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31화 (31/212)

6. 놀러가면 안 될까요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으로 바뀌는 경험.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짜릿하다.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던 지난 시간의 고민과 고행이 갑자기 의미를 갖고 오와 열을 맞춰서 집합한다. 아아, 너희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구나.

의미 없는 것 따위 하나도 없었구나.

무의미하던 세상이 갑자기 의미로 가득 차는 그 뽕 맛.

이게 뽕 맛이라는 것을 잘 알고, 여기에 취해 안주하면 안된다는 것도 잘 알지만…….

그걸 알아도 기분이 좋은 걸 어떡하나?

트윈헤드 오우거의 가죽으로 만든 상의.

품이 넓고 소매가 펄럭거리는 이 옷에게는 ‘절규를 삼킨 밤’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물론, 그 무뚝뚝한 마에스터 유진이 붙인 이름은 아니고 루드비히 전속 카피라이터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름에 따라 값어치가 또 달라진다나 뭐라나.

아무튼 우리 ‘절밤(절규를 삼킨 밤)’이는 그 중2병스러운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멋진 외양을 자랑했다.

“이, 이건 대체…….”

머리와 어깨 가죽에 머리뼈 가루를 코팅하고 얇게 밀어냈다. 거기까지는 내가 제안했던 그대로. 하지만 마에스터 유진은 그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공을 했다. 그래서 이 방어구의 표면에는 벨벳처럼 부드러운 잔털 같은 것이 덮여 있고 전체적인 색깔은 밤처럼 검었다.

고급스러운 검은색 사이로 언뜻언뜻 보랏빛이 흘러나왔다. 혈관으로 꿰맨 스티치를 타고 흐르는 오우거의 담즙이 모종의 작용을 일으켜 옷 전체에 부드러운 보랏빛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검은빛이 밤이라면 이 보일 듯 말 듯한 보라빛이 절규가 아닐까? 없는 감수성도 만들어 낼 정도로 아름다운 옷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부드럽고 팔락이는 옷을 쓸어 본 후에 물었다.

“입어 봐도 되나요?”

데미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영구 대여. 자기 것처럼 써도 됩니다. 당신이 내 기분을 상하게 하기 전까지는.”

단서를 붙여 호의를 보이는 데미안 루드비히. 하지만 그 말에 집중할 여력 따위는 없었다. 나는 허겁지겁 상의를 뒤집어썼다.

‘와……! 이게 맞춤옷!’

물 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바람 속을 거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온몸을 휘감는 자락들. 처음부터 이 옷을 입고 태어난 것처럼 거뜬하고 편안했다.

입고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전체적인 형태는 루즈한 후드티. 소매자락은 한복 소매처럼 넓었다.

펄럭!

파라락!

겉을 쓸어 보면 그렇게 부드럽던 것이, 소매를 떨치면, 잘게 진동하면서도 짱짱한 탄력이 느껴졌다.

‘이건… 기대 이상인데?’

[만상공감]으로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옷은 옷자락을 이용해 적의 공격을 상쇄하고 비껴 내겠다는 내 의도를 120퍼센트 반영하고 있었다.

겉을 감싼 부드러운 잔털 같은 것이라거나, 스티치 속을 흐르는 담즙과 그 안에 첨가된 특수 소재들. 가죽들 사이에 이식된 모세혈관까지. 모두 내가 염두에 두지 않았던 디테일이었다. 그런데 그 부분이 너무 좋았다. 그 하나하나가 내가 기대한 방어 효과를 극대화했으며 심지어 미적으로도 더 아름다웠다. 기대했는데… 충분히 기대했는데, 어떻게 그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걸작이 나올 수가 있는 거지?

‘이게 마에스터의 클래스인가?’

화르르르-

격렬하게 타오르는 백색의 아우라. 내 몸에 딱 맞게 제작된 물건인 만큼, 나랑 한 몸처럼 잘 맞는 이 옷은 길들여지는 속도 역시 남달랐다. 입고만 있어도 꾸물꾸물 영력이 성장하는 것 같다.

그게 날 확신하게 만들었다.

‘이거면 가능하다.’

이런 게 있으면 최치국과도 한판 해볼 수 있다! 일주일 안으로 다가온 육삼공(6.30) 참사에서 충분히 활약할 수 있다! 루드비히에 몸을 의탁한 건 신의 한 수였다.

“마음에 드나요?”

“네, 네네. 정말 마음에 듭니다.”

“다행이군요. 그럼 온 김에 뭐 좀 물어볼게요.”

응? 물어볼 게 있다고?

참고로 이곳은 아직 내 고시원이었다. 데미안 루드비히는 수행원 한 명을 거느린 채, 내 방의 작은 입구를 가로막고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근데… 계속 여기에 서서 대화를 나누겠다고? 루드비히의 도련님이 이런 누추한 곳에서?

“아다시피 한국에서 우리 루드비히의 영향력은 유독 낮은 편입니다. 한국의 경제력과 능력자 전력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우리 가족들도 한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에 참 관심이 많은데… 유의미한 결과물은 여태 나오지 않고 있네요.”

들으면 들을수록 반 평짜리 고시원 복도에 서서 나눌 주제가 아니었다.

“그러니, 나 데미안 루드비히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멤버십을 내어 준 소시민 씨에게 묻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루드비히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한 방법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아마 지금 내 옆 방, 앞 방에 있는 사람들은 데미안의 말을 들으며 ‘이건 웬 미친 놈이야?’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차라리 데미안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좋을 텐데…….

데미안의 목에 걸린 오파츠는 번역의 힘을 가진 것. 예민한 사람이 아닌 다음에는 데미안의 외국어를 한국어라 생각하며 듣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황당할까? 이 다 쓰러져 가는 고시원 복도에 자신이 데미안 루드비히라고 주장하는 미친놈이 와 있으니.

하지만 데미안 루드비히가 굳이 이 불쾌한 환경에서 이런 것을 묻고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당연히 이것도 시험이겠지.’

집이란 한 사람의 심리적 방벽이 가장 약해지는 공간. 그렇기에 굳이 내 집으로 찾아와 기다리던 물건을 안겨 주고 기습적으로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내 민낯, 가장 바탕에 깔린 무언가를 읽어내기 위해.

과연 루드비히 가문. 인재 한 명을 위해서 무엇도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다던 말이 맞았다. 1류도 되지 못한 나를 파악하기 위해 몸소 행차할 줄이야…….

‘하지만 그들이 기회를 주는 건 한 번뿐이지.’

아끼진 않지만 기회는 한 번. 인재 한 명에게 여러 번의 테스트를 치르기엔 루드비히란 존재가 너무 무겁고 바빴으니까.

‘그러니까… 내 캐릭터를 알고 싶다는 거지? 모사꾼이 될 수 있는지. 아니면, 지모는 없어도 쓸 만한 행동력과 열의가 있는지… 그도 아니면 가까이 두고 쓰기엔 좀 수준이 떨어지는지…….’

나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 답했다.

“아시겠지만 대한민국은 호국가문들이 꽉 잡고 있습니다.”

“네. 소문보다도 더 결속력이 강하더군요.”

“그런 상황에서 루드비히 가문이 파고 들려면 바닥 민심을 파고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바닥 민심?”

“예. 호국가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던전들을 하나하나 클리어해 가며, 호국가문의 선택을 받지 못한 헌터들의 호감을 얻어야 합니다.”

“호국가문이 먹다 남긴 뼈다귀의 살코기들을 발라 먹으란 소리인가요?”

“아닙니다. 비유가 잘못됐습니다. 이건 미래 세대를 키우는 일입니다.”

“미래 세대?”

“네. 왜 대한민국의 유망주들이 루드비히가 아닌 호국가문을 선택할까요?”

데미안 루드비히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는 질문 싫어합니다.”

빌어먹을. 지는 계속 질문하면서… 태어나면서부터 갑이었던 도련님의 싸늘한 눈빛을 피하며 나는 화들짝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으음… 그 이유는 대한민국의 유망주들에겐 루드비히가 낯설기 때문입니다. 루드비히가 대단한 가문이라는 것은 알지만 멀게 느껴집니다. 그에 반해 호국가문들은 익숙합니다. 동네에 자리잡았던 무시무시한 던전을 호국가문이 처리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크지요. 신문에서도 그들의 활약상이 계속 전해지지요. 멘토로 삼은 헌터들이 그들과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지요.”

“작은 던전들이라도 공략하면서 계속 노출되게 해라… 나쁜 방법은 아니군요. 하지만 그 방법에 얼마나 큰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지는 생각해 봤습니까?”

무슨 열 네살짜리의 질문이 이렇게 날카롭냐. 루드비히의 가정 교육은 대체 어떻게 이루어지는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날카로운 질문 덕분에 오히려 이야기를 진전시키기는 더욱 쉬웠다.

“그 시간과 노력을 줄일 방법이 있습니다.”

“호오?”

“스타를 만드는 겁니다.”

“스타?”

“네. 호국 가문에 고용되지 못했지만 사실은 재능이 있었던 헌터. 루드비히가 그들을 발굴하고 키워 준다는 서사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진 헌터들이 구름처럼 루드비히의 깃발 아래에 모일 겁니다. 순식간에 영향력과 이름값을 키울 수 있습니다.”

“…발상은 좋지만 그 스타를 찾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일단 한 명은 있지 않습니까?”

“소시민 씨 본인? 하지만 한 명으로는 부족합니다. 적어도 셋은 돼야죠.”

나는 미소를 지었다.

“아, 지금 막 제 머릿속으로 휙! 하고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그 사람까지 하면 벌써 두 명이 되는 거군요.”

데미안이 눈을 깜빡였다.

“그 희귀하다는 공간능력자. 단 두 달 만에 초능력이 일곱 배 이상 강화된 슈퍼루키입니다. 루드비히의 지원이 더해진다면 틀림없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호오……?”

데미안이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6.30 참사’가 코앞으로 다가온 이때, 나는 서민서에게도 루드비히의 그늘을 씌워 주는 데 성공했다. 가족이 없는 내겐 녀석이 가족이나 다름없었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민서야, 잘 뽑아 먹어 봐라.’

내가 보니까 루드비히 가문 되게 좋은 거 같더라.

짝짝.

서민서를 소개해 주기로 하고 논의를 마쳤을 때, 데미안은 손뼉을 두 번 쳤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소시민 씨, 꽤나 흥미로운 답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기할 정도입니다. 원래 그렇게 아이디어가 있으신가요? 내가 듣기로, 마에스터 유진에게 새로운 수공법의 단초를 제공해 줬다지요?”

“아, 네. 머릿속 망상 비슷한 거였는데 마에스터 솜씨가 워낙 좋으셔서…….”

“아닙니다. 이번 조언도 그렇고,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보답을 좀 하고 싶군요.”

‘……!’

심장이 쿵쿵 뛰었다. 데미안 루드비히의 개인적인 보답이라고?

“뭐, 새로운 집 정도면 어떻겠습니까? 한강변에 100평 규모 정도?”

내 반 평짜리 방을 슥 둘러보며 시크하게 말하는 도련님이었다.

100평! 한강변!

심장이 짜릿하게 좋은 단어였다. 그래. 두번째 인생 좀 즐기면서 사는 맛도 있어야지.

하지만.

그렇지만…….

‘집’ 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집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 집에 비하면 ‘한강변’이나 ‘100평’ 같은 건 아무 의미 없는 수식어처럼 느껴졌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간절했다.

급기야 내 입이 나도 모르게 열려서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저 도련님. 그보다는…….”

“네? 다른 원하는 게 있습니까?”

침이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간다.

“도련님 집에 놀러가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마침내 본심이 흘러나오는 순간.

데미안 루드비히 도련님의 이마가 팍, 구겨졌다.

* * *

“조깐네…….”

까막은 훌쩍 코를 한 번 먹었다.

마누스를 익힌 이래로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었는데, 이 빌어먹을 타키넷인지, 환상차원인지, 차원의 경계인지 하는 이상한 공간에서는 어릴 때처럼 코가 찔찔 나왔다.

“아… 너무 배고프다.”

몸이 약해진 탓인지 허기도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도 살려면 열심히 움직여야지. 왕초한테 처음부터 밉보이면 답도 안 나온다.”

혹시 아는가? 열심히 해 놓으면 잘했다고 삼 일에 한 번쯤은 두 끼씩 먹을 수 있게 해 줄지?

탕탕탕!

골목가에 나 있는 문을 두드렸다. 쾅, 문이 열리더니 촉수 서너 개가 스르르 기어 나왔다. 촉수 하나에는 눈알이 달렸고 또 하나에는 입이 달렸다. 입이 달린 쪽에서 지옥의 심연에서 날 법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크와우우우- 그와아아악!

[뭐야? 거지인가?]

끔찍한 소리인데도 다 이해가 되는 게 신기하다.

‘지구에서 만났으면 줄행랑부터 놓았을 괴물이지만…….’

까막은 태연한 얼굴로 대꾸했다. 이곳에서는 이능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크게 겁먹을 필요는 없다. 물론,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 싸우는 건 가능하지만… 그건 뭐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는 거고.

“시장 조사 중입니다. 뭐 팔 거 없어요?”

끄우으아우으? 갸아아악!

[팔 거? 살 타키온은 있고?]

“타키온이요? 흐, 엄청 많죠. 물건만 쓸 만하면 다음에 와서 싹 쓸어 갈 겁니다.”

까막은 입에 침도 안 묻히고 거짓말을 했다. 이 세상은 돈이 없을수록 물건을 더 비싸게 사야 하는 빌어먹을 세상이라는 건 둘째 날에 벌써 간파하였다. 어지간히 사정이 급하지 않고서야 한 번에 크게 거래하고 싶어 하지, 자잘한 거래를 여러 번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어디 보자… 피부에 바르는 포션류, 인공피부, 흠… 당신 문명은 피부 쪽이 발전했군요.”

끄와우으으.

“네에? 1,000알이요? 아니, 다른 종족에게 제대로 작용하는지 확인은 된 거예요?”

꾸르아악!

“하, 세상 어느 나라에 구매자가 성능을 입증하는 법이 있어요? 1,000알이나 받고 싶으면 당연히 그쪽이 성능을 입증해야지.”

캬오오오.

“어? 협박? 이런 시발! 야이 문어대가리 새끼야!”

갑자기 미쳐 날뛰는 촉수들을 피해 까막은 간신히 골목길로 도망쳤다. 도중에 [조용히 안 해!], [미친 저 촉수 새끼 또 지랄이네! 오늘은 삶아 먹어 버린다!] 라는 목소리가 끼어들어서 겨우 도주할 수 있었다.

“하… 스무 집은 다녀야 겨우 한 집 건지네…….”

이곳에는 정말 별별 미친놈들이 많았다. 가뜩이나 배도 고픈데 하루에 한 번씩은 위험한 상황과 맞닥뜨리는 것 같았다.

“만년필을 사간 그 마법사를 하루 만에 만난 건 진짜 운이 좋았어… 이렇게 빡셀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힘든 앵벌이는 처음이다. 우리 왕초는 생각보다 지독한 사람이었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걷던 까막이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섰다.

“아… 좀 쉬고 싶다.”

진짜 빌어먹을 세계였다. 마누스를 가진 몸으로도 너무나 춥고 배긴다. 길바닥에서 자면 잘수록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새끼들이… 집에 좀 들여보내 주지.”

그간 모은 정보에 따르면 집을 가게처럼 꾸미고 손님을 받는 곳들도 좀 있다는데, 그런 곳들은 도통 까막을 받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연기를 열심히 해도 어디선가 풋내기 냄새가 나는 걸까? 들여보내 주기만 하면 몸이라도 좀 녹이고 굳은 근육을 풀 텐데… 놀러갈 수 있는 친구 집이라도 하나 만들면 참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의기소침해 하던 까막이는 갑자기 느껴지는 맹렬한 간지러움에 오른손을 감싸쥐었다.

“뭐, 뭐야. 손이 왜… 이히히익?”

그 순간, 오른손 손바닥을 뚫고 나뭇잎 하나가 불쑥 솟아올랐다.

“으아아악!”

까막은 너무나 간지러운 손바닥을 벅벅 긁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나뭇잎을 확인했다. 에메랄드 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나뭇잎에는 이렇게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지금 간다. 전에 헤어졌던 곳으로 와.]

그 한 줄을 본 순간, 긴장과 안도, 기대와 걱정이 함께 솟구쳤다. 괜히 눈물이 핑, 도는 것 같았다.

“와, 왕초!”

잽싸게 눈가를 쓱 훔친 까막은 허겁지겁 골목을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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