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65화 (4권) (65/212)

목차

1. 신발로 보는 세상

“하루 만에 A급 위험지역 두 개에 S급 위험지역 하나를 정리했다고?”

“예. 저도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산간 도로를 장악한 폭발 따개비만 해도 골치 아픈 놈들인데.”

“에디슨의 전구로 놈들의 포격을 모조리 받아 냈다고 합니다.”

“해안 도로를 봉쇄한 어인족은?”

“루드비히 가문이 제공한 프랭클린의 피뢰침으로 낙뢰를 뿜으니 어인족들이 다 바다 밖으로 기어 나왔다고 합니다.”

“허… 그럼 S등급 위험지역을 장악한 밤의 악마는?”

“네. 밤의 악마는 이성계의 활에 당한 직후 특유의 비물질화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최치국의 칼에 목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미쳤군.”

하준광이 입술을 핥았다.

“유물……. 단순히 강한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전략성이 어마어마하잖아?”

“네. 인류가 다루는 그 어떤 힘보다도 변수를 창출해 내는 면에서 우수하다고 판단됩니다.”

“만약 그 힘을 내가 다룰 수 있으면 어떻게 될까?”

그 의미심장한 물음에 하준광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종범은 흔들림 없는 자세로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때는 협회장님을 중심으로 전 인류가 힘을 합칠 수 있을 겁니다.”

“허허허. 무슨 그런 소리를 다 하나.”

“죄송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말한다는 것이 사려 깊지 못했습니다.”

무려 대한민국 능력자 서열 11위에 랭크된 실력자인 이종범이었지만, 하준광 앞에서 만큼은 언제나 말단처럼 딸랑거리기 바빴다. 그런 그의 모습 때문에 하준광의 정치적 라이벌들은 이종범을 하준광의 개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종범은 남들의 시선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준광은 웃으며 이종범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말했다.

“그래서, 반응들은 어때?”

그 물음에 이종범이 리모컨을 뻗어 집무실의 스크린을 켰다.

스크린 속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정보를 최대한 빨리 전달하기 위함인지 영상은 2배 속으로 재생되었고, 심지어 화면이 여러 개로 분할되어 한꺼번에 여러 가지의 정보가 전달되었다.

- 속보입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제주도의 소요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무혼 권가의 전투조와 용산구의 영웅, 소시민 사령관이 함께 참여한…….

- 이에 세계적인 능력자 가문인 루드비히 가문에서는 가문의 직계인 데미안 루드비히 공자의 이름으로 축전을 보냈으며…….

- 제주도를 구한 두 명의 영웅! 소시민과 최치국! 무혼 권가의 식객이 되어 혜성처럼 등장한 최치국, 그는 누구인가?

정신없이 쏟아지는 영상을 하준광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느긋하게 감상을 했다. 하준광은 그중에서도 무혼 권가와 루드비히 가문에서 뿌린 것으로 보이는 보도 자료에 집중했다. 제주도에서 일어난 큰 승전에 각자 자신들이 어떻게 활약했는지를 은근슬쩍 드러내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다들 민첩하구먼그래?”

“저희도 보도 자료를 뿌릴까요?”

“아냐, 됐어. 우리는 모았다가 터뜨리자고. 제주도 군부대에 협조 명령을 누가 내려 놨는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뒤에서 묵묵하게 도운 사람이 누군지……. 잘 정리해 놨다가, 나중에 다른 사람 통해서… 알지?”

“명심하겠습니다.”

하준광이 손을 흔들자 이종범은 허리를 깊이 숙이고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가 나오자 집무실 바로 앞에 위치한 비서실의 비서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종범은 바짝 긴장한 젊은 남자 앞으로 다가갔다.

“이, 이등 비서 김철수입니다.”

“그래, 김철수 씨. 영상을 담당하고 있지?”

“예, 그렇습니다!”

이종범이 김철수의 넥타이를 바르게 고쳐 주며 낮게 말했다.

“스크린 화면과 영상의 싱크가 0.01초 어긋나더군. 그리고 오른쪽 하단 두 번째 영상은 영상 품질이 왜 그따위지? 협회장님의 시력과 청력이 걱정 안 되나?”

“죄, 죄송합니다! 실시간으로 뉴스를 받아 업로드하다 보니…….”

“죄송?”

이종범의 눈썹이 미묘하게 꿈틀거렸다.

“컥!”

그 순간 김철수의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이종범이 넥타이를 한 손에 쥔 채로 그를 들어 올린 탓이었다.

“컥! 커억!”

비서는 버둥거리며 뭐라도 붙잡으려고 했지만, 이종범의 몸을 잡지는 못하고 엉뚱한 허공만을 휘적거렸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김철수의 몸이 풍선처럼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지 끊어질 듯 팽팽했던 넥타이가 느슨해지며 몸이 살짝 더 떠오르고, 김철수의 통통한 발이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이종범의 능력 [팽창]이 발동한 것이다.

그 무엇이든 팽창시켜서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그의 능력은 굉장히 활용도가 높았다. 그중에서도 지금처럼 사람의 신체에 [팽창]이 적용될 경우, 당사자는 몸이 터지는 듯한 고통을 맛보는 것으로 유명했다. 점점 커지고 있는 김철수의 눈은 고통으로 인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끄어어…….”

하지만 이종범은 그런 참혹한 신음을 듣고도 미동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죄송할 짓을 하지 말든가. 어쩔 수 없었다면 입 다물고 시정하든가.”

“시, 시정…흐겠… 꺼으어…….”

“잘 좀 하지.”

콰당탕!

푸슈우우…….

“컥! 커허억! 허억! 끄아아…….”

이종범이 김철수를 내동댕이치자 잔뜩 부풀었던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충격이 엄청났는지, 김철수는 일어나지를 못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이종범은 그런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의사 불러서 진찰받게 하고. 비서 팀장, 부하 교육 잘 시키고.”

“네, 네!”

뚜벅뚜벅.

복도를 지나 이종범의 구두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비서실의 비서들은 90도로 숙인 머리를 들지 못했다.

하준광에 대한 광적인 충성. 이종범에 대한 악명 스택이 +1 되는 순간이었다.

* * *

신발.

이쪽 차원에서든 저쪽 차원에서든,

땅을 딛고 사는 생명에게 발이란 너무나 소중한 기관이었다.

발이 무너지면 신체 전체의 균형이 무너진다.

그건 반대로 말하면, 발을 강화하면 신체 전체의 밸런스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밸런스가 향상되면 자세가 좋아지고, 자세가 좋아지면 힘과 유연성이 좋아진다. 총체적인 전력 상승!

우리 인간종에게 있어서 발을 강화하는 수단이란 바로 신발이었다.

하지만 발의 균형이라는 것은 너무나 미묘한 것이어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신발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나는 그 사실을 이번 제주도 원정에서도 뼈저리게 느꼈다.

‘와… 괴물 같은 최치국.’

사실 이제 최치국을 상대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최치국은 내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이게 세기의 천재가 회귀를 하면 발생하는 일인가? 내 모든 걸 동원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확신이 들진 않는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연못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는 무섭게 강했고 더 무섭게 강해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그의 신발만 보아도 그게 확실했다.

‘최치국 씨는 굽이 지금보다 2센티미터만 더 높아도 훨씬 강해질 거야. 아직 성장기라서 신체 비율이 조금 애매하거든. 그편이 훨씬 낫겠어. 발등을 감싸는 어퍼는 좀 더 부드러우면서도 탄성이 강한 소재면 좋을 거고. 무게는 지금보다 50g 가벼운 게 좋아. 중창에는 탄력적인 쿠션이 들어가야 돼…….’

머릿속으로 최치국을 위한 맞춤형 신발이 저절로 조합되어 둥둥 떠다녔다.

쿵!

최치국이 바닷물을 밟으며 자신을 대표하는 아홉 개의 검기 중 두 번째 검인 [유검流劍]을 발휘해서 엘리트 어인 전사 11마리를 동시에 꺾어 버리는 순간에도,

‘아… 신발만 좋았어도 13마리를 꺾어 버렸을 텐데’

타, 타, 탓!

최치국이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며 마누스 [에어점프]로 허공을 세 번 박차고 약화된 밤의 악마에게 그의 네 번째 검, [용권龍券]을 쑤셔 박아 강력한 검의 회오리로 밤의 악마를 산산조각 내 버렸을 때도,

‘아, 내가 만든 신발을 신었으면 두 번 박차고 용권을 쓴 다음에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더 박차서 한 칼 더 먹였을 텐데…….’

매 순간 아쉬움을 느껴야 했다.

‘안타까운 세상. 자기 발에 꽤 잘 맞는 신발을 신은 사람은 데미안 도련님 정도인가? 그런데 저런 한심한 신발을 신고도 저리 잘 싸우다니…….’

그렇게 아쉬워하고 감탄하다 보니, 어느새 제주도 원정은 끝나 있었다.

A급 위험지역 두 개, S급 위험지역 하나를 정말 하루 만에 토벌했다.

유물의 힘을 쓰는 내가 어시스트하면 최치국이 달려서 마무리 짓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유물의 힘도 압도적이었고 최치국도 압도적이었다.

“대장… 쟤 뭐야? 사람이야? 대장이 미친 듯이 강해진 건 이제 그러려니 하는데……. 쟤는 너무 어리잖아……?”

엘리트 군인 출신으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던 박민희가 기가 팍 죽어서 내게 귓속말을 할 정도였다. 열여섯에 불과한 최치국이 절정에 이른 1류 능력자의 기량을 보여 주니 기가 죽을 만도 했다.

참고로 1류는 전투 가능한 능력자 중 3퍼센트 안에 드는 솜씨를 보여야 가능했다. 노인과 아동을 제외하고 즉시 전력감 초능력자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0.25퍼센트. 그중 3퍼센트였으니……. 1류 능력자는 100만 명 중에 75명에 불과한 재원이었다.

남북이 통일된 대한민국의 인구가 4천만이었으니 우리나라에 대충 3천 명 정도의 1류 능력자가 있는 셈이었다. 그중 박민희는 국내 2,500등 바깥에 있는 능력자였지만, 최치국은 2,000등 안쪽을 노려 볼 만한 능력자였다. 실력이 오를수록 서로 간의 격차가 커지는 구조였기에 그 차이는 엄청났다.

특히나 정석적인 능력은 강해도 그밖에 자신만의 독창성이 떨어지는 박민희와, 어떤 상황에서든 아홉 개의 검술을 이용해 압도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최치국의 차이는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분이셨군요.”

최치국을 꼬마라고 부르던 강전구는 이젠 무한한 경외와 존경의 눈빛으로 최치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 보니 강전구에게 존경을 받는 방법은 간단한 것 같다. 괴물을 잘 죽이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니 문득 쓴웃음이 났다.

‘사실 나도 다르지 않지.’

아무리 지난 생과 달리 살자고 다짐했다지만… 그래도 나 역시 한 생애를 괴물을 죽이기 위해 바쳤던 사람이다. 괴물 잘 죽이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이를 악물었다.

유물을 세 번이나 쓰는 바람에 몸이 엉망진창이었지만, 어떻게든 이를 악물었다.

최치국의 빼어난 무용을 감상하다 보니, 정말 멋진 신발을 만들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후우…….”

심호흡을 하며 녹아내리려는 영력을 겨우겨우 추슬렀다.

‘기절을 안 한 게 다행이야.’

처음에 에디슨의 전구를 사용할 때만 해도 할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관절이 시큰거리고 속이 울렁거리고 골이 띵- 하게 울리기는 했어도, 저번에 이성계의 활을 쏘았을 때처럼 막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프랭클린의 피뢰침을 사용할 때는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어라? 이거……?’ 싶었는데, 역시 절정은 이성계의 활로 밤의 악마를 쏘아 맞췄을 때였다.

가득 차 있던 술잔에 마지막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처럼, 맥이 탁 풀려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쏟아지는 고통.

기껏 무기들 인챈트도 하고 파도에 신품 네필림의 날개까지 준비했는데, 그런 거 쓸 틈도 없었다.

유물이라는 건 절대 혼자 있을 때 쓰면 안 될 것 같다. 한 방에 적을 몰살시킬 자신이 있지 않고서야…….

‘와… 죽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유물마다 주는 자극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만약 이성계의 활이 삼두근 운동이라면, 에디슨의 전구는 이두근 운동이고 프랭클린의 피뢰침은 승모근 운동이었다. 그러니 버텼지, 그렇지 않았다면 누적되는 충격으로 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극되는 부위가 서로 달랐기 때문에, 고통은 오히려 극심했다.

에디슨의 전구와 프랭클린의 피뢰침이 주는 고통은 이성계의 활이 주는 고통과는 또 달라서, 기껏 강해진 신체와 영력도 소용없었다.

미처 강해지지 못한 부분만을 노려서 찾아오는 끔찍한 고통.

‘이번에도 일주일 치다.’

회복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

그렇기에 오히려 당장 쉴 수가 없었다.

신발 문제만큼은 오늘 어떻게든 끝내 놓아야 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서민서를 불렀다.

“민서야…….”

“선배, 또……!”

자신의 실력보다 훨씬 수준 높은 전장을 겪고 완전히 탈진해 있었던 서민서가 나를 보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내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던 것이다.

“어… 제주도 방위 사령부에 연락해. 지금 복귀하니까 약속한 장인들 대기시켜 달라고……. 스무 명…이거든? 빠짐없이. 나 돌아갈 때까지 다… 대기시켜 놓으라고 연락 좀…….”

고통을 참느라 길게 늘어지는 내 말을 서민서는 입술을 꼭 깨물고 다 들었다. 그리곤 곧장 휴대폰을 꺼내 사령부에 내 말을 전달했다.

“네. 대승이에요. 이제 반격하실 수 있을 겁니다. 네. 약속한 장인들 부탁드립니다. 네. 그런데 약속한 게 스무 명이죠? 더 준비해 주시면 안 될까요? [형태변환], [합성]… 뭐, 이런 능력 가지고 있는 장인은 다 이력서랑 같이 준비해 주세요. 30명이든 100명이든 되는 대로 부탁해요. 네? 힘들다고요? 하지만 하루 만에 A급 위험지역 2개와 S급 위험지역 하나를 토벌하느라 우리도 너무 힘들어서……. 진짜 어떻게 안 되나요? 정말 안 될까요? 이제 보급로도 빵빵 뚫릴 텐데 좀 도와주면 안 돼요? 사령관님께 부탁드려야 하나? 아니면 중앙 정부에…….”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지시한 것보다 더 많은 걸 요구하는 서민서였다.

질척거리면서. 영웅을 이렇게 대접할 거냐며, 상부에 보고하겠다는 압박까지 곁들이면서…….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니까 서민서가 입 모양으로 ‘이 정도는 요구해도 돼요.’라고 말한다.

“네, 네. 예상보다 더 소모가 컸다니까요. 꼭 필요해요. 네, 네. 고마워요. 제주도 방위 사령부의 협력을 잊지 않을게요. 예. 잘 부탁드립니다.”

마침내 서민서가 통화를 끝내고 빵긋 웃었다.

“신발은 신발 장인이 만들더라도 그 전에 재료를 가공하는 건 다른 장인들에게도 맡길 수 있잖아요? 분업을 하면 더 많은 신발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아,

역시.

오래된 친구라는 게 참 좋아.

여러 말 하지 않아도 내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니까?

덕분에 온몸을 엄습하는 통증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자, 끝내주는 신발을 팍팍 뽑아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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