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23화 (23/212)

23. 일류가 될 사나이

일단 정리해 보자.

회귀자는 여러 명이다.

세계 최고의 초능력자를 꼽아 보라고 하면 최치국은 20위 안에는 반드시 들어갈 실력자다. 하지만 만약 인류의 운명을 걸고 딱 한 명만 회귀를 시켜야 한다면? 최치국은 절대 그 한 명이 될 수 없다. 그러니까 회귀자는 여러 명이다.

‘최소 열 명. 많으면 스무 명이나 서른 명.’

한 명도 힘들 판에… 내 입장에서는 절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인 사실도 있었다.

‘회귀는 지금으로부터 30년 뒤에 일어난다.’

아주 중요한 사실이었다. 현시점에서 회귀자들이 아직 어리다는 뜻이었으니까. 본신의 무력도 여물지 못했을 것이고, 사회적인 지위와 권력 역시 미약할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킬러 회사를 이끄는 허묵이 최치국을 배신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만약 30년 뒤라면, 이득이 어떻든 간에 감히 최치국을 배신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테지.

‘지금이 기회다.’

그 두렵고 무서운 영웅들이 아직은 재야에 묻혀 있는 지금. 회귀자들이라 해도 몸을 낮춰야만 할 현시대의 절대자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지금. 바로 지금이 유일한 순간이었다.

조조가 천하를 다 집어삼킬 것 같았던 그 순간, 제갈량이 천하삼분지계를 펼쳤듯이.

바로 지금, 역전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린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

‘후원자. 그리고 동맹.’

회귀자들의 공세에서 나를 보호해 줄 그늘이 필요했다. 회귀자들이 여럿이니, 나 역시 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나는 현시대의 절대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름 하나를 기억해 냈다.

“루드비히.”

그 냉혹하고 절대적인 가문의 이름을.

* * *

봐도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문자가 있다. 일을 하다가도 수시로 확인해서 실실 웃게 되는 그런 문자.

- 4,500만 원 입금했습니다! 말씀하신 수수료 300만 원을 제하고 4,500만 원입니다. 던전 부산물은 면세이니 세금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7

아, 좋다.

김민수!

과연 일류가 될 보물 사냥꾼이다!

위대하다. 4,500만 원에 판매하면 거기서 300만 원을 수수료로 주겠다고 했더니 수수료 떼고 순수익 4,500만 원을 만들어 오다니?

‘김민수. 친하게 지내자, 김민수.’

4,500만 원!

갑갑한 가슴을 적셔 주는 청량한 액수였다.

내 웃음을 본 서민서가 눈치 빠르게 물었다.

“시민 선배! 돈 들어왔어요? 월급? 아니다. 그 판매 대금 들어왔구나!”

“음? 어떻게 알았어?”

“하루에 수천만 원을 번 사람이 하루에 십만 원 벌겠다고 일 나와서 종일 헤벌레~ 하는데 그럼 그 돈이지 뭐겠음?”

잡담을 하면서도 나와 서민서는 쉼 없이 손을 놀리는 중이었다.

간만에 출근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니는 회사는 이벤트 인력 회사. 국민개병제 때문에 인력 회사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시시때때로 펑크가 나는 인력을 완벽하게 커버해 주기 위해 우리 회사의 직원들은 관련한 특기를 서너 개씩은 갖추었다. 다재다능이라는 것은 요즘 시대에 꼭 필요한 엘리트의 소양. 두고두고 괜찮은 커리어가 되기 때문에 다들 열심이었다.

그중에서 초능력자인 서민서와 나는 체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로 많이 빠지고는 했다.

“너, 자꾸 신성한 노동을 무시하는데, 이게 얼마나 좋냐. 돈도 벌고 수련도 하고.”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청하를 쥐고 양파를 1초에 하나씩 까서 토막 치는 중이었으니까. 오늘은 무슨 고등학교의 학도병 발대식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F&B 팀으로 파견되었고, 짜장면 1,000그릇을 위한 밑준비를 도맡았다.

사륵-

사라락-

“…칼질이 신성하긴 하네요. 그냥 스치기만 해도 양파가 썰려 나오네. 기계인 줄. 선배! 그냥 이참에 주방 보조로 전업해요. 그것만 해도 부자 되겠다.”

서민서가 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럴 만도 하다.

화르르-

요 며칠 청하를 쥐고 얼마나 음식 손질을 했는지, ‘길들이기’가 쭉쭉 진행되어 이제는 청하의 아우라가 72%까지 하얗게 물들 지경이었다. 능숙 단계에 오른 지 오래이고, 이제 곧 있으면 완숙 단계를 넘볼 수준이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수련 하면서 돈도 벌고, 꿀이지 꿀.’

하지만 그렇다고 주방 일만 할 수는 없었다. 아우라를 가진 물건들을 골고루 다 써 줘야 효과가 더 좋으니까. 그라프 만년필이 필요한 일도 하고, 악몽사슬이 필요한 일도 할 거다. 행사 준비라는 게 별별 기술이 다 필요한 일이라, 그런 점이 좋았다.

“이벤트 인력 회사가 나아. 시장의 전체적인 모습도 파악하고! 여기저기 파견 나가면서 인맥도 넓히고. 커리어 쌓기 좋잖아?”

“아니, 진짜로 이 커리어 계속 이어 가게요?”

서민서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안 해?”

“아니. 선배 솜씨면 전업 헌터가 낫지 않음요? 엄청난 고소득자면서!”

서민서의 말에 나는 눈을 껌뻑였다. 얼마나 황당했는지 열심히 썰던 양파를 놓칠 뻔했다.

“엥? 회사를 왜 그만둬?”

“그럼 안 그만 둬요? 던전 공략하는 게 회사 다니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요?”

“던전을 매일 가진 않잖아?”

투수가 매일 선발로 출전한다면? 어깨가 박살 날 것이다. 공 던지는 것도 그런데 목숨 걸고 싸우는 건 오죽할까? 제때 쉬어 주지 않으면 초능력자고 뭐고 몸이 박살 난다. 한 달에 4~8번쯤 던전 간다고 치면 남는 시간에 투잡이 충분히 가능했다.

“그래서 던전 안 가는 날에는 회사 다닌다고요? 휴먼! 미쳤어요? 골병듭니다?”

“우리 수준에서 이게 일이냐. 누워서 쉬나 일하면서 쉬나 그게 그거지.”

“던전 한 번 다녀와서 몇천만 원을 번 사람이, 월에 200이 될까 말까 한 돈을 위해서 이 짓을 한다고요?”

“돈 좀 만졌다고 돈이 우습냐?”

“아니, 나야 그 돈이 아깝지만, 선배 입장이면 솔직히…….”

“그리고.”

“그리고?”

“재직 증명서가 있어야 되거든.”

“왜죠?”

“대출 받아야지.”

서민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출? 방금 수천만 원 들어온 사람이?”

“들어왔으니까 써야지.”

“선배, 도박해요?”

“아니. 주머니가 두둑해야 현명한 소비가 가능하거든.”

“그 반대 아니고… 요? 아니, 설령 그렇다고 쳐도 선배 이미 빚 꽤 되잖아요?”

“민서야.”

“네?”

“빚을 못 늘려서 걱정이지 빚이 있어서 걱정이니?”

서민서의 입이 헤 벌어졌다. 사회의 진실을 깨닫고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아, 근데 그러고 보니 오늘 월급날이기도 했지?”

나는 황당해하는 서민서를 무시하고 마지막 양파를 썰어 놓고는 장갑을 벗었다.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4월, 5월 월급이 함께 들어와 있었다. 4월부터 던전을 다니느라 회사를 거진 빠졌기 때문에 두 달 치를 합산해서 나온 것이다. 액수는 213만 원. 캬, 짭짤하다. 수련도 하고 돈도 벌고. 양파로 매워진 코끝에 고소한 우유 향이 감도는 것 같았다.

“잠깐 나 전화 좀.”

월급까지 들어왔겠다, 더는 지체할 수가 없지. 나는 즉시 김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신호음이 세 번을 울리기 전에 김민수가 전화를 받았다.

- 네, 헌터님! 김민수입니다!

“안녕하세요, 소시민입니다. 어제는 잘 처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또 부탁할 게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 네! 말씀만 하십쇼!

“혹시 물건 사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으십니까?”

- 물론입니다!

막힘이 없다. 김민수의 일 처리는 일사천리.

“바로 오늘 사게요?”

서민서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퇴근길엔 새로운 무기를 살 것이다.

* * *

현재 내 실력을 냉철하게 평가해 보았다.

‘2류 헌터.’

네필림의 날개를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1류와도 비벼 볼 수 있지만, 그건 빼고 생각하는 게 옳았다. 네필림의 날개는 아우라가 없는 [습득물]이었기 때문이다. 아우라가 없기 때문에 [만상공감]으로도 크게 강화할 수 없었다.

가령 청하는 다른 이들 손에 쥐여 주면 그저 과도에 불과하지만, 내가 쥐면 괴물을 썰어 내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러니 청하가 강한 것은 내 실력이다. 하지만 네필림의 날개는 내가 쓰나 옆집 갑돌이가 쓰나 차이가 그 정도로 크지 않았다. 그러니 네필림의 날개를 두고 내 실력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국 나는 2류다.

3류들 사이에서는 돋보이지만 2류들 사이에 두면 이상한 놈이고, 1류들 사이에 넣어 놓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비록 최치국이 [점멸]을 활용한 나의 독특한 전투법에 놀라움을 표했지만, 그래 봤자 내 성장 한계가 2류, 잘해야 1류라고 생각했겠지. 결국 엑스트라일 뿐이다.

1류와 2류의 갭은 바다같이 깊고

초일류와 일류의 차이는 하늘처럼 크다.

그건 재능 괴물들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내려다보인다. 고민하지 않아도 상대를 이기는 법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렇기에 그들은 비록 현재 자신들의 성취가 3류에 불과하더라도 1류의 경지를 존경하지 않았다.

지금의 경지가 어떻든, 마침내 초일류가 될 사람과 평생 1류에 머무를 사람은 전혀 달랐으니까.

그 기준에서, 나는 그냥 2류였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평가를 깨부숴야 했다.

“루드비히의 후원을 얻으려면… 정말 파격적인 게 필요해.”

그동안은 어디 한군데 치우치지 않고 고루고루 장비를 갖춰 왔다. 청하로 최소한의 공격력을 갖추었고, 악몽사슬로 최소한의 방어력과 공격 보조를 챙겼다. 그리고 타키넷에서 구입한 네필림의 날개로 각각의 역할을 극대화했다.

안전한 방법이었다. 회귀자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고 야금야금 강해져서, 언젠가 최치국과 같은 혹은 그 이상의 고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를.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정에 맞을지언정, 툭 튀어나오는 송곳 같은 성장이 필요했다.

그러니 딱 한 가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공격력.’

어떤 초등학생이 킥도 드리블도 패스도 모두 엉망이지만 힘만큼은 깜짝 놀랄 정도로 좋다면? 킥을 했다 하면 고등학생조차 움찔 놀라서 피한다면? 설령 차는 족족 똥볼이라도, 감독은 그 아이를 눈여겨볼 것이다. 이 불가해한 녀석이 어떻게 성장하게 될지 궁금해할 것이다. 내가 바로 그런 초등학생이 돼야 했다.

한 방.

‘새로운 장비를 구하는 기준은 오로지 한 방이다’.

“이 창고에서 가장 좋은 물건은 이 워해머입니다. 쓰기 불편해도 상관없다고, 위력만 강하면 된다고 하셨죠? 그 조건에 딱 맞습니다. 라이트닝 스틸 합금으로 만들어진 머리에, 손잡이는 스톰본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기술자가 묠니르에 꽂혀서 만든 무기라고 합니다. 공격력?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워해머를 쓰는 헌터가 적다는 것을 간과해 버린 게 문제였습니다. 결국 샘플 제작만 하고 창고에 처박히고 말았죠. 한성사社에서는 깎고 깎아서 4,000만 원을 부르고 있는데… 실제 스펙은 7,000만 원대 제품 이상입니다.”

김민수가 말했다.

좋은 무기였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망치 머리. 잡으면 손잡이가 벽력처럼 우르르 울리며 힘을 뽐냈다. 이걸 휘두른다면 분명 인상적인 위력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내 눈에 다른 물건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나는 그대로 이 망치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잠시만요.”

나는 김민수가 추천한 워해머를 지나쳤다. 저기 서 있는 물건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당황한 김민수가 나를 쫓아와 속삭였다.

“잠시만요. 그건 쓰라고 만든 물건이 아닙니다.”

내 앞에는 기다란 창이 하나 있었다. 아니, 이걸 창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굵은 대나무 같기도 했다. 만약 창이라고 한다면 어떤 거인이 자신이 쓰던 창을 땅에 꽂아 놓고, 그걸 본 사람들이 경외감을 느껴서 그 창을 서낭당처럼 치렁치렁하게 꾸민 모습이 이럴 것이다.

창의 길이는 7미터가 넘었고, 지름은 10센티가 넘어서 한 손에 잘 잡히지도 않았다.

어떤 구조물이나 조형물과 같은 그것이 땅에 꽂혀 있고, 색색깔의 선들이 창과 치렁치렁 연결되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기대 이상이다. 기대 이상이야.’

나는 두 가지 측면에서 감탄했다. 일단은 김민수의 능력에.

‘슬슬 명품관에서 한계를 느끼고 있었는데, 이렇게 생산 공장과 직접 연결을 해 주다니.’

내가 원하는 수준의 무기를 명품관에서 사기엔 너무 비쌌다. 일단 명품관에는 밸런스가 잘 잡힌 진짜 비싼 명품들만 있었다. 거기에 명품관에서 가져가는 마진까지 합쳐지면 무조건 1억 원이 넘어갔다. 반면에 내가 동원 가능한 돈은 5,000만 원 내외.

그러던 차에 김민수의 소개로 찾아온 한성사社의 창고는 환상적인 장소였다. 다 좋은데 한두 가지 흠이 있어서 명품관에는 들어가지 못한 무구들, 시험적으로 제작한 샘플들, 오래된 재고들. 최고의 가성비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감탄스러운 건 이 창이었다.

‘이건 정말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물건이잖아?’

운명 같았다.

오로지 공격력. 공격력만이 필요한 내게 찾아온 구원자.

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자 김민수가 다시 말했다.

“이건 한성사社가 충격 밀집 기술을 카피하기 위해 제작한 실험용 창입니다. 기술 문제로 축적이 크게 제작되어서 사람이 다룰 만한 게 못 돼요. 제대로 잡기도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내 입가의 미소는 더욱더 짙어졌다.

“그럼 더 싸게 살 수도 있겠네요?”

김민수의 얼굴에 당황이 어렸다.

“아니… 물론 그렇긴 하지만 워낙에 재료가 많이 들어갔고… 아시지 않습니까? ‘충격 밀집 기술’. 이 창의 경우엔 반작용되는 힘의 30퍼센트까지 반사합니다. 그런 무지막지한 게 적용된 무기니 절대 싸게 사진 못하죠. 원가 생각하면 거저지만… 무기로 제대로 써먹지도 못할 물건이라는 걸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일 겁니다.”

“그래서 얼마죠?”

“글쎄요… 확실하진 않지만 재료랑 기술 생각하면… 그래도 최소 6,000만 원은 부를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러면 이제 내가 줄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사 주세요. 5,500만 원보다 더 싸게 협상을 하시면 깎은 가격의 30퍼센트를 수수료로 드리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자 김민수는 더 이상 반문을 하지 않았다. 그저 멋드러진 탐험가 수염을 쓱 훔치고 주먹을 꾹 쥐며 대답할 뿐.

“예. 5,000만 원 아래로 사 보겠습니다.”

물론 내가 직접 거래를 해도 된다. 하지만 그건 이곳에 날 데려온 김민수에게 실례이고 한성사 측과 원만한 이야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내가 아무리 거래를 잘해도 자주 와서 자주 사 가는 사람보다 잘하긴 어려우니까.

김민수가 씩씩하게 한성사의 관계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이 든든하다.

멋지다, 김민수!

잘한다, 김민수!

과연 일류가 될 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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