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50화 (50/212)

5. 일류는 일류다

이성계의 활.

내게 그것의 의미는 필살기였다.

일주일에 한 번. 그 어떤 강대한 적도 무찌를 수 있는 든든한 한 수.

그런데… 그래서 내가 강해졌는가?

그게 조금 애매했다.

이성계의 활을 쓰기 아까운 적을 상대한다면? 또는 이미 이성계의 활을 사용한 상태라면?

그런 상황에서 나의 전투력은 크게 발전되지 않았다.

물론, 사막발굽인 나타르에게서 예기치 않게 영력을 얻어내기는 했다.

아갈타의 측량관측병과 싸우다가 [만상공감]이 한층 더 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내 힘의 원천은 훌륭한 물건과 교감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슬슬… 기본 무장을 강화해야 할 때가 됐어.’

이성계의 활이 탄도 미사일이라면 거인창은 전투기였다. 강력한 위력을 보여 주지만 사용에 제한이 있다.

결국,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지상군이 필요한 법. 탱크와 자주포, 장갑차와 소총병. 그러니까… 이제는 악몽사슬, 청하와 같은… 적과 직접 겨루고 제압할 수 있는 기초 장비가 꼭 필요했다.

그래서였다.

내가 청하를 까막이에게 맡겼던 것은.

[형! 끝내주는 인챈터 섭외했어요. 형도 잘 아는 사림이에요. 그 사람이 세 가지 옵션이 현재로서는 베스트라고 하네요. 지금부터 부를 테니까. 하나 골라 주세요. 작업은 5시간 내로 끝난다고 해요. 어… 네? 아… 형, 잠시만요. 인챈터 바꿔 줄게요.]

품에 넣어 둔 휘오의 가지가 부르르 떨리며 까막이의 목소리를 전달해 주었다.

그러다가 불쑥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아, 들리나? 날세, 케사리니 아몬. 나 참… 이런 물건을 개조하고 싶었으면 나한테 바로 가져왔어야지. 괜히 어린 친구가 고생만 하지 않았나? 그거 알아? 자네가 가져오는 물건들 진짜 웃기다는 거? 이것도 그래. 소재는 최하급. 이것을 벼려 낸 방식 자체는 원시적… 하지만 위대한 장인이 부여한 아우라가 있고 그 아우라가 100퍼센트 길이 든 상태지… 쓰레기를 주워 만든 예술 작품도 아니고… 이걸 알아볼 인챈터가 이 쓰레기 거리에 몇이나 되겠나? 그러니까 나한테 믿고 맡겨.]

그리고 아몬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옵션들을 주르르 늘어놓았다.

[자, 첫 번째 옵션은 속성 부여야. 재질과 적용된 기술의 한계로 음양은 어렵고 ‘화수목금토’와 풍운뢰까지, 하나만 골라.]

뢰雷속성을 부여한다면 한 번 찔러서 능히 10명을 감전시킬 수 있을 것이고, 수水속성을 부여한다면, 한 방울의 피만 내어도 전신의 체액을 역류시켜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주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두 번째는 영력 증폭이야. 네가 1의 영력을 요 귀여운 단검에 주입하면 그 영력은 2로 증폭될 거야.]

인챈트를 통해 영력이 100퍼센트 증폭된다고? 누가 타키넷 아니랄까 봐 말도 안 되는 증폭률…….

[그리고 세 번째는… 이건 나도 놀란 건데, 100퍼센트 길든 물건쯤 되니까 이런 힘도 심을 수 있겠더라고. 이건 진짜 나 말고는 아무도 못 하는 건데…….]

기대감을 증폭시키려는 수작인지 케사리니 아몬은 도중에 말을 한 번 끊었다.

“…그게 뭔데요?”

참지 못하고 내가 묻자, 그제서야 웃음을 흘리는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안티소울이야.]

안티소울. 그것은 영력을 소멸시키는 힘이었다.

…맙소사.

* * *

청하.

칼날의 길이는 15cm, 손잡이의 길이는 11cm.

일각사슴의 가죽을 대어 새하얗고 심플하던 과도의 손잡이가 지금은 하얀 바탕 위로 황금색의 문양이 뒤덮여 아주 화려해졌다. 중간중간 쌀알 크기의 보석들이 물렸는데, 그립감을 전혀 방해하지 않도록 절묘하고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었다.

청하의 푸르른 검신도 이전과 달랐다. 전에는 가을 하늘처럼 청명한 하늘색이었다면, 지금은 어둑한 가을 호수처럼 검푸른 색이었다. 팅, 하고 손끝으로 튕겨 보면 별빛이 떠오르듯 신비한 형태의 빛들이 검신을 따라 우수수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막연히 짐작은 했지만 눈으로 확인한 아몬의 솜씨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는 진짜 제대로 된 인챈터였다.

‘왜 이런 자가 쓰레기 거리에 있지?’

세계수 휘오를 통해 배송되어 온 청하의 상태는 그만큼 극상이었다.

내가 주문한 건 ‘안티소울’이라는 술식을 청하에 부여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케사리니 아몬은 청하의 구성 요소를 완벽하게 파악하여 그 잠재력까지 최대로 끌어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티소울’을 감당할 수 없다던가?

청하를 구성하는 건, 가볍고 단단한 지구의 금속 티타늄이 주였고, 그 안에 탄성이 뛰어난 골렘강과 영력을 증폭시켜 주는 일각사슴의 뿔이 소량 섞여 있는 것이었다. 케사리니 아몬은 이 구성 요소들 간의 결합을 더 공고히 함으로써 청하의 완성도 자체를 훌쩍 높여 버렸다.

벌써 쥐었을 때의 손맛부터가 달랐다.

‘이건 안티소울을 빼고 봐도… 이젠 데미안 도련님 방에 있는 과도가 부끄럽지 않겠는데?’

아니, 부끄럽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외계의 인챈터가 손본 청하는 이제 역사상 최고의 과도 100자루를 꼽는다면 반드시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실용성과 예술성을 보여 주었다.

‘이제 곧 악몽사슬도 인챈트를 할 수 있을 텐데… 그것도 무조건 케사리니 아몬에게 맡겨야겠다.’

아우라를 가진 물건은 인챈트를 했을 때 훨씬 효율이 좋았다. 그중에서도 누군가에게 100퍼센트 길들어서 영성이 최대로 깨어난 물건은 인챈터들에게 있어서는 꿈의 소재였다. 악몽사슬까지 완벽 단계로 길들이고 인챈트를 한다면 전력이 또 한 번 크게 상승할 터였다.

‘이제 악몽사슬은 96퍼센트로 완숙 단계 막바지. 거인창은 이제 51퍼센트로 간신히 능숙 단계에 들었고, 절규를 삼킨 밤은 27퍼센트로 겨우 안정 단계에 접어들었네.’

이번 청하를 인챈트 하는 비용으로 타키온 200알이 들어갔다. 비싼 가격이기는 하지만 ‘안티소울’이라는 결과물을 생각하면 전혀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다.

‘후… 악몽사슬에는 또 어떤 옵션을 넣을 수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감에 잠을 못 이룰 것 같다.

‘자, 그러면 이제 새로운 무기들을 실험해 보러 가 볼까?’

설레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서민서를 불러서 던전을 돌아볼까?

막, 서민서에게 문자를 보내려는 찰나, 핸드폰이 부우웅 진동하며 액정 위로 ‘보물 사냥꾼 김민수’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응? 김민수 씨가 왜?’

전화를 받는 순간, 다급하고 들뜬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 소시민 님! 소식 들으셨습니까?

“네? 무슨 소식이요?”

- 이런… 모르고 계셨군요. 음… 좀 복잡한 문제니 일단 지금은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 소시민 님, 혹시 한 지역의 방위 책임자가 되고 싶은 마음 없으십니까?

“네? 동대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걸 왜… 저는 군부소속도 아닌데…….”

- 아뇨. 아뇨. 동대장 말고요. 지역 사령관이요!

순간 나는 휴대폰 액정을 빤히 봐야만 했다.

뭐지? 김민수 씨 맞나? 신종 보이스피싱 아닌가? 아닌데, 김민수 씨 본인 맞는데… 오늘 만우절도 아닌데?

아니면 이거 무슨 비유 같은 건가?

- 소시민 님! 소시민 님! 저 믿으셔야 합니다. 이거 비유도 아니고 과장도 아닙니다. 소시민 님 지금 타이밍만 잘 잡으면 지역 사령관 임관 가능합니다! 일단 제가 집 앞으로 가는 중입니다. 아니, 다 도착했습니다! 나머지는 차 타고 가는 동안 설명드리겠습니다! 지금 나오세요! 완전 무장하고. 빨리! 빨리!

빠아아앙-!

동시에 고시원의 창문 너머에서 커다란 경적 소리가 울렸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이나.

“아, 뭐야. 시끄럽게.”

“누구야?”

시끄러운 경적 소리에 좌우 사방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들이 복도로 흘러넘치는 것을 들으며 나는 일단 고시원 밖으로 뛰쳐나갔다.

“소시민 님!”

김민수는 무게감 있는 외제차를 탄 채, 골목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무기는 챙겨 오셨습니까?”

“챙기기는 챙겼는데, 지금 이게…….”

“일단 타시죠! 타고 가면서 얘기해요!”

그리고 나를 납치라도 하듯이 태워 출발하는 김민수였다.

그제서야 나는 자각할 수 있었다.

쿵쿵 뛰는 심장. 피부를 간지럽히며 톡톡 솟아오르는 솜털. 김민수의 감각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은 금세 나에게까지 전염되었다. 벌집에 연기를 피운 것처럼 전신에서 호르몬이 방출되고, 신경이 불붙은 듯 흥분된다.

그래. 이런 기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무언가 큰일이, 인생의 방향이 바뀔 정도로 큰일이 일어날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바로 이러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지역 사령관이라고 했던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쿵쿵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내가 침착하게 물었더니 김민수도 조금은 진정이 되었는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육삼공 참사 때 내가 구해 준 용산 2지역의 사람들이 나를 지역 방위 책임자로 임명하라며 시위를 벌였고, 그 시위의 규모가 너무나 컸고, 용산 2지역 사령부에서는 시위대와 협상하는 데 실패했고… 그래서…….

“그래서 갑자기 저한테 기회가 왔다고요? 왜요?”

내 질문에 김민수는 다시 뜨겁게 흥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니까요. 이게 정말 말이 안 되는 건데요……! 제 정보통을 통해 들은 확실한 내용입니다. 갑자기 군 상부에서 이번 육삼공 참사에서 보여 준 용산 2지역을 질책하고 이런 명령을 내렸다는 겁니다. 2지역 사령관은 스스로의 리더십을 입증하여 용산 2지역의 신뢰를 되찾으라. 그러지 못하면 보직해임을 할 것이며, 용산 2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적극 검토할 것이다.”

미쳤네.

“진짜 미쳤죠? 하하 이래서 혼란기가 재밌다니까.”

김민수가 호쾌하게 웃었다. 얘도 좀 이상한 것 같다. 혼란기가 재밌다니?

아니…….

‘솔직히 재밌긴 하네.’

심장이 쿵쿵 뛸 만큼 신났다. 그러니까 잘 하면 내가 2지역 사령관이 될 수도 있다는 거잖아?

와… 김민수 고맙네. 자칫하면 이런 기회가 오는 줄도 모르고 지나갈 뻔했잖아?

다만, 의문이 하나 남았다.

“아니 근데 김민수 씨는 왜 갑자기 나타나서 저를 데려가는 겁니까?”

김민수가 내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제 직업이 뭡니까?”

“보물 사냥꾼 아닙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보물 냄새를 맡았습니다.”

김민수가 내게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

아, 그러니까 지금 줄을 탄 거구나?

제2지역의 사령관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의 줄을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과연 일류는 일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김민수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하실 거죠? 사령관.”

나는 문득 정면을 보았다. 김민수의 자동차는 육삼공 참사로 꺾인 가로수들이 무너진 건물들이 즐비한 거리를 빠르게 통과하고 있었다. 속도로 인해 일그러져 보이는 풍경.

‘참 빠르다.’

회귀한 이후엔 모든 것이 너무 빨랐다. 지난 생은 오십 평생이 다 느릿느릿했는데, 인생의 큰 변화는 오 년에 한 번 십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했는데, 지금은 한 달 단위로 모든 게 바뀐다.

‘이게… 영웅들이 살아가는 속도인가?’

영웅들과 대등한 존재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나 역시 이 속도에 적응해야 했다. 아니… 오히려 이 속도를 끌고 나가야만 했다.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해야죠. 이런 기회가 왔는데, 사령관은 무조건 달아야죠.”

“그럴 줄 알았습니다.”

김민수가 나를 향해 씨익 웃고는 액셀을 밟았다.

* * *

그러니까 사람에게는 참 묘한 속성이 있다.

바라 마지않던 일이 정말로 벌어지려고 하면, 불쑥 이성이 작동하면서 회의감이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다.

‘어……? 진짜 소시민 씨가 사령관이 되는 건가? 진짜? 대단한 분이기는 한데… 군인은 아니잖아?’

누구보다 앞장서서 소시민을 사령관으로 임관시켜야 한다고 악을 쓰던 용산구 2지역의 주민들조차도 군부가 이렇게 선뜻 물러설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상황이 이렇게 되니 오히려 들끓던 사람들이 움찔 놀랐다. 진짜 이래도 되는 거야?

그랬기에 용산 2지역 사령관 길준태는 상부의 명령에 참담함을 느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도하고 있었다.

‘이건… 위에서 내게 준 기회이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요즘처럼 뒤숭숭한 때, 이런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이반한 민심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상부는 신나게 칼춤을 출 수도 있었다. 용산 2지역 사령관 따위는 파리 목숨만도 못한 신세였던 것이다.

하지만 사태가 격화되기 전에 상부의 발표가 먼저 나왔다. 신뢰를 되찾아라. 그렇지 않으면 소시민에게 사령관 자리를 넘겨줄 수도 있다. 이건 오히려 김을 한 번 뺄 수 있는 기회였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해.’

그건 바로 타협을 하는 것이었다.

‘소시민에게 명예 2인자의 자리를 주자.’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그에게 적당한 자리를 내어 주는 것. 기존의 지휘 체계를 건드리지는 않지만 서열상으로는 2인자를 보장하고 적당한 실권도 쥐어 주는 것. 그것이라면 시민들의 불만을 그런대로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었다. 뭐, 법적인 지위가 조금 애매해질 수는 있겠지만, 애초에 상부에서 깔아 준 판이었으니, 어느 정도의 융통성은 허용해 줄 것이 분명했다.

‘소시민도… 괜히 나와 끝장을 보기보다는 2인자 자리에서 만족하겠지.’

소시민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1류 헌터 수준. 순수한 무력으로 보면 한 지역의 사령관까지 차지한 길준태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 직접 만나서 기세로 찍어 누르면 소시민도 끝까지 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게 길준태의 속셈이었다.

그때 부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소시민 씨가 지금 시위대 한복판에 나타났습니다!”

길준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라고……? 아직 소시민 씨한테는 아무 제안도 안 했잖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연락조차 안 되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다고? 이 상황을 알고?”

“그, 그게… 저희도 경위를 파악 중입니다.”

길준태는 어떤 예감을 느꼈다. 등골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기. 좋지 않다.

“당장 따라 나와!”

길준태는 허겁지겁 사령부를 박차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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