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까막이의 시장 조사
“왕초!”
“…….”
“말씀하신 대로 쓸 만한 정보들을 모아놨습니다. 왕초!”
“…야.”
“네. 왕초!”
“차라리 형이라고 불러.”
“네. 형! 와, 그러고 보니 멋진 옷을 입으셨군요! 까맣고… 비싸 보입니다!”
“…보고.”
“네! 만년필은 타키온 다섯 알이 아니라 일곱 알에 팔았습니다. 여기 타키온 세 알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알은 내일 세금으로 나갈 거 같습니다.”
까막이 내민 손바닥에는 황금빛의 작은 구슬 세 알이 곱게 놓여 있었다.
“여기, 여기 보십시오. 숨긴 거 없습니다.”
어릴 때 대체 어떤 앵벌이를 했는지, 팬티까지 벗어서 보여 주려는 까막이의 모습에 나는 손사래를 치고 말았다.
“됐어. 어차피 다 아니까.”
까막과 함께 타키넷으로 넘어올 때, 녀석에게 세계수 휘오가 뻗은 잔가지를 붙였다. 그래서 언제든 녀석에게 전언을 보낼 수 있고 녀석이 가지고 있는 타키온의 개수도 언제든 확인 가능했다.
“오케이. 하나는 세금이니까 계속 가지고 있고.”
까막이가 남긴 세 알 중, 한 알은 남기고 두 알은 챙겨서 가죽주머니에 넣었다. 절대로 칭찬해 주지 않았다. 물론, 경험도 없는 까막이가 만년필을 내가 생각한 최고가인 일곱 알에 판 건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잊으면 곤란하다. 저 자식, 처음 만났을 땐 생면부지인 나를 죽여 보고 싶다고 달려들던 놈이다. 긴장을 풀게 해 주면 안된다. 하루하루 살아남기도 간당간당해야 허튼 생각 안 하고 일을 잘하는 법. 생활은 그냥 어쩌다 한 번씩 풀어 줄 것처럼 제스처만 취하면 된다. 형이라고 부르라고 한 것도 그런 일환이다.
“지구 수공품 팔아넘길 만한 사람 많이 찾아 뒀어?”
“예! 일단은 만년필을 사 준 이계 마법사부터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왜? 그 사람이 괜찮아?”
“예! 완전 에이급입니다. 에이급.”
“가 봐.”
“예! 앞장서겠습니다.”
근데… 이거 왜 이렇게 신났어? 연기가 아니다. [만상공감]으로 전해지는 감각도 꽤나 경쾌하다. 뭐지?
“기분 좋아 보이네?”
내 삐딱한 질문에 까막은 쑥스러워하면서 답했다.
“흐… 지구인을 오랜만에 봐서요.”
어, 음… 그래.
아련히 느껴지는 양심통을 외면하며 나는 타키넷의 최외곽 지역 쓰레기 거리를 걸었다.
그런 와중에도 까막이는 계속 기분이 좋은지 조잘거렸다.
“알고 계시겠지만… 쓰레기 거리 중앙에는 커다란 고물상이 있습니다.”
“맞아. 그냥 무게 달아서 가격을 쳐 버리는 야만적인 곳이지.”
“네. 그런 곳에 팔아서는 도무지 가격이 안 나와서 형이 가르쳐 준 대로 직접 발품 팔아 가면서 거래를 터 봤거든요? 그러다가 형이 준 만년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의 특징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게 뭐지?”
“창문 사이로 보면 부글부글 끓는 연기가 보이거나 빼곡하게 쌓인 책이 보이고는 해요. 방문 앞에 서 보면 형언하기 힘든 괴상한 냄새가 나고.”
자식, 제법이네. 일은 힘들게 배워야 한다 싶어서 일부러 요령을 거의 안 가르쳐 줬는데도 자기가 알아서 마법사들의 특징도 잡아내고…….
“그래. 그게 마법사 냄새라는 거야.”
“마법사 냄새… 헤에…….”
“그런데 그것보다 더 결정적인 단서도 있지.”
“그게 뭐죠?”
나는 대답 대신 골목에 나 있는 문 앞 바닥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손바닥을 들어 보자 아주 가느다란 실 쪼가리 같은 것들이 스르르 딸려오다가 빛이 되어 흩어졌다.
“이거, 영력을 각인할 때 쓰는 영력 유도선의 찌꺼기야. 싸구려라서 이렇게 사방에 날리는 특징이 있지만, 쓰레기 거리에서 인챈트를 주로 하는 마법사들은 죄다 이걸 사용하거든? 이게 있으면 백 퍼센트지.”
“오옷!”
까막은 의외로 호기심이 많은 캐릭터였다. 별거 아닌 이야기인데도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물건을 파십니까?”
까막이가 묻길래 비닐로 포장한 백팩을 들어 보였다.
“오늘은 이걸 팔 거야.”
“비싸 보이는 가방이네요. 얘도 그 아우라라는 게 있어요?”
“있지.”
“그럼… 만년필이 일곱 알에 팔렸으니까 얘는… 한 열 알 하나요? 그 만년필 되게 비싼 거 같던데.”
까막이가 그렇게 묻길래, 나는 씨익 웃으며 답해 주었다.
“무슨 소리냐. 얘는 서른 알은 받아야지.”
까막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하지만 녀석아. 사실 서른 알도 어쩔 수 없이 싸게 파는 거란다.
* * *
사실 물건에 정가라는 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물건에 정가가 있고 그게 물건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그야말로 착각일 뿐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연봉을 많이 받던가? 가치를 창출한 이가 부자가 되던가? 아마 그랬다면 아인슈타인이나 뉴턴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가격이라는 건 붙이기 나름이다.
그건 기본적으로 길에 관문을 세우고 통행세를 받아먹는 것과 비슷하다.
억만금을 지불하고서라도 반드시 그 길을 통과해야 하는 사람이 딱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억만금이 바로 물건의 가격이 되는 것이다.
똑같은 물건이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보물이 되기도 하고 고물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상품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팔린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쓰레기 거리를 벗어날 작정이었지.’
까막이에게 발품을 팔게 한 이유였다. 가난뱅이들만 모여 사는 여기에서는 내가 아무리 발품을 팔아 봐야 물건에 가격을 붙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아우라를 가진 지구의 수공품은 마치 예술품과 같아서 그걸 사 줄 사람만 찾으면 얼마든지 비싸게 팔 수 있는 물건이지만, 쓰레기 거리에 그런 훌륭한 고객 따위는 없다.
결국, 쓰레기 거리는 까막이에게 맡기고 나는 기반을 쌓을 때까지 지구에 집중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뜨내기 시장의 통행권을 얻어낼 때까지… 일단 뜨내기 시장에만 가면… 바가지 요금을 붙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게 뭘까?
까막이 말했다.
“그 마법사. 좋은 사람이에요.”
“처음에는 그냥 좋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그런 사람이 없더라고요.”
“처음엔 앵벌이 하듯이 불쌍한 척하면서 물건을 팔았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타키넷에 그런 사람 거의 없지 않아요?”
없지. 타키넷이 어떤 곳인데.
차원을 넘어 여기까지 온 놈들이다. 죄다 닳고 닳았다. 그런 놈들 앞에서 불쌍한 척을 한다? 하루하루 살아남기가 팍팍한 쓰레기 거리에서? 강도 짓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다.
그런데 까막에게 동정심을 보였다니… 호기심이 생기긴 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는 내 상상을 초월했다.
[맙소사… 이거 엄청 귀한 물건이잖아?]
세상에? 쓰레기 거리에서 만난 고객이. 내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물건의 가치를 인정하다니? 순간 여기가 쓰레기 거리가 아닌가, 하고 혼동이 올 정도였다.
원래 이 바닥은, “이 물건이 이렇게 좋아요!” 하면, “아, 나는 그건 모르겠고!” 하고 받아치는… 무식이 미덕인 동네였다.
그런데 내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가치를 인정해 주는 이 사람은 대체 뭐란 말인가?
[여기. 여기 이… 지퍼라고 했던가? 이건 어떻게 고정시켰지? 꼭 가죽에서 자라난 것 같군.]
“아, 물론 꿰맨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마법도 아닌데… 서, 설마, 설마 권능?]
“물론입니다.”
그래. [형태변환]의 초능력으로 모양을 잡고 [합성]의 초능력으로 붙였다. 초능력을 물 쓰듯이 하는 수공법. 이게 바로 지구 최고의 장인, 마에스터의 클라스라는 것이다.
[솔기가 하나도 없는 걸 보고 설마설마 했는데… 세상에! 두께도 다 일정해!]
이계의 마법사는 환호했다.
누가 보면 물건을 내가 파는 게 아니고 이 사람이 팔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세상에… 이렇게 정직한 고객을 만날 줄이야!
‘이제 보니까 까막이가 잘나서 만년필을 일곱 알에 판 게 아니었네.’
이 마법사가 너무 훌륭한 고객이었을 뿐이다.
나도 모르게 존경심이 끓어올랐다.
숨길 수 없는 존경심이.
[그, 그래. 그래서 이거 얼마에 팔 거지?]
물어보는 이계의 마법사. 하지만 이렇게 존경스러운 분에게 내 의견을 앞세울 순 없는 법.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얼마 정도 생각하고 계십니까?”
움찔 놀라는 이계의 마법사. 그는 끙끙 고민을 하다가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서른 알?]
서른 알. 애초에 내가 팔려고 했던 액수였다. 까막이 깜짝 놀라며 나를 돌아봤다. 하지만 나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고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가방을 열었다. 트윈헤드 오우거의 뼈를 일일이 깎아 만든 지퍼가 소리도 없이 스르르 열렸다.
“마법사님. 보십쇼. 이건 가방이 아닙니다. 죽은 트윈헤드 오우거를 가방의 형태로 되살려 놓은 것이지요! 그 어디에도 솔기 하나 없습니다. 이대로 영혼만 부여하면 곧장 숨을 쉴 수도 있는 물건 아닙니까?”
[그… 그… 거기에 아우라도 굉장하고……!]
거봐 거봐 이렇다니까. 내가 쿵, 하면 알아서 짝! 하고 보조를 맞춰 주는데, 내가 이 고객님을 존경을 안 할 수가 없다.
마법사가 입술을 떨며 물었다. [만상공감]으로 전해지는 그의 감각도 오직 ‘가방’ 가방에만 맞춰져 있다. 마에스터의 백팩이 그의 오감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 그래서. 서른 알에는 안 되나?]
“질문이 틀렸습니다. 손님.”
[응?]
“제가 얼마에 팔 것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손님께서 이 가방을 가지고 어떤 물건을 만들 것인지, 그게 중요하지요. 그 물건의 값어치에 따라 이 가방도 한 알짜리인지 백 알짜리인지 결정이 되는 거지요. 자 손님, 오히려 제가 묻겠습니다. 이 백팩으로 무엇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그 물건의 가치를 생각할 때… 이 백팩은 얼마가 적당할까요?”
이계의 마법사는 백팩 앞에 무릎을 꿇었다. 떨리는 손으로 백팩의 아름다운 선을 쓰다듬으며 탄식을 흘렸다.
[아… 아아…….]
결국 그날 마에스터의 백팩은 타키온 마흔다섯 알에 팔렸다.
덤으로 박민희가 사용하던 보호 조끼도 타키온 스무 알에 같이 팔았다.
[하아… 다음에 좋은 물건 들어오거든 또 찾아와. 너무 빨리는 말고… 좀 시간 두고. 당장은 생각보다 지출이 커서…….]
이계의 마법사는 사용하는 언어가 다를 뿐이지 평범한 사람처럼 생겼다. 가느다랗게 은박이 놓인 검은 로브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그는 백팩과 보호 조끼를 내려다보며 탄식하듯 말했다. 자괴감과 행복함이 함께 묻어나는 그 목소리는 한번 들으면 쉽게 잊기 어려울 만큼 오묘한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안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 타키온을 건네줄 때 [만상공감]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어찌나 쫄깃하던지.
존경하는 고객님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이고 물러나려고 할 때 그가 말했다.
[그런데 지구에서 왔다고?]
“네.”
[흠… 조심해야겠네?]
어?
현재 지구가 조심해야 하는 상황인 건 맞다. 하지만 여기서 이런 경고를 들을 줄은 몰랐다. 의외의 상황에 나는 그냥 “네?” 하고 되묻고 말았다.
[아니. 그쪽 소문이 흉흉하더라고.]
그런 나를 향해 훌륭한 고객님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몸조심하고 다음에도 또 물건 가져와.]
“아, 네…….”
쓰레기 거리의 인물치고는… 여러모로 이상한 고객이었다.
“존경합니다!”
밖으로 나서자 까막이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무려 50퍼센트나 더 비싸게 파시다니!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아부를 늘어놓길래 바로 말을 끊었다.
“됐고. 지금부터 쇼핑할 거니까 들러야 할 곳 리스트 작성해 봐. 소모성 버프 아이템 위주로. 무기나 방어구에 능력을 부여하는 물약이든 문신이든 뭐든.”
“네!”
“아, 그리고 생각난 김에.”
나는 품에서 만년필 한 자루를 꺼내 까막이에게 주었다. 그라프 사社의 한정판 만년필. 트윈헤드 오우거를 잡고 광화문 경비대에서 받은 현상금으로 산 물건이었다.
“자, 다음 생활비. 이번에도 스무 날은 버틸 수 있지?”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봤다. 나를 존경한다며 헤헤 웃고 있던 까막의 입꼬리가 순간 움찔, 하는 모습을. 그리고 느꼈다. [만상공감]으로 전해지는 이 가슴 답답한 감각을.
하지만 까막이의 처신은 빠르고 정확했다.
“헤, 헤헤. 감사합니다.”
얼른 두 손으로 만년필을 받아 드는 녀석.
‘자식 눈치가 좋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 *
“이제 곧 6.30 참사인데… 왜 루드비히는 한국을 떠나지 않는 거지?”
- 글쎄? 우리 때문 아닐까? 역사랑 다르게 대대적으로 기술자들을 조직하고 있잖아? 마에스터들을 자랑하는 루드비히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생기는지 신경 쓰이는 걸지도?”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 둘째도 셋째도 아니고 막내야. 그 집 막내는 좀 특별하잖아?”
- 그러니까…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지. 마침 ‘그분’께서도 활동을 시작하셨잖아? 아직 나이가 어리셔서 실권은 크지 않겠지만… 6.30 참사와 같은 혼란기에는 실권도 실력이 먼저니까.
“설마…….”
- 그래. 눌러놓자고. 어차피 6.30 참사는 우리가 더 빠르게 실권을 장악하는 계기로 삼으려고 했던 거잖아? 가는 길에 겸사겸사. 촉망받는 루드비히 후계자의 기를 좀 꺾어 놓자 이거지.”
“…준비할 게 많겠군.”
- 그래. 준비하라고.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니까. 만안자萬眼子도 곧 제대로 활동할 거야.
“유물 발굴도 본격화될 거고?”
- 그래. 아참, 타키온도 잘 모으고 있지?
“네가 준 정보 덕분에… 600알 이상 모아 두었다. 유물 발굴까지 1,000알은 문제없을 것 같다.”
- 훌륭하네. 근데 현재 성취는 어느 정도? 첫 번째는 마스터했나?
“첫 번째? 아… 회격을 말하는 건가?”
- 응.
최치국은 웃고 말았다.
“세 번째까지 끝내고 네 번째에 도전 중이다.”
- 오! 그 정도면 서른 살 미만 헌터들 중에서는 적수가 없을 거 같은데? 지금 네가 열다섯이던가?
“한국 나이론 열여섯…….”
- 좋아. 좋아. 순조로워. 또 연락할게.
텔레파시가 끊어졌다. 최치국은 검을 들었다.
“서른 살 미만…….”
어째서인지 오크 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과도를 들고 설치던 이상한 인간 탓에 회격을 쓰다 말고 땅바닥에 처박혔던 기억.
검을 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뿌득.
“그때 같은 추태는 없다.”
최치국은 또다시 수련을 하러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