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버리는 패
권승리는 회귀자들 사이에서는 일명 “그분”으로 불렸다.
아틀라스 프로젝트.
지구의 패망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에서 실시된 마지막 작전, 그 안에서 권승리의 역할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구세주.
하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아틀라스 프로젝트에 동조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그 작전에 반대해 왔다.
“끝까지 싸워 봐야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이길 수가 있겠어?”
“충분히 싸워 봤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격류를 되살리자고?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쳐. 그게 영원할까? 다시 수천 년… 아니, 수백 년이 지난 후에 격류가 또다시 사라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게?”
“그건 그 시대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퍽이나! 한번 도망치면 다음엔 더 힘들어져! 고작 멸망을 늦추는 정도로 만족할 거야? 맞서야지! 적응해야지! 계속 우리만 뒤쳐질 수는 없잖아?”
“하… 적응. 좋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게 언제입니까? 모든 지구인이 자기 터전을 잃고 난민이 되고 노예가 되어 차원 이곳저곳을 떠다니게 된 이후에? 우리가 고블린이라고 부르는 괴물들처럼, 다른 차원에서는 지구인이라는 신종 괴물이 등장하고 난 다음입니까?”
“무… 무슨!”
“현실을 직시하십쇼. 중요한 건 이게 유일한 방법이라는 겁니다. 차선도 아니고 차악도 아니고 유일입니다. 괜히 루드비히가 배신한 게 아닙니다.”
수없이 벌였던 언쟁.
권승리는 끝까지 싸워서 우리의 영역을 지켜 내자고 주장했지만, 결국엔 그녀 역시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전쟁은 이길 수가 없구나.’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일대일로 싸운다면?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도 있겠지.
하지만 2대 1로 싸운다면? 아예 100대 1이라면?
끝나기 전엔 끝난 게 아니다? 그런 말도 둘의 격차가 허용 범위 안에 있을 때나 가능한 말이었다.
지구인들은 강했지만 수많은 차원과 경쟁하며 성장한 차원 문명의 저력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결국, 지구인은 지구를 빼앗길 것이다. 살아남은 인류는 차원 곳곳으로 흩어져 난민이 될 것이다. 고향을 잃고 차원을 떠도는 사이 그들의 본질은 변형될 것이고, 결국엔 괴물이 되어 현지의 주민들에게 사냥당할 것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권승리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결국, 차원을 다시 틀어막아야 한다는 소리네?”
“네. 약해진 차원격류를 다시 살려 내야 합니다.”
“그걸 정말… 내가 할 수 있다고?”
“네. 그렇기 때문에 신살자神殺者 권승리. 당신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해 볼게.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권승리는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고 회귀했다.
패배와 절망 끝에 잡은 마지막 계획.
그래서 그녀에게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수십억이 죽고 단 1억만 살아남는다고 해도 우리의 승리다.’
회귀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서, 그녀는 다른 회귀자들과는 달랐다. 앞으로 벌어질 전쟁의 양상, 뼈아팠던 패배, 그녀는 그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 수없이 많은 죽음에 비한다면 육삼공 참사? 전혀 새로울 게 없다.
애초에 아틀라스 프로젝트의 목표는 고작 사람을 조금 더 살려 내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살려 봐야 전쟁에서 지면 다 죽는 거니까.
중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요소뿐.
“유물.”
회귀를 가능하게 했고 차원격류를 되살리는 데에도 필수적인 그것.
고등급의 유물을 가능한 많이 모아야 했다.
그래서였다.
‘한강대교가 끊어지는 걸 막을 여력은 없어. 끊어진 이유도 불명이고… 그곳을 건너려던 사람들은 어차피 전멸하게 되어 있다.’
버려야 하는 패는 버리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난 생에는 종로를 따라 올라온 괴물들이 경복궁과 청와대를 휩쓸며 그 안에 있는 유물들을 파괴했다. 이번 생에는 절대 그걸 두고 보지 않는다.
“2팀에서 9팀.”
“예, 아가씨.”
“나는 이대로 1팀과 함께 경복궁에 진입한다. 너희는 종로를 따라 올라오는 괴물들을 맡아. 정면으로 붙지 말고 방향만 돌려. 세종대로 따라서 한강대교까지 쭉 내려가게. 남쪽으로 계속 보내. 경복궁 쪽으로는 고개도 못 돌리게 해.”
“예? 하지만 아가씨. 저희는 가주님께 아가씨를 보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게 날 보필하는 거야.”
“하지만…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아가씨 곁을 떠나는 건 둘째치고서라도 괴물의 진로를 바꾸는 작전은 매우 위험합니다. 잘못했다가는 민간인들의 피해를 키울 수도 있습니다.
1팀장을 제외하면 최고 선임자인 2팀장의 얼굴에는 난감하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이제 한국 나이로 13살에 불과한 이 어린 아가씨가 이 거대한 참사를 전략 게임과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그걸 바라보는 권승리의 눈썹이 꿈틀 치켜 올라갔다. 2팀장의 표정 때문이 아니었다.
‘민간인의 피해’라는 말이 그녀의 심장을 쿡 찔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고 있는 전쟁이란 그런 것이다. 소중한 것 세 가지가 있다면 그중에서 한 가지만 선택하는 일.
‘심지어 피해가 더 커질 일도 아니야. 지난 역사에서도 어차피 전멸이었으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한층 더 차가워졌다.
“2팀장.”
“예.”
“항명인가?”
2팀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가주로부터 제5 공격대의 지휘권을 받은 권승리가 ‘항명’까지 들먹인 이상 2팀장에게는 더 이상 버틸 명분이 없었다.
2팀장이 고개를 숙였다.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호국가문.
던전이 열린 직후,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에 가지고 있는 지배력은 빠르게 축소되었다. 그 공백을 메운 것이 바로 호국가문들. 현대화된 귀족 가문과도 같은 대한민국의 호국가문들 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무혼 권가.
그곳의 직계인 권승리가 지시를 내렸다.
무혼 권가의 제5 공격대는 곧장 세종대로 사거리를 향해 남하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권승리의 귀로 리프 얀센의 텔레파시가 들려왔다.
- 모두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이제 경복궁의 유물만 습득하시면 됩니다.
‘그래 리오. 이제 돌입할 거야.’
- …저는 리프입니다.
권승리의 어깨가 흠칫 움츠러들었다.
‘아… 미안…….’
- 괜찮습니다. 이렇게라도… 제 동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기쁩니다.
‘…….’
권승리는 목구멍으로 나오려는 신음을 간신히 삼키고 대답했다.
‘이제 돌입한다.’
- 행운을 빕니다. Ma’am.
행운이라. 권승리는 그 말을 입 속에서 씁쓸하게 반복했다.
신세기 타워는 오늘도 불타고 있고 한강대교의 사람들은 이번에도 전멸할 것이다.
‘그래도 이게 맞아.’
권승리는 숨을 한 번 고르고 경복궁으로 진입했다.
* * *
한강대교 전몰지.
이곳이야말로 육삼공 참사 당시 한반도 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한 장소였다.
용산구의 구민들은 남산에서 쏟아져 나온 괴물들을 피해 방어선이 형성되었다는 강 이남을 향해 피난을 시작했다.
사방으로 쏟아진 빗방울이 저절로 모여 물줄기를 만들고 냇물을 만들 듯이. 처음에는 각지에서 따로 죽어 가던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 남하를 시작한 것이다.
어떤 이는 동작대교를 건넜고 어떤 이는 원효대교를 건넜다. 그들은 안전하게 강을 넘어 상대적으로 괴물이 적은 강 이남에서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강대교 쪽을 택한 이들은 운이 없었다.
“미친!! 저거 뭔데!”
광화문 경비팀장 박민희가 거칠게 욕설을 뱉으며 전선에서 몸을 빼냈다.
피난민들의 최후방에서 달려드는 괴물들을 저지하던 그녀였지만, 현재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막아! 저거 막으라고!”
처음에는 웬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다 싶었다. 우주인들이 쓸 것 같은 둥근 헬멧에, 검은색의 거대한 근육질 몸체. 거인 종류의 괴물 같기도 했고 엄청난 미래형 슈트를 입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상한 괴물이 저 뒤편에서 나타났다.
자신이 아니면 상대할 수가 없을 거라 생각하며 예의 주시하고 있었는데, 놈이 한강대교 상공을 향해 총같이 생긴 무언가를 겨누었다.
그리고 돌아본 한강대교 상공에는 레이저 포인트가 찍힌 것처럼 붉은 점 하나가 점멸하고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박민희는 자신의 온몸의 마누스가 다 곤두서는 듯한 섬뜩한 파장을 느꼈다. 가공할 힘이었다. 그런데 그게 겨누고 있는 것은 명백하게 한강대교였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건너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한강대교.
“안 돼!”
하지만 이미 늦었다. 붉은 점이었던 것이 확! 벌어지며 붉은 게이트를 만들어 냈다. 그 안에서 섬광 한줄기가 쭉 뻗어 나왔다.
꾸우웅!
붉은 게이트에서 쏘아져 나온 섬광이 한강대교를 강타했다. 철근과 콘크리트가 엿처럼 녹아내렸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가 이리저리 휘청이더니 끈 떨어진 연처럼 물 속으로 처박혔다. 귀가 먹어 버릴 듯한 소음과 함께 회색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다리를 건너고 있던 수많은 사람이 비명 한 줄기 남기지도 못 하고 사라져 버렸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 참상을 만들어 낸 붉은 게이트는 섬광만을 쏘아 내고 다시 사라졌지만… 박민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죽은 수많은 생명보다, 한강에 가로막힌 채 고립되어 죽어 갈 훨씬 더 많은 생명이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다, 다른 곳으로 건너 가야…….”
하지만 사방이 온통 괴물이었다. 서울시에 출몰한 괴물들이 다 이곳에 몰려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과연 저 수많은 괴물을 뚫고 원효대교나 동작대교까지 갈 수 있을까?
기껏 잘해야 몽둥이 따위로 무장한 시민들을 데리고?
아이들과 노인들도 이렇게나 많은데?
눈앞이 아득해지는 박민희. 그런 그녀의 눈에 문득 낯익은 실루엣이 비쳤다.
“콜록! 콜록, 콜록… 와… 죽을 뻔했다. 고마워 서민서.”
“웩! 오에에엑! 나… 죽어. 선배. [점멸]. 그만…….”
7미터나 되는 기나긴 창을 비껴 든 남자가 자욱한 물안개를 헤치고 나타났다. 그는 헛구역질을 하는 공간도약 능력자의 등을 툭툭 두드려 주다가 무너진 한강대교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친… 생존자가 없으니 이런 중요한 사실도 몰랐지. 마족이 개입해서 무너뜨린 거였어? 괜히 애먼 다리 위에서 대기하다가 죽을 뻔했네.”
7미터의 창을 든 남자, 소시민이 하는 말은 박민희의 귀에 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봐! 이봐, 소시민 씨!”
암담하기 그지없는 현재 상황에서 함께 싸울 수 있는 전사가 하나 더 있다는 것. 그 작은 위안만이 소중할 뿐. 박민희 팀장은 손을 휘휘 저으며 소시민을 향해 달렸다.
“어? 박민희 팀장님?”
박민희 팀장의 우렁찬 목소리를 듣고 소시민도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가 보인 반응은 박민희 팀장의 열렬한 반가움에 비하면 상당히 담백한 것이었다.
“잠시만요. 일단 길부터 열고요. 생각보다 괴물이 훨씬 많아서 서둘러야 돼요.”
그때 박민희 팀장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길을 연다고? 어떻게?’
하지만 소시민은 가타부타 설명 없이 날이 푸르스름한 과도를 꺼내들었을 뿐이었다. 그때도 박민희 팀장은 생각했다.
‘과도? 그걸 무기로 쓰는 건 봤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하지만 다음 순간, 싸늘한 냉기가 뺨에 와 닿았다. 눈썹을 바삭하게 얼릴 정도로 차가운 냉기.
쩌저저적-
소시민이 든 작은 과도를 중심으로 새하얗게 서리가 피기 시작했다. 물안개가 하얗게 얼어붙는다.
“후우-”
하얗게 새어 나오는 입김과 함께.
파드득-
소시민의 등 뒤로 투명한 날개가 펼쳐졌다.
그의 시선이 한강과 그 너머를 주욱 훑었다.
‘설마?’
박민희 팀장의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예감 하나가 스쳐 갔을 때, 소시민은 작게 중얼거렸다.
“플랜 B를 준비해 놨으니 망정이지.”
소시민의 날개가 크게 부풀고, 투명한 깃털 몇 개가 박민희 팀장의 뺨을 간지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