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심장을 움켜쥐다
처음엔 갑자기 비가 오는 줄 알았다.
마른 하늘에 쏟아지는 스콜성 폭우인가?
그런데 아니었다.
그게 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였다.
처음엔 한 사람이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숨 몇 번 쉬는 사이 수백 명이 나를 알아보았다.
두근거림이 물결처럼 퍼져 나갔다.
거리에 모여 있던 수만 명의 사람의 심장이 나를 보며 뛰었다.
살갗에 돋아나는 무수한 소름.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 시국에 이곳에 나타난 소시민의 의도는 무엇일까?
다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작 나를 이 자리로 데려온 김민수마저도 소름이 잔뜩 돋아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이었다.
그들은 그저 길 잃은 아이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나를 위해 모였으면서도 정작 나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오면 뭔가가 바뀌겠지. 모든 게 잘 풀리겠지. 그렇게 대책 없이 기도하듯 기다렸을 뿐이다.
그런데 만약 이 자리에 나온 내가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나의 가치는 마치 탄산이 빠진 콜라처럼 쪼그라들고 말게 될 것이다.
“소시민 군!”
그때 굵직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긁었다.
웅성-
나를 바라보며 침묵하고 있던 군중이 일제히 술렁였다.
아, 당신이구나. 나 때문에 실직자가 될 위험에 처한 사령관 길준태 씨. 그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 어깨를 두드렸다.
“하하! 용산구의 영웅! 이렇게 만나서 반갑네.”
길준태 사령관은 노련한 정치인 같았다. 사람들 앞에서 나와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나의 우방이 되어 내 인기에 묻어가려는 시도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가 말했다.
“자, 보게. 자네를 위해서 모인 이 사람들을. 자네 같은 사람은 우리 용산 2지역을 위해서… 아니지, 이 나라를 위해서라도 중한 일을 맡아야 하는 법이네. 자자. 가서 나와 이야기 좀 나누세. 자네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국가는 자네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어쩌면 이게 훈훈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나로 인해 실각할 입장에 처한 그가 기득권으로서 나와 적대하지 않고 나를 추켜세워 준다. 그러면 나 역시 예의를 갖춰 그를 예우해 준다.
다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가 해피해지는 결말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것이다.
적어도 이 순간 나와 길준태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그렇게 되겠지? 여기서 갑자기 사령관을 들이받는 것도 너무 오버하는 거니까.’라고 모두가 뻔한 결말을 예상하는 순간, 그들의 살갗 위로 돋아 있던 소름이 눈 녹듯 사라졌다. 뛰던 심장은 느려지고 숨결은 어느덧 차분해졌다. 어디로 터질지 모르던 에너지가 스르르 길들여지고 있었다.
이것이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것인가?
하지만,
미안하지만,
‘사령관 자리는 내가 가져갈게.’
용산 2지역의 사령관.
그 자리는 힘껏 평지풍파를 일으켜 보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전시 상황에서 군 조직의 권한은 단순히 안보에 국한되지 않는 법. 국민 개병제로 인해 전 국민이 군 조직에 한 발 걸치고 있는 현시점에서 한 지역 사령관의 권한이라는 것은 사법, 행정, 군의 권한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던 조선 시대 고을 수령에 비견할 만한 것이었으니까.
세력을 갖추고 차원 간 무역에 더욱더 힘쓰겠다는 내 목표를 위해서 이것은 포기할 수 없는 기반.
그래서 나는 길준태에게 부드러운 웃음을 보내 주었다.
“길준태 사령관님, 죄송합니다.”
“으응? 지금 같이 가기가 어려우면 뭐, 여기서 이야기해도 괜찮네.”
“그게 아닙니다. 제가 지금 가 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가 본다고? 지금?”
길준태의 얼굴이 어리둥절해졌다. ‘이거 바보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겠지.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아무런 액션도 보여 주지 않고 그냥 떠나 버리면 죽도 밥도 안 될 테니까. 시위대는 동력을 잃고 흐지부지되고 길준태와 동대장들은 어영부영 자리를 유지할 터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혼자 떠나겠다고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네. 제가 오늘 이곳에 온 것은… 후환을 뽑아 버리기 위해서였거든요.”
“…그게 무슨 말인가?”
재미있다. 길준태의 표정이 몇 번이나 바뀌는지, 대체 이 짧은 순간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거의 묘기 같아 보일 정도였다.
‘후환을 뽑아 버린다. 그게 무슨 말인지 궁금해 죽겠지?’
하지만 나는 그에게 대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한 번 웃어 주고는 등을 돌렸다.
확성 젤리를 꺼내 꿀꺽 삼켰다.
“여러분!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와아아아-!
내가 외치자 우레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하지만 여기에 속아서는 곤란하다. 비록 함성이 크긴 하지만, 저들의 심장 소리는 여전히 고요했다. 아까가 소나기였다면 지금은 기껏해야 부슬비.
그래서 나는 말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왜 모이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는 그런 거에 관심이 없습니다!”
고요했다. 이제는 환호마저 그쳤다. 사방에서 꾸르륵거렸다. 얘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자들의 불안한 장운동.
“제가 관심 있는 건 이토록 많은 이가 자기 지역의 안전을 위해 모였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여러분들께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그때 군중들 속에서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그게 뭡니까?”
어떻게 보면 기대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불만인 것 같기도 한 애매한 느낌의 목소리. 이제부터 내가 하는 대답에 따라 그게 둘 중 무엇인지 판가름 나게 될 것이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어깨에 걸머지고 있던 창 주머니를 열어 7미터짜리 거인창을 꺼냈다. 저 멀리 떨어진 사람도 하늘을 향해 솟구친 내 거인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쿵!
나는 그 크고 무거운 거인창으로 땅을 찍으며 외쳤다.
“후환의 뿌리를 뽑아 버리는 겁니다!”
쿵쿵!
땅을 두드리며 설득했다.
“참사 당일 괴물들을 뱉어 낸 그 수많은 던전. 그 던전 모두를 파괴해 버리는 겁니다.”
두근!
그 순간 나는 다시 심장 고동 소리를 들었다. 벼락을 맞은 듯 일제히 떨리는 그들의 팔다리와 숨결을 느꼈다.
“적어도 이곳 용산 2구역에서… 던전이란 던전은 모두 파괴해 버리고! 다시는 놈들이 우리의 영토에 기어오를 수 없게 만드는 겁니다. 우리의 가족이! 우리의 아이들이! 다시는 피난 가지 않도록! 바로 오늘! 청파동! 원효로 1동! 한강로동! 이촌 1동! 서부드래곤힐동이! 대한민국 그 어느 곳보다도 안전하도록 만들 겁니다. 제가! 그 영광의 선두에 서겠습니다. 모든 던전을 부술 때까지! 저는 멈추지 않습니다. 저와 함께하실 분만 지금 이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처음엔 격렬하게 그리고 마지막에는 차분하게 마무리 지었다.
아, 그래.
그리고 소나기였다.
후드드드. 수많은 심장이 운다.
터벅터벅.
문득 무리 속에서 강전구 헌터가 걸어 나왔다. [무게 증가]라는 흥미로운 초능력과 뛰어난 전투 센스를 보여 줬던 헌터로서 인상 깊었던 사람이다.
그는 왼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오며 그 붕대를 휘휘 풀어 버렸다. 하늘로 날아가는 붕대.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그 붕대를 향했다가 이내 단단해진 눈빛으로 내게 돌아왔다.
우르르르-
사람이 몰려들었다. 도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사람이 꽉 찬 근육처럼 나를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역시. 제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습니다.”
터벅터벅 내 옆에 선 강전구 씨가 말했다.
“저도 제법 잘 싸웁니다.”
처음부터 옆에 서 있던 김민수도 말했다.
“야… 이거 좋네. 천재적이야. 반할 거 같은데?”
그리고 청바지가 어울리는 긴 생머리의 여자가 내 팔을 툭 치며 나타났다.
“…박민희 팀장님?”
아니… 광화문 경비 팀의 팀장이 여기엔 왜?
“몰랐어? 나 청파동 주민이잖아.”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직업군인이 시위에 참여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어허, 내가 언제 시위에 참여했다고 그래? 멀찍이서 구경만 했지.”
아… 그러십니까?
“그래. 그리고 지금 하려는 건 시위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의병 활동 아님?”
박민희는 자기가 한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흐뭇하게 웃으며 ‘그렇지. 의병 활동이지.’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를 보며 픽 웃었다. 그녀도 나를 따라 웃었다.
그래. 맞다.
이건 의병 활동이었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실패했으니, 국민이 직접 나서서 우리의 안전과 자존을 지키고자 한다.
내가 바로,
그들의 의병장이었다.
“갑시다! 괴물들에게! 제대로 폭동 한번 보여 줍시다!”
와아아아-!
진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심장이 엔진처럼 쿵쿵 달궈진 상태에서 터지는 함성은 그냥 함성과는 차원이 다르다.
세상을 뒤집어 버리는 함성이었다.
구질서를 깨부수는 혁명은 이 함성을 타고 전염되는 것이다.
문득 사색이 된 길준태 사령관이 보였다. 그가 부관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다.
“미친… 부대 소집해! 나, 나, 내가 먼저 따라갈 테니까 당장 부대 소집해서 따라오라고! 전공에서 밀리면 끝장이야!”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내 노림수를. 하지만 한참 늦었다.
당신이 내 목줄을 쥐려고 쫓아다닐 때, 나는 벌써 십만 군중의 심장을 손에 쥐고 그들을 나의 성채로 만들었으니까.
* * *
- 와… 미쳤다, 지금 용산 2지역 상황.
SNS를 타고 영상 하나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수많은 사람이 피를 뒤집어쓴 채 거리를 누비는 영상이었다.
- 이거 뭐야? 쿠데타?
> 쿠데타겠냐? 던전이 터졌겠지.
> 내가 듣기론 테러가 일어났다는데?
사람들의 설전이 이어지던 와중에 또 다른 영상이 줄줄이 올라왔다. 갈수록 영상의 화질이 선명해졌고 상황에 대한 설명도 자세해졌다.
- 와… 미친. 지역 내에 있는 던전을 모조리 없애는 중이라고?
- 육삼공 사태 때 새로 생겨난 던전도 엄청 많잖아? 미쳤네.
- 근데 진짜 속 시원하긴 하다. 시발, 나 트라우마 생겨서 던전 쪽으로는 지나가지도 못하는데… 저렇게 다 박살 내면 트라우마도 날라갈 듯.
> 날라갈 듯(X) 날아갈 듯(O)
> 이걸 문법 빌런이?
- 저기 저 기다란 창을 든 사람이 소시민 씨인가요?
> 네. 소시민 님입니다.
> 그게 누구?
> 저 사람이 선동해서 사람들이 던전 털고 다니는 중임.
> 선동(X) 고무(O)
> 근데 저 사람 손에 든 과도는 뭐예요?
> 저거 장난 아니에요. 스치기만 해도 썰려요. 아까 길준태 사령관 표정 보고 웃겨 죽는 줄 알았네. 졸라 잘난 체하면서 뛰쳐나갔는데 소시민 님이 과도로 발라 버렸죠?
무더운 여름.
육삼공 참사 이후로 줄곧 침울한 분위기였던 사람들이 모처럼 활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SNS상으로도, 길을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용산 2지역의 분투는 크나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이슈가 되었던 용산 2지역의 ‘던전 소탕 운동’은 저녁 뉴스 시간, 국방부의 발표와 함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발돋움을 하고 말았다.
<민의에 귀 기울인 국방부, “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될 것.”>
<용산구 2지역의 새로운 사령관 소시민. 그는 누구인가?>
<국방부, “실력이 있고 리더십이 있다면 그 누구든 중용할 것.”>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 제2, 제3의 던전 소탕 움직임.>
그에 발맞춰서 내일 자 조간신문의 헤드라인들도 힘차게 뽑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