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76화 (76/212)

12. 뽐뿌

최치국의 눈동자에 이글이글 불이 붙었다.

발견된 오파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던 데미안이 그런 최치국을 슬쩍 보더니 그에게 손짓을 했다.

“최치국 씨, 할 말 있다면 와서 하지. 여기까지 뚫고 오는 데 당신 지분이 아예 없지는 않았으니까.”

그러자 최치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눈도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데미안을 똑바로 쏘아보는 기세가 아주 맹렬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이곳에서 발견된 오파츠 정보에 대한 공유를 요청합니다.”

“부관? 설명해 드려.”

데미안은 최치국의 요구를 선선히 받아들였다.

‘아, 애초부터 정보를 숨길 생각이 없었구나.’

그러고 보면 던전을 점령하고, 그 던전의 지분을 어떻게 계산하는지를 직접 지켜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난 생에는 이런 대단한 자리 근처조차 가 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무튼 데미안이 최치국의 공을 선선히 인정하는 건 의외였다.

‘그런데 확실히 이게 공정한 것 같기는 해. 최치국의 공이 없다고는 말할 수는 없으니까. 최치국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밤을 제압하지도 못했을 거고, 이렇게 사망자가 한 명도 없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을 거 아냐.’

의외였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문제는 하나였다.

‘그래서, 그 공을 어디까지 인정해 줄 생각이지?’

루드비히 가문이 그 공을 순순히 인정해 줄 것 같지는 않은데?

데미안의 부관이 오파츠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동안, 최치국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시선을 계속 데미안에게 고정시켜 놓은 채,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설명이 끝나자 데미안은 턱을 까딱 들어 올렸다.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는 뜻이다. 그러자 드디어 처음으로 최치국이 눈을 깜빡이고,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해당 오파츠 사용권을 구매할 수 있는 독점적인 권한을 원합니다.”

“독점적인 사용권 구매라……. 필요할 때마다 빌려 달라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이것 역시 의외였다. 최치국이 요구한 권한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최치국은 마치 생사결이라도 벌일 것 같이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데미안은 눈을 한 번 지그시 감았다 뜨고는 바로 답했다.

“독점은 안 돼. 알다시피 이 오파츠를 빌려 달라는 곳이 여기저기 많을 거라.”

그 대답의 어디가 문제였던 걸까? 최치국은 움찔 놀라서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귀신이라도 본 듯했다. 뭐지? 심장의 박동도 변하고, 털도 조금 곤두서고……. 이 감각은 뭐야? 되게 사연 있는 사람처럼?

“다만 동일한 시기에 무혼 권가와 또 다른 세력 간의 대여 요청이 동시에 이루어질 경우엔 어디까지나 무혼 권가의 요청을 더 우선시하도록 하지. 대여비는 정해진 시세 없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쪽한테는 특별히 10퍼센트의 할인을 부여할 거야. 단, 이 할인은 당신이 직접 와서 받아 가고 반납할 때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뭐, 전혀 필요 없는 도움이었지만, 내 부하들이 다칠 털끝만 한 가능성이라도 지워 줬으니 그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하도록.”

데미안이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는 듯이 딱 떨어지는 말투로 말했다. 역시나 데미안은 많은 걸 양보하지 않았다.

최치국이 여기까지 와서 얻어 낸 것은 고작 남들보다 우선순위로 오파츠를 빌릴 수 있는 권한과 10퍼센트 할인가가 전부였으니까. 그나마 10퍼센트 할인도 선심 썼다는 투로 던져 준 것이었다.

딱 이 정도. 사실상 지분 인정이라기보다는 개평에 가까운 그것.

하지만 최치국은 좋다, 싫다는 감정 표현도 없이 그냥 계속 복잡한 표정으로 데미안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어색한 침묵이었다.

결국 데미안이 눈썹을 찌푸렸다.

“…싫어?”

“아니, 아닙니다. 그 조건대로 하겠습니다.”

그제야 최치국은 묵례를 하고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마지막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데미안을 상대할 때는 어딘가 어리바리하더니 나를 쳐다볼 때는 완전 날카롭고 살벌했다. 얼굴이 뚫릴 것 같다. 와… 거, 너무하네.

“소시민 씨, 다음에 또 만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말투는 정중한데, 눈빛은 다음에 만나면 잘근잘근 씹어 먹겠다는 의지를 팍팍 뿜어내고 있었다.

“다음에는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오든, 쉽지 않을 겁니다.”

‘장난감.’

나는 그냥 한 번 픽, 웃어 주었다.

최치국이 그걸 보고 모욕당했다 생각했는지 이를 악물더니 등을 돌렸다.

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지켜보았다.

‘기분 묘하네.’

과거의 영웅에게 미움을 샀다. 약간은 슬픈 기분. 그런데 그보다는… 훨씬 더 큰 만족감이 나를 덮쳤다.

과거의 나는 그에게 고작 그냥 지나가는 시민1쯤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최치국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심지어 분하다는 듯이 이를 악문다.

어쩐지, 이 세상에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실감이 든다.

근데 그나저나…….

‘장난감이라…….’

여전히 최치국은 나의 영웅이지만, 역시나 나와 그의 견해 차이는 명백하다.

지난 생에야 내가 최치국과 생각이 다르든 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최치국과 나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맞부딪히고 경쟁한다. 서로가 서로를 신경 쓴다.

그 사실은 꽤나 깊은 충족감과 도전감을 주었다.

‘그놈의 쇄국론자들. 장난감에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리지.’

승리한다는 것. 그래서 내 존재감을 각인시켜 준다는 것. 내가 옳음을 증명한다는 것. 그게 참 짜릿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음에도 내가 이길 거야.’

그 상상만으로도 세포 하나하나에 활력이 솟아났다.

* * *

물건.

물건을 경시하는 표현 중 하나로 신외지물身外之物이란 말이 있다.

결국 물건이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나와 떨어져 있는 것이기에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높일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마 최치국이 ‘장난감’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의 생각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달랐다.

‘신외지물?’

정말 절망적인 헛소리!

지난 생에 이 터무니없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얼마나 애를 먹었나? 지금 생각해도 이가 바득바득 갈린다. 그 덕분에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깨닫기 위해 너무나 먼 길을 돌아와야만 했다.

그래도 그 고생을 한 덕분에 이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물건이란 나와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물건은 ‘나’의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수단이다.

‘단순한 거지. 기타를 사서 1년간 죽어라고 연주한 사람과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한 사람. 누가 더 음악적으로 가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이런 예시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펜을 사서 그 펜으로 열심히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린 사람.

좋은 키보드를 사서 그 키보드가 다 닳을 때까지 글을 쓴 사람.

훌륭한 재봉틀이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옷을 만든 사람.

그러니까, 신외지물이라는 말은 무턱대고 쓰는 말이 아닌 것이다. 그건 자기가 가진 물건을 제대로 쓸 줄도 모르고 쌓아 두기만 하는 이들에게나 통용되는 말이다.

사람은 도구를 구비하고, 그 도구를 공들여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기술을 익히고 성장한다.

물건과 사람의 능력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모뎀을 쓰던 사람은 10초의 로딩도 느긋하게 기다리지만, 5G 초고속 통신망을 쓰는 사람은 1초의 로딩도 답답해하듯이, 사람은 물건에 익숙해지며 성격도 변하고 버릇도 변하고 나아가 운명까지 변한다.

그냥 톱질을 하는 사람과 전기톱질을 하는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인 것이다. 도구가 나를 바꾼다. 도구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이렇듯 신외지물이었던 것이 내 손을 타면 탈수록 점점 물아일체의 지경으로 나아가는 것.

그게 바로 [길들이기]의 과정이었다.

그렇기에 [만상공감]을 지닌 내가 능력을 키우는 방법은 심플하면서도 무척 어려운 것이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최대한 많은 물건을 구비할 것.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둘째, 그 하나하나를 모두 100퍼센트, 200퍼센트, 아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잘 사용해 줄 것.

이게 말이 쉽지 사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보통의 사람들 같으면 평생 한 가지 물건에조차 통달하기 어려운 법이었으니까.

“후…….”

바닥에는 거인창을 꽂아 두었고 손에는 파도를 들었다. 상체에는 절규를 삼킨 밤을 걸쳤고 목에는 유해의 마을 출입증을 대신하는 목걸이를 찼다.

하나같이 명품들.

그것들에서 뿜어져 나온 오라가 내 몸을 타고 넘실거렸다.

현재 나는 완전 녹초가 되어 있었다.

체내의 열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30도 가까이 되는 기온에도 불구하고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증기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내 물건들을 길들이기 위해 [만상공감]을 빡세게 운용했더니 전신의 영력이 모두 흩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완벽하게 길들여진 청하와 악몽사슬을 품고 있으면 소모된 영력이 빠르게 회복되기는 했지만, 이렇게 텅 비어 있는 상태가 되면 그것으로도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한참 동안 거칠게 숨을 쉬어도 호흡이 정리되지 않았다. 무릎이 후들후들 떨려서 똑바로 서 있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이렇게 힘들게 훈련을 한 성과는 확실했다.

‘후… 조만간 거인창과 절규를 삼킨 밤도 완벽 단계로 길들일 수 있겠다.’

드디어 거인창과 절규를 삼킨 밤의 ‘길들이기’가 90퍼센트를 넘긴 것이다.

징글징글하게도 길었다.

청하와 악몽사슬은 사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오라를 가진 명품 중에서도 급이 많이 떨어지는 장비들. 그래서인지 길들이기도 금방 끝낼 수 있었지만, 거인창은 그보다 몇 배는 더 공을 들여야만 했다.

‘남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하겠지만…….’

[만상공감]이 없는 타키넷의 일반적인 사람이 거인창을 완벽하게 길들이려면 못해도 10년은 그것만 붙들고 죽어라 수련해야 할 것이다.

그에 반하면 나는 거인창을 얻은 지 반년이 채 안 되어 길들이기를 끝마치는 것이니 무척 빠른 속도였다. 심지어 그사이에 거인창 하나만 만진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욕심이 나는 걸 어떡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말야.’

지난 생에는 상상만 했었다. ‘오라를 가진 명품으로만 장비를 구성하고, [만상공감]을 최대로 활용해 길들이기를 진행한다면 얼마나 빨리 성장할 수 있을까?’라는.

물론 감히 시도해 볼 수 없었다. 그때는 그냥 혼자 이론적으로 계산만 해 보고 끝이었다. 그런데 그걸 직접 실험하고 체험할 수 있다니…….

하루하루가 성취감으로 가득해서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지금까지는 그때 내가 계산한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성장 속도가 나오고 있어.’

그래. 이론상으로는 알고 있었다.

나한테 제대로 된 환경만 조성되면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만약 삶을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내 계산으로는 분명 그랬으니까.

하지만 믿는 건 믿는 거고. 그 믿음이 증명되고 현실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너무 신이 나고, 어서 이다음 단계를 확인하고 싶어서 잠을 설치게 되는 나날이었다. 지금까지는 생각대로 되었는데,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진짜 내가 계산한 대로 될까?

‘만약 내 계산대로라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가 나오게 되는 건데…….’

현재까지 내가 완벽하게 길들인 명품은 두 개였다. 악몽사슬과 청하. 거기에 이제 곧 거인창과 절규를 삼킨 밤도 완벽하게 길들이게 된다면, 내 영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면 한꺼번에 길들일 수 있는 물건의 양도 늘어나게 된다.

즉, 영력의 성장 속도에 기하급수적인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청하와 악몽사슬을 포함해서 현재 내가 가진 명품은 총 여섯 개…….”

그간은 없는 영력으로 이 여섯 개의 물건을 번갈아 가며 잘 길들여 왔다. 하지만 나의 다음 목표는 이보다 훨씬 대담했다.

“그럼… 거인창과 절규를 삼킨 밤을 완벽하게 길들이는 때에 맞춰서 소유한 명품의 수를 서른 개로 늘려 볼까?”

오라를 가진 물건이 30개!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다. [만상공감]은 아주 탐욕스러운 능력이었다. 더 많은 물건을 다룰수록, 더 많은 물건을 완벽하게 길들일수록 끝도 없이, 더 빠르게 강해지는 능력.

일단은 서른 개.

서른 개를 구하고 나면 백 개. 백 개를 구하고 나면 천 개…….

‘아… 천 개! 천 개의 오라!’

상상만 했을 뿐인데 코끝으로 달콤한 향기가 스치는 것 같았다.

그래. 만약 정말 내 계산대로 승승장구해서 천 개의 명품을 다 다룰 때쯤에는……. 아마 그때쯤에는 이 세상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전생에 가장 절정의 기량을 뽐내던 그 어떤 영웅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그가 회귀해 자신이 가졌던 절정의 기량을 한참 뛰어넘는다 해도, 나는 결코 그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더 강해져 있을지도 모르지.

결론은 명백했다.

‘물건. 물건을 사야 한다.’

용산구 2지역 사령관 연무장에는 너른 연무대와 갖가지 운동기구 그리고 식수대와 자판기 등의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나는 수건으로 땀을 닦아 내며 자판기 앞의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직사각형의 금속판을 손으로 툭 건드리자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구체 형태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구체 형태였던 홀로그램은 1초에 한 번씩 그 모양을 갖은 물건으로 바꾸었다. 칼이나 완드, 심지어 총과 같이 생긴 이차원의 각종 무기에서부터 찻주전자, 구두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괴상한 사물들까지. 계속해서 형태를 바꾸었다.

놀라운 점은 이게 홀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와 구분하지 못할 만큼 정교하다는 것이었고, 심지어 만지면 그 촉감까지도 똑같다는 것이었다.

이 신비한 물건은 까막이가 타키넷에서 보내왔다.

‘나타르 아저씨가 언제 올 거냐고 보채는데요? 빨리 갯펄 시장으로 넘어오라면서 이렇게 카탈로그도 보내 줬어요.’

신발 장사로 재미를 보고 있는 나타르가 나와 함께하는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보낸 물건.

과연 나타르는 현명했다.

‘아무리 바빠도, 일단은 타키넷에 다녀오자.’

그의 노림수대로 뽐뿌가 제대로 오고 말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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