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47화 (47/212)

2. 네 실적에 잠이 오냐?

여러모로 이번 타키넷 방문은 지금까지와는 성격이 달랐다.

서민서와 허묵을 타키넷에 데려온 이유? 순수하게 일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나 포함해서 최소 4명은 필요했다. 물론 민서와 허묵 씨에겐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았지만.

“자, 오늘은 아주아주 바쁜 하루가 될 겁니다. 몸은 좀 힘들겠지만 이 체험을 완수하면 타키넷이 어떤 곳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이계의 문명을 즐기고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것만 남는 거죠.”

목소리에는 긍정 에너지를 가득 싣고 몸짓에는 여유로움을 잔뜩 묻혔다. [만상공감]으로 서민서와 허묵의 감각을 실시간으로 체크해 나가는 나의 연기. 감히 의문을 표해 볼 타이밍 따위는 주지 않았다.

어느새 ‘완전히 새로운 이계’라는 단어에 경도된 허묵과 서민서가 기대 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깟 어려움 따위 극복하고 차원 여행의 선구자가 되겠다는 용맹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동정 어린 표정을 짓는 까막이는 가볍게 무시해 준다.

“자, 일단 오늘 체험의 첫 번째 목표가 무엇이냐 하면, 일단 이 물건들을 판매하는 겁니다.”

와르르!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꺼내 흔들자 가방의 용적보다 훨씬 큰 물건들이 쿵쿵 떨어져 내렸다. 참고로 이 공간 확장 가방은 하준광 협회장이 선물해 줬다. 고맙게도 말이지.

“마족……!”

오, 허묵 씨. 이번 참사에서 최치국을 따라다니더니 금방 알아보네?

내가 꺼내 물건은 아갈타의 측량관측병. 일명 마족이 입고 있던 티탄슈트, 그의 사제 건틀릿. 마지막으로 티탄슈트의 코어, 이렇게 세 가지였다.

허묵 씨가 물었다.

“이걸 어떻게 얻어낸 거지? 모두 폭파되던데…….”

“에이 남의 영업 비밀을 그렇게 묻는 건 실례죠.”

“…그런데 이 정도 되는 물건이라면 그냥 우리 세상에서 파는 게 낫지 않나? 돈 많이 받을 텐데?”

나는 혀를 찼다.

“허묵 씨, 지구 화폐보다 타키온의 가치가 훨씬 높습니다. 그거 꼭 기억해 두세요. 타키온으로는 못 살 물건이 없거든요.”

“아니. 내 말은 지구 돈을 타키온으로 바꾸면 되지 않냐는 거야. 아까 까막이가 그러던데? 300만 원짜리 만년필을 7알에 판다고. 이 물건들 못해도 10억은 받을 텐데… 만년필로만 바꿔서 팔아도 2,300알은 넘잖아?”

이런이런. 역시 사람이나 죽이는 킬러 회사의 사장다웠다. 경제를 모른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허묵 씨, 이렇게 생각해 봐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은 현금으로만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한테는 상품권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꿔 주는 환전상이 없다면? 그럼 현금을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상품권으로 물건을 사서 중고 거래를 해야지.”

“그렇죠?”

“그렇지.”

“그렇게 필요한 만큼 현금을 모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허묵이 입을 다물었다.

10억 원어치 만년필을 사서 타키온 2,300알을 번다? 유통망은커녕 쓰레기거리나 돌아다니는 우리 처지에 10억원어치를? 그건 유통망 잘 갖춰진 만년필 가게에서도 한 세월 팔아야 하는 물량이었다.

물론, 좋은 상품을 잘 선정해서 효과적으로 판매하면 비교적 적은 시간에 훨씬 더 큰 수익을 올릴 수도 있기는 하다. 남들은 다 불가능해도 적어도 나는 가능했다. 10억으로 2,300알 만들기? 한 여섯 달 정도 투자한다면 자신 있다. 나에겐 지난 생에서부터 쌓아 온 정보와 요령이 있었고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뛰어난 안목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럴 여유가 지금 없었다.

‘포장지로 유물을 가져오기만 할 거야? 그 무시무시한 걸 사용하려면 튜닝을 해야 되잖아? 그런데 반년을 더 기다리라고? 절대 안 되지. 당장 이것들 팔고 바로 튜닝 재료들 사서 돌아가는 게 베스트야.’

그만큼 나는 경복궁에서 발견한 유물에 매료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뛰고 입이 바싹바싹 마를 정도로.

육삼공 참사가 끝나고 혼자 몰래 경복궁에 들어가 하나 남아 있던 유물을 확인하던 순간이 매일매일 꿈에 아른거렸다.

그것은 경복궁 경회루 기둥 아래에 묻혀 있었다. [만상공감]으로 조심조심 살펴본 그것의 정체는 한 자루의 활이었다. 그것이 활임을 깨닫자 기둥돌 사이로 피어오르던 먹색의 기운. 그리고 그 기운이 만들어 내던 무수한 글자들.

[성 위에 일흔 살을 쏘시어 일흔의 낯이 맞으매, 개가로 돌아오시니.]

[죨애산 두 마리 노루가 한 화살에 꿰뚫리니…….]

[아기살 하나에 섬도적이 놀라니…….]

[여섯 노루가 떨어지며, 다섯 까마귀가 떨어지고… 솔방울 일곱과…….]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집에 돌아와 찾아본 다음에 깜짝 놀랐었다. 이성계의 활솜씨를 찬양하는 용비어천가의 문구들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유물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성계의 활!’

세종대왕의 어보도 대단했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그건 도장이고 이건 무기가 아닌가? 폭발적인 무력의 상승을 가능하게 할 물건이었다. 아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체 이성계의 활은 그립감이 어떨까? 시위를 당기는 손맛은? 시위를 놓았을 때 튕기고 떨리는 활몸은?’

입에서 홍수가 난 것처럼 침이 고였다. 상상만으로도 영혼까지 촉촉해지는 이 기분.

일분일초도 더 기다릴 수 없다.

‘반드시 이번에 유물을 즉시 사용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쳐서 돌아간다.’

그러기 위한 타키넷행이었다.

마족에게 얻은 전리품을 모두 팔아야 했고, 포장과 튜닝을 위한 재료를 파는 판매처를 알아내야 했다.

이 모든 것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기 위해서 서민서와 허묵 씨까지 불렀던 것이다.

“판매에서 구매까지 15시간 내로 끝내고 돌아갈 겁니다. 참고로 식사 시간은 없습니다.”

“네?”

“뭐라고?”

“후… 후우…….”

서민서는 당황하고 허묵은 분노한 눈을 부릅뜨고 까막은 다가올 고난을 대비해 심호흡을 했다.

어쩔 수 없다. 혹시나 하준광이나 권승리 혹은 데미안이 경복궁을 다시 찾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 전에 돌아가야지. 마음 같아서는 15시간도 길다. 이런 시국에 식사는 무슨 놈의 식사겠어?

물론 민서와 허묵 씨에게 이렇게 말하진 않았다.

“이게 체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타키넷은 결코 인간에게 우호적인 환경이 아니에요. 타키온이 없으면 그대로 소멸할 수도 있는 장소이지요. 극한의 상황에서도 욕구를 이기고 한계를 깨부수며 변함없이 집중하는 경험. 이건 반드시 필요합니다. 고작 15시간의 트레이닝조차 못 버틴다면 그냥 지구에서도 안락한 집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 게 정답입니다.”

열정과 목표 의식을 담아 말했더니 서민서와 허묵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긴… 다른 세상에 진출하는 일이니 쉬울 리는 없겠네요.”

“흥. 우리 회사 기본 훈련 땐 일주일간 굶기도 한다.”

이젠 되레 열의를 불태우는 서민서와 허묵.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까막이 입을 쩍 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왜. 뭐.

나는 까막의 시선을 피하면 브리핑을 마무리 지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어떤 식으로 팔고 구매해야 하는지 요령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다 팔고 다 구매하기 전에는 15시간이 지나도 집에 못 돌아갑니다.”

* * *

칼바람이 부는 길을 건너온 서민서는 서리가 묻어나는 입김과 함께 말했다.

“타키넷 지원부서에서 나왔습니다. 힘들게 차원 여행을 해서 타키넷까지 진출하셨는데 막상 뭘 팔아야 할지, 뭘 사거나 배워야 할지 막막하시죠? 그래서 특별히 몇 분만 선정해서 실속 거래 패키지를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추위를 견디며 담벼락에 버티고 서 있던 상어 인간이 고개를 슬쩍 들었다. 팔다리는 인간과 같고 상체는 상어의 몸통을 한, 그 외계의 존재는 누가 봐도 어딘가 절박해 보이는 몰골이었다.

[타키넷 지원부서……? 흠… 실속 거래 패키지? 특별히 몇 명만 선정한다고? 흐흠. 한번 들어 볼까? 그게 뭐지?]

“아갈타 차원의 영능학이 집대성된 티탄 슈트와 그 코어 그리고 구름 강기를 강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강력한 건틀릿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쓰레기 거리가 아니라 최하층 단번에 메인 거래 실적을 쌓을 수 있는 기회! 또한 봉인과 관련한 재료템들이 있다면 저희가 구매해 드리기도 합니다. 합리적인 거래를 통해 타키넷 정착의 기틀을 마련해 보세요!”

[…….]

잠시 멈칫했던 상어 인간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 어디서 왔다고? 티키넷 지원부서? 타키넷의 주주들과 관련이 있는 단체인가? 기록 중이니까 딱 말해 봐.]

그 험악함에 서민서는 슬쩍 뒷걸음질을 쳤다.

‘윽. 나왔다. 타키넷의 주주들.’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혹시나 누가 그들과의 연관성을 물으면 절대 잡아떼라고 했던 소시민의 당부가 떠올랐다. 그들을 잘못 사칭했다가는 정말 피눈물을 쏟게 된다고 했던가?

“아… 그건 아니고, 신입 차원 여행자들의 타키넷 정착을 돕기 위해 순수한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 마진을 남기지 않는 혜택이…….’

[하! 내 그럴 줄 알았지. 이런 미친 사기꾼이?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래, 너 잘 걸렸어. 이리 와 봐!]

“아, 아니. 고객님. 잠깐 진정… 꺄악!”

상어 인간이 무섭게 달려들었다. 서민서는 [점멸]까지 써 가며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 밖은 여전히 유리 채찍을 막 내려치는 듯한 추위였다. 소시민의 방어구, ‘절규를 삼킨 밤’을 입고 있었지만 여전히 뼛속까지 시렸다.

어쩐지 눈물이 핑 도는 것 같은 기분에 서민서는 입을 열었다.

“…이거 맞아요? 너무 이상한데… 보이스 피싱 하는 느낌인데…….”

기가 팍 죽은 그녀의 목소리에 호응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품에 넣고 있는 휘오의 나뭇잎을 통해 전달되는 텔레파시.

[…그러니까 내 생각에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다들 사기꾼 취급하는군…….]

세탁기에 넣고 헹굼 탈수를 세 번쯤 돌린 것 같은 목소리로 힘없이 대꾸하는 허묵 씨였다.

허묵 씨를 좋아하지 않는 서민서였지만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하지만 그 잠깐의 동병상련조차 용납하지 않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들이 왜 사기꾼 취급을 하겠습니까? 당해 봤으니까 그러는 거죠? 그게 무슨 뜻이냐, 결국 누군가는 걸리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우리 물건은 객관적으로도 좋은 거예요. 쓰레기거리에 있는 이들이 안목이 없어서 그렇지. 나쁜 물건 떠넘기는 게 아닙니다. 안목이 없고 겁이 많은 사람이 좋은 물건 사라고 등을 한 번 떠미는 것뿐이에요. 우리가 안 팔면 진짜 나쁜 놈들이 속여서 팔게 되어 있다 이겁니다.]

‘와… 어쩌면 이렇게 사기꾼같이 말하냐?’

현실에서는 육삼공참사의 영웅이라 불리는 소시민 선배가 이세계에서는 앵벌이에 보이스피싱이라니… 이게 평행우주라는 건가? 어쩐지 머리가 어질어질한 기분이었다.

[지금 이거 못 버티면 절대 새로운 차원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아시죠? 새로운 차원에 적응 못하면 변화가 불어닥치는 지구에서의 생존도 장담 못해요! 자자, 북극에서 에어컨을 판다는 마음가짐으로, 힘든 게 당연하니까 훌훌 털고 일어납시다. 지금 여러분 실적에 좌절할 시간이나 있어요? 자, 얼른 방금 만난 고객들 리스트업이나 하세요.]

‘이런 악덕 업주……! 여행이라고 불러 놓고!’

별별 일이 다 일어나는 세상이라지만 이건 정말 너무 현실성이 없었다. 여행이라고 해서 따라왔는데 외차원의 괴물들이 사는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판다?

이 정도로 현실성이 없으니 오히려 반감보다는 절박한 심정만 들었다. 소시민의 말을 거부하기 어려웠다. 그러면 정말 다시는 지구로 못 돌아갈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킬러 회사 사장인 허묵조차도 찍소리를 못하고 있을까?

‘하… 춥다.’

서민서는 빨갛게 얼어붙은 뺨을 비비며 고객 리스트업을 시작했다.

“A3 골목길에 상어 인간. 금속제 아이템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임. 언제 사기당한 적이라도 있는지 극도로 방어적인 태도를 보임. 재산은 많지 않아 보였음.”

[오케이. 조사를 계속 진행해.]

“하아…….”

[하아…….]

소시민의 지시에 서민서와 허묵 사장이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여태 돌아다녔지만 물건 하나를 팔기는커녕 구매할 만한 재료 아이템조차 찾지 못했다.

이게 정말 가능하긴 한 걸까? 하는 회의감이 팔다리를 질질 붙잡고 있던 그때.

이 모든 패배적 분위기를 단번에 날려 버리는 아이가 있었다.

바로 까막이었다.

[어? 팔았다! 형! 팔릴 거 같아요!]

[오옷? 오! 뭐를? 얼마에 산대?]

[아갈타의 티탄슈트에 항상 관심이 많았대요! 코어는 됐고 껍데기만 산대요. 자세한 건 상태 보고 정하기로 했지만… 일단 타키온 400알 이상으로 불렀어요!]

[400알 이상! 잘했다. 내가 바로 갈게!]

[네!]

[어, 그렇지. 까막이 어떻게 판 건지 민서랑 허묵 씨한테 설명 좀 해 줘. 민서 그리고 허묵씨는 잘 들어요. 타키넷에서 영업은 어떻게 하는 건지.]

[흠. 큼. 네. 일단 저는 지금 선택하지 않으면 할인가가 적용 안 된다고…….]

까막이가 쏟아내는 간증을 들으며 서민서는 어두운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하늘? 아니, 이게 하늘이긴 한가? 버려진 뒷골목 같은 풍경이 머리 위로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저 떠오르는 단어는 구룡성채, 외노자, 폐건물… 춥다.

‘지구를 떠나온 지 이제 한 5시간쯤 지났나?’

추위 탓인가? 체감상으로는 10년은 더 된 일 같았다. 지구에 살았던 적이 있긴 한 건지… 너무나 먼 곳, 너무나 다른 세상.

‘말이 통하는 괴물이라니… 그들이 만든 고도의 문명이라니…….’

이제까지의 모든 상식이 무너지고 발밑이 꺼지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서민서는 문득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나도 잘 팔고 싶다.”

* * *

[나도 잘 팔고 싶다.]

휘오가 전달해 주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쓰게 웃었다.

‘잘 생각했어. 서민서.’

서민서와 허묵을 데려온 건 단지 영업 인력이 필요해서만은 아니었다.

억지로 밀어붙이더라도 타키넷과 지구를 오가는 내편을 늘리고, 그렇게 차원 간의 교류를 가속화시켜야 했다.

그래야…….

‘거래 실적을 쌓아서 등급을 높이지. 한시라도 빨리 쓰레기 거리를 벗어나기 위해.’

쓰레기 거리는 시장이 아니다. 평화로운 중고나라만도 못한 곳. 할렘. 굶주린 거지들이 서로 물물교환을 하는 뒷골목.

지금까지는 여기서 구할 수 있는 물건들로도 충분했지만, 앞으로는 아니다.

“이제… 슬슬 거래 규모를 키울 때도 됐잖아?”

지구의 특산물은 수공예품이다. 하지만 수공예품이라 해도 아우라가 없는 물건은 결코 팔리지 않는다. 그걸 알아볼 눈을 가진 건 현재로서는 내가 유일.

‘아직은 먼 얘기겠지만… 언젠가는 루드비히 가문처럼 장인들을 직접 포섭해서 디자인, 품질 관리까지 내가 해야 돼.’

벌써 두달 가까이 타키넷에서 생존한 까막이. 타키넷에 오자마자 호되게 영업을 돌아다니고 있는 서민서와 허묵. 아직 미약하지만 이들이 그 미래를 열어 줄 포석이었다.

‘일하자.’

지금 내 실적에는 지나친 감상도 죄.

추위로 곱은 손가락을 비비며 나는 타키온 400알짜리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나아갔다. 이 정도 액수를 배팅할 상대라면, 그 역시 이번에 실적을 쌓아 쓰레기거리를 벗어나려고 하는 존재일 것이었다. 중요한 고객이 될 가능성은 충분했다.

‘정신 바짝 차리자.’

지금은 고객 취급도 받지 못하는 쓰레기 거리의 일원이지만, 언젠가는 정식 회원이 될 거다.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 VIP, VVIP… 말로만 들어 본 그 회원 등급들을 밟아 타키넷의 큰손이 되고야 말 테다.

우웅- 우웅-

[휘오오오-]

내 마음에 담긴 진심을 느꼈는지, 품속에 넣어 둔 청하와 저 멀리에 있는 휘오가 함께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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