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성계의 활
수많은 차원문명이 모이는 타키넷.
이곳에는 ‘괴물’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기이하게 생긴 족속들도 많았지만, 인간과 유사하게 생긴 족속들도 굉장히 많았다.
아갈타인과 지구인처럼 생리적으로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인간 종은 전체의 10퍼센트. 귀가 크거나 뿔이 나 있거나 키가 작거나 하는 식으로 쉽게 구분이 가는 아인종까지 합치면 전체의 20퍼센트. 거기에 상반신이 염소라거나 하반신이 물고기라거나 혹은 등에 칼날 촉수가 있다거나 하는 식의 괴인종까지 합치면 전체의 40퍼센트가 넓은 의미에서 인간 종에 속해 있었다.
인류가 타키넷에 진출했을 때, 많은 사람이 슬라임처럼 흐느적거리는 족속보다는 소머리의 괴인종이 더 말이 잘 통할 거라고 착각했다. 팔이 두개, 다리가 두 개, 눈, 코, 입, 귀. 이렇게 공통점이 많으니 바디랭귀지도 통하고 속내를 짐작하기도 쉽고, 상식도 비슷하리라 여겼던 것이다. 이러한 착각은 내가 회귀를 하던 그때까지도 팽패했었다.
‘다들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지.’
완벽하게 같은 호모 사피엔스였던 백인들이 흑인과 황인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나치가 유대인과 폴란드인들을 어떻게 했는지. 오히려 비슷한 면이 있기에 더 멸시하고 더 증오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랑 내가 서로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가장 큰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쓰레기 거리에서 만난 그 고객이 낙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한층 더 긴장해서 [만상공감]을 끌어 올려야만 했다.
차라리 상대가 촉수라거나 널빤지같이 생긴 존재라면 어이없는 일이 생겨도 그러려니 할 텐데, 애매하게 비슷한 낙타 인간의 경우엔 사소한 문화 차이가 중대한 무례나 멸시로 오해될 여지가 있었다.
심부름꾼인 까막이한테야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다고 쳐도 거래 당사자인 나는 훨씬 긴장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줘야 했다.
질겅질겅-
낙타 인간은 마법사 케사리니 아몬의 방보다도 훨씬 더 좋아 보이는 방에 머물고 있었다. 역시, 곧 쓰레기 거리를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이라는 내 추측이 맞는 것 같았다.
낙타 인간은 무언가를 계속 씹고 있었다. 두툼하고 커다란 입이 우물우물거리는 모습이 꼭 비웃는 것처럼 보이는 인상이었다.
까막이가 쪼르르 달려와 귓속말을 했다.
‘형, 이분이 일단 물건을 보고, 괜찮으면 티탄슈트의 코어와 그 건틀릿도 살 의향이 있다고 했어요. 아주 큰손이에요. 가지고 있는 물건들 보면 허세 같지도 않아요.’
‘오케이 수고했어.’
까막이는 한발 물러서고 나는 낙타 인간에게 다가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소시민입니다.”
타키넷에서 처음 보는 상대와 악수하는 걸 조심해야 했다. 신체적 접촉 행위를 강력한 도발로 인식하는 문화권에서 온 자들도 제법 많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여서 하는 인사는 적대 행위로 받아들여질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그게 인사라는 사실도 잘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많기는 했다.
질겅질겅-
아니나 다를까.
내 인사에도 불구하고 낙타 인간은 씹던 것만 계속 씹을 뿐 가타부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크고 속눈썹이 긴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난 나타르. 이거 마실래?]
쪼르르르-
사실 그건 꽤나 엽기적인 광경이었다. 낙타 인간은 아공간에서 유리잔을 하나 꺼내서 곱추처럼 튀어나온 자신의 등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솟은 등에 난 배꼽 같은 구멍에서 누런 물이 쪼르르 흘러나왔다.
[시원할 거야.]
컵을 내밀며 입술을 뒤집고 웃는 나타르.
까막이는 비위가 상하는지 “으윽…….” 소리를 내며 주춤 물러섰다. 하여튼 이 녀석은 자기 감정을 통제 못하는 게 문제다. 그렇게 감정만 앞서니 괜히 나한테 덤벼서 이 꼴이 된 것 아닌가? 다행히 나타르의 시선은 까막이가 아닌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꿀꺽 꿀꺽 꿀꺽
아, 시원하다.
사실 이 낙타처럼 생긴 괴인종은 ‘사막발굽인’이라고 불리는 종족에 속했다. 이들이 등에 난 혹에서 배출하는 물은 보기엔 똥물이나 오줌처럼 더럽지만 사실은 그 무엇보다도 깨끗하며, 달고 시원한 물로 명성이 높았다. 마치 지구의 사향고양이 똥 같은 것으로 타키넷에서는 포션의 소재로도 인기가 높았다. 타키넷에서 활동 좀 해 봤다고 하는 존재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맛있네요. 귀한 것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흐흐. 보통은 물을 내주면 질색팔색을 하던데. 쓰레기 거리에선 오랜만에 보는 쓸 만한 사람이네.]
참고로 아갈타인과 지구인과 같은 종족의 공식 명칭은 ‘인간’, ‘사람’, ‘인류’ 등 인간종의 기본이 되는 이름이었지만, 사실 다른 종족들은 ‘민둥인간’, ‘노옵션’ 등의 멸칭으로 부르길 좋아했다. 나타르가 나를 ‘사람’이라고 부른 건, 그가 내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귀한 혹등물을 내어 준 것부터 벌써 상당한 호감의 표시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일단 물건을 꺼내 놓고 이야기를 나눌까요?”
턱. 턱. 턱.
나는 가방을 뒤집어서 세 가지 물건을 땅에 늘어놓았다.
하지만 물건을 사기로 한 나타르는 정작 물건은 한 번 쓱 둘러보기만 하고 관심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입 속에 든 것만 질겅거렸다.
나는 조금 초조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여유롭게 가라앉히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좋은 물건들입니다. 건틀릿은 거의 새것에 가깝고 이 티탄슈트 같은 경우에는 자폭 기능이 있기 때문에 전리품으로 획득하기가 극히 어렵습니다. 타차원의 무기 체계에 관심이 있는 고객이라면 큰 관심을 보일 겁니다. 한번 살펴보시지요.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번 한 번으로 거래를 끝낼 생각이 없습니다. 보아하니 쓰레기 거리를 벗어나서 갯펄시장으로 진출하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이렇게 손색없는 물건을 앞으로도 꾸준히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나타르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열성으로 어필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가타부타 말이 없이 질겅거리다가 갑자기 씹고 있던 초록색의 진득한 찌꺼기를 뱉어 나에게 내밀었다.
그 더러운 모습에 한 걸음 물러나 있던 까막이가 “으윽…….” 하며 두 걸음을 더 물러났다.
하지만 나타르는 여전히 나만 쳐다보며 입술을 뒤집어 웃었다.
[먹을래? 맛있을 거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다. 그때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아하? 나를 시험하고 싶구나?’
내가 뭘 좀 아는 놈인지 아니면 어중이떠중이인지 그걸 먼저 파악하고 싶다 이거지?
“…사막발굽인의 첫 번째 위에서 나온 초록색 찌꺼기를 먹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사막발굽인에게는 총 네 개의 위가 있었다. 첫 번째 위에서 나오는 초록색 찌꺼기와 두 번째 위에서 나오는 연노랑 찌꺼기에는 먹으면 탈이 나는 독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 위에서 나오는 하얀색 찌꺼기는 술을 빚으면 괜찮은 술을 만들 수 있는 식재료였고, 네 번째 위에서 나오는 투명한 찌꺼기는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이었다. 물론, 굳이 그걸 돈 주고 사 먹을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아주 수요가 없는 것도 아니라는 말은 들었다.
내 반응을 본 나타르가 씨익 웃었다. 전달되는 감각은 심장이 조금 뛰며 눈이 밝아지고 입꼬리가 당긴다. 마음에 든다. 제법이다. 이런 느낌인가?
[그럼 이건?]
그가 뭔가를 또 뱉어서 내밀었다. 이번엔 연노랑 찌꺼기. 여전히 먹을 수 없는 두 번째…….
어?
‘뭐야 이거’?
상식이 뒤집어졌다. 분명 연노랑 찌꺼기는 먹을 수 없어야 하는데 이건 달랐다. [만상공감]이 이 연노랑 찌꺼기의 본질을 내게 알려 주고 있었다.
‘농축된 영력이잖아?’
독성 찌꺼기 속에 감추어져 있기에 어지간한 이들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영약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가 녹아들어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손이 먼저 움직였다.
덥석.
우물. 꿀꺽.
“히익!”
뒤에서 후다닥 물러서는 까막이는 무시했다.
그런 걸 신경쓰기에는 너무나 짜릿한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기 때문이다.
내 온몸으로 퍼지는 영약. 가슴 어림께 메추리알 두 개 크기로 뭉쳐 있던 영력이 스물스물 커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이제는 튼실한 계란 반 개 크기가 됐다. 이 정도면 이제 지난 생에 나이 쉰 살 먹었을 때보다 더 큰 영력을 쌓은 거 아닌가?
‘하, 명품을 들고 한달은 길들이기를 해야 가능했을 성장을 단 한순간에 공짜로 이루었네?’
이런 고마운 일이?
“잘 먹었습니다.”
나는 나타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타르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설마 내가 그걸 먹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 초록색 찌꺼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아는 인간이 설마 연노랑 찌꺼기를 먹을 줄은 몰랐겠지. 그냥 가벼운 테스트 겸 장난이었을 것이다.
그걸 내가 홀랑 먹었네? 입가로 자꾸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왔다.
[하… 장난 좀 쳤다가 크게 손해를 봤네. 힘들게 찾아 먹은 영약을 10퍼센트나 날리다니… 아직 나도 맛을 못 봤는데. …꽁으로 영력을 먹으니 좋나?]
“좋죠. 엄청나게 좋군요. 나타르 씨에게 큰 호감이 생겼습니다.”
내 능청에 나타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잠시 뭔가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내게 천천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뭐야. 아까 이게 지구식(정확히는 한국식) 인사라는 걸 알아봤던 거야?
[솔직히 감탄했어. 그 안에 숨어 있는 영약의 기운까지 단박에 알아차리다니? 그 정도 안목이라면 무조건 친하게 지내야지. 좋아. 여기 있는 물건 내가 다 살게. 협상하고 할 것 없이 2,000알에 일괄적으로. 어때?]
2,000알?
‘와… 손 큰데?’
의외였다. 많아야 1,700알 정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신 앞으로도 물건 자주 가져와. 갯펄시장까지 진출해서 팔 물건이 없어서 자빠지면 모양 빠져.]
나타르는 그렇게 말하곤 입술을 뒤집어 웃었다.
* * *
- 민서, 민서는 이제 자유예요ㅜ.ㅜ
- 당분간 타키온 모으러 다님. 부르지 말 것. 바쁨. 불러도 안 올 것.
서민서와 허묵의 문자를 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이 와중에 드립을 치는 민서의 낙천적인 성격이야 원래 좋아했던 것이지만… 짧고 사무적이다 못해 정신 연령이 낮아 보이는 말투로 짜증이 났음을 팍팍 어필하는 허묵의 문자마저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일이 잘 끝났으니 그저 다 이뻐 보일 뿐이다.
‘…잘 대해 줘야겠다.’
둘 다 충분히 제 역할을 해 주었다.
나타르가 모든 물건을 사 주는 기염을 토해 낸 덕분에 은근히 실적 압박에 시달린 모양인지 그 후 6시간 만에 유물을 다루는 데 필요한 모든 재료들을 둘이서 모조리 수배해 버리는 기염을 토해 낸 것이다.
덕분에 나는 드디어 이곳에 섰다.
“이성계의 활…….”
경회루 한가운데에 있는 기둥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찰랑찰랑-
시각은 새벽 1시. 사방은 캄캄하고 경회루를 둘러싼 인공 호수의 물결 소리와 이따금 잉어가 뛰어오르는 소리만이 들렸다.
나는 잠시 그 한가운데 앉아서 마음을 추슬렀다.
거대한 파도를 향해 달려드는 서퍼처럼.
그러다가 이때다 싶은 순간.
스륵, 사각-
기둥 아래의 판돌들을 청하로 잘라 내기 시작했다. 사과 껍질을 깎듯이 한 겹씩 한 겹씩 조심스레 떠낸다.
사각-
사각-!
그렇게 땅을 파내려가자 어느 순간, 저번에 보았던 먹색 기운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성 위에 일흔 살을 쏘시어 일흔의 낯이 맞으매 개가로 돌아오시니.]
[아기살 하나에 섬도적이 놀라니…….]
찌이잉-
다만 이번엔 먹색 기운이 그냥 피어오르기만 한 게 아니었다. 먹색 기운이 휘감자 잘 나아가던 청하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깊은 물 속에 있는 것처럼 칼날이 점점 느려졌다.
후우우웅- 키이이잉-
어느 순간 청하가 겁에 질린 것처럼 울어 대기 시작했다.
‘견뎌! 청하야!’
우웅-! 우우웅-!
만약 청하가 완벽 단계에 이를 정도로 길들여진 상태가 아니었다면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내 영력을 받아들이며 느릴지언정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텅!
소리와 함께 마지막 돌이 벗겨졌다.
그곳에는 일렁이는 먹색의 글자들과 시위가 풀려 뒤집힌 회색빛 각궁이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