주니 실패할 일이 없었다.
‘한마디로 차원계의 X마트 스토어지.’
일렁일렁- 후욱-!
게다가 그림자 시스템은 그냥 허공에 길을 만들어 주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계단을 몇 번 밟고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그림자가 후욱! 커지며 나를 삼키고, 눈을 떠 보면 주변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적절한 공간 도약으로 인해 갯펄 시장의 끝과 끝을 오가는 시간은 1분 내외면 충분했다.
후욱-
공간이 바뀌고 내 앞에 신발 가게 하나가 나타났다.
‘키에릭 제화? 아니야.’
고개를 젓고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자 다시 눈앞의 풍경이 바뀐다.
후욱-
‘듀르고라엔 마트? 여기도 아냐.’
후욱- 후욱-
‘아냐.’
‘아니고…….’
‘…이걸 언제까지 해야 되지? 역시 론칭한 지 얼마 안 된 브랜드라서 인지도가 떨어질 텐데…….’
문득 걱정을 하는 순간,
후욱!
<테라>가 눈앞에 나타났다. 나타나는 가게들을 일곱 번쯤 스킵한 뒤였다.
‘와! 8위라고?’
솔직히 최소 30번은 스킵해야 할 줄 알았다. 아니. 한 100번을 스킵해도 대단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작 여덟 번 만에 나타나다니…….
‘장사 진짜 잘되는구나.’
요즘 잘나가는 작업화, 저주 저항. 이런 단순한 키워드로 안내를 받았는데도 여덟 번 만에 도착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이 거대한 갯펄 시장에서 그 두 가지 키워드에 있어서 만큼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림자 계단을 밟아서 <테라>에 다가가자 가게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숙이는 나타르의 모습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아직 다음 물량이 나오지 않아서……. 지금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 중입니다.]
[네, 네. 조만간 신상이 들어올 겁니다. 네? 품질이요? 어린 세계수의 이파리만큼 특별한 소재가 있겠냐고요? 당연히 있죠. 걱정 마십시오.]
[아니, 저랑 일하는 친구가 진짜 대단해요. 저희 브랜드의 정체성 아시지 않습니까? 미지의 세계, 지구에서 만드는 물건! 원시적이지만 혼을 담을 줄 아는 장인. 그리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신박한 소재!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뛰어난 인챈트! 이게 테라의 정체성 아닙니까. 네, 네. 신상 나오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네.]
그렇게 연신 굽신굽신하며 손님을 내보낸 나타르는 문득 나를 발견하고는 눈이 커다래졌다. 안 그래도 쌍꺼풀이 크고 진한 낙타 인간이 눈까지 크게 뜨니 예쁜 눈알이 굴러떨어질 것만 같다.
[이 친구! 왜 이제 왔어!]
나타르는 내가 처음 보는 표정을 지었다. 커다란 입을 크게 벌리며 웃고, 컵을 꺼내 번개 같은 속도로 혹등물을 따르고, 발굽에서 다그닥 소리가 나도록 내게 뛰어와 혹등물을 건넸다.
[자자, 일단 한 잔 시원하게 넘기고. 아이고, 갯펄 시장에 진출한 걸 축하해.]
나를 한없이 반겨 주면서도 쉼 없이 내 손과 등을 이리저리 살피는 나타르였다. 내가 새로운 신발이라도 가져왔나 싶어서 저렇게 둘러보는 것일 터였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명절에 고향 집을 찾는다던데, 가족들이 반겨 주는 게 이런 느낌인 걸까? 무조건적인 호의 같으면서도 은근슬쩍 바라는 게 있는 눈치. 정겹고도 귀엽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요. 아직 물건 없으니까.”
[뭐? 왜?]
나타르가 내 앞에 앉았다. 느긋한 사막 발굽인이 이렇게까지 가슴 졸이는 거 보면, 진짜 보이긴 보이나 보다. 크게 성공할 기회가. 하루라도 더 빨리 앞으로 튀어 나가고 싶어서 마음 졸이고 있는 거겠지.
내가 여유롭게 혹등물만 마시고 있자 나타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네, 혹시… 나랑 밀당하는 거야?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나 많이 남겨 먹는 거 없어. 저기 가격 써 붙여 놓은 거 보면 알 거 아냐. 서로 맞춰 가면서 잘해야지. 너무 성급하다가 사람 잃으면 손해야, 친구.]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중품 한 켤레에 378알. 나한테 사 가는 가격이 264알 정도니까 30퍼센트 정도 마진인 건가?’
물건은 내가 공급하고 유통 및 판매는 나타르가 담당한다. 보통 지구에서도 유통 마진을 적게는 30퍼센트, 많으면 50~70퍼센트까지 남겨 먹는 것을 생각하면 30퍼센트의 마진을 챙기고 있는 나타르는 상당히 후하게 수익을 떼 주고 있는 것이었다.
[잘 들어 봐. 물론 자네가 가져온 물건의 품질이 뛰어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물건이 팔리는 건 아니야. 내가 아무런 인지도도 없던 ‘테라’라는 브랜드를 단기간에 띄우기 위해 어떤 짓을 했는지 알아? 일단 고객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서 내 직원들 한 명, 한 명 다 테라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오픈하게 만들었어. 그게 무려 열다섯 개야. 그리고 거래 실적을 쌓기 위해 수수료 손해 보면서 우리끼리 내부 거래도 좀 돌렸지. 이게 또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하거든. 갯펄 시장의 그림자 시스템이 내부 거래를 어찌나 잘 걸러 내는지……. 그리고 15개의 가게를 최후에는 하나로 합치기 위해서…….]
철없는 동생을 타이르듯 차근차근 설명을 하는 나타르.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진지한 양반. 장난도 못 치겠네.
어차피 나는 이 양반의 손을 놓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사업이 무엇이냐?
그걸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다른 사람과 힘을 합치는 것.’
그게 사업이다. 나는 나타르를 쳐 내고 혼자 먹을 생각이 없다. 혼자 2를 먹는 것보다 둘이서 10을 먹을 생각을 해야지.
“물건이 없다고 했지 뭐, 아무것도 안 가져왔다고 했습니까? 봐요. 제가 아주 기가 막힌 소재를 찾아냈거든요.”
[응?]
나는 갯펄 시장의 카탈로그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바로 얼마 전에 비공개로 등록한 대상이 홀로그램이 되어 떠오른다.
그것은 새까만 밤. 그리고 그것이 품고 있는 달. 물론 테이블 위로 떠오를 만큼 축소 되었지만, 홀로그램 주위로는 내가 기재한 크기와 특징 등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나타르는 홀린 듯한 표정으로 홀로그램으로 떠오른 밤과 달을 만졌다.
[이게… 뭔가?]
“멸망한 세계의 조각입니다. 자아를 가진 괴물이고 재생 능력을 가진 신체를 가지고 있죠. 이 녀석이 발견된 던전의 지분을 인정받았는데… 다른 건 다 포기하고 이 녀석 하나를 온전히 양도받는 것으로 계약했습니다.”
‘어때요? 잘했죠?’ 하는 눈으로 바라보니 나타르의 입이 헤벌레 벌어졌다.
[이 친구, 천재네! 딱 우리가 찾던 소재잖아? 충분히 튼튼하고 강력한데… 참신하고 괜찮은 스토리가 있어! 신발이든 뭐든 테라의 이미지를 확정 짓는 데 딱 좋은 소재야.]
그렇지. 나타르 씨, 말이 통한다니까.
“일주일 내로 물건 만들어 올게요.”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키워드 ‘작업화’, ‘저주 저항’, ‘요즘 잘나가는’. 이런 키워드로 안내를 받아 도착한 이곳에는 우리의 브랜드, 테라보다 더 눈에 띄는 장소에 있는 가게가 정확히 일곱 개였다.
나는 그 가게들을 주욱 둘러보며 말했다.
“그리고 다음 삼 주일 내로 건방지게 우리 앞에 있는 가게들, 제쳐 버리죠.”
아, 모르겠다. 유치할 정도로 호기가 치솟는다.
두 번째 목표가 무엇이 될지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단기 목표 하나는 세웠다.
전 차원에서 몰려온 장돌뱅이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며 뒤섞여 있는 곳, 갯펄 시장.
일단은 이 갯펄 시장의 가장 꼭대기에 오르고 싶었다.
일주일이 되기 전에 10만 타키온을 넘게 벌었는데 그걸 못 하겠어?
바짝 벌어서 새로운 명품을 사고, 그 명품들의 힘으로 또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고, 그 소재로 또 사업을 키우고……. 갯펄 시장을 먹고 지난 생에도 보지 못한 상위 시장까지 나아가고…….
가슴이 뜨끈뜨끈하다.
나타르가 내 눈을 들여다보더니 푸릉- 소리를 내며 입술을 뒤집고 웃었다. 그건 극히 만족스럽다는 웃음이었다. 종족은 다르지만, 내 웃음도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