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66화 (66/212)

2. 산업 역군

제주도 출정 하루 전.

유해의 마을.

콰콰콰콰-

삼청동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유해의 마을에선 여전히 유백색의 폭포가 시끄럽게 떨어지고 있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보석 깎는 노인이 뻐끔뻐끔 공방대를 씹다가 말을 걸어왔다.

“새벽 일찍도 왔네! 혼자야?”

“네. 출입증을 주신 덕분에요.”

“혼자 뭐 하려고? 애송이가 얼쩡거린다고 상대해 줄 사람 없어.”

“그런데도 이렇게 말을 붙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이야 붙여 주지. 하지만 네깟 놈이 여길 와서 뭘 어쩌게? 누가 애송이 일을 맡아 주누?”

뻐끔뻐끔 담배를 잡수며 대놓고 위아래로 나를 흘겨보는 노인.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어르신, 혹시 신발 만드는 어르신은 어디 계신지요?”

“신발? 송일이가 신발을 기가 막히게 만들기는 하지.”

“아, 그 송일 어르신은 저 안쪽에 계실까요?”

“어르신은 엠병……. 뭐, 좋아. 따라와. 안내해 줄게. 어떻게 쫓겨나는지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겠네.”

보석 깎는 노인은 뿌연 안개 속으로 나를 인도했다. 3분쯤 걸으니, 사방이 유리로 마감된 한옥이 나타났다. 아직 새벽 시간이었지만, 유리 너머에서 이리저리 괴물의 가죽을 엮어 가며 신발의 형태를 잡고 두드리고 광을 내는 송일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가 허연 보석 깎는 노인과 달리 한 50대 정도로 보이는 장년의 모습이었다.

입가와 눈가에 잡힌 주름이 아주 고집스러워 보였다.

“송일이는 원래부터가 대대로 수제화를 만들었다고 하더군. 그러던 차에 초능력, [기적의 연금술]을 각성했으니 범이 날개를 단 격이지.”

“[기적의 연금술]이요?”

“그래. 당시엔 시끌시끌했어. [감정], [형태변환], [합성], [강화], [변질], [염력] 등의 초능력을 다 합한 거나 다름없다고. 아니, 그것보다 더 좋다고. 생산계 능력으로는 거의 최고 수준일 거야. 뭐, 이 마을에서 그만큼 못 하는 인간이 있겠냐마는.”

노인은 순순히 설명해 주었지만 얼굴에서는 ‘이곳이 얼마나 위대한 곳인지 알겠지? 네깟 놈에게는 100년은 이르다.’ 하고 얕잡아 보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수제화 장인 송일과 마주했다.

“…뭔가?”

역시 송일도 상당히 까칠한 태도를 보였다. 불쑥 찾아온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쯧쯧쯧. 다짜고짜 들어와 버릴 줄이야. 개념도 없구먼. 이러다가 얼마 못 가서 마을에서 쫓겨나겠어.”

등 뒤로 따라 들어온 보석 깎는 노인이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송일은 노인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야, 이눔아. 나 왔어. 인사 안혀?”

예기치 못한 무시에 노인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송일은 여전히 노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줄곧 나에게 못 박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 손에 들린 작은 잎사귀에 머물렀다.

노인도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채고 내 옆으로 와서 기웃거렸다.

“응? 뭘 그렇게…….”

하지만 노인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자기 눈을 비비고 다시 내 손에 들린 세계수의 잎사귀를 살필 뿐이었다.

“이게… 뭐지? 뭔데 이렇게 맑은 소리가 들려?”

노인은 소리로 물건의 잠재력을 알아보는 감정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뭔가? 이렇게 찬란한 황금빛은… 정말 오랜만인데……?”

한편 송일은 색깔로 재료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다 자라지 않은 어린 잎이라 많이 부족합니다. 신비 저항력으로는 유니콘의 뿔의 50퍼센트 정도 되는 힘을 지니고 있고, 가공하기에 따라서 탄성과 내구성은 용의 비늘의 30퍼센트에 미칠 수 있습니다. 재생력은 화이트 트롤 가죽의 70퍼센트 수준이고요. 하지만 아직 어리기 때문에 오히려 그 어떤 힘도 쉽게 받아들이고, 얼마든지 더 강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소재지요.”

내 한 마디 한 마디가 떨어질 때마다 노인과 송일의 심장 소리가 커졌다.

그럴 수밖에.

50퍼센트니, 30퍼센트니 하는 수치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 비교 대상이 하나같이 전설적인 소재들이지 않은가? 거기에 이끌어 낼 수 있는 잠재력이 높다는 것은 자기 솜씨에 자부심이 있는 장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탐나는 속성일 것이다.

“이 이파리 한 장으로 워커화 한 켤레를 만들려고 합니다. 주요 소재지만 수량이 적은 만큼 이 이파리를 잎맥처럼 가늘게 가공해서 신발의 프레임을 만들 거예요. 그렇게 그물이나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프레임을 만들고, 그 빈 공간은 슬라임 생체 소재나 가죽 소재를 동원해 채울 생각입니다. 아주 정교하면서도 이 어린 잎의 잠재력을 최대까지 일깨워 주는 그런 솜씨가 필요하죠. 일단 프레임까지만 샘플로 오늘 밤까지. 가능합니까?”

“오늘 밤까지? 어째서?”

“2주 내로 신발 100켤레 이상을 제작해서 납품해야 하거든요.”

“알겠네. 일단 주게.”

침을 꿀꺽 삼키는 송일.

나는 그에게 휘오의 어린 이파리를 내밀다가 그가 손을 뻗는 시점에 딱 맞춰서 다시 거둬들였다.

“뭔가!”

인내심을 잃고 울컥하는 송일에게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일단 받아 놓고 천천히 살펴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무조건 오늘 밤 7시까지입니다. 제가 옆에서 지키고 있다가 만약 그때까지 못 끝내면, 다 됐든 안 됐든 회수해서 돌아갈 겁니다.”

“그, 그런……!”

역시……. 말로만 알겠다고 하고 하루고 이틀이고 천천히 살펴볼 작정이었던 게 분명했다. 완고한 장인들이란 물론 존경받아 마땅한 이들이지만, 상식적인 견지에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곤 했으니까.

눈에 띄게 당황하는 송일에게 나는 엄숙하게 말했다.

“7시까집니다.”

“아, 알겠네. 7시까지. 꼭 약속 지키겠네. 그거 좀 주게.”

결국 송일은 아까워 죽겠다는 얼굴과 현기증이 난다는 얼굴로 내게 다짐, 또 다짐을 하고서야 휘오의 나뭇잎을 받아 갈 수 있었다.

“저, 저기… 나도 구경하면 안 되나?”

옆에서 보석 깎는 노인이 말했지만, 돌아온 건 송일의 딱딱한 대꾸뿐이었다.

“어르신! 저 지금부터 작업해야 하니 좀 나가 주십시오!”

장인이 자기 작업을 하는 데에는 나이도 없고 서열도 없었다. 노인은 애가 타는 얼굴로 송일의 작업실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 * *

누구나 한 분야에서 남들이 쉬이 따라오기 어려운 독보적인 경지를 이룬 이들은 오만한 법이었다.

개뿔,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사람들.

똥을 황금으로 알고 추종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을 보고도 허허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무던한 성격이었다면, 그렇게 자신의 기술을 갈고닦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장인이라는 족속은 비록 경제적 논리나 권력의 논리를 따라 때로는 이리로, 또 때론 저리로 휩쓸리기는 해도 결코 마음으로는 쉬이 굴하지 않는 법이었다.

제주도 방위 사령부의 지시로 한자리에 모인 장인들이 삐딱하게 앉아서 나를 아니꼽게 쳐다본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몸이 영 좋지 않았던 나는 그런 상황이 귀찮았다.

‘피곤하게……. 빨리빨리 갑시다.’

나는 탈진으로 파르르 떨리는 손과 다리에 힘을 꾹 주어서 버텨 냈다.

돌아앉은 장인들은 돌부처처럼 엉덩이가 무거운 법이지만, 지금 나에게는 비장의 한 수가 있으니 전혀 무섭지 않았다.

나는 서울에서부터 고이 싸 가지고 온 샘플을 꺼내 들었다.

바로 송일 장인을 몰아쳐서 만들어 낸 신발 프레임 샘플이었다.

‘이래도 삐딱하게 있을 텐가?’

연초록색의 완벽한 프레임이 내 손에서 그 자태를 뽐냈다.

잎맥처럼 가늘고 우아하게 뻗은 프레임이 신발의 형태를 이루었다. 어퍼와 사이드 그리고 아웃솔까지. 머리카락처럼 가는 철사로 만든 듯 투명한 프레임이었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것 같았고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부드러운 곡선이 허공에 생생하게 떠올라 있었다.

단순하다.

드높은 기술적 자존심과 오만 때문에 비협조적이라면, 그보다 더 뛰어난 기술의 후광을 빌리면 되는 일이었다.

예순 명의 장인들 사이에서 나직한 탄식이 흘렀다.

관심 없다는 듯 딴청을 부리던 그들의 눈동자가 내 손을 따라 이쪽저쪽으로 움직였다.

내가 든 샘플이 자석이라면 지금 60명의 장인들은 철가루나 다름없었다.

그 상태로 나는 내 요구 사항을 말했다.

“이 중에서 [형태변화] 또는 [강화]와 유사한 능력을 지니신 분, 손 드세요.”

우수수.

대략 15명의 장인들이 착하게 손을 들었다. 나는 그들을 [만상공감]으로 살펴보다가 한 명을 지목했다. 가장 감각을 날카롭게 세우고 샘플을 살펴보고 있는 장인이었다. 그리고 또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훌륭한 신발을 신고 있는 장인이기도 했다.

“성함이 어찌 되시나요?”

“이주흰데유?”

“신발 만드시나요?”

“만들쥬.”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주머니. 키가 작고 손도 작지만 흐트러짐 없이 앉아 있는 모습이 야무져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휘오의 잎으로 만든 샘플 프레임을 맡겼다. 이주희는 눈을 빛내며 가벼운 프레임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보더니 내게 말했다.

“이건… 폭포 아래 사는 아저씨 솜씬데유?”

놀랍게도 그녀는 유해의 폭포와 송일 장인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층 더 신뢰가 간다.

나는 그녀에게 휘오의 나뭇잎 하나를 내밀었다.

“여기 이 재료를 변형시켜 이런 프레임을 만드실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쥬. 일케 끝내주게는 못 해도 비슷하게는 하쥬.”

“그럼 이주희 장인님이 지휘해서 프레임을 만들어 주세요.”

“프레임을 만들고 나면유? 구멍이 숭숭 뚫린 거, 요거는 뭐로 채우게유?”

이주희 장인의 물음에 나는 한 켠에 쌓아 놓은 밤의 악마의 사체를 가리켰다.

밤의 악마.

물질과 비물질을 오가며 커졌다 작아졌다 하고, 연기처럼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며 사람들을 끔찍하게 괴롭히던 그 괴물은 죽어서 검은빛의 젤리 같은 시체를 남겼다.

그리고 나는 그 소재가 세계수의 잎으로 만든 프레임을 채우기에 썩 괜찮다는 걸 알아냈다.

‘최고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아. 아니, 썩 괜찮아.’

새로 재료를 수급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공짜.

이미 휘오의 잎이 들어간 마당에 굳이 나머지 재료까지 최상급으로 구할 필요가 없는 상황. 그야말로 최선의 선택지였다.

“이번에는 [변질]이나 [합성] 계열의 능력을 가진 장인분들, 손 들어 주세요.”

이번에는 스무 명 정도가 우수수 손을 들었다. 나는 이번에도 대표를 한 명 골라서 일을 맡겼다.

그렇게 세계수의 잎으로 프레임을 만드는 작업의 대표는 이주희가 되었고,

프레임에 채워넣을 밤의 악마의 사체를 가공하는 작업의 대표는 홍길태가 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을 정하고 나니, 알아서 교통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내가 지정한 장인들이 알아서 서로 업무를 나누고 생산 체인을 만든 것이다.

스무 명의 구두 장인이 중심이 되고 나머지가 보조가 되어서 일단은 각자의 초능력을 활용해 세계수와 밤의 악마의 사체를 가공하고, 그 후에 구두 장인들이 그 최종적인 형태를 조율해 한 땀 한 땀 소재들을 붙이고 엮어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알아서 으쌰으쌰 하더니 첫 번째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장인이라는 타이틀을 짊어진 사람들인 만큼 일이 저절로 쭉쭉 진행된다.

나는 그제야 물러나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정말 휴식이 간절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2주일이 지나갔다.

* * *

타키넷의 심처, 통계청.

전 차원계가 모이는 타키넷은 태고의 마법 덕분에 자율적으로 지탱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국 수많은 존재가 뒤엉키는 시장 바닥인 만큼 그때그때 사람들끼리의 합의와 분쟁을 체계화해서 큰 틀에서의 룰을 정하는, 그런 통제 조직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게 바로 평의회였다.

타키넷의 조무래기들은 평의회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되는 문명들은 평의회 안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하지만 평의회의 하위 부서들은 그런 정치적인 경쟁과 갈등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평의회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전 차원에서 뽑아 온 전문가 집단이 모인 장소였다.

그중에서 ‘통계청’은 평의회 내에서도 가장 바쁜 부서 중 하나로 꼽혔다.

부서원들이 바쁘게 오가며 태고의 마법과 접촉하고, 타키넷과 전 차원계에서 밀려오는 정보들을 분석하고 정리하고 있을 때, 문득 거대한 통계청 중앙에 점멸하고 있던 숫자 몇 개가 변화했다.

[실시간 GDP 증가율 순위.]

Gross Dimensional Product. 일명 차원 내 총생산의 증가율 순위를 나타내는 숫자였다.

갑자기 저 밑바닥에 있던 차원이 치고 올라와 1위를 탈환하며 모든 순위를 갈아엎었다.

[1위. 지구 - 200퍼센트 상승.]

띠이-

띠이-

급격한 순위 변동에 알람이 울렸다. 정신없이 일하던 통계청의 부서원들이 그 알람을 보고 일제히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뭐야? 차원 전체에서 벌어들이는 타키온의 양이 작년의 같은 시점 대비 2배가 됐다고? 갑자기?]

[지구? 뭐 하는 곳이야? 저런 곳이 있었나?]

[아… 요즘 평의회에 가입하고 싶어 하는 아갈타인들이 눈독 들이는 차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완전히 개방되지 않은… 좀 특이한 원시 차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원시 차원이었군요. 끔찍하게 가난하니 거래 하나만 잘 마쳐도 막 200퍼센트씩 성장을 하는 모양입니다.]

[난 또…….]

200퍼센트라는 숫자에 놀라는 것도 잠시.

통계청의 부서원들은 이 모든 게 지구의 원시성으로 설명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금세 이 사안에서 신경을 껐다. 그런 있으나 마나 한 차원에 신경 쓰기에는 각자의 업무가 너무 벅찼기 때문이다.

잠깐의 주목과 비웃음 그리고 무관심.

주류 차원 문명들에게 지구의 존재를 알린 최초의 순간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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