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지갑을 스쳐 가는 것
“그럼 출발합니다. 이쪽으로 모이세요.”
내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어수선하기만 했다.
서민서는 휘오와 고양이 낚시대 놀이를 하고 있었다. 물론, 서민서가 고양이고 휘오가 낚시대다.
휘릭! 폴짝! 휙! 폴짝! 꺄하하.
휘오의 가지를 잡기 위해 폴짝거리는 서민서는 내가 부르는 것도 못 듣고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한편 허묵은 이제 묘목으로 성장한 자신의 세계수를 귀한 미술작품처럼 구석구석 구경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부르자 미적미적 다가왔다. 그런데 장난치고 있는 서민서를 보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슬쩍 손을 들어 머리 위로 늘어져 있는 휘오의 가지를 만져 보려고 했다.
하지만 휘오의 가지가 번개처럼 그 손을 피하더니 손등을 후려쳤다.
찰싹!
“음…….”
허묵이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손을 뻗었다. 아까보다 훨씬 빨랐다. 하지만 휘오는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찰싹!
“으음……!”
빨갛게 물든 손등을 감싸쥐며 휘오를 원망스레 바라보는 허묵, 그의 손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미친놈이? 지금 휘오가 자기를 잡겠다고 마누스를 발동한 거야?
그가 다시 손을 움직이려는 찰나, 나는 얼른 엄격한 목소리로 외쳤다.
“동작 그만! 빨리들 안 와요? 야, 서민서! 빨리! 허묵 씨도 장난 그만하고 오세요!”
서민서가 히히 웃으며 다가왔다. 허묵은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나와 휘오를 번갈아 쏘아보다가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그들에게 간단한 브리핑을 했다.
“지금부터 갈 곳은 타키넷입니다. 차원과 차원의 틈새에 존재하는 환상 차원이지요. 이곳에는 온갖 차원의 지성체들이 몰려듭니다.”
허묵이 눈을 반짝였다.
“오파츠를 구할 수 있는 곳?”
“네. 하지만 오늘 허묵 씨가 오파츠를 구할 일은 없을 겁니다. 물건을 구매할 화폐인 타키온이 없으니까요.”
“…그거 네가 다 가져갔잖아?”
“그래서 투어 및 교육시켜 주는 거잖아요. 오늘 다 제대로 가르쳐 줄 테니까, 다음에 타키온 구해 와서 직접 구매를 하든지 말든지 하세요.”
“으음… 꼭 거래를 해야 하나? 거기서 그냥 뺏으면 안 되나?”
“능력이 되면 얼마든지요. 근데 자칫 잘못하면 뼈도 못 추립니다.”
“하! 나를 뭘로 보고.”
허묵이 거만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진짠데. 타키넷 무서운 곳인데…….
한편 서민서는 자신의 걱정을 말했다.
“그런데 다른 차원이라니… 좀 겁나는데요……?”
“내 말만 잘 따르면 문제없어. 주의사항은 기억하지?”
“절대로 마누스를 쓰지 말 것. 근데 저야 어차피 마누스 없잖아요.”
서민서의 볼멘 소리에 허묵이 비웃음을 터뜨렸다.
“풉. 마누스도 못 쓰다니.”
“뭐라고요?”
“오, 인상을 찌푸린 건가? 마누스를 못 써서 그런지 하나도 안 무섭군.”
“하! 하……!”
서민서가 기가 막혀서 입 벌리고 눈만 깜빡이고 있자, 허묵이 뭐 어쩔 거냐는 듯 서민서를 마주 보며 히죽거렸다.
“허묵 씨, 민서한테 왜 갑자기 시비입니까?”
내가 반쯤 정색하고 끼어들자 허묵은 코웃음을 치며 시선을 돌렸다.
“흥. 잘났군.”
그런데 그의 시선이 슬쩍 휘오의 가지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
‘뭐야……? 설마?’
설마… 킬러 회사의 사장쯤 되는 인간이 휘오가 서민서하고만 놀았다고 삐진 건가?
흘깃흘깃 자꾸 휘오의 가지를 보며 삐죽거리는 걸 보니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하… 골 때리네.
억울해서 볼을 부풀린 서민서. 자꾸 가지를 흘끔거리며 입술을 삐죽이는 허묵.
빌어먹을 화상들…….
지끈거리는 미간을 꾹꾹 주무르며 말했다.
“아무튼… 거기서는 제 말에 절대 복종하셔야 합니다. 알겠지 서민서?”
“네…….”
“목소리가 작다.”
“네! 네!”
“허묵 씨도 예외 없습니다.”
“…알았다.”
“예외 없다니까요?”
“예, 알겠슴다!”
좋아 이만큼 다짐을 줬으면 됐겠지.
후-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휘오의 잎사귀를 앞으로 던졌다.
부우웅-!
눈앞에 생겨나는 황금빛 게이트.
“그럼, 너무 놀라지 마세요.”
나는 서민서와 허묵 씨와 눈을 한 번씩 마주치고 게이트 안으로 뛰어들었다.
* * *
7월 중순.
서울은 한창 더울 때였다.
제 아무리 초능력자라고 해도 공기 자체가 더우면 답답한 건 마찬가지. 높아진 불쾌지수 탓에 서리 계열 능력자들이 가장 큰 부러움을 사는 계절이었다. 지구의 북반구는 그랬다.
하지만 휘오가 열어 준 황금색 게이트를 넘어 도착한 타키넷은… 역시나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뭣?”
허묵 씨는 뺨 한 대 호되게 얻어맞은 듯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서, 서, 서, 선배?”
서민서는 높은 절벽 위에 선 것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어 댔다.
“맙소사. 하필이면…….”
그리고 나는 암담함에 이마를 감싸 쥐었다.
휘이이잉-
바람 한 줄기가 우리를 훑고 지나갔다. “꺄아악!” 서민서의 비명이 아련하게 울려 퍼졌다.
너무도 추웠다.
바람이 아니라 칼날이… 아니, 칼날도 아니라 유리가 박힌 채찍을 후려갈기며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이게 뭘까? 뭔가 잘못을 해서 벌을 받는 걸까?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혹독한 추위였다.
후우. 후우…….
내뱉는 숨결이 온통 하얗게 얼어붙었다. 벌써 콧물이 나와 코를 얼렸다. 초능력자의 강인한 신체로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타키넷의 쓰레기 거리가 쓰레기 거리인 이유.
그것은 이곳의 환경이 정말 쓰레기이기 때문이다. 영력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의 차원 불안정성은 물론이고, 온도 조절과 같은 기초적인 환경 조절도 제대로 안 되는 곳. 심지어 이건 그냥 추위가 아니었다. 차원의 틈새에서 불어닥치는 영혼마저 얼려 버리는 추위. 설령 만년설 속에 사는 설인이라 할지라도 영력이 없다면 버틸 수 없는 존재론적인 추위.
연례 행사처럼 있는 일이라지만 이 정도 한파는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 하필이면 이 중요한 시기에 환경 이상 현상이 생기다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 중 가장 약한 서민서는 벌써 입술이 파랗게 얼 정도였다.
“이쪽으로 와.”
나는 절규를 삼킨 밤에 영력을 듬뿍 불어넣은 뒤 녀석에게 입혀 주었다.
마족과의 싸움으로 성장한 [만상공감] 덕에 이젠 부여한 영력이 남아 있는 한, 특성 강화 효과도 지속되게 할 수 있었다. 절규를 삼킨 밤이 보온 기능을 강화하자, 그제야 서민서의 떨리는 어깨가 가라앉았다.
“후… 고, 고마워요 선배.”
서민서가 내 손을 한 번 쥐었다가 놓았다. 추위로 발갛게 달아오른 뺨이 인상적이었다. 하여튼 이럴 때 보면 꼬마다 꼬마.
‘아… 맞다. 망했…….’
등줄기가 싸늘했다.
꼬마 꼬마 거리다가 퍼뜩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번쩍 들고 외쳤다.
“까막아!”
허묵이 번쩍! 나를 돌아보았다.
“까막이라고?”
어쩐지 살기가 넘치는 눈빛이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까막아! 이런 시발… 야!”
오… 맙소사. 신경 쓰지 않으면 [만상공감]으로도 잡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미약한 감각이었다. 하준광 때와는 다르다. 이건 정말로 죽은 사람처럼 감각이 둔해질 대로 둔해져서 그런 거였다.
“정신 차려, 까막아!”
까막이는 근처 담벼락 밑에 앉아 있었다. 파랗게 질린 입술로, 어디서 구한 건지 커다란 털코트를 뒤집어쓴 채 아기 여우처럼 쪼그려 앉아 있었다.
“까막아!”
내가 녀석을 흔들자 녀석이 눈을 슬쩍 떴다. 녀석의 눈동자에 반가움이 퍼져 나갔다.
“아, 형. 왔어요? 생각보단 일찍 왔네요. 히… 살았다.”
까막이는 파랗게 언 입술과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멀쩡하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몸이 많이 굳었는지 낑낑대며 손가락 하나, 팔 하나를 천천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으차차차, 아이구…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 시체 같아요. 아,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에너지 소모를 아끼려고 일부러 신체를 반쯤 가사 상태로 만들었던 거니까요.”
“천천히, 천천히 움직여. 민서야 이리 와 봐!”
얼른 서민서를 까막이 옆에 붙여 주었다.
“민서야, 그거 얘랑 같이 써라. 너도 쪼그맣고 얘는 더 쪼그마니까 같이 써도 괜찮을 거야.”
“네! 네!”
서민서가 호다닥 달려서 절규를 삼킨 밤을 열어 까막이를 옆에 들이고 어깨를 감싸 주었다.
“아… 따뜻하다. 누나 고마워요.”
“아이고… 어쩌다가 이래. 아효… 어쩌다가…….”
서민서가 불쌍한 강아지를 보듯 어쩔 줄 몰라 하며 까막이를 토닥였다.
그러고 보니 까막이 나이가 15살쯤 되던가? 어차피 고아였는지라 자기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14살이나 15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사실 까막이는 흉악하기 그지없고 중2병이 철철 넘치는 꼴사나운 예비 킬러였지만… 지금 보면 소년미 넘치는 귀여운 아이일 뿐이었다.
서민서의 눈에는 한없이 안쓰럽고 귀엽고 작은 짐승 같을 것이다.
그런 서민서에게 까막이가 천진하게 말했다.
“아, 하하. 형이 팔라고 하는 물건 팔고, 형이 구해 오라고 한 정보 구하고 그러면서 지냈죠 뭐.”
서민서의 눈이 커졌다.
“뭐, 뭐라고? 무슨… 괜찮아?”
“네네. 착한 손님한테 이 코트도 외상으로 빌리고… 가끔 정 힘들면 저렴한 사용료로 방 빌려서 잠깐 몸도 녹이고… 견딜 만했어요.”
“아니… 견딜 만하다니 무슨…….”
“에이… 이거도 감지덕지죠. 몸 녹이느라 하루에 한 끼도 못 먹는 날은 좀 힘들었지만… 헤헤 그래도 이렇게라도 사는 게 어디에요?”
야… 아… 이거 뭔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묘하게 마음에 걸려서 까막이를 바라보는데, 문득 무시무시한 시선이 느껴졌다. 어깨가 움찔 떨릴 정도로 살벌한 시선이었다.
“선배?”
서민서였다. 그녀의 눈은 호랑이처럼 변해 있었다. 헤헤 잘 웃어서 눈이 항상 초생달 같은 녀석인데… 진짜로 화가 나면 눈매가 이렇게 크고 날카로워진다.
“앵벌이 시켰어요?”
오, 쉣.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허묵 씨가 끼어들었다.
“…소시민 씨?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기에 떨고 있는 저 불쌍한 아이는 우리 회사 인턴 같은데?”
와오! 시간차 공격!
* * *
집이라는 게 좋기는 하다.
밖이 그렇게 추운데도 이곳은 아늑했다.
이러니까 하루에 타키온 1알이라는 그 값비싼 세를 내고서라도 집을 구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 작업실 정도 되는 시설이면 하루에 타키온 2알씩은 먹힐 것이다. 그래도… 돈만 있다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호로로로록-
까막이는 담요를 두른 채 안락 의자에 앉아 핫초코를 마시고, 서민서와 허묵 씨는 까막이에게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불같이 화를 내던 서민서였지만 까막이와의 악연을 듣고는 조금은 이해를 해 주었다. 그래도 기왕 같이 일할 거 인간적으로 대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내 옆구리를 사정없이 꼬집기는 했다.
허묵 씨는 더 간단했다. 그쪽 사원과 인턴이 나를 죽이려고 했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내 뒷배가 너무 대단했다. 내 스스로도 훨씬 강해졌고. 허묵은 그저, ‘나도 잔혹한 편이지만… 그래도 내 사원들을 이렇게 다루진 않아.’ 라고 훈수를 뒀을 뿐이었다. 킬러 주제에 건방지게…….
하지만 뭐라 반박할 말은 없었다. 나도 심장이 철렁했으니까.
하필이면 이때 기온 이상이 발생해 가지고…건방지게.
‘까막이가 살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렇게 간략하게만 입장을 정리한 난 곧장 이 작업실의 주인인 이계의 마법사와 흥정을 해야 했다.
마법사의 이름은 케사리니 아몬. 만년필을 타키온 7알에 사 주고 마에스터가 만들어 준 가방도 45알에 사 준 호… 인. 그러니까 고마운 고객님이었다.
그리고 이 추위 속에서 잠시 몸을 녹일 작업실을 빌려준 사람이자, 까막이가 입고 있던 털코트를 빌려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정말 이 모든 것들을 무료로 해 주는 그런 성자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코트를 주지 않았으면 죽었을 거라니까? 그러니 당연히 코트 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저 아이의 신변은 나한테 귀속되는 거지. 네 권리를 주장할 생각하지 마. 버려진 물건을 주워서 고쳐 쓰는 거랑 같은 상황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코트 가격이…건방지게.”
[에이. 똑같은 말 반복하지 말자. 심플해. 코트 가격으로 타키온 10알을 내놓거나 아니면 저 아이를 나한테 넘기거나.]
코트 값 치고는 비쌌다. 타키온 4알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건방지게.
그러나 달리 방법도 없었다.
고작 타키온 열 알이 아까워서 까막이를 포기하는 건 감정적으로도 용납이 안 되고 이성적으로도 말이 안 됐다. 벌써 한달 넘게 타키넷에 체류하고 있는 현장 정보원. 이제 꽤나 써먹을 만해진 까막이의 잠재 가치는 고작 타키온 열 알 정도가 아니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젠장… 먹고 죽으려고 해도 타키온이 없는데…….’
유물을 포장할 포장지를 만드는 데에는 상당한 타키온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었다. 필요한 소재는 물론 공임까지 생각하면 가지고 있는 타키온 54알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10알을 써야 한다고?
[빨리!]
하지만 케사리니 아몬은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열 셀 동안 결정하지 않으면 강제로 저 아이를 내게 귀속시키겠어.]
고오오-
천천히 케사리니의 영력이 움직였다. 차원 붕괴를 일으키지는 않게, 저 밑바닥에서만 서서히 움직이는 영력. 그 노련한 움직임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미친… 이 정도였다고?’
쓰레기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지 않을 만큼 강대한 마법사라는 건 진작에 눈치챘었다. 하지만 지금 보여 주는 영력의 지배력은 내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지금 싸운다면 10초를 버티지 못하고 당해 버릴 것이다.
[열, 아홉, 여덟…….]
‘이대로라면 결국 까막이를 빼앗긴다…….’
결국 나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품에서 타키온 10알을 꺼내 케사리니 아몬에게 넘겨주었다.
동시에 케사리니의 얼굴에 활짝 훈풍이 불었다.
[예에~ 고맙습니다. 고객님. 앞으로도 서로서로 도우면서 잘 지내 보자고. 후훗, 간만에 지갑을 좀 채웠군.]
“네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좋은 거래였다. 자, 서비스야. 앞으로 한 한 시간 정도 더 쉬다가 가도 좋아. 난 내 할 일 하고 있을 테니까.]
케사리니는 손을 흔들고는 방 한구석에 있는 작업대에 앉았다.
후… 그나저나 타키온 10알은 어떻게 채우지? 밖이 너무 추워서 뭘 하기도 어려울 텐데…….
내 속은 바짝바짝 타는데 케사리니는 얄밉게도 휘파람을 불어 가며 작업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
순간 머릿속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번개처럼 떠올랐다.
‘작업대. 작업대라…….’
나는 그의 작업대를 물끄러며 바라보다가 그를 불렀다.
“저기요.”
[왜?]
“하루 중에 가장 많이 쓰는 게 그 작업대랑 의자겠죠?”
[그야 그렇지. 아티팩트 만드는 게 일이니까.]
“중요하겠네요?”
[엄청 중요하지. 그래서 여기에 마법도 많이 각인했어.]
작업대를 탁탁 두드리는 케사리니. 그 모습을 보니 입가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손가락을 쭉 뻗어 까막이가 아직까지 입고 있는 절규를 삼킨 밤을 가리켰다.
“혹시 그 작업대랑 의자 맞춤 제작하지 않을래요? 저 옷 만들어 준 장인과 같은 수준의 굉장한 명장한테 맡길까 하는데… 재질, 사이즈 원하는 대로.”
케사리니의 눈동자가 커졌다. 떨리는 눈으로 절규를 삼킨 밤을 보고 다시 작업대를 보고 다시 절규를 삼킨 밤을 보았다. 꿀꺽 침을 삼키는 목울대가 보였다. 그가 물었다.
[…저런 아우라가 있는 녀석으로?]
“당연하죠.”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좀 더 커졌다.
[…가격은?]
“음… 엄청 중요한 거니까 특별하게 만들어야겠죠? 음… 얼마를 받아야 하나… 흠. 견적을 내 봐야 알겠는데, 일단 계약금은 타키온 스무 알로 하죠.”
“……!”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주세요. 스무 알.”
자고로 돈이란 지갑을 스쳐 지나가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