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단련
나는 물건을 좋아하는 만큼,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관심이 많았다.
가령 칼은 뜨겁게 달궈 놓은 상태에서 모양을 잡아 나간다. 전구 속 필라멘트처럼 새빨갛게 빛나는 쇠를 이용해 모양을 잡는다.
하지만 모양을 다 잡았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다시 뜨겁게 해서 불렸다가 식히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땅땅땅 때려서 급하게 식힐 때도 있고 일부러 천천히 식힐 때도 있다.
그렇게 모양을 잡은 후에는 잘 굳혀 놓아야 부러지지 않고 튼튼한 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은… 칼 입장에서는 정말 끔찍한 지옥과도 같을 것이다.
사실 [만상공감]으로 몸소 느껴 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펄펄 끓는 고열. 주르르 흐르는 식은땀.
고통 속에서 눈을 떴을 때, 내 머릿속을 스친 게 바로 칼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와우…….’
순간적으로 너무 아프면 오히려 웃음만 나온다. 팔, 다리, 복근, 심지어 등짝과 손발가락까지. 몸에 있는 모든 근육이 활활 불타오르는 고통이었다. 내 몸속에 지옥이 임한 것만 같았다.
‘저… 절밤이는?’
뛰어난 재생력을 가진 트윈 헤드 오우거의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 절규를 삼킨 밤의 힘을 빌리면 몸의 회복력을 높일 수 있다.
다행히 침대 옆에 내 장비들이 잘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침대 밖으로 몸을 뻗었다. 그 약간의 움직임만으로도 허벅지와 팔뚝에 바늘 수천 개를 꽂는 듯한 고통이 전해졌다.
“끄어억…….”
나도 모르게 좀비 같은 신음이 흘러나오고 입에서는 침이 뚝뚝 떨어졌다.
상의가 푹 젖을 정도로 땀을 쏟고 나서야 절규를 삼킨 밤을 낚아채 뒤집어쓸 수 있었다. 그래도 까만색의 고급스런 상의가 몸을 편안하게 감싸 주자 어쩐지 고통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후우… 후우… 이제 [만상공감]을 이용해서 재생력을 증폭시키자…….’
심호흡을 하며 영력을 불어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영력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오, 쒯?’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가슴 속에 계란 반 개 크기로 알차게 뭉쳐 있어야 할 영력이… 흐물흐물 녹아 있었다.
용광로 속에서 푸욱 녹인 쇳물 같았다.
‘와아… 이럴 수가 있나?’
영력을 못 쓸 지경이라니? 지난 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 겪어 보는 사태였다.
‘까딱했으면 죽었을지도…….’
이성계의 활을 사용하는 게 무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온 계산이 1주일에 한 번이었으니까. 근데 직접 마주한 현실은 머리로만 생각하는 거랑은 달랐다.
‘와… 근데 이거… 와… 시발. 울어야 돼 웃어야 돼?’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앞으로의 일주일이 내가 경험해 본 적 없는 고통의 길이 될 거라는 것을. 동시에 그간 경험해 보지 못한 폭풍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것을.
전신의 모든 근육과 관절에 가득한 고통과 열기. 그것은 마치 한껏 뜨거워져서 빛을 뿜어내는 칼날과도 같았다. 두드려서 모양을 잡고 잘 식혀서 굳히면 이전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단단한 신체를 가지게 될 것이다.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린 영력은 펄펄 끓는 쇳물 그 자체였다. 이걸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영력을 쉽게 흡수해서 빠르게 키울 수도 있으며, 어쩌면 내 절망적인 영능 지배력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기존의 틀을 깨뜨리면 기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법.
근데 그건 달리 말하면… 오히려 이전만도 못 해질 수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빌어먹을… 자고 일어났더니 아이템 강화 버튼이 눌려 있는 셈이잖아?’
게임이랑 비슷했다.
강화에 성공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런데 실패한다면? 오히려 아이템의 등급이 하락하거나 심지어 깨져 버리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문제는 그 아이템이 나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긴장감이 싸늘하게 미간을 스치고 등골을 쓰다듬는다.
“후우… 후… 정신 차리자, 소시민. 정신 차려.”
나는 부서질 것 같은 몸을 세우고 바르게 앉았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건 아니야.’, ‘이러지 마.’라고 몸이 소리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견뎌야 한다. 힘과 유연성은 바른 자세에서 나오는 법. 지금 틀을 잡아 놓지 않으면 후에 더 고생하게 된다.
후- 후우-
그 와중에 호흡도 일정하게 뱉었다. 타키넷에서 배웠던 가장 기초적인 영력 호흡법이었다.
원래라면 내 절망적인 영능 지배력 탓에 이런 식의 수련은 효율이 매우 떨어졌지만, 지금은 달랐다. 액체처럼 녹아 버린 내 영력이 사방에 충만한 기운과 교류하며 조금씩이나마 부풀고 있었다.
그건 좋은 일이긴 한데… 아파 죽겠는데 집중력을 잃지 않고 호흡까지 신경 써야 하다니… 정말 울고 싶네.
‘후… 후우… 젠장, [만상공감]이라도 쓸 수 있었다면……!’
이럴 때 바위 같은 거랑 공감하면 무던하게 버티기 좋을 텐데… 애석하게도 현재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내 신체뿐이었다.
세포 레벨까지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감각 탓에 신체를 새롭게 조율하는 데는 유리했지만, 그 덕분에 세포 단위로 아득하고 끔찍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그렇게 고통과 싸우고 집중력의 한계와 싸우다 보니 시간이 흐르는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어느새 땀이 흥건했다. 그냥 몸이 비누가 되어 녹아내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절규를 삼킨 밤은 진즉에 벗어 던졌고 얇은 이불도 차 버렸다. 그러고도 침대가 푹 젖도록 식은땀을 흘렸다.
고통과 열기로 탈수가 심해져서 입술이 쩍쩍 갈라졌다.
‘물… 물을 좀…….’
물을 달라고 소리라도 치려고 했다. 하지만 목이 말라붙어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안 떠지는 눈을 억지로 뜨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던 순간, 입술에 물병이 하나 와서 닿았다.
“…으?”
놀라서 돌아보니, 서민서가 내 입에 물병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젖히는 시늉을 하고는 손수 물통을 기울여 내게 물을 먹여 주었다.
꿀꺽꿀꺽.
와… 물이 이렇게 달았나?
물통을 쭉쭉 빨았다. 2리터짜리 페트병 하나가 홀쭉해지도록 단숨에 다 마셔 버렸다. 그제야 마른 목이 촉촉해지고 목소리가 나왔다.
“서민서?”
그런데 서민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내 눈만 지그시 들여다봤다. 어쩐지 불만에 가득한 것 같기도 하고 어쩐지 감격한 것 같기도 한… 흔들리는 눈동자.
[만상공감] 없이도 그 기분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얘가 나를 많이 걱정했구나?
나를 한참 바라보던 서민서가 내게 말했다.
“선배.”
“응?”
“선배.”
“왜?”
서민서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고 내게 말했다.
“선배…….”
녀석의 조그만 손이 내 어깨를 꽈아악 잡았다. 손끝의 미세한 떨림이 메아리처럼 내 어깨에 여운을 남겼다.
뭐야. 우냐? 야, 근데 잠깐만… 야, 야, 나 너무 아픈데?
“윽…….”
몸이 유리가 된 것처럼 손이 닿은 어깨가 깨질 듯이 아파서 결국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그제야 서민서는 내 어깨를 화들짝 놓더니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어쩐지 녀석의 눈은 글썽이고 코와 귓볼은 빨개져 있었다.
“큼, 흠. 아, 선배. 여기는 선배네 사령부 건물에 있는 특급 병실이고 선배가 쓰러진 뒤로 12시간이 지났어요.”
녀석은 눈가를 훔치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서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는 창문을 드르륵 열었다.
으슬으슬한 한기가 확 밀어닥쳤다.
‘한기?’
뭔가 이상했다. 지금은 한여름인데?
창밖을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건물 주위로 부채꼴을 그리며 얼음 동상과 빙벽이 늘어서 있었다. 얼음 동상들의 크기는 사람만 한 것부터 코끼리만 한 것까지 다양했는데, 드라이아이스처럼 희뿌연 냉기를 자욱하게 뿜고 있었다.
방한복을 입은 군인들이 얼음 동상 사이를 오가며 해머로 그것들을 깨서 트럭에 실었다. 능력자의 힘으로도 잘 깨지지 않는지 건물도 부수는 해머를 몇 번이나 낑낑대며 후려치는 모습들이 보였다. 한여름에 이게 대체…….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풍경에 나도 모르게 입이 헤 벌어졌다.
“뭐야, 저건?”
“선배가 날려 버린 폭풍에서 웬 피하고 살점 같은 게 떨어졌는데 거기서 괴물들이 태어났어요.”
뭐야. 우라노스 성기에서 아프로디테 태어나는 이야기도 아니고…….
“말이 돼……?”
“되더라고요. 그래서 선배 덕택에 학계가 아아주 뜨거워. 두 시간마다 관련 뉴스도 나오고 아주.”
서민서는 나를 향해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이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태어난 괴물들이 죄다 여기 사령부로 달려든 거죠. 근데 그때 우리 리디아 언니가 창문을 탁! 박차고 나가서 손을 쩡! 하고 내리치니까 저 무시무시하던 괴물들이 그냥 쩌저저적! 놈들도 되게 강력한 괴물이었는데 언니가 막 날아다니면서 막! 얼려 버리니까. 결국은 다 저렇게 끝장났다… 이거죠. 마침 소낙비가 내리고 있어서 아주 꽝꽝 잘 얼었대요. 아, 그리고 그 김세희 씬가? 선배네 비서도 제법 활약했대요.”
얘는 리디아 씨를 언제 봤다고 언니래?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시계를 본 게 새벽 3시인가 그랬는데… 얘는 또 언제 와서 그걸 다 구경한 거래?
좀 혼란스러웠지만 깊이 생각하기에는 머리가 아팠다.
아무튼 아픈데 녀석 얼굴을 보니까 좋네. 힘이 난다.
그래서 좀 웃었다. 기운이 있었으면 머리도 쓰다듬어 줬을 거다.
서민서가 그런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말했다.
“그래서 선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뭐냐면요…….”
그러고는 잠시 주저하더니 한숨을 푹 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쉬세요. 쉬라고요. 갑작스러운 습격은 잘 처리됐고, 이 사태의 원인은 연구 중이고, 사령관 업무는 김세희 씨가 보고 있으니까. 선배는 회복만 신경 쓰면 돼. 내가 데미안 도련님도 병실에 못 들어오게 철저히 지켜 줄게요.”
녀석이 뻗은 검지손가락이 내 미간을 살짝 스쳤다.
살짝 간지러운 그 느낌에 어쩐지 몸을 괴롭히던 고통이 한결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서민서가 놀라서 얼른 검지손가락을 움츠리려 하길래 오히려 살짝 머리를 숙여 그 검지를 내 이마로 스윽 밀어 주었다.
“아…….”
서민서가 약간 놀란 소리를 내고,
내 가슴팍은 간질간질했다.
그렇지. 이렇게 진심 어린 걱정. 사람의 마음이 오롯이 통하는 이런 짧은 순간의 터치. 이런 게 영력의 성장을 빠르게 한다.
나이스.
“민서야, 고맙다. 나 한 일주일만 쉴게. 잘 지켜 줘.”
“그럼. 나만 믿어요!”
녀석은 늘 그렇듯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녀석의 간호를 받으며 일주일이 지났다.
* * *
짹. 째잭, 짹.
창밖에서 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후우우-
나는 길게 숨을 뱉으며 눈을 떴다. 어깨가 개운했다. 근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잠을 잤다. 애써 만든 균형이 무너질까 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버틴 일주일이었다. 다시 하라고 그래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리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꼬박 24시간을 넘게 잠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와… 개운하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라는 게 이런 걸까? [만상공감]으로 살펴본 내 상태는 경이로웠다.
사람이 살다 보면 뼈도 여기저기 비틀리고, 근육도 딱딱하게 긴장되고 연골도 마모되고, 안 좋은 영향들이 몸에 덕지덕지 붙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고열과 격통의 시간을 지내며 뼈는 제자리를 찾고 근육은 조화롭고 적절하게 풀어졌으며, 마모되었던 연골은 다시 자랐다. 무협지에 나오는 환골탈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전히 새로워진 몸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시야가 상쾌하고 집중력은 청명했다.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창문을 열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했다.
일주일이 지나서 리디아 씨가 만든 빙벽과 얼음 동상은 모두 철거되었지만, 대체 능력이 얼마나 강한 건지 아직도 한기가 남아서 이 일대는 가을처럼 시원했다.
아아, 더 이상 고통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니 너무나 좋구나.
‘아, 맞다. 그러고 보니 회칼도 나왔었지?’
그간 아파서 제대로 살피지도 못했다. 협탁 위에 올려져 있는 회칼을 꺼내 보았다. 하얗게 포말이 일어나는 바다를 연상케 하는 푸르고 하얗고 투명한 칼날. 그 어지러운 물결무늬.
“화아…….”
일단 첫인상은 합격이다.
그립감도 최고다.
안 그래도 다시 태어난 기분인데, 이거 아주 좋네. 퇴원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한번 제대로 살펴볼까?’
침을 꿀꺽 삼키고 막 자세를 바로잡을 때, 문득 병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처음에는 두런두런 속삭이더니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봐, 협회장과 지역 사령관의 공식적인 면담이다. 사적인 방문은 당연히 뒤로 미뤄야지?”
“협회장님? 소시민 사령관은 사령관이기 이전에 저희 루드비히 가문의 멤버십을 가진 회원입니다. 루드비히 가문에게는 회원의 안위를 먼저 살펴야 하는 신성한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호국 가문인 무혼 권가의 대표로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친서를 지니고 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어제 자정부터 이 앞에서 기다렸습니다만?”
자연스럽게 발동한 [만상공감] 덕분에 방문자들의 정체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순서대로 하준광, 데미안, 권승리였다.
“에효.”
나는 슬며시 회칼을 협탁 위에 내려놓고 대신 맞은편 장비 진열대 위에 올려져 있는 나무 상자에 시선을 던졌다.
이성계의 활이 담겨 있는 그 상자는 금줄과 붉은 실로 꽁꽁 봉인되어 있었다. 무슨 대요괴라도 봉인한 듯 거창하기 그지없었다. 얼마나 결계가 강력한지 아공간 가방에 넣을 수도 없는 상태.
상황이 이 지경이니 내가 저 무시무시한 유물로 활을 쏘아 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었다. 유물에 환장을 하는 세 사람인 만큼 뭔가 반응이 있는 것도 당연했다.
사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저 잘난 인간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올 줄은 몰랐지만.
‘올 게 온 거지.’
이참에 나도 ‘유물’이라는 이 세상의 비밀을 좀 알 필요가 있다.
아무래도 오늘 대화는 길어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