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성공의 감각
소시민이 깜빡 기절한 그때.
뒤틀린 늪지.
최근 이곳이 고대 토착신들의 전쟁이 발발했던 장소라는 게 밝혀지며, 전 차원에서 수많은 이가 이곳으로 채굴을 나왔다.
물론 이곳에서 죽은 건 무척 격이 낮은 최하위 신들과 신조차 되지 못한 권속들, 추종자들이 대부분이라고 알려졌지만, 어쨌든 신성은 신성. 하나같이 아주 귀중한 자원이 되었다.
신의 사체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아주 값비싼 결정이 되거나, 심지어 타키온 그 자체로 변하기 때문이었다.
타키온은 보통 차원과 차원 사이에 있는, 일명 ‘창조신의 꿈’이라 불리는 지역에서 발견되고 채굴되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결국 타키온도 신성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만큼, 신의 유해가 묻힌 장소에서 타키온이 발견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신들의 전쟁터는 문자 그대로 땅에 돈이 굴러다니는 장소가 되었다.
한몫을 잡기 위해 온갖 차원에서 너도나도 몰려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지구와는 아득히 멀리 떨어진 아디에스 차원에서 온 니케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황금색 머리칼을 흩날리며 뒤틀린 늪지 위를 터벅터벅 걸어 다녔다.
“후… 정말 지독하군.”
예상은 했고 준비도 했다. 하지만 기가 질릴 정도로 지독한 저주였다.
하기야. 신성을 지닌 신들과 그 권속들이 대량으로 죽었다는 전몰지. 그 땅에 서린 한과 저주가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이해는 하지만…….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영력은 줄줄줄 흐르고, 몸은 무겁고 불쾌한 고통이 전신을 휩쓸었다.
고향 차원인 아디에스에서는 질풍처럼 빠른 움직임으로 명성이 높은 니케였지만, 이곳에서는 슬라임처럼 느릿느릿 신중히 걸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전력 질주를 하는 것 이상으로 지치고 있었다.
“후… 여기는 유독 저주가 지독하군. 뭔가 있을 것 같아.”
니케는 중간에 멈춰 서서 기다란 낚시대 같은 막대를 꺼내 늪지 아래로 찔러 넣었다.
니케뿐만이 아니었다.
서로를 견제하며 돌아다니던 다른 채굴꾼들도 모두 그 즈음에서 멈춰 서서 각자의 장비를 동원해 늪지의 밑바닥을 훑었다.
곧이어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 드디어 건졌다!”
“시발! 드디어 뜰 수 있겠어!”
“젠장… 타키온 300알을 주고 산 신발이 벌써 너덜너덜해. 그래도 뭐라도 건져서 다행이군.”
니케도 운 좋게 강력한 영력을 품고 있는 결정 세 개와 무려 200알이나 되는 타키온을 건져 냈다.
‘후… 성공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이번 채굴은 크게 수지를 봤다. 힘들게 신발을 구해서 목숨까지 걸고 이 저주의 땅으로 내려온 보람이 있었다.
다들 그와 비슷한 형편인지 인근의 바닥을 싹 훑고는 다들 이쯤에서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 후……. 너무 지쳤어. 이 이상은 위험해.”
“나도. 내 신발의 저주 저항력도 한계야. 나가서 독 좀 빼고 돌아와야지.”
때로는 서로를 견제하며, 때로는 서로를 도와 가며 여기까지 왔던 채굴꾼들이 하나둘 귀환을 준비했다.
하지만 니케는 담담하게 결정과 타키온을 주머니에 챙기고 다시 걸음을 떼었다. 또 다른 스폿을 찾기 위한 정처 없는 여정이었다.
“이봐요, 아저씨! 안 쉬어요? 저주 저항도 한계에 달했을 텐데?”
그의 말에 니케는 웃었다. 저주 저항이 한계에 달했다니…….
힘이 든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니다.
그는 아직 한계에 달하지 않았다. 그의 신발도 마찬가지였다.
발에서부터 뻗어 나온 청량한 기운이 그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한 발만 더, 한 발만 더. 옳지, 잘하고 있어.
다시 한 발 더.
발목까지 단단하게 잡아 주는 이 부드럽고 강인한 작업화가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너는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네가 멈춰 설 때까지 이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고.
훌륭한 신발이다.
브랜드 이름이 뭐였더라?
‘테라. 지구의 언어로 ‘땅’을 의미한다고 했던가.’
처음에는 가격이 조금 비싸다고 생각했다.
기능이 좋다고 말하지만, 그런 말은 장사꾼이라면 누구나 하는 거니까. 딱히 나을 것도 없으면서 그냥 비싸게 파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샀던 건,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참신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으면 신을수록 그때 장사꾼에게 들었던 말이 모두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득히 머나먼 차원에서 생존한 세계수. 그걸 알아보고 혼을 담아 어루만지는 장인들. 척박한 원시 차원에서 피어난 기적.
그 브랜드 스토리가 새삼 그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도전 정신. 독립성.
이 신발에 담긴 그 모든 스토리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 홀로 자립하고자 하는 니케 자신과 딱 어울리는 것만 같았다.
‘너, 마음에 든다.’
뿌리 깊은 나무는 쉬이 쓰러지지 않는 법이다.
이 신발이 든든한 뿌리처럼 그 어떤 역경도 뚫고 나갈 힘을 전해 주는 것 같았다.
“아저씨! 벌 만큼 벌었잖아요! 위험하게 왜 그래요?”
다른 이들은 말했다.
이 정도 하면 되지 않았냐고.
하지만 내 심장은 묻는다.
정말 여기가 내 끝인가?
저벅!
늪지 위를 내딛는 초록빛의 신발이 답했다.
아니. 당신의 한계는 이보다 훨씬 먼 곳에 있다.
아무도 보지 못한 그곳에.
그보다도 더 먼 곳에!
저벅! 저벅!
‘그래, 가자. <테라, 늪지 에디션 미들 클래스>.’
니케는 계속 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채굴꾼들이 중얼거렸다.
“뭐야, 저 신발? 좋아 보이는데?”
“디자인이 특이해. 생전 처음 보는 디자인이야. 어느 차원 거지?”
“그보다 저주 저항이 상당한 거 같은데?”
“저 정도 신발이라면 비싸도 살 가치가 있지.”
그렇게,
소시민이 납품한 신발은 나타르와 소시민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강력한 화제를 불러오고 있었다.
* * *
까무룩 기절했던 나는 나를 부르는 다급한 소리에 눈을 떴다.
“형! 형! 일어나 보세요!”
까막이였다. 근데 알게 뭐람.
머리가 아프다. 눈을 감으면 달다. 나는 몸을 옆으로 뉘였다.
그저 혼몽해서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시끄러……. 더 자…….”
“형! 나타르 씨예요! 나타르 씨가 신발 더 달래요!”
“뭐?”
그런데 나타르, 신발. 이 두 단어를 듣는 순간 잠이 확 깼다. 아, 그렇지! 나는 나타르 씨한테 신발 파는 놈이지!
입가의 침을 서둘러 닦으며 말했다.
“뭐야. 벌써 사흘이 지났어?”
“아뇨! 휘오가 우리 기절한 지 30시간밖에 안 됐대요!”
응?
서른 시간?
그러면… 사흘이 아니라 이제 막 이틀째가 된 거 아닌가?
뭔가 계산이 맞지 않아서 눈을 껌뻑이는데, 휘오가 나타르의 목소리를 전해 주었다. 이번에 거래를 하며 나타르에게도 휘오의 가지를 건네준 덕분에 통신은 순조로웠다.
[날세!]
나타르의 목소리는 다급했으며 벅찬 감동이 묻어 나왔다.
[완판! 완판했어! 두 시간 전에! 지금 예약이 쏟아져! 빨리! 저번에 그거 전부 가져와! 가격은 저번보다 30퍼센트 높게 쳐줄게!]
잠이 완전 달아났다.
근데 잠은 달아났는데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는 통 모르겠다.
일단 다급하게 일어나서 세수도 하지 않고 타키넷으로 넘어갔다.
휘오가 열어 준 황금색 게이트를 통과하자, 환희에 차서 땀을 흘리는 나타르의 얼굴이 보였다.
[신발 가져왔어? 빨리빨리!]
“여기… 여깄어요.”
준비한 신발들을 아공간 가방에서 우르르 쏟아 내니, 나타르는 세어 보지도 않고 그걸 자신의 아공간에 쑤셔 박으며 내게 타키온 자루를 건넸다.
그러던 그의 시선이 문득 내 몸 곳곳에 새겨진 상처로 향했다. 휘오의 치료를 받았지만,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아서 흉측한 모습이었다.
[어? 자네, 다쳤어?]
나타르는 그렇게 반사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일단 받아! 얘기는 나중에!]
“아, 아……? 네, 네.”
어?
얼떨결에 받아 든 타키온 자루.
[됐지? 간다!]
그러자 나타르는 뭐에 쫓기기라도 하듯 급히 자리를 떠났다. 무슨 아이템을 사용했는지 눈앞에서 연기처럼 스르르 흩어져 버렸다.
그런데…….
와…….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내게도 여유가 없었다. 너무 허겁지겁 어색하게 사라져 버린 나타르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걸 보니 나타르가 왜 그렇게 몸이 달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게 얼마야?’
아까 30퍼센트 높게 쳐준다는 말을 들었던 거 같긴 한데… 그게 진짜였어?
자루에 든 타키온의 양이 상상을 초월했다.
‘121,966알?”
여섯 자리 액수?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그러다가 나도 화들짝 놀랐다. 재빨리 좌우를 살피고.
서둘러 게이트를 열어 다시 휘오의 거처로 돌아왔다.
내가 돌아오자마자 까막이가 내 손에 들린 자루를 보고 펄쩍 뛰었다.
“와! 형, 형! 돈 받아 왔어요? 얼마예요?”
무슨 강아지처럼 내 주변에서 촐랑촐랑 뛰어다녔다. 습격을 같이 당해서 그런지 유독 더 친근하게 굴었다. 아니, 나도 이젠 녀석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자식이… 아직 몸이 다 낫지도 않아서 상처 사이로 피가 슬슬 흐르는 데도 뛰어다니고. 걱정되게…….
근데 걱정은 걱정이고, 지금 그런 걸 지적할 정신적 여력은 없었다. 온갖 복잡한 생각이 모두 수면 아래에서 듣는 소리처럼 먹먹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멍하니 말했다.
“121,966알이래…….”
“네에? 와! 우와! 우아아!”
까막이의 환호가 귀에서 메아리쳤다.
나는 털썩 휘오의 뿌리 위에 걸터앉았다.
“형! 나, 구경해도 돼요?”
“해. 맘껏 해. 근데 쌔비지는 마라? 알지, 내 능력?”
“아, 형! 날 뭘로 보고!”
뭐긴.
앵벌이 잘하는 킬러지.
어휴… 근데 살 떨린다.
아무리 대범해지려고 해도 자꾸만 멍해지고 손이 떨렸다.
나한테 10만 알이 넘는 타키온 있다고?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좋았다.
‘야, 세상 이렇게 사는 건가?’
그냥 너무나 좋았다.
나른하다. 만족스럽다. 배가 부르고 시원했다.
한여름 밤에 시원한 마루에 앉아서 아주 아끼는 친구들과 수박을 나눠 먹고 좋은 술을 마시면서 잡담을 하던 기분이 딱 이랬던 것 같다.
여태 잘 살아온 것 같고, 앞으로도 다 잘될 것만 같은 그런 기분.
내 몸속에서 영혼이 기분 좋게 몸을 뒤척이는 기분.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세상은 평화롭다. 그리고 주머니에는 10만 알이 넘는 타키온이 있다.
문득,
지난 생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다.
평생을 간절하게 투쟁하며 살았지만, 마지막에 느낀 건 텅 빈 두 손뿐이었는데…
문득 그때의 쓸쓸함과 허무함이 생각났다.
하지만 더 이상 분노하거나 억울해하지 않는다.
‘짜식, 불쌍했어. 인마, 욕봤어.’
여유롭게 그때의 나를 위로하고 동정해 줄 수 있을 만큼, 풍요롭고 넉넉한 기분.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게… 성공이라는 거구나.”
항상 말로만 들어 왔던 성공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 성공이라는 녀석은 아주 구체적이고 감각적이었다. 그래, 이게 바로 성공의 감각이구나. 단순히 돈이 많다 적다의 문제가 아니었어. 그 자체로 이렇게 만족스럽고 배부른 것이었어. 아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것.
그래서 어떻냐고?
어떻긴.
절대.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지.
계속, 계속 성공만 하고 싶지.
그래. 계속 이렇게 풍요롭고 싶지.
그래서 나는 느긋하게 휘오에게 기대앉으면서도 생각했다.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성공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그 고민마저도 달콤했다.
‘자, 그러면 일단 신발이 잘 팔리니까 좀 더 생산을 해 볼까? 일단 휘오의 이파리를 몇 개나 더 채취할 수 있을…….’
톡!
“아야!”
근데 문득 휘오가 내 머리카락을 하나 뽑았다. 느긋하던 상념이 잠시 끊겼다.
“뭐야? 왜 머리카락을 뽑아?”
그러자 휘오가 답했다.
[다아 미이래를 위해 조은 거야아.]
“…….”
그건 분명 내가 녀석의 이파리를 뜯어 가며 했던 말이었다.
휘오가 가지를 너울거리며 춤을 췄다. 많은 이파리를 뜯어가서 그런지 새로 자란 이파리들이 많아서 연녹색이 아주 귀엽다.
그 연녹색 사이로 흔들리는 내 검은 머리칼 하나…….
아무튼,
일단 당장은 신발을 좀 더 생산하자.
소재는… 휘오 이파리 말고 다른 걸 좀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