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득 교환
타키넷 쓰레기 거리는 온갖 세계의 뜨내기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기웃거리는 곳이었다.
타키넷 전체에서 보면 가장 별 볼 일 없는 인생들이 모인 장소였으나, 원시 차원인인 지구인이 이들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쓰레기 거리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어떤 이가 자기 차원에서는 차원의 비밀을 처음으로 밝힌 전설적인 마도사일 수도 있다. 또 어떤 자는 위대한 문명의 일원으로서 뛰어난 장비와 기술을 가졌지만, 어쩌다 보니 인생의 실패를 거듭해 여기까지 밀려난 것일 수도 있었다.
지구 입장에서는 다들 한가락씩 하는 강자라는 뜻이었다.
소시민을 습격한 이들도 그랬다.
[어두운 거… 좋아해?]
특수한 영력으로 인해 신체가 변이된 그림자 인간은 그림자를 건너뛰어 상대편 그림자에서 기습을 가할 수 있었다. 쓰레기 거리의 닳고 닳은 작자들도 그의 은밀한 기습을 눈치채는 경우는 드물었다. 어찌어찌 첫 번째 공격을 버틴다고 해도 이어지는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만큼, 갑자기 발밑에서 솟구치는 공격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림자 인간이 소시민의 그림자에서 솟구치는 순간. 아니, 막 솟구치려고 동작을 시작하는 그때에,
콰직!
청하의 검푸른 칼날이 이제 막 땅 밖으로 뻗은 손을 꿰뚫었다.
그림자 인간의 손을 땅에 꽂아 버린 칼날 위로 별빛 같은 것들이 떠올라 그림자 인간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끄아아아아!]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청하에 깃든 <안티소울>이 그림자 인간의 영력을 갉아먹었다. 그건 특수한 영력으로 비물질의 신체를 유지하고 있던 그림자 인간에게는 극독과 다름이 없었다.
[몸이! 몸이! 으아아아!]
그림자 속에 잠겨 있던 몸이 땅 밖으로 끌려 나와 싱싱한 활어처럼 펄떡거렸다. 그는 지금 온몸으로 퍼지는 고통을,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공포스러웠을 뿐이다.
[이노오오옴!]
피부가 붉고 이마에 뿔이 난 아인종은 어떤 차원에서는 악마로도 불리는 족속이었다. 그만큼 태생적으로 강인한 육체를 지녔고 영력의 폭발적인 활용에 능숙했다.
쿠구궁!
뿔에서 시작된 흑염이 아인종의 전신을 휘감고 타올랐다. 자신의 동료가 조그만 칼에 찔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그는 눈에 새빨간 귀화까지 피워 올리며 분노했다.
하지만 맹렬하게 돌진하는 그를 반긴 건 얇은 사슬 한 가닥이었다.
쩌저저정!
사슬과 닿는 순간 일어나는 강력한 반탄력과 몰아치는 벼락에, 아인종의 눈동자가 잠깐 풀렸다. 하지만 명색이 악마라고도 불리는 족속. 금세 정신을 차리고 돌진을 이어 갔다.
[크읏……! 이깟 걸로!]
느려졌던 몸에 다시 가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지체된 잠깐의 시간이 그림자 인간의 생사를 갈랐다.
[캬아아악!]
소시민의 파도가 그림자 인간의 멱을 긋고 빠져나왔다. 그림자 인간은 단말마와 함께 검은 연기와 검은 액체로 스러졌다.
그 모습을 본 습격자들은 크게 분노했다.
[이 개자식아! 우리 차원에서는 이걸 신을 죽인 광선이라고 부른다. 죽어!]
키가 1미터도 되지 않는 아인종이 맹렬한 분노를 토해 내며 소시민의 틈을 노렸다.
그는 몸집은 작았지만 아주 강력한 무기, 일명 ‘소울 레일’을 지니고 있었다. 30센티 길이에 쭉 뻗은 은색 지휘봉 같은 그것을 겨누자, 영력이 휘몰아치며 해 뜰 무렵의 태양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몰아치는 영력은 이내 강력한 빔의 형태로 직조되어 쏘아졌다. 소시민이 절대 피할 수 없는 타이밍이었다.
푹!
[어?]
하지만 이마가 꿰뚫린 건 작은 아인종이었다.
소시민이 빔의 한가운데로 청하를 던졌던 것이다. ‘안티소울’이 인챈트된 청하는 영력의 빔을 흩어 내며 쭉 뻗어 나가 키 작은 아인종의 미간을 꿰뚫었다. 빔이 사방으로 산란하며 소시민을 덮쳤지만, 그는 후드까지 뒤집어쓰고 절규를 삼킨 밤으로 빔의 여파를 묵묵히 견뎠다. 만만치 않은 화상을 입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뼈를 취하려면, 살은 내줘야 한다.’
소시민은 습격자 한 명, 한 명이 전투력 측면에서 자신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공짜로 이득을 취할 생각은 처음부터 버렸다.
그가 택한 전략은 [만상공감]을 활용하여 한 수, 한 수 철저히 이득 교환을 하는 것이었다.
쿵!
쉴 틈이 없었다. 키 작은 아인종을 처리하자마자 곧바로 덮쳐 온 뿔 달린 아인종의 공격에 옆구리를 내줘야 했다. 소시민은 옆구리가 흉하게 찢기며 뒤로 튕겨 나갔다.
[잘했어!]
지구인과 닮은 까만 머리의 인간은 그걸 기회라고 생각하고 소시민을 쫓았다. 그의 전신을 감싼 금속 슈트가 푸른빛을 발산하며 그에게 힘을 더해 주었다.
[이 슈트는 구름강기 이상의 초월적인 힘이 아니면 뚫을 수 없다고! 이 주먹으로 잘근잘근 다져 주마!]
기이이잉-!
슈트의 손 부분이 붉게 물들고 그 위로 황금색 원반이 하나씩 떠올랐다.
키잉! 키이잉! 킹!
원반이 하나 더 추가될 때마다 슈트가 뿜어내는 소리와 영력은 점점 더 고조되고 흉포해졌다. 총 세 개의 황금빛 원반을 손에 두르고, 검은 머리의 남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마지막이다……!]
하지만 그가 주먹을 뻗으려던 순간, 튕겨 나가던 소시민의 등 뒤로 투명한 날개가 펼쳐졌다. 붕-! 날개가 허공을 한 번 휘젓는 순간,
[이게 바로 멸滅! 천天! 유流… 어? 어, 어… 어, 컥…….]
달려들던 검은 머리의 심장에 어느새 파도의 칼날이 박혀 있었다. 그의 주먹에 응축되었던 힘은 허무하게 흩어졌다.
[어… 어떻게…….]
“이번에 인챈트한 힘이 유령화라서. 이쪽보다 압도적인 영력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안티소울의 힘이 있거나. 그게 아니면 방어력이라는 게 의미 없는 거라.”
소시민이 파도를 거둬들였다. 칼날이 스르르 빠져나갔는데도, 검은 머리가 자랑하던 슈트에는 흠집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물결처럼 칼이 나간 자리가 한 번 일렁였을 뿐이었다.
검은 머리의 남자는 옆으로 기울어져 땅을 굴렀다. 까만 슈트에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푸른빛이 공허하게 점멸했다.
[으아! 으아아아!]
[이, 이, 이이익!]
순식간에 다섯의 동료를 잃은 뿔 달린 아인종과 눈이 돋보기처럼 큰 괴인은 분노로 이성을 잃었다.
* * *
“후우… 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전신의 근육이 바들거린다.
찢긴 옆구리의 상처가 영 불안하고, 전신에 입은 화상으로 온몸의 감각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집중해. 집중하자.’
남은 적은 둘.
하지만 내 몸도 엉망진창이다.
“훅. 후우우…….”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증오스러운 적들과 나의 사랑스러운 무기들에게만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만상공감] 덕에 모든 게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디를 벨 수 있는가, 반대로 어디가 베일 수 있는가. 온갖 정보가 직관의 형태로 다가온다.
내가 나를 넘어 더욱더 커지는 듯한 기분.
전략은 단순하다. 최대한 덜 아픈 곳을 베이고 최대한 아픈 곳을 벤다.
키이이잉-
손을 뻗자 아까 던졌던 청하가 날아와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쓰르르르릉-
왼팔에 감아 둔 악몽사슬이 마치 독사처럼 스스로 몸을 흔들며 고개를 들고 적들을 노렸다.
100퍼센트 완벽하게 길든 두 개의 무기가 든든하게 나를 지켰다.
내 몸도 그에 동화하여 청하처럼 단단하고 날카로워지며, 악몽사슬처럼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내 손에는 그 무엇도 벨 수 있는 파도가 쥐여 있었다.
“와라……!”
다시 네필림의 날개를 펼쳤다.
“혀, 형! 저도 도울게요!”
그런 내 옆으로 까막이가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며 다가섰다. 여태 넋이 빠져 있더니 이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좋은 판단이었다. 일곱 중 다섯을 죽였지만, 내 몸 상태도 한계였으니까.
“후우… 훅……. 까막아.”
“네!”
“마누스는… 후… 방어적으로 활용해. 내가… 맞을 거 같으면, 후… 네가 대신 맞아.”
“네!”
얘가 킬러 출신이라는 게 이런 때는 참 편했다. 대놓고 희생을 하라고 해도 군말이 없으니.
“가자……!”
네필림의 날개를 떨쳤다.
청하와 악몽사슬이 날고, 파도가 놈들의 살점을 발라냈다.
동료를 잃은 놈들이 분노에 미쳐서 오싹한 살기를 뿜어냈지만, 결국 파도로 뿔 달린 아인종의 배를 쑤시고 돋보기 눈알의 목을 그을 수 있었다.
마침내 일곱 개의 시체만이 남았을 때, 나는 세 개의 치명상을 입었고 까막이는 두 개의 치명상을 입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림자 인간이 만들었던 결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악……! 커억… 혀, 형… 이겼어요……!”
내상을 입은 까막이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웃었다. 피에 절어서 이가 붉게 보였다. 웃기는 자식.
나도 화상으로 흉측해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그래… 잘했어……. 후…….”
“혀, 형. 근데… 우리 살 수 있나?”
“살 수… 있어, 인마. 일단… 이거 마시고, 이 주사… 심장에 꽂아. 전투 전에 썼으면 좋았을 테지만 이제라도…….”
나는 회복 물약 하나와 최근에 구입한 내구성 강화 주사를 던져 주었다.
“헤… 이거 내가 산 거네요.”
기뻐하는 까막이를 보며 나도 급한 대로 응급처치를 끝내고 휘오를 불렀다.
‘휘오.’
[괘아아나?]
‘안 괜찮아. 빨리 나랑 까막이 좀 도와줘. 아, 여기 자빠져 있는 애들도 챙기고.’
[휘오오오!]
내 요청과 함께, 황금색 게이트가 나타나 우리를 감싸 안았다.
세계수는 강력한 축복을 가진 존재. 우리가 입은 부상은 엄중했지만, 일단 살아 있는 이상 휘오의 간호를 받기만 하면 완치는 문제없을 것이다.
눈을 몇 번 깜빡이니 휘오의 연둣빛 잎사귀가 보였다. 나는 휘오가 뻗은 부드러운 뿌리를 베고 있었다.
[아파아?]
보면 모르나. 아직 애라 그런지 천진난만하게도 묻는다.
“아파.”
[아파아? 이파리이 웅큼웅큼 뜯기는 것처럼 아파아?]
내가 아픈 게 싫은지 가지를 뻗어 내 상처를 기우고, 자기 이파리를 떨어뜨려 내 화상을 감싸며 부지런히 응급처치를 하는 휘오였다.
그런데 휘오야, 저번에 이파리 뜯길 때 많이 아팠니?
어째 손길에 감정이 묻어 있는 것 같다? 휘오의 가지가 거침없이 상처를 만지는데, 이게 심상치 않게 아팠다.
“윽. 으윽!”
[참어어어. 다 미이래를 위해애 조오은 거야아.]
이상하다? 그거 이파리 뜯으면서 내가 했던 말 아니니?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문득 옆을 돌아보는데, 평온한 얼굴로 치유를 받고 있는 까막이가 보였다.
야! 야! 쟤는 왜 평온해?
쟤는 왜 안 아파하는데?
그때, 휘오의 가지가 부드럽게 날아와 내 고개를 앞으로 돌려놓았다.
[가아만 이써어. 자꾸우 움지기면 안조아아. 빠리 나으려면 아파아.]
치졸한 복수를 자행하는 휘오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기… 기절할 것 같아…….’
아냐. 차라리 기절을 하자.
모든 걸 놓고 까무룩 정신을 잃어 가는 와중에 여러 가지 상념이 머리를 스쳤다.
아, 사업이 잘되나 했는데 시작부터 액땜을 거하게 하는구나.
상처 다 치유하고 일어나면 신발 다 팔렸으려나…….
그나저나… 까막이 좀 단련시켜야겠…….
쿠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