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56화 (56/212)

11. 기호지세

자, 차분히 생각을 해 보자.

현재 내 상태는 어떻지?

“미쳤지. 완전 최고지.”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흥분을 주체할 수 없어서 손을 쥐었다 폈다 한다.

‘신체 스펙과 영력의 차원이 달라졌어.’

원래 무기 없이 신체 스펙과 영력만으로 따지면 나는 대충 2류와 3류 프로 헌터 사이에 걸친 수준에 불과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2류 헌터 평균 수준이다. 일주일 만에 이룬 성과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폭풍 성장!

심지어 재능의 한계를 뛰어넘기까지 했다. 이제부터는 똑같이 단련을 해도 성장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이다. 운동신경 자체가 크게 향상되었고 미약하나마 영능 지배력 역시 업그레이드되었다는 뜻이다.

“이제부터는 싸우는 방식 자체가 달라질 거야.”

그동안 도구들에게 끌려다녔던 나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거인창은 무거웠고 청하는 너무 작아서 집중력을 갉아먹기 일쑤였다.

기껏 던진 악몽사슬을 튕겨 내는 적들도 있었고 네필림의 날개를 잃고 발이 느려진 탓에 절규를 삼킨 밤은 자꾸 너덜너덜해져야 했다.

잘 가라, 불쌍했던 과거야. 멀리 배웅하지 않으마.

이제는 다르다. 더 강해지고 더 빨라졌다. 무기를 다루는 능력에 시너지가 붙을 것이다.

‘완전 꿀이지. 물론 어린애도 기술만 좋으면 소총을 제법 잘 쏠 수 있지만, 힘이 좋은 어른처럼 빨리 쏘고 오래 쏘고 다양한 각도로 쏘기는 어려운 거니까.’

그래서였다.

‘아… 미치겠네…….’

손이 근질근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강해졌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빨리, 빨리 명품관에 가고 싶어! 공방 거리랑 타키넷을 둘러보고 싶어!’

더 강해진 몸으로 만져 보는 물건들은 어떤 느낌일까? 더 내 몸에 착 달라붙을까? 상상만으로도 침이 흐를 것 같았다.

그래서였다.

나는 방문 밖에서 싸우던 하준광, 데미안, 권승리를 모두 응접실로 불러들였다.

넷이서 쇼파에 평등하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대화에서 내가 가진 관심사는 딱 하나뿐이었다.

이들이 내게 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그걸 통해서 얼마나 더 많은 유물을 찾을 수 있는가? 지구와 타키넷에서 얼마나 더 좋은 물건들을 얼마나 더 많이 수급할 수 있는가?

심장은 쿵쾅거리고 손가락은 자꾸만 초조해졌지만 냉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마음은 급해도 협상을 할 때는 침착해야 한다.

한 계단 한 계단씩 내가 무얼 받아 낼 수 있는지 확인하고, 하나씩 하나씩 확실히 받아 내며 나아가야 한다. 즉흥 연주와도 같고 외줄 타기 공연과도 같은 것이다.

‘첫 번째 계단은… 정보부터. 유물, 그게 무엇인지, 그런 게 왜 지구에 있는지.’

좋아, 준비.

[만상공감]을 최대로 발휘했다.

이 방 안을 떠도는 모든 정보가 내게 몰려든다. 그 어떤 싸움 때보다도 싸늘한 긴장감이 등골을 스쳐 갔다.

그 상태로 나는 물었다.

“그래서 유물이 대체 뭡니까?”

자… 어디 누가 제일 먼저, 가장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려 주는지 볼까?

[만상공감]은 세 사람의 자그마한 낌새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권승리의 눈동자가 스르르 굴러서 데미안과 하준광을 살피는 게 보였다.

‘호오? 간을 보겠다? 회귀자답게 음흉하네.’

데미안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심장은 쿵쿵 뛰고 있었다. 잠깐 생각을 정리하겠다는 건가?

반면 하준광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뭐긴? 이런 거지.”

입만 연 게 아니라 아공간도 열었다. 역시 말과 행동이 함께 움직이는 하준광이었다.

탁!

그가 내려놓은 건 영롱한 전구였다. 특이하게 원뿔형의 금속 받침대가 연결되어 있어서 탁자에 세울 수 있는 형태.

유물이었다.

[만상공감]으로 전해지는 감각에 따르면 그것이 가진 힘의 크기는 세종대왕의 어보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힘의 크기를 뛰어넘는 어떤 특별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전구… 같은 것도 유물이 됩니까?”

유물이라기에는 너무 가까운 시대의 물건이 아닌가?

에디슨이 최초의 전구를 발명한 게 1879년. 지금이 2017년이니까 138년 전. 그러니까 이건 말이 안 됐다.

‘그때 이런 물건이 있었을 리 없잖아?’

영맥이 말라 있던 지구에 신비가 돌아온 건 1997년 대격변 이후였다.

조선 초기 유물은 백 번 양보하면 어떻게 납득 가능한 구석은 있었다. 알고 보면 그때는 비밀리에 전승되는 신비가 남아 있었다거나, 아니면 다른 차원 문명과의 교류가 있었다거나. 워낙 옛날 일인 만큼 무언가 상상이 끼어들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138년 전은 아니다. 지난 생에, 타키넷의 친구들에게 분명히 들었다. 지구는 완전히 닫혀 있는 세계였다고. 그건 138년 전부터 살아 있던 이들도 직접 증언해 준 바였다. 교류 같은 건 없었다.

그럼 혹시 그때 비밀리에 전승되는 신비가 있었던 게 아닐까? 프리메이슨 같은 거? 그런데 그것도 믿기지 않는다. 그럼 대격변 때 그 비밀결사들은 뭘 한 건데? 지금쯤 다들 양지에 나와서 한 자리씩 꿰차고 있어야 되는 거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가능성이 없는데 눈앞에는 전구 형태의 유물이 놓여 있었다.

‘대체 이건 뭐냐고…….’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혹시… 초고대 문명……?’

그러니까 이 전구가 에디슨 것이 아니라 약 4,000년 전 이집트 유물로 추정되는…….

“물론이지. 이건 무려 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전구 형상이야.”

…아, 그래?

하준광은 내 벙찐 얼굴을 보고는 유쾌하다는 듯이 껄껄 웃어 댔다.

젠장. 괴롭힘을 당하는 기분이네.

그런데 불현듯 하준광이 꺼낸 말에서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전구… 형.상.입니까?”

하준광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날카로워. 맞아. 이 유물은 최초의 전구 형상을 띠고 있지. 진짜 전구는 따로 있어. 진짜는 아주 먼지를 폭삭 뒤집어썼지.”

“그럼… 이건 뭡니까?”

내 질문에 하준광은 커다란 입으로 다시 한번 미소를 그렸다.

“나도 몰라.”

“네?”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몰라. 그저 분명한 것은 저번에 본 그 검은 게이트 있지? 그걸 어비스 게이트라고 부르는데…….”

아, 어비스 게이트란 용어를 벌써 이때부터 썼구나. 일반에는 10년 뒤에나 알려지는 건데… 정보 격차라는 게 정말 엄청났다.

“어비스 게이트 근방에서는 높은 확률로 이 유물이 발견된다, 이거지. 어째서인지 그 유물은 많은 사람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형상을 띠고 있다.”

그리고 하준광은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집중해서 듣고 있던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리고요?”

“그리고? 알다시피 유물은 아주 강력한 힘을 품고 있지. 하지만 그 힘을 직접 통제할 수는 없었어. 이리저리 써 보려고 해도 쓸 수가 없었지.”

“그것치고는 꽤나 탐내시는 거 같던데……?”

“간접적인 활용이 가능하다는 게 밝혀졌거든. 대표적으로 유물 주위에서 수련하면 마누스의 성장 속도가 제법 빨라지는 현상이 있지. 또는 그냥 가지고 있다 보면 알아서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해. 가령 이 에디슨의 전구는 반경 100미터 내에 다른 차원의 괴물이 다가오면 알아서 방어막을 펼치거든. 100미터의 안전 구역. 아주 유용하지. 사실 이렇게 좋은 유물은 흔치 않아.”

간접적인 활용법만으로도 효용 가치가 상당했다. 유물이 성장 속도를 빠르게 해 준다면 유물을 많이 소유한 세력일수록 뛰어난 능력자를 더 많이 양성할 수 있을 테니까.

거기에 더해서 무려 반경 100미터의 안전 구역을 만들 수 있는 힘? 이런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그냥 ‘권력’ 그 자체나 다름없는 힘이었다.

하준광이 눈을 반짝이며 에디슨의 전구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것도 아주 당연했다.

하지만 이윽고 그는 몇 배는 더 반짝이는… 아니,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런데 말이야. 갑자기 어떤 능력자가 유물을 직접 사용하더군? 그것도 두 번이나.”

하준광은 입을 크게 벌려 웃으며 말했다.

“긴 말 안 할게. 방법을 가르쳐 줘. 대가라면 섭섭치 않게 지불하지.”

바로 그 순간 쿵쿵쿵! 심장 소리가 커진다 싶더니 데미안이 끼어들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으면서 표정과 태도는 저렇게 여유롭다.

우리 도련님, 난사람은 난사람이네.

“그 대가라면 우리 루드비히 가문이 더 톡톡히 치를 수 있을 겁니다.”

도련님의 입가로 자신만만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루드비히 가문의 신비학 연구진은 세계 최고입니다. 유물을 더 잘 다루실 수 있게 도와드리죠.”

오… 갑자기 분위기 공개 입찰?

하지만 그걸 두고 볼 하준광이 아니었다.

“하하. 그래, 물론 루드비히 가문이 줄 수 있는 대가가 나보다야 낫겠지. 하지만 그것도 한국 밖에서의 얘기지. 내가 허락 안 하면 이 친구는 자네 못 만나.”

와, 이거 지금 협박인가……? 루드비히 가문을 상대로?

아니나 다를까 데미안 루드비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협회장님? 꽤나 신중치 못한 발언입니다. 루드비히와 적대하고 싶은 건 아닐 텐데요?”

스윽.

바로 그 순간, 하준광이 데미안을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14살 데미안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이 거대한 노인이 데미안을 한입에 날름 삼킬 수 있는 케이크 바라보듯이 내려다보며 흉악하게 웃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군. 루드비히는 한국 땅에서 나와 적대할 자신이 있나?”

데미안 도련님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하지만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하준광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뿐. 하지만 도련님의 미간으로 주르르 흐르는 식은땀마저 숨길 수는 없었다.

하준광이 그 식은땀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더니 상체를 뒤로 물려 소파에 편하게 기대며 말했다.

“독점하겠다는 게 아니잖아? 내 깽판 보기 싫으면 세금을 내라는 거지.”

털을 손질하는 호랑이처럼 여유를 부리며 말하는 그 말에 데미안은 작게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처음부터 독점하겠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아, 그랬어? 난 또 나랑 경쟁하겠다는 건 줄 알았네. 안 그래?”

하준광은 느물느물 웃으며 가만히 있던 권승리를 돌아보았다.

이건 경고였다.

네가 어떤 옵션을 가지고 있든 나와 경쟁할 생각은 하지 마라. 내게서 무엇을 얻어 내든 자신과 공유를 해야 할 것이다.

깡패도 이런 깡패가 없었지만, 아주 유효한 전략이었다. 그만큼 한반도 내에서 하준광의 입지는 절대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때 내 머릿속은 꽤나 복잡했다.

‘골치 아프네. 당장 알려 줄 수 있는 방법 같은 거 없는데…….’

유물을 다루는 방법? 물론 타키넷에서 얻어 온 용의 피가 섞인 용매로 이성계의 활을 다룰 수 있게 억제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다른 사람들이 유물을 다룰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내가 유물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만상공감]이 있기 때문이니까.

물론 재료가 더 많아지고 유물에 대한 내 지식이 늘어나면 불가능할 것은 아닌데… 하루 이틀에 될 일은 아니다.

‘유물의 힘을 이용해서 처치 곤란이던 괴물이나 게이트를 처리해 달라는, 그런 요청이 더 좋은데…….’

하준광의 눈빛이 너무 무서웠다. 나를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탐욕스런 눈빛과 당장 결과를 내놓지 않으면 잡아먹을 듯한 성급한 숨소리.

긴장감에 저절로 침이 꿀꺽 넘어간다.

가능하면 세 명 모두에게 뭔가를 뜯어내고 싶었는데… 이런 구도면 데미안 도련님 꽁무니에 숨어 있어야 하나? 그런데 도련님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어떻게 중립을 지키면서 윈윈하는 방법 없나?’

고민이 깊어지던 찰나에 권승리가 입을 열었다.

“너무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하준광과 데미안의 시선이 동시에 권승리에게 향했다.

“어쩌면 그가 유물을 다룰 수 있는 건 그가 가진 특별한 초능력 덕분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상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겠죠.”

아, 권승리.

그녀의 한마디가 내 속을 다 시원하게 했다. 하긴. 회귀자인 그녀는 잘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유물을 사용하는 방법 따위는 없다는 걸. 그렇기에 내 초능력을 의심하는 거겠지.

“그러면 그 초능력을 연구해 봐야겠군.”

그렇게 말하는 하준광의 눈빛은 당장 나를 해부라도 할 듯이 번들거렸다.

다행히 권승리가 화려한 편지 봉투를 내밀어 하준광의 시선을 차단했다.

하준광의 목소리에 살짝 당혹감이 서렸다.

“그건……?”

“말씀드렸잖습니까? 대통령의 친서를 가져왔다고.”

“하… 이제 와서 대통령이 왜?”

“그래도 대한민국의 수장이지 않습니까?”

“허… 참. 군 통수권은 없는 양반이.”

하준광이 입술을 핥았다. 말은 맞지만 심적으로는 동의 못 하겠다는 태도가 역력했다.

권승리는 이에 당황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친서를 개봉해서 내게 내밀었다.

하준광은 심히 불만스러운 듯했으나 정치적 파장을 의식했는지 친서를 전달하는 행위 자체는 방해하지 않았다.

내가 친서를 봉투에서 꺼내자, 권승리는 이미 그 내용을 외웠는지 내 눈을 바라보며 친서 내용을 읊어 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데미안과 하준광 들으라고 하는 행동 같았다.

내용은 단순했다.

이번에 닥쳐온 위기를 훌륭히 극복한 것을 치하하고, 이 시대의 영웅이 어쩌고저쩌고 인사말이 이어지더니 하준광의 눈썹이 찌푸려질 때쯤 본론이 나왔다.

“하여, 대통령령으로 장기 미해결 던전들에 대한 탐사와 공략을 요청하는 바이다.”

오? 이건 너무 좋잖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딱 원하는 제안이 나왔다.

‘내 밑천을 까발리지 않으면서도 많은 이권을 가져올 수 있는 임무.’

딱 내가 바라던 임무였다.

나는 얼른 하준광과 데미안의 눈치를 살폈다. 비록 이게 대통령의 명령이라고는 하나, 저 둘은 그걸 무시하거나 번복시킬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하준광이 그랬다.

“…유물의 활용법도 실전을 통해 연구해 볼 수 있군요. 루드비히가는 이 제안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옳지, 옳지.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데 하준광이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일단 유물을 사용하는 방법부터 확인을 해야지! 그게 초능력이라면 어떤 초능력이길래 그게 가능한 건지 연구를 해야 할 거 아냐? 일의 선후도 모르는군.”

‘와, 하준광 이 새끼…….’

선출 권력인 대통령의 명령을 바로 까 버리네.

숨이 턱 막혔다.

데미안과 권승리가 하준광에게 뭔가 반론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만상공감]을 최대로 활성화하고 있던 나는 이미 직감했다.

‘이거 이렇게 가면 말려.’

겉으로 억지를 늘어놓는 것과 달리 하준광의 감각은 극히 고요하고 평온했다. 다 계산을 하고 내뱉는 어거지라는 뜻이다.

반면에 데미안은 꽤나 긴장한 상태였고 권승리 역시 하준광과 한번 크게 부딪힐 각오를 하고 타이밍을 재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준광은 평온한데 데미안과 권승리는 크게 반응한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하준광의 아성이 그렇게 두텁다는 것이고 이렇게 휘둘리면 결국 타협을 보더라도 하준광이 더 많은 이권을 챙길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건 위험해.’

말하자면 지금 상황은 1945년의 한국과 비슷했다. 하준광이 미국이면 데미안이 저기 유럽의 연합국 또는 소련이고 권승리가 중국이다. 자칫하면 내 운명을 내가 결정 못 하고 하준광의 신탁통치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만은 안 된다. 저놈은 진짜 날 해부라도 할 놈이었다.

‘끼어들어야 돼.’

내 운명을 결정하는 일에 내 발언을 집어넣어야 한다.

이러나저러나 호랑이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야 한다면, 차라리 그 등에 타 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

“그거 할게요.”

“응?”

하준광의 눈이 나를 향했다.

“사실 권승리 아가씨가 말한 것처럼 제가 유물을 다룰 수 있는 건 초능력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물을 좀 더 잘 다루기 위한 꼼수가 아예 없는 건 아니죠.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다른 사람들도 유물을 다룰 수 있을 겁니다.”

하준광의 눈동자에 흥미가 깃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긴 할 것이다.

타키넷에는 온갖 소재와 온갖 기술이 있으니 잘만 연구한다면 분명 유물을 다룰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단지 내가 말하지 않은 건, 그 연구가 얼마나 오래 걸릴지 하는 예측이었다.

사물과 완벽히 교감하여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만상공감]이 있는 내가, 타키넷에서 확고한 입지를 잡았다는 가정 하에… 한 100년쯤 걸리려나?

하지만 알게 뭐야. 원래 투자금을 받아 내기 위한 피티는 희망찬 청사진으로 도배를 해야 하는 법.

“다만 연구를 위해 여러분이 절 도와주셔야 합니다.”

톡.

나는 눈앞에 놓여 있던 에디슨의 전구를 손가락 끝으로 건드렸다.

‘와우.’

그 짧은 순간, 찌리릿 하고 퍼지는 감각. 그 매끈한 유리알과 필라멘트 사이를 넘나드는 흉악한 힘이 나를 매료시킨다. 그래. 이거지. 이것 때문에 내가 산다.

나는 흐르는 침을 간신히 삼키고 말을 이었다.

“유물. 유물을 좀 빌려주세요. 이것저것 써 봐야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더 감이 잘 올 거 같아서요.”

하준광이 나를 보며 험악하게 웃었다.

“하?”

나는 호랑이 등으로 점프했고,

수염 난 호랑이는 나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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