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택배왔습니다
사실 나는 좋은 물건을 알지 못한다.
음식 맛도 많이 먹어 본 놈이 아는 법.
가난하게 2류 헌터로 아등바등하던 내가 진짜 좋은 물건을 알 리가 없지.
하지만 들어 본 적은 있었다.
가령, 어떤 형태 변환 능력자가 고블린과 코볼트의 가죽을 엮었더니 강인도가 아주 뛰어나졌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유체 능력자가 오우거의 담즙을 가죽에 바로 바르지 않고 핏줄 속에서 순환시켰더니, 가죽 전체의 재생 능력과 충격 저항 능력이 크게 증폭됐다는 이야기도 들어 보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하나하나 머릿속에 기억을 해 두었다. 그러다가 이야기 속 재료들을 볼 일이 있으면 [만상공감]으로 꼼꼼히 살폈다. 그게 정말 가능한가? 그게 왜 그렇게 되는가?
[만상공감]은 [형태변환]이나 [유체간섭]처럼 물건을 가공하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능력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감정하고 분석하는 데에는 최고였다. 덕분에 나는 제법 많은 이론을 주워듣고 그 타당성을 직접 평가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가장 최선의 오우거 방어구 디자인을 말해 주었던 것이다.
마에스터 유진은 내 설명을 끝까지 듣고는 눈을 슬쩍 치켜들며 말했다.
“재밌겠네. 근데 실패할지도 모른다?”
장인의 태도가 바뀌었다. 하기 싫지만 물주의 요청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 준다는 투에서, 처음 들어 보는 방식이 재미있으니 시험 삼아 한번 만들어는 보겠다는 태도로.
“실패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믿고 있었다. 아예 처음부터 어려운 작업 빼고 단순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만들기로 한 물건을 기준 이하로 만들어 내는 그런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다. 루드비히의 마에스터에 관한 소문의 반의반만 진실이더라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실패’라는 내 말을 들은 마에스터 유진은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
“실패를 해도 그게, 내 기준에서나 실패지.”
절대적인 자신감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그리 말하고는 손을 절레절레 털었다. 가 보라는 것이다.
“가 봐. 언제 될지는 나도 해 봐야 알 거 같고. 다 되면 부를 테니까.”
“네. 기다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뭐… 조그만 물건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며? 팔 수 있는 것도.”
“예.”
“그거. 가방이면 되지? 백팩.”
원래는 다른 걸 생각했지만 이거까지 토 달면 진짜 죽여 버리겠다는 표정이길래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충분합니다.”
“알았어. 가 봐.”
나는 고개를 정중하게 숙이고 물러섰다.
‘제발… 제발 멋진 물건을 만들어 주세요!’
속으로 간절히 기도를 하면서.
그렇게.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 * *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새로운 방어구의 스펙을 예상해 보는 것이다.
‘현재의 최치국이 쓰는 회격을 막을 수 있을까?’
‘에이. 그건 아니지 목표치가 너무 높잖아?’
‘그래도 루드비히의 마에스터가 만들어 준 방어구라면…….’
‘에이. 트윈 헤드라곤 해도 결국 오우건데… 회격은 좀…….’
‘담즙을 핏줄 속에 넣을 거잖아?’
‘그치만 마에스터도 처음 해 보는 수공법이잖아.’
‘근데 무조건 그 정도는 막을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냐? 회귀자들 하고 비비려면?’
‘그래도 당장은 무리…….’
‘지금도 못 따라잡으면 나중에는 어떻게 따라잡게?’
머릿속에서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한 시간에도 다섯 번씩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꿈에 부풀어서 장미빛 미래를 그리다가 결국에는 암담한 현실을 직시한다.
‘빌어먹을… 결국 무슨 수를 써서라도 회격을 막긴 해야 한다는 거네.’
‘진동계수 2.5는 기대도 안 하니까… 재생성 0.3만 나와도 좋겠는데… 아, 물론 거기에 탄성은 10 정도…….’
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이상적인 방어구는 사극에 나오는 남자 도포처럼 소매가 큼직하고 펄럭거리는 옷이었다. 기장은 길 필요 없었다. 코트자락을 잡혀서 욕을 본 게 얼마 전이라 긴 기장은 질색이다. 하지만 넓은 소매는 갖고 싶었다. 투수가 던지는 위력적인 공도 펄럭이는 얇은 이불을 넘어서지 못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넓은 소매가 가볍게 펄럭이고, 질기고, 탄성도 좋고, 자체적으로 진동도 일으킨다면… 어지간한 공격은 다 완충시키고 흘려 버릴 수 있다.
‘하… 정말 생각하는 물성을 다 갖춘 물건이 나오면 당분간 마음 좀 푹 놓을 텐데. [만상공감]으로 잘 펄럭거리기만 하면… 회격을 막는 것도 이론상으론 충분히 가능해.’
물론 펄럭이는 방어구를 다루겠다는 호기로운 생각은 그 어떤 괴랄한 물건이든 한 몸처럼 다룰 수 있게 해 주는 [만상공감] 덕분에 가능했다. 보통의 능력자라면 몸에 착 달라붙는 단단한 유선형 갑옷 같은 게 최고다. [염동력]이나 [기체간섭] 같은 능력이 없다면 펄럭거리는 옷자락은 방해만 될 뿐이니까.
한참을 그런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데.
“선배, 또 돈 모자라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가 상념을 깨뜨렸다. 돌아보니 서민서가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뭔소리야 갑자기?”
“딱 보니까 그건데. 바보같이 실실대다가 갑자기 심각해졌다가. 또 뭐 사고 싶은데 돈은 없고 그런 거 아닌가. 월급날도 멀었고, 대출도 잘 안 되고?”
녀석이 또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대출이 문제겠니? 2금융권도 있는데.”
서민서가 움찔 놀랐다. 그녀는 한 스무 개쯤 쌓여 있던 높다란 행사용 의자 더미를 땅에 턱, 내려 놓고 말했다.
“선배! 그러다 큰일난다!? 자꾸 그렇게 대출만 늘려서 어쩌려고요!”
이런 문제로 안절부절못하는 서민서를 볼 때마다 나는 사실 씁쓸했다.
이 아이는 아직 빚을 걱정하고 있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겠지? 지금처럼 예비역으로 일년에 한달 정도만 국방에 매진하면 계속 일상이 이어질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열심히 일해서 월세 내고, 전세로 옮기고… 어쩌면 자기 집도 사고.
‘어휴…….’
나는 말없이 손을 까딱까딱했다. 내 신호를 본 서민서가 높이 쌓인 의자를 기울이면 나는 악몽 사슬로 의자를 쏙쏙 빼내 적절한 위치에 휙휙 던졌다. 능력자인 우리에게 둘이서 천 명 분의 의자를 까는 건 별것도 아니었다. 그래.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 평범하게 일하고 돈 모으는 삶. 처절한 싸움은 가급적 피해 가는 삶.
하지만 그건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세상이 변화할 때, 한낱 개인이 그리는 계획과 꿈은 휴지조각만 못할 뿐이니까. 이제 곧 다들 그 사실을 배우게 될 거다.
걱정인지 불만인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민서에게 나는 물었다.
“이거… 무슨 콘서트랬지? 요즘 애들이 좋아한다는.”
“헐. 선배. RTF 몰라요? 요즘 완전 인기라는데? 해외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던데?”
“그러냐?”
“와… 이게 세대 차이인가.”
“니랑 나랑 두 살 차이구만 무슨…….”
“아니, 근데 선배 요즘 좀 이상하긴 하잖아요. 갑자기 말투도 부쩍 아재 같고. 행동도…….”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말해 놓고, 서민서는 내 눈치를 한 번 쓱 살폈다.
아, 그랬나?
‘자식… 묻진 않았어도 내가 변한 게 신경 쓰이긴 했나 보네.’
돌이켜보면 녀석 입장에서는 어색한 게 많았을 거다. 말투도 그렇고 갑자기 주제에 맞지 않게 비싼 물건들을 줄줄이 사들이는 것도 그렇고.
어색한데도 나를 배려해서 그간 말을 꺼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민서야.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정말로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궁금하지 않아?”
“뭐가요?”
“이런 콘서트가… 이런 행사가 언제까지 열릴 수 있을지?”
“예?”
사람들은 어리석다. 10년은커녕 1년만 이어져도 그게 영원할 줄 안다.
10년 뒤 20년 뒤도 지금과 같을 거라 생각하고 계획을 짜고 지레 즐거워하고 지레 절망한다.
바로 다음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는 주제에.
30년 뒤의 미래를 보고 돌아온 내가, 원래 죽었어야 할 서민서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빚이니 뭐니, 그런 거 두려워하지 마. 특히 요즘 같은 때에.”
“뭐, 뭐예요? 또 아재같아…….”
“어차피 영원한 건 없다고. 중요한 건 기세야.”
“에에… 물론 영원한 건 없겠죠.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
떨떠름하게 돌아보는 서민서에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넌 몰라.”
그걸 알고 있다면 대출이 어떻느니, RTF가 어떻느니, 하는 그런 한가한 소리는 할 수가 없다. 이제부터 벌어질 일들은 나를 내가 아니게 만들고, 너를 네가 아니게 만들 그런 사건들. 첫째날에는 꿈을 꾸는 것 같을 거고, 둘째 날에는 괴롭다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며, 셋째 날에는 오히려 지금의 일상이 꿈처럼 멀게 느껴질 것이다. 사실은 항상 이런 악몽 속에서 살아왔던 것처럼. 그러다가 깨닫게 될 것이다. 아, 이게 전쟁이구나.
지금은 말해도 모른다.
그저 알고 있는 내가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 것.
그걸 위한 루드비히였고 그걸 위한 마에스터의 방어구였다.
원래는 조용히 숨어서 보내려고 했던 격변의 한복판으로 몸을 던져야 했기 때문에.
조만간 다가올 환난을 대비하며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그런 내게 서민서는 말했다.
“뭐야 재수 없어…….”
작은 주먹으로 내 가슴을 툭 치면서. 아직 세상의 쓴맛을 덜 본 것처럼 배시시 웃으면서.
* * *
반 평짜리 고시원에는 별별 물건들이 쑤셔 박혀 있다. 내가 누운 침대 위로는 대각선으로 2미터짜리 창가방이 가로질러 있고, 책상 위에는 청하와 악몽사슬, 박민희에게 받은 보호 조끼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침실이라기보다는 무기 창고 같은 그 곳에 누워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할 수 있을까?’
‘아니. 해내야지. 무조건.’
‘하지만…….’
‘해내지 못하면, 이번 생은 끝장인 거야. 자유고 뭐고 없어. 끌려다닐 뿐이야.’
퇴근을 하고 개인 수련도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날뛰었다.
‘일단 1차 목표는 이뤘다. 루드비히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루드비히에게 최소한의 눈도장을 받아 내는 것.’
뭐… 그래 봤자 데미안 루드비히 눈에는 아직 한참은 더 검증을 해 봐야 할 부하 377호쯤 되는 그런 까마득하게 낮은 지위겠지만. 그 평가는 차차 바뀌게 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다.
‘그러니까 역시 이제부터가 중요해. 6.30. 참사가… 이제 코앞이니까.’
솔직히… 긴장되었다.
여태 다른 사람의 명령을 따르는 엑스트라로 살았다. 회귀한 이후에도 조용히 혼자 다니는 프리랜서처럼 살았을 뿐이다.
‘그랬던 내가 영웅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영웅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영웅이 되어야 하는 법. 내가 그걸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면 결국 한 가지 귀결이 나올 뿐이었다.
해야 한다. 다만 좋은 장비가 필요하다.
‘아… 시발. 방어구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일단 방어구를 봐야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
“집이 더 좁아지긴 하겠지만.”
살풍경한 방을 둘러보다 보니 문득 마음이 심란해졌다.
망할… 데미안 루드비히의 방에서는 숨만 쉬어도 영력이 늘어났는데… 세상은 불공평하다.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만 자자.’
마음이 약해졌는지 자꾸 떠오르는 잡생각을 억지로 끊고 이만 잠이 들려고 할 때, 무언가가 내 [만상공감]에 걸려들었다. 차분한 호흡. 단정한 걸음. 아직 어려서 그런지 가녀린 뼈대와 근육. 얼마 전에 본 사람의 감각. 조용히 그 뒤를 따르는 수행원들.
‘뭐, 뭐야?’
귀신을 본 기분이었다.
이상하다? 이런 곳에 있을 리 없는 사람인데?
그가 입을 벌려 낮게 중얼거렸다.
“와… 정말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 말이야? 물건 엄청 잘 뽑혔던데… 이런 곳에 보관은 할 수 있는 거야?”
혐오라기보다는 순수하게 충격을 받은 목소리. 이세계라도 탐험하듯 조심조심 걷던 데미안 루드비히가 마침내 내 방문 앞에 섰다.
“여기야?”
“예.”
“흠… 그럼 이제 이렇게 하면 되는 거지?”
대체 왜? 루드비히가 고시원에? 이건 꿈인가? 말이 안 되는데?
내 머리가 과부하를 일으키거나 말거나.
똑, 똑똑.
데미안은 내 방문에 노크를 하곤 이렇게 말했다. 데미안 루드비히가 고시원에 나타났다는 생각 때문에 하얗게 비어 있던 머릿속을 느낌표로 가득 채우는 한마디.
“택배 왔습니다.”
오, 세상에 맙소사!
벌떡!
벌컥!
날아오르듯 일어나 방문을 여니, 데미안 루드비히가 오우거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었다.
“아, 발송자가 꼭 전해 달래요. 재료 손질을 워낙 잘해 놔서 생각보다 물건이 잘 뽑혔다고.”
데미안 루드비히의 등뒤로 천사 후광이 드리우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