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25화 (25/212)

25. 발키리

“끄아아악!”

헌터 하나가 방패에 맞아 날아가고.

“끼아욱!”

또 헌터 하나가 큰 칼을 막다가 날아가고,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기고.

‘어휴, 지랄하고 자빠졌다.’

데미안 루드비히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두 손을 능숙하게 하는 데 그치지 말고 백 개의 손을 능숙하게 쓸 수 있도록 연습하라.

‘그냥 내 두 손을 써 버리고 싶네.’

세상의 99퍼센트는 머저리들뿐이고 가문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란 너무 어려웠다.

‘건진 게 없다. 한국은 호국 가문들의 입김이 강하다더니… 진짜 싹수 보이는 사람은 이미 다 주인이 있어.’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한심한 헌터들이 우르르 달려들고 우르르 나가떨어지고 있다.

‘할아버지 기념품이라도 하나 챙기려고 했더니…….’

데미안이 한숨과 함께 짧은 유흥을 끝내려고 할 때였다.

파드득-

날갯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투명한 깃털이 떨어졌다.

‘이게 뭐야?’

데미안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발키리? 아니… 남잔데?’

뒤늦게 발키리가 여전사들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떠올렸지만… 여전히 발키리라는 세 글자가 머리에서 지워지진 않았다. 투명한 날개를 펼치고 어처구니없이 거대한 창을 비껴 찬 그 모습을 달리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천신?

* * *

만약 첫번째 찌르기로 정리를 못 한다면?

‘그러면 즉시 악몽사슬로 묶어 놓고 청하로 정리한다.’

가능하면 일격에 끝내고 싶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으니 다음 수는 생각해 두어야 했다.

괴물은 쇳덩이로 만들어졌고, 네온사인처럼 푸르른 빛을 번뜩였다. 기사처럼 큰 방패와 칼을 지녔지만, 푸쉬이이- 하고 뿜어내는 증기와 기이잉- 돌아가는 모터음이 들렸다.

‘사실… 일종의 로봇이지 뭐.’

우리보다 훨씬 고도화된 문명에서 만들어 낸 기동형 차원 병기. 차원 침략자들의 첨병.

3년 뒤, 저 괴물들에게는 ‘둠 나이트’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멸망의 기사. 현재는 차원을 넘는 충격으로 많이 약화된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차원 병기로서의 클라스가 어디 가는 건 아니다. 원래 스펙의 50퍼센트만 회복해도 ‘멸망’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위력을 보여 주는 괴물이다. 원래 스펙의 10퍼센트도 안 되는 지금도 여기 모인 프로 헌터들을 완벽히 막아 세울 정도로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대략… 금천구의 미친 오크랑 비슷한 수준인가?’

서민서의 [점멸]의 힘을 빌려 겨우 상대했던 괴물.

최치국도 회격을 꺼내야만 했던 괴물.

나는 지금 그 정도의 괴물을 상대로 홀로 싸워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해야만 했다.

믿을 것은 네필림의 날개와 거인창이 가져온 전력의 상승뿐!

‘후… 심호흡하고.’

상황 파악을 끝냈으니, 이젠 다시 그 모든 부담스러운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대신 단 한 가지 그림만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일격필살.’

되든 안 되든, 지금은 필살의 의지를 담아야 할 때.

그러기 위해선 단순해져야 했다.

내 창이 적을 단숨에 꿰뚫는 그 그림만을 머릿속에 그린다.

처음엔 어렵다. 이렇게 찌르면 저렇게 막히지 않을까? 저렇게 찌르면 이렇게 피하지 않을까? 자꾸만 반론이 떠올라 그림을 끊고 어그러뜨린다.

하지만 어느 순간 끊기지 않는 이상적인 궤적을 찾게 된다. 백 번을 생각하면 백 번 다 동일한, 단 하나의 완벽한 궤적을 그릴 수 있을 때, 가장 단순하고 가장 위력적인 찌르기가 나온다.

그래서 나는 [만상공감]을 극도로 발휘한 후, 수많은 헌터가 둠 나이트에게 도전하고 패배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머릿속에 마침내 단 하나의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때까지.

‘지금이다.’

그림이 완성된 순간, 나는 지체없이 둠 나이트를 향해 달렸다. 적당한 거리에서 하늘로 도약하며 네필림의 날개를 펼쳤다.

옆구리에는 거인창을 꽉 붙였다. 한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굵기지만, [만상공감]이 있는 이상 문제없다. 물아일체의 경지? 그런 건 나에겐 숨 쉬는 거나 다름없다. 창을 쥐었을 때, 나는 스스로 창이 될 수 있다.

펄럭-!

네필림의 날개가 하늘에서 크게 한 번 홰를 치는 순간.

피이잉-

머리꼭지를 붙잡히는 듯한 강렬한 관성과 함께 눈앞의 모든 풍경이 줌-인 되었다.

귀를 때리는 바람 소리도, 옆구리에 낀 거인창의 무게와 각도도, 모든 게 머릿속으로 그려 본 모습 그대로였다.

기이이잉-!

3미터가 넘는 체고의 결전 병기, 둠 나이트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녀석의 영력 회로를 따라 흐르는 신호들이 내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이 감각. 놈이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각!

‘많이 놀랐지?’

거인창을 옆구리에 더 바짝 붙였다. 순간, 내 몸과 창끝이 함께 정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멈춰 있고 단지 세상이 우리를 향해 쏟아진다. 둠 나이트가 날아와 창끝에 닿는다.

킹-!

창끝과 둠 나이트의 철갑이 부딪치는 순간, 그 짜릿함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지름 10cm의 두꺼운 창이 손에 착 달라붙는 느낌, 길이 7미터의 기나긴 창이 내 몸과 일체가 되어 완벽하게 정렬하는 그 느낌을 뭐라고 해야 할까? 내 온몸에 실린 힘이 창끝으로 집중되는, 흡사 내가 탄환이 된 듯한 속도감. 거기에 충격 밀집 기술이 더해졌다.

힘이 작용하면 동일한 크기의 반작용이 존재하는 게 자연의 이치이다. 하지만 반작용되는 힘의 30퍼센트가 고스란히 반사된다면 어떻게 될까? 충돌의 순간 창끝이 한 번 더 가속하며 앞으로 치고 나가는 아찔함. 그 폭발력! 둠 나이트의 장갑을 깨부수는 이 짜릿한 손맛!

쿠직! 쿠직, 쿠지직!

질기게 버티던 둠 나이트의 외부 장갑이 서서히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안쪽으로 크게 휘어진 장갑 탓에 마침내 둠 나이트의 물리 저항 술식이 박살 나는 순간.

쩌어엉-!

쇠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대못으로 박아 버리듯 거인창이 둠 나이트를 꿰뚫었다.

꽈앙!

그러고도 힘이 남은 거인창은 둠나이트를 꿰뚫은 채로 땅을 반이나 뚫고 들어갔다. 둠나이트의 두 발이 하늘로 들리고, 쿠콰쾅! 철커덕! 고장 난 인형처럼 관성을 따라 크게 한 번 요동치며 굉음을 일으켰다. 그리곤 축 늘어졌다. 잠시 뒤, 끼릭! 끼리릭!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무거운 둠 나이트가 창대를 따라 조금씩 미끄러져 내려갔다. 전신에 감돌던 LED 등과 같은 빛은 대부분이 꺼지고 몇몇은 고장 난 형광등처럼 위태롭게 깜빡였다. 파직! 파직! 이따금 스파크가 튀었다. 푸르른 빛을 뿌리며 꿈틀대던 등 뒤의 전력선도 축 늘어졌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둠 나이트를 어떻게든 쓰러뜨려 보려고 하던 헌터들이 입을 쩍 벌렸다. 잠시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맥없는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일격에 정리했다고?”

“저 새끼 엄청 단단하던데 그걸 정면으로 뚫어?”

“뭐… 뭐야, 일류 헌터야?”

“일류……? 아니,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근데 공격력이 장난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진짜 뭐지? 국가 헌터 장학생 출신인가?”

웅성웅성 떠드는 소리를 들을 때쯤에서야 나는 겨우 몰입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제야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우…….”

숨은 가쁘고 온몸엔 소름이 돋았다. 둠 나이트의 영력 회로를 타고 퍼져 나가던 단말마가 아직도 내 전신을 흔들었다.

등은 식은땀으로 척척했고, 손은 파르르 떨렸다. 단 일격이었지만 그 일격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마라톤이라도 뛰고 온 것처럼 다리까지 후들후들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와! 씨! 미쳤다!’

거인창에 꼬치처럼 꿰뚫린 둠 나이트가 보였다.

내가 둠 나이트를 죽였다고? 일격에? 진짜?!

‘와!’

전율이 머리 꼭대기에서 발바닥까지 관통했다.

와! 거인창과 [만상공감]의 시너지가 이 정도였나?

그렇게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하… 어떻게 한 거지?”

데미안 루드비히, 그가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

사실 지구는 아주 이상한 세계이다.

그 오랜 세월 차원 격류로 고립되어 있었던 것도 이상하고,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신비가 말라비틀어져 있었던 것은 더 이상하다.

한 점의 신비도 없이 오로지 과학기술로 쌓아 올린 기괴한 문명.

그래서일까? 일단 신비가 깨어나기 시작하자 인류는 놀라운 잠재력을 보여 주었다. 다른 차원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려운 초능력자가 대량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 어려운 전쟁에서 인류가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수많은 초능력자 덕분이었다.

기본적으로 인류의 평균적인 영적 재능은 다른 차원의 존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어떤 영화에선 3미터가 넘는 파란 외계인들이 우월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익룡을 타고 활을 쏘며 엄청나게 진보한 과학기술을 가진 인류를 때려잡았다. 이 경우엔 초능력을 가진 인류가 3미터가 넘는 파란 외계인 역할인 것이다.

초능력은 그렇게 특별한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문명에서는 초능력을 사실 ‘권능’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만상공감]은 특별했다.

세상 만물과 감각으로 동조할 수 있다는 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론상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감각’을 체현해 볼 수 있는 초능력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땅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는 개미한테는 맛있는 것으로 느껴질 것이고, 인간에게는 지저분한 것으로 느껴지고, 외계인에게는 또 전혀 다르게 느껴질 것인데… [만상공감]을 가진 나는 그 모든 존재의 느낌을 전부 다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한낱 사물에 불과한 그 빵 부스러기와도 감각적으로 동화할 수 있었다. 이게 무얼 의미하는가?

어떤 이는 자신을 잊고 돌멩이처럼 세상을 느끼기 위해 평생을 수행한다.

세상 만물을 타자의 시선으로, 나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깨달음을 얻고 영혼을 성장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난 그런 수행이 필요 없다.

새를 만나면 새처럼 느끼고 외계인을 만나면 외계인처럼 느끼는 게 나한테는 숨 쉬듯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나는 항상 대오각성을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만상공감]은 그런 능력이었다.

이전 생에 타키넷에서 만난 어떤 이계 친구는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만상공감]이란 능력은 신의 영역인 ‘전지全知’의 일부일지도 모른다고.

물론 신까지 들먹인 건 너무 막 나가긴 했다. 사실 이 능력으로 돌멩이나 새 같은 것과 감각을 공유해 봐야 얻는 건 크지 않다. 아주 정교하게 혼을 불살라 만든 물건일수록 좋고, 그런 물건은 구하기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순간에는 [만상공감]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바로 지금처럼 아주 훌륭한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진짜로 그렇다.

화르르르-

‘미친…….’

그냥 앉아서 숨만 쉬고 있을 뿐인데도 영력이 늘어난다.

‘대체 이 안에 [수집물]만 몇 개가 있는 거야?’

서울 루드비히 호텔의 최상층.

데미안 루드비히가 머물고 있는 호텔방은 정말로 어마어마했다. 의자, 탁자, 시계, 심지어 컵이랑 수저 하나까지도… 모조리 백색 테두리의 아우라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명품이 아닌 물건을 찾는 게 힘들 지경이었다.

‘여기선 청하도 부끄러워서 못 내밀겠네.’

이런 후줄근한 과도로 과일을 어찌 깎냐며 발로 탁 밀어낼지도 몰랐다.

과연 루드비히 가문.

세계 최고의 부자 가문 막내아들의 위엄이라는 것이다.

‘부럽다……!’

만약 이런 환경이 내게 주어진다면 최치국도 두렵지 않겠다! 숨만 쉬어도 영력이 불어나는 기적. 초고속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감각의 향연!

“물건들에 관심이 많네요?”

내 맞은편에 앉은 데미안이 물었다. 나는 하얀 아우라를 피워 올리는 구둣주걱으로 향하던 시선을 간신히 떼서 데미안에게 붙이며 말했다.

“예? 예, 예. 잘 만들어진 물건들을 좋아합니다. 여기는 무슨… 천국 같네요.”

데미안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지금까지 짓고 있던 접대용 미소와는 다른 진심 어린 미소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제 겨우 열네 살. 자기가 아끼는 물건을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은 것이다.

“제법 안목이 있네요. 여기 있는 컬렉션 전부 다 내 겁니다. 아끼는 장인에게 부탁해서 주문 제작 했죠. 세계 어디를 가든 가지고 다닙니다.”

‘미친. 이걸 다 가지고 다닌다고?’

나는 경악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납득을 했다. 루드비히 호텔이 아무리 7성급 호텔이라곤 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컬렉션을 손님에게 제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경악하는 모습을 보며 데미안의 눈에는 미세하게 호감이 더 깃들었다.

훌륭한 물건을 훌륭하다고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은 사람 사귀는 데 꽤 유용한 것이다. 지난 생에 지구 야만인이었던 내가 타키넷에서 어쨌든 친구들도 만들고 인정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내가 물건의 가치를 그 누구보다도 정확히 알아봤기 때문이다.

“자.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요?”

데미안이 부드럽게 물었다.

루드비히 가문의 실버 멤버십을 받기로 한 것은 이미 결정된 사항. 하지만 데미안은 아주 인상적이었다면서 자기 재량으로 후원을 더 해 주겠다고 나를 따로 불러냈다.

거기서 그는 내게 제안했다.

아니, 제안이 아닌 시험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기 위한 데미안 루드비히의 시험.

“간단합니다. 광화문 증명의 전장에서 오우거를 잡아 오세요. 그럼 그 녀석의 사체와 또 다른 재료들을 더해 당신 장비를 맞춤해 드리죠. 루드비히의 마에스터가 당신을 위해 망치를 들 겁니다. 물론 그런 귀물을 그냥 줄 수는 없고, 당신이 멤버십을 유지하는 동안 무기한 대여하는 형식이지요.”

증명의 전장 오우거라니!

현재의 내 실력을 귀신처럼 꿰뚫어 본 요구였다.

목숨을 걸어야 가능할까 말까 한 수준. 데미안 루드비히는 딱 그만큼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제시한 것은 금은이 아니었다.

‘대여라…….’

루드비히 가문의 마에스터가 만든 장비는 돈을 주고도 살 수가 없는 귀물이지만, 대여 형식인 이상 금전적인 보상은 전혀 아닌 셈이었다. 직접 사용한다면 천만금보다 더 값지겠지만, 적당히 벌어서 은퇴하고 싶은 헌터에게는 계륵 같은 제안.

‘너무 속이 보이네.’

추구하는 바가 뭐냐, 적당한 돈과 안정이냐 아니면 더 나은 것을 향한 투쟁과 향상심이냐. 데미안은 내게 그걸 묻고 있었다.

장담컨대, 데미안의 측근이 되려면 이런 식의 시험을 몇 차례나 통과해야 할 것이다. 데미안에게는 독립해서 유유자적할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기대 더 높이 성장해 갈 사람이 필요할 것이니까. 열네 살이라 해도 그는 루드비히. 옆에 둘 사람을 거르고 걸러 뽑는 법 같은 건, 세 살 때 유모와 시종을 고르는 순간부터 배웠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내 속내를 숨길 필요가 없다.

나는 향상심이 아주 높은 사람이며, 그 누구보다 루드비히 가문의 그늘이 필요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대답했다.

“머리 두 개짜리를 잡는다면 어떻습니까?”

데미안 루드비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냥 오우거가 아닌 머리 두 개짜리 오우거. 차원이 다른 괴물이었다.

“대신 맞춤 장비 만들고 남는 재료로 제가 원하는 작은 물건 하나 만들어 주세요.”

데미안 입장에서는 환금성 보상을 하고 싶지 않겠지만, 스물한 살의 나이에 머리 두 개짜리 오우거를 잡을 수 있는 헌터라면 다시 생각해 볼 만할 것이다.

‘잘하면 짭짤하게 타키온을 벌 수 있다.’

루드비히의 마에스터가 만든 물건이라면… 타키넷에서도 고가에 팔 수 있다. 관건은 그걸 사 줄 만한 사람을 찾느냐 못 찾느냐의 문제.

‘까막이가 정보 수집을 잘해 놨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데미안 루드비히를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돈만 받고 떠날 사람인지 아니면 루드비히의 지원에 기대 더 크게 성장하며 계속 함께 나아갈 사람인지, 가늠해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진짜다.

나는 루드비히가 필요하다. 회귀자고 뭐고 이런 걸 다 떠나서.

이런 천국에서 살고 싶다. 물론 그걸 입 밖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한 가지 더. 저… 여기서 살면 안 됩니까?”

앗?

“네?”

“앗… 저도 모르게 말실수가… 저기, 그런데 쪽방이나 소파에서라도 좋으니까… 저 집안일도 잘합니다.”

앗.

이건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루드비히의 방은 내 이상향을 깎아 만들어 낸 듯한 극락 그 자체. 소파에서조차도 탐스러운 아우라가 피어오르는 걸 어쩌라고!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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