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28화 (28/212)

3. 운이 따른다.

하늘이 보였다.

‘와씨… 죽는 줄 알았네.’

거기서 코트자락을 잡힐 줄이야……?

‘이거… 트윈헤드랑 상성이 나쁜데?’

머리가 두 개니까 놈의 감각도 두 개로 느껴졌다. 두 가지 감각이 서로 부딪치며 전혀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 내기도 하니까 정신이 없고 다음 행동을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덕분에 손바닥에 처맞고 땅에 패대기쳐지기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만상공감]이 제대로 성장하면 이것도 충분히 커버 가능할 텐데…….’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지.

잡생각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콜록콜록”

자욱하게 피어오른 먼지를 헤치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요란하게 떨어졌지만 생각보다 충격이 크진 않았다. 던져지는 도중에 청하로 코트자락을 찢기도 했고, 왼팔에 감은 악몽사슬을 풀어 낙법을 치듯 충격을 분산시키키도 했다.

하지만 박민희 팀장에게 받은 보호 조끼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훌륭한 물건이라는 점도 컸다.

‘역시 사제다 이건가. 진짜 좋은 거였네.’

사실 조끼라기보다는 두툼한 천으로 만든 흉갑 같은 느낌이었다. 재질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두드려 보면 단단하면서도 아까처럼 내동댕이 쳐질 때는 폭신하게 충격을 분산시켜 주었다.

이 훌륭한 조끼에서 50% 정도 채워진 하얀 아우라가 타오르고 있었다.

‘명품. 그것도 길이 잘든.’

우웅- 우웅-

박민희 팀장의 조끼가 낮게 떨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그나저나 다른 사람에게 길든 물건이라…….’

이미 남에게 길든 물건은 내 영력으로 강화할 수 없다.

‘하지만… 잠들어 있는 의지를 깨우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지.’

박민희 팀장이 나를 지키겠다는 마음을 담아 건네준 물건이기 때문에 [만상공감]으로 조끼에 깃든 수호의 의지를 깨울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조끼는 본래의 성능보다는 한층 더 뛰어난 성능을 보여 주었다.

‘이거… 생각보다 훨씬 할 만하겠어.’

운이 따르고 있었다.

차르륵-

나는 왼손에 감아 둔 악몽사슬을 느슨하게 풀고 오른손으로는 청하를 들어 트윈 헤드 오우거를 겨눴다.

크르르르…….

쿠아아아-!

두 개의 머리가 나를 내려다보며 기세 좋게 위협했지만 사실 이 상황은 내가 한참 더 이득을 본 상황이었다. 이게 농구라면 한 60 대 31쯤?

크아아아!

갸아아아!

소리 지르면 어쩔 거야? 오른팔이랑 가슴이 통째로 꿰뚫린 주제에.

거인창의 창날이 네 등 뒤로 삐져 나왔거든? 너 피 뚝뚝 흘리고 있거든?

움직일 때마다 창 때문에 우득, 꾸드득, 소리가 나고 뼈랑 근육이 막 서로 비비고 꼬이고 난리 났거든?

물론, 나도 영력을 절반 좀 넘게 소진하기도 했고, 전신 타박상에 골절도 여기저기 좀 있는 것 같지만… 놈에 비하면 훨씬 양호하다.

방호 코트와 싸제 방호 조끼 덕에 엎치락뒤치락했을 싸움이 훨씬 간단해졌다.

“화려하게 끝장내 주마.”

이런 상황이라면 몸 사릴 필요는 없었다. 정면으로 전력을 다해서!

청하에 영력을 불어넣었다.

80% 정도 길이 든 청하는 ‘완숙’의 단계에 이른 상태.

리이이잉-

칼날이 기묘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스르르릉-

작은 요정이 푸른 칼날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듯한 맑은 검명이 울려 퍼졌다.

이 작은 과도가 손 안에서 지잉 지잉 운다. 이대로 손을 놓아도 녀석은 공중에 떠서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칼은 명백히 살아 있었다.

나는 그 상태로 걸어갔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네필림의 날개를 꺼내는 건 낭비.

휘이- 휭! 파아앙-.

악몽사슬을 살짝 흔들다가 번개같이 던졌다. 놈의 하나 남은 팔을 붙들고 청하를 앞세워 돌진한다.

키이이잉-!

청하의 푸르른 칼날을 타고 푸른 영력이 달무리처럼 퍼져 나간다.

“사과처럼 토막 쳐 주마!”

몸에 커다란 창을 박고도 발을 쿵쿵거리며 포효하는 강대하고 흉포한 괴물을 향해, 나는 선언했다.

* * *

루드비히 호텔의 최상층.

데미안 루드비히는 화려한 물건들 사이에 혼자 앉아 와인잔을 들고 있었다.

붉고 부드러운 가죽 쇼파에 몸을 묻은 채, 빛나는 반지에서 들려오는 채점관의 보고를 들었다.

“진짜 그렇게 말했다고? 사과처럼 토막 쳐 주마?”

- 예. 분명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아…….”

채점관의 보고에 데미안 루드비히는 깊은 한숨을 토했다.

‘능력이 좋은 건 알겠는데, 참 친해지기 싫네. 사과가 뭐야? 사과가…….’

데미안은 관자놀이를 꾹꾹 주무르다가 말했다.

“그래. 그래서 트윈 헤드 오우거를 잡았다는 건데, 그래서… 몇 점?”

채점관은 데미안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데미안은 그를 재촉하지 않고 희고 작은 손으로 와인잔을 들고 주스를 홀짝였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채점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처음에는 40점을 주려고 했습니다.

“왜?”

- 전력 자체로 보면 트윈헤드 오우거와 백중세. 하지만 손쉽게 승리를 한 것은 다분히 날개형의 오파츠와 광화문 경비팀장이 빌려준 방어구 덕분이었습니다.

“흠… 백중세면 원래 50점 주잖아?”

- 네. 거창돌격이라는 전투 스타일은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동시에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형편없는 신체 스펙으로 그런 놀라운 공격을 성공시킨 것 자체로 합격점을 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10점 빼서 최소 합격점 40점을 주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 지금은… 65점입니다.

“25점이나 더 올랐어? 그렇게 강력해?”

- 물론, 위력도 강하지만… 그보다는… 도련님 말씀이 옳았습니다. 단순한 고유 스킬이 아닙니다. 그는 어느 마누스 계보에도 속하지 않은 힘을 씁니다. 보통 그런 경우엔 별 볼 일 없기 마련인데, 이건 정말 다릅니다. 특히나 마지막 순간에 보여 준 단검술은… 지금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떤 마누스로도, 어떤 초능력으로도 잘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산점이 좀 세게 들어갔습니다.”

“어땠길래 그래?”

-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사실 저도 이렇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서 한참 고민했지만…….

“아, 뭔데? 빨리 말해.”

- 트윈 헤드 오우거를 사과처럼 깎아 버렸습니다.

데미안 루드비히의 그린 듯한 눈썹이 팍, 찌푸려졌다.

* * *

그것은 하나의 예술 작품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트윈헤드 오우거의 피는 단 한 방울도 함부로 튀지 않았다. 잘 벗겨진 사과 껍질처럼 붉은 피가 뱅글뱅글 소용돌이를 그리며 땅을 적셨고 놈의 가죽은 균일한 두께로 벗겨져 피자국 위로 살포시 놓였다.

균등하게 잘려 가지런히 놓인 오우거의 고기는 단면이 어찌나 깨끗한지, 피조차 흐르지 않은 채로 과일처럼 신선하고 촉촉했고 오로지 오우거의 통뼈만이 사과 꼭지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그 풍경 앞에서 광화문 경비 팀은 환호했다.

던전 부산물을 수거하는 수거반은 경악했다. 어떻게 해야 괴물을 저렇게 깨끗하게 토막 칠 수 있는 거지? 사방에서 떠들어 댔다.

하지만 나는 그저 죽을 맛이었다.

‘어휴… 어후……. 왜 이렇게 오바를 해서…….’

나도 청하도 너무 신나고 말았다.

필요 이상으로 [만상공감]을 발휘하는 바람에 영력을 정말 알뜰하게 쥐어짜 내야만 했다. 가슴은 답답하고 머리는 핑핑 돌고 숨결은 불길처럼 뜨겁다.

게이트를 나서서 겨우 선 채로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생각보다 훨씬 잘 싸우더라.”

박민희 팀장이었다. 당당하게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그녀는 ‘경! 광화문을 구할 영웅이 온다 축!’ 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팻말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그건 뭡니까?”

내가 묻자 그녀는 움찔 놀라더니 팻말을 등 뒤로 숨겼다. 아니, 그렇게 부끄러워할 거면 들고 오지 말던가. 하여튼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녀는 시원하게 뻗은 콧날을 살짝 긁더니 말을 돌렸다.

“꽤 험하게 썼네. 그거.”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내 가슴 쪽이었다. 그녀가 빌려준 보호 조끼. 아까 던져질 때 충격을 받아서 그렇게 됐는지, 한 부분이 움푹 꺼져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아니. 내가 미안했다. 괜히 코트를 줘 가지고 그렇게 된 거 아냐? 그 코트가 옛날 디자인이라는 걸 깜빡했어.”

그리고 그녀는 말이 없었다. 어쩐지 어색해서 조끼를 벗어서 돌려주려고 하자 그녀는 손을 내저었다.

“됐다. 방어구 없다고 했지? 너 가져라. 좀 찌그러졌어도 원체 좋은 물건이라 쓸 만할 거야.”

“…네?”

“아니. 어차피 난 새 거 써야 해. 광화문 경비팀장이 찌그러진 방어구를 끼면 엄청나게 조인트 까이게 되어 있어서… 그리고 워낙 오래 쓴 물건이라 바꿀 때도 되긴 했어. 사과의 의미니까. 가져도 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중고로 팔아도 300만 원 이상은 받아 낼 수 있는 명품이었다. 그리고 [만상공감]도 없는 초능력자가 50퍼센트 길들였다는 의미는 최소 5년은 아껴 가며 사용했다는 뜻이었고.

‘이 정도면 추억으로라도 간직하고 싶을 물건 아냐?’

그런데 그걸 그냥 준다고?

나는 눈을 깜빡였다.

‘이런 호구…….’

속이 쓰라렸다. 또다시 전생의 꿉꿉한 추억들이 떠오른다. 하… 이 호구야. 넌 내가 쉰 살이었던 그때까지 살아남기는 했었니? 너 같은 애들이 제일 먼저 죽던데…….

하지만 나는 울컥하는 감정을 꿀꺽 삼키고 얼른 조끼를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예의상으로라도 사양하기엔, 너무나 아쉬운 물건이었다.

물론, 찌그러지고 오래된 조끼. 지구에서는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타키넷에서는 전혀 달랐다. 사실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이거 무조건 타키온 열다섯 알 이상 짜리다!’

아우라가 있는 명품.

훌륭한 전사가 5년 이상 아껴 가며 사용한, 무려 50퍼센트나 길이 든 물건.

찌그러졌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건 마도구를 위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재료였다.

타키온 열다섯 알이라니… 상정하지 않았던 가외 소득으로서는 당뇨병이 걸릴 정도로 달았다.

‘이제야 타키넷에서 제대로 쇼핑을 해 볼 수 있겠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박민희 팀장이 말했다.

“그래. 원래는 추억으로 보관하려고 했는데, 창고에 박아 놓는 것보다는 누군가 사용하는 게 낫겠지. 그 나이에 트윈헤드 오우거를 해치운 네가 사용한다면… 더더욱 만족스럽다. 아마 그 조끼에게 마음이 있다면 녀석도 기뻐할 거야. 그러니 아껴 줘야 해? 소중한 물건이니까.”

딸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아쉬운 마음으로, 하지만 아껴 줄 거라 믿고 기대한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내 두 눈을 바라보는 그녀의 맑고 곧은 두 눈.

나는 그 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척하며 시선을 피했다.

‘미안해요.’

반드시 스무 알 이상으로 팔게요.

* * *

광화문 경비 팀이 물러나고 난 다음, 품이 큰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내게 다가왔다.

“아, 잠시만요.”

그는 안경을 벗어서 쓱쓱 문질러 닦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데미안 루드비히 도련님을 모시는 임훈이라고 합니다. 소시민 님 맞으시죠?”

“예.”

“임무는 성공하셨습니다. 약속대로 소시민 님이 잡은 괴물의 사체를 활용해 맞춤 장비 하나와 작은 물건 하나를 제작해 드릴 겁니다. 그중에 맞춤 장비는 대여 방식으로 지급되지만 작은 물건은 소시민 님의 재산으로 귀속됩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그럼 지금부터 마에스터에게로 안내드리겠습니다. 가는 동안 어떤 장비를 맞추고 싶은지 결정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임훈은 담백하게 할 말만을 전하고 앞장서서 나를 인도했다.

나는 떨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그를 따라나섰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새로운 장비를 맞출 시간이다.

그것도 무려 루드비히의 마에스터로부터!

‘방어구부터 맞춰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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