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목적
중견 킬러 회사의 사장 허묵은 황당했다.
“어른들 얘기하는데 꼬붕이 끼어들면 손모가지가 어떻게 되죠?”
엠마의 손목을 자른 소시민이 그녀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며 겁을 주고는 놓아 주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 허묵을 바라보는데 그 눈빛이 도발적이고 여유로웠다.
허묵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거, 뭐 하던 놈이지?’
소시민.
그가 조사해 본 결과로는 고아였다.
초능력은 최하급 독심술. 쓰잘데기없었다.
뒷조사를 해도 그 이상 나온 건 없었다. 그래서 일단 찔러 보려고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다. 그게 실수였다.
‘무슨 비밀 조직의 요원인가? 아니면 특수부대 출신? 잘못 건드렸나?’
엠마는 상위 10퍼센트 안에 들 정도로 훌륭한 솜씨를 지닌 킬러였다. 그런 그녀가 아차 하는 사이에 제압을 당하더니, 지금은 오른손을 잃고 신음을 삼키고 있었다.
허묵은 소시민을 경계하며 천천히 엠마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살펴보았다.
‘절단면은 깨끗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허묵은 엠마의 잘린 손목을 챙기며 말했다.
“이거 감아. 이따가 병원 가자고.”
“네.”
허묵이 재생 붕대를 건네주자 엠마는 파리하게 질린 안색으로도 침착하게 잘린 오른손을 절단면에 붙이고 이로 붕대를 물어 칭칭 감았다.
쭈우우욱-
던전에서 발견된 오파츠인 재생 붕대는 절단면을 고정하고 지혈을 해 세포의 괴사를 막아 준다. 이제 병원에 데려가서 치유 능력자의 치료를 받으면 엠마의 오른손은 후유증없이 다시 붙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피해는 크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당장은 더 싸울 수 없겠지.’
2 대 2였던 상황이 졸지에 2 대 1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욱하는 심정으로 달려들기도 껄끄러웠다.
허묵은 다시 한번 혀를 찼다. 소시민이라는 놈, 생각할수록 닳고 닳은 놈이었다. 한번 찔러 봤다가 호되게 물렸다.
‘각오가 안 되어 있으면 장난치지 말라 이거지?’
허묵은 쓴웃음을 머금고 두 손을 들었다. 아까의 가식적인 미소가 아닌 정말로 우러나온 쓴웃음이었다. 잠시 장난처럼 붙였던 존댓말도 집어치웠다.
“오케이, 오케이. 알겠어. 장난은 그만 칠게. 하지만… 어쨌든 피를 봤으니, 적어도 이 대화에서 어떤 이득은 가져가야 화가 안 날 것 같다. 아니면… 나도 저쪽 아가씨 손목 받아 간다?”
그래. 이득.
결국 허묵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거였다. 킬러 회사라는 건 성수기와 비수기의 차이가 너무 크고, 사고도 많이 발생하는 사업이다. 그러던 차에 나타난 최치국의 의뢰에 안정적인 고정 수익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뻤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허묵은 느꼈다.
그보다 더 큰 돈 냄새를.
그렇기에 의뢰를 위반하면서까지 씨앗의 정체를 물어봤던 것이고, 아끼는 수하의 손목이 날아갔어도 일단 참는 것이다.
‘최치국의 의뢰비, 최소 그것의 세 배. 그 정도 이득이 아니면 손해지.’
허묵은 바랐다. 소시민이 배짱에 걸맞은 대단한 비밀을 가지고 있기를.
만약,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친다면… 뭐, 당장 생사결까진 무리라도 그 옆의 서민서란 여자애 손목 하나쯤은 똑같이 잘라 주고 자리를 떠날 생각이었다. 실패해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최치국에게 보고할 거니까. 그 씨앗 혐오자라면 소시민이 씨앗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즉시 달려와서 직접 죽이거나 암살 의뢰를 넣을 것이다. 그때 끝장을 보면 된다.
‘저놈의 힘이 대체 어떤 건지 모르겠다는 것, 그게 리스크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 죽일 수는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허묵은 찬찬히 소시민을 응시했다.
* * *
다른 회귀자의 의뢰를 수행하는 킬러가 나를 찾아왔다.
만약 놈이 나에 대한 의심을 다른 회귀자에게 알린다면? 내 두 번째 인생은 험난해진다. 강제 영웅행. 승리할 가망도 없는 싸움을 또 해야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이들이 다른 마음을 먹고 나를 찾아온 이상, 이건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기꺼이 내가 알고 있는 비밀을 공유해 주마.’
어차피 동일 조건이라면 내가 유리하다. 내가 가진 초능력 [만상공감]만큼 타키넷에 적응하기 좋은 초능력은 본 적 없으니까. 그러니 비밀쯤 공유해 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놈이 회귀자를 버리고 나와 한 배를 탄다면 충분히 이득이었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심리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손목을 잘랐을 뿐이다.
그랬더니 노려본다.
‘워어- 살벌하네.’
역시, 경지에 오른 킬러. 간담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긴장할 필요는 없지.
“그 전에 이름은 좀 가르쳐 주고 시작합시다. 전 알죠? 소시민입니다.”
“허묵.”
“서민서예요. 그리고 내 손목 노리면 주, 죽일 거예요.”
손을 파르르 떨면서도 끼어들어 눈을 부라리는 서민서였다. 하여튼 배짱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하나만 해라.
그렇게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입을 열었다.
“좋아요, 허묵 씨. 이득을 말했죠? 그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상상 이상일 테니까. 그보다는 나눠 먹는 만큼 밥값 계산을 어떻게 할 거냐가 문제죠.”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고.”
“뭐, 어차피 밥값은 달라는 대로 주게 될 겁니다.”
“하?”
“아무튼, 그게 뭐냐고 물었죠? 초록색 씨앗 같은 것.”
“그래.”
“세계수의 씨앗이라는 겁니다.”
“세계수?”
“네. 그리고 나는 그걸 키우는 방법을 알고 있죠. 원한다면 그 씨앗 성장시켜 줄게요.”
“…키우면 뭐가 좋지?”
“일종의 던전을 열 수 있어요.”
“던전?”
“네. 이런 물건들이 즐비한 곳이죠.”
푸드득-!
내 등 뒤로 펼쳐지는 투명한 날개를 바라보며, 허묵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필림의 날개. 허묵은 직접 자신의 두 눈으로 그 위력을 확인한 바 있었다.
“오파츠?”
“네.”
“오파츠가 즐비하다? 종류는?”
“다종다양.”
“…상상이 안 가는데?”
“다른 세상의 장터라고 생각하면 돼요. 정당한 거래로 사 오거나 싸워서 뺏어 오거나. 아, 잘만 거래하면 원하는 대로 제작도 가능해요.”
“정말이냐?”
허묵의 눈이 커졌다.
오파츠. 던전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문명을 뛰어넘는 진보한 아이템들. 그 물건들은 산삼 나오듯이 어쩌다 한 번씩 나올 뿐이었다. 하나같이 기능은 뛰어났지만, 인류가 제작한 물건이 아닌 만큼 원하는 기능을 가진 오파츠를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도 했다.
그런 귀한 오파츠를 원하는 대로 골라잡을 수도 있다니, 심지어 맞춤 제작도 할 수 있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기회였다.
“사실이라면… 놀랍군. 솔직히 이런 재생 붕대 정도만 꾸준히 파밍 할 수 있어도 크게 만족했을 텐데…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노련한 킬러 사장인 허묵이 쉽게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건수였다.
그렇기에 나는 확신했다. 내가 손목을 잘랐든 어떻든, 허묵은 이 거래를 깨지 못한다고. 나와 협력하는 게 그의 최선이었다. 이건 그의 삶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그런데, 허묵이 중얼거렸다.
“역시… 그래서였나? 혼자 독식하고 싶어서 씨앗들을…….”
뭔가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미처 물어보기도 전에 허묵이 먼저 말했다.
“진위 여부는 어떻게 파악하지?”
나는 일단 잡념을 지우고 협상을 이어 갔다.
“그 씨앗 줘요, 키워 줄 테니까. 직접 보면 될 일이죠.”
허묵이 쓰게 웃었다. 그의 입장에서 나에게 씨앗을 맡긴다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자칫하면 그 귀하다는 세계수의 씨앗 하나를 생으로 도둑질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여기서 몸을 빼지 않았다.
휙-
허묵이 내게 세계수의 씨앗을 던지고 말했다.
“좋아. 대신에 이제 피차 장난은 치지 말자고.”
“네. 알겠으니 일단 선수금을 계산하죠.”
“선수금? 아직 네 말의 진위 여부도 파악이 안 됐는데?”
“그래도 가능성을 말해 줬는데?”
“…일단 말해 봐라.”
큰 걸 바라진 않았다. 세계수의 씨앗을 모아 오라고 한 의뢰주가 누구인지, 그 의뢰는 정확히 뭐였는지. 나는 그걸 물었다.
잘만 하면 회귀자들의 전략과 목적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들은 왜 세계수와 타키온을 모으고 있는 걸까? 물론 이미 대략적인 답은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먼저 세계수를 키운 다음에 보급하려고 하는 거겠지. 인류가 더 빠르게 타키넷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진보한 차원 문명을 받아들이고 실력을 길러 다가오는 침략에 대항할 수 있도록.’
지구를 구하려면 어차피 다른 방법은 없었다.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그들의 구체적인 계획이었다. 그걸 알아야 타키넷에서 내가 한발 더 앞서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순진하게도… 그런 걸 궁금해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허묵이 말했다.
“의뢰주는 최치국”
“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였다.
“그리고 목적이야 뻔하지 않겠어?”
“뻔하죠.”
씨앗을 모으고 있겠지.
“씨앗을 다 말소하고 있지. 아마… 자신들만 독점하려고 하는 거겠지.”
뭐?!
쿵!
환청이 들릴 지경이었다. 가슴속에 지구가 떨어진 것만 같았다.
방금 뭐라고?
말소?
* * *
외교 통상이라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손해가 막심한 것이다.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문물과 문화가 밀려들고, 무역이라는 미명하에 온갖 잡놈들이 꼬여 든다.
조선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무역을 빌미로 찾아온 독일인은 조선에서 왕족의 묘를 도굴하려고 했고, 거래를 하자고 땡깡을 부리던 미국인은 공무원을 폭행, 감금하고 민간인들을 죽고 다치게 했다.
치안이 흔들리고,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지고, 끔찍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기존의 권위가 흔들리는……! 단기적으로 보면 정말 세상 망조가 드는 게 바로 외교 통상이고 문호 개방이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나라가 망하더라도 문호 개방은 해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영원히 문을 닫고 있을 수는 없다. 그렇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보면 결국 그놈들이 억지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법이다.
그랬기에 나는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미친 새끼들…….’
인류의 반역자. 빌어먹을 반동분자. 미치광이 근본주의자들……!
‘세계수의 씨앗을 말소한다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쇄국정책?’
지구는 말하자면 신대륙이었다. 대서양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떨어뜨려 놓았듯이, 지구 역시 의문의 차원 격류로 인해 다른 차원들로부터 유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구가 고립되어 있는 동안 외부의 차원 문명들은 점차 확대되었고, 마침내 차원 격류를 비집고 넘어올 정도로 거대해졌다.
그렇게 마침내, 이미 멸망한 차원의 난파물들부터 지구라는 거대한 해변에 와 닿게 되었다. 그게 바로 던전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도래와 함께 빙하에 묻혀 있던 씨앗이 물을 만나 움트게 되는 것처럼, 초능력과 영력이 함께 깨어났다.
우리는 고립되고 낙후되어 있었고, 저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교류하며 진보해 있었다.
지금 지구인들을 괴롭히는 던전과 괴물은 그저 난파선과 난민에 불과하다. 시간이 더 지나면 진짜배기들이 밀고 들어올 것이다. 스페인의 정복자 코르테스가 소수의 인원으로 강대한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켰듯이. 도무지 대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침략자들이 쳐들어올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악착같이 배우고 경험해야만 했다. 한 번 망하더라도, 다시 강성하게 일어서기 위해.
‘그런데 세계수를 말소한다고?’
어쩌면 허묵의 예상처럼 한 그루쯤은 독점의 형태로 남겨 둘 수도 있다. 자신들이 꼭 필요한 일에 쓸 수는 있겠지. 하지만 자연스러운 교류는 다 틀어막고 특정 집단이 교역로를 통제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물론 그렇게 쇄국정책을 펼치면, 외차원의 승냥이들이 우리를 발견하는 시간이 더 늦춰지긴 할 것이다. 섣불리 그들을 끌어들이는 우를 범할 일도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지구라는 단 하나의 차원에 갇혀서, 스스로 도망칠 구멍조차 다 없애 버린 채로… 여기서 다 같이 죽자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들이 그렇게까지 멍청했다고?’
내 계획이 다 어그러진다. 정말로 회귀자, 그 괴물들이 작정하고 쇄국정책을 준비하고 있는 거라면… 내가 타키넷을 오간다는 사실을 결국에는 들킬 수밖에 없으니까.
‘이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있었다면… 결국엔 내 세계수도 발견되고 파괴됐겠지.’
분명 회귀자들 편에는 만안자萬眼子가 서 있을 테니까, 그가 작정을 하면 내 세계수를 숨기는 건 불가능했다.
‘진짜… 진짜 미친놈들.’
그래서였다.
우웅-
허묵과의 거래를 마치고 반 평짜리 고시원으로 돌아온 나는 하얀 아우라가 타오르는 그라프 만년필을 쥐고 앞으로의 계획을 미친 듯이 작성했다.
사각사각사각-
욕설과 한숨을 뱉으며 수많은 아이디어를 적고 폐기하기를 수 시간째. 나는 마침내 방대한 계획을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었다.
- 회귀자들을 견제할 수 있는 새로운 세력을 결성한다.
그 미친 괴물들, 최강의 영웅들을 견제한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이게 웬 개짓거리냐고.’
하지만 하지 않으면, 두 번째 인생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종치게 생겼다.
“하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답답한 반 평짜리 고시원.
‘망할.’
아무래도 당분간, 고시원을 탈출해서 원룸으로 이사 가는 행복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깊어 가는 와중에.
띠링!
‘아……! 드디어.’
미약하게나마 숨통을 틔워 주는 반가운 문자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