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21화 (21/212)

21. 찾아온 이유

사각-

사각 사각-

감각을 섬세하게 느끼려면 일단 손에서 힘을 빼야 한다. 더도 덜도 말고 딱 필요한 만큼의 힘만을 적절하게 써야 어떤 물건이 전해 주는 감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 원칙을 가장 잘 느끼게 해 주는 물건 하나가 바로 만년필이었다.

사각-

연필이나 펜을 쓰는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꾹꾹 눌러쓰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만년필을 그렇게 쓰면 가느다란 펜촉이 상하고 필감이 엉망이 된다.

손에 힘을 빼고, 딱 알맞은 힘으로 펜을 미끄러뜨리는 게 핵심. 그렇게 하면 금속촉 사이의, 머리카락보다도 가는 틈 사이로 잉크가 흘러나오고 날카로운 금속 촉이 종이 위에서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사각- 사각- 스케이트 날이 얼음을 가르는 듯한 기분 좋은 필감과 함께.

그렇게 정교하게 느끼는 감각은 결국 혼을 일깨운다.

바로 그렇기에 아우라를 가진 명품 만년필은 타키넷에서 확실한 상품이 될 수 있다.

누구든 아우라가 깃든 물건과 교감을 하면 더 빨리 ‘혼’을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만상공감]을 가진 나처럼 극적인 효과를 보기는 어렵겠지만. 아무튼 내가 까막이에게 준 만년필은 운과 수완이 좋다면 다섯 알이 아니라 일곱 알에도 팔 수 있는 물건이었다.

‘잘하고 있겠지?’

지 입으로 경험자라고 했으니 잘 하고 있겠지.

잠시 타키넷에 두고 온 까막이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녀석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남은 타키온은 두 알.

타키넷에 딱 한 번 왕복할 액수만 남았다. 다음에는 지구 물건을 가져가 팔고 타키온을 다시 좀 두둑하게 채워 둬야 할 것 같은데… 어떤 상품을 가져가는 게 나을지 잘 모르겠다.

만년필은 좀 그렇다. 타키넷에서 그걸 한 자루라도 팔려면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아야 할 건데, 그렇게 해서 고작 다섯 알, 일곱 알 수준이면 좀 힘들지. 그것도 한 며칠 장사하고 나면 한동안은 그 인근에 수요가 씨가 마를 것이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쓰레기 거리는 그만큼 장사하기 최악인 장소였다.

‘어떻게 한다…….’

사각-

사각 사각-

나는 만년필을 쥐고 노트에 열심히 메모를 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했다.

까막에게 넘길 만년필을 장만할 때 같이 장만한 그라프사社의 한정판 만년필!

사각- 사각사각

우우웅- 우웅-

배럴은 따뜻한 질감의 대리석인 스프링마블로 마감되어 있고, 펜촉은 18k 금촉으로 부드러우면서도 사각거린다. 펜을 쥔 손에서부터 백색의 아우라가 흘러넘쳤다. 몸을 타고 넘으며 나와 함께 호흡했다. [만상공감] 덕분에 가속화된 ‘길들이기’ 덕분에 만년필의 아우라는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진해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내 영력도 조금씩 크기를 불렸다. 그래. 빨리 쌓여라, 쌓여. 최소한 쌀알 크기는 되어야 뭘 해 보지 않겠냐?

“선배.”

맞은편에 앉아서 민트 초코 프라페를 쪽쪽 빨아 먹던 서민서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테이블이 열 개쯤 있는 아늑한 카페였다. 매장 안에는 지나치게 단정하게 차려 입은 회사원 하나와 과제로 바쁜 대학생 하나가 앉아 있었다. 서민서랑 나는 야외 자리에 앉아서 각자 시간을 보내며 오크 던전을 다녀온 긴장을 풀어 내고 있었다.

“왜?”

“그 펜은?”

“만년필?”

“만년필? 아… 그게 만년필이구나. 와… 진짜 예쁘다. 그런 건 얼마나 해요?”

“300만 원 좀 넘어.”

서민서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고는 자기도 모르게 애지중지하는 선글라스를 쓰다듬었다. 녀석의 생각이 들리는 것 같다. ‘내 인생을 바꿔 준 백야의 안경이 300만 원 좀 넘는데… 저까짓 펜 하나가 300만 원이라고?’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원래 사치품 가격이 그렇다. 게다가 가격만큼 정성껏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하얗게 타오르고 있는 아우라가 그걸 증명한다.

이렇게 노트에 앞으로의 계획을 쓰면서도 영력을 불리는 ‘길들이기’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서민서는 아직 모를 테지.

하여튼 가난뱅이 녀석. 가격만 보지 그 가치를 보지 못한다.

속으로 그렇게 녀석을 비웃었는데, 녀석은 오히려 내가 우스웠나 보다.

“미쳤어… 선배! 아직도 고시원 살잖아요?”

펜을 움직이던 내 손이 움찔, 멈춰 섰다.

“그리고 무슨 돈으로 그걸 샀어요? 오파츠 판매 대금도 아직 안 들어왔을 것 아니에요? 임무 달성 포상금 다 털어 넣은 거예요? 생활비는요!”

…사실, 까막이한테 준 것 하나, 내 것 하나, 두 자루 해서 거의 700만 원 가까이 되었다. 포상금으로는 부족했다. 급하게 초능력 융자금을 좀 더 얻었다. D급 던전을 공략한 기록 덕에 겨우 대출이 나왔다.

“미쳤어!”

‘어…….’

서민서의 질타를 듣는데 갑자기 기분이 이상했다.

나야 지난 생에서부터 생활이고 뭐고 괴물과 싸우는 것만 생각하며 살았으니 몰랐는데… 갑자기 서민서가 평범한 사람의 기준으로 나를 다루니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되게 한심해 보이잖아?’

쓰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고급인데, 집은 고시원에 통장은 텅 비고 오히려 빚만 몇백이라니…….

“선배! 그렇게 살면 안 돼요!”

서민서의 짱짱한 목소리가 가슴에 쿡쿡 박히는 것 같았다.

문득 혼란스러웠다.

이상하다? 분명 이번 생은 여유롭고 부유하게 살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까 왜 이렇게 바쁘고 쪼들리지? 이래서야 지난 생과 차이가……?

“으이그… 돈이 있어 봤어야 그걸 제대로 쓰죠. 그러니까 우리 같은 가난뱅이들은 평소에 돈이 생기면 뭘 할지 노트를 써 놔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서민서는 자기가 깨작거리고 있던 노트를 펼쳐 내게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돈을 벌면 뭘 할지에 대한 계획이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나는 조금 어처구니가 없어져서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너 뭐야? 평소에 이런 걸 써?”

“사람 일 알아요? 갑자기 로또가 될 수도 있는 건데 미리미리 준비해야죠.”

뭐지? 미친놈인가? 하면서 녀석의 노트를 읽어 봤더니 의외로 견실한 계획들이 적혀 있었다. 어디 보자… 통장에 400만 원이 생긴다면, 엄마한테 새 침대를 사 드린다… 고……?

어?

갑자기 가슴이 뭉클했다.

그렇지. 서민서에겐 엄마가 있었다. 몸이 좀 아프셨던 걸로 기억을 한다. 나는 400만 원이 있다면 그걸로 어떻게 더 전력을 강화할지, 타키온은 어떻게 더 벌어들일지 그런 생각밖에 안 하는데, 서민서는 엄마의 침대를 생각했구나?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살짝 현자타임이 찾아왔다.

이번 생에는 좀 행복하게 살자고… 그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정작 나는 뭐가 행복인지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일단 타키넷 접속도 성공했으니 이제는 좀 여유를 가져 볼까? 고시원 나와서 이사도 하고. 무얼 해야 행복할지 천천히 생각 좀 해 볼까? 이번 생에는… 결혼이란 것도 할 수 있을까?

그런 평화로운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킬러가 갑자기 우리 테이블에 앉은 것은.

“소시민 씨. 그리고 그 쪽은 서민서 씨, 맞죠? 저는 엠마라고 합니다.”

엠마라는 이름의 미인 킬러가 우리를 보며 상큼하게 웃었다.

* * *

서민서가 어버버 대꾸하는 동안 나는 잡념을 털고 빠르게 상대를 관찰했다. 우선은 [만상공감]으로 공유되는 그녀의 호흡, 시선, 근육과 관절의 움직임… 그 모든 게 확실히 말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킬러였다.

킬러가 나를 쫓아올 만한 일이 몇 가지는 있기는 한데…….

‘꼬리를 잡힌 건가? 어디서?’

사실 세계수와 타키온을 구한다고 좀 무리를 하긴 했다.

당장 떠오르는 건수는 두 가지였다. 그린블러드 던전 그리고 오크 던전.

‘일단 그린블러드 던전은 아니야.’

그린블러드 던전에서는 까막이를 보호하던 킬러를 살해했고 까막이는 납치했다.

만약 내가 그 범인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거라면……? 이들이 대낮에 나를 찾아올 리 없다. 으슥한 밤에 몰래 찾아왔겠지.

‘그렇다면… 오크 던전에서 최치국이 나를 의심하게 됐다? 그래서 킬러를 보냈다? 아냐. 이것도 기각.’

너무 빨랐다. 오크 던전을 나온 게 어제였다. 밤새 타키넷에 다녀오고 오늘 서민서를 만나서 정비 시간을 갖고 있었다. 만약 최치국의 의뢰 때문이었다면 한 일주일쯤 몰래 미행을 하면서 정보를 수집하지 이렇게 다짜고짜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린블러드도 아니고 오크 던전도 아니다. 그럼 나를 왜 찾아왔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가능성 높은 가설 하나가 떠올랐다.

‘간을 보고 있다.’

나에게 뭔가를 알아내고 싶다. 그런데 그걸 내가 알고 있다는 보장은 없다. 심지어 나를 적대해도 좋은 지 확신도 없다. 그래서 킬러답지 않게 대낮에 나타나 쿡! 찔러 보는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나를 찾아온 건 의뢰 때문이 아닐 거야.’

킬러들은 간을 보지 않는다. 정확히는 간을 볼 필요가 없다. 킬러는 의뢰를 받으면 의뢰를 수행하는 존재이지 스스로 뭘 알아내고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높은 확률로…….

‘킬러 회사의 독단.’

의뢰가 아니다. 킬러 회사는 독단적으로 나를 찾으러 왔다. 정말이라면 대체 왜 이런 독단을 저지른 걸까?

‘이유가 세 가지쯤 짐작이 가긴 하는데…….’

결국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갑자기 나타난 킬러로 인해 바짝 긴장했던 어깨를 살짝 여유롭게 풀었다.

‘어쩌면… 기회가 될 지도 몰라.’

자세한 건, 얘기해 봐야 알겠지만… 어쩌면, 나쁜 상황은 아니다.

드르륵.

나는 자신을 엠마라고 소개한 킬러를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이 자리에 킬러는 두 명이 있었다.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넘기고 싶었지만, 같은 카페에 킬러가 두 명이나 있다면 그건 우연일 수가 없다.

나는 가게 안에 앉아 있는 회사원을 향해 손짓했다.

“기껏 여기까지 오셨으면 직접 말씀하시죠?”

눈앞의 엠마의 얼굴에 당황이 깃들고, 저편에 단정하게 앉아 있던 회사원의 얼굴에 재밌다는 듯한 미소가 걸리는 순간.

따악-!

강력한 영력이 주변을 휩쓸었다.

“으윽-! 이건?”

초능력자인 서민서는 두통을 느끼는지 이마를 짚어 보는 것에 그쳤지만 가게 안에 있던 대학생과 카페 알바는 달랐다. 그들은 넋이 완전히 나가서 인형처럼 멈춰 섰다. 갑자기 주변 소리가 먹먹하게 들리고 카페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카페를 피해서 걸었다. 카페 일대와 주위가 보이지 않는 벽으로 단절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꿈의 장막.’

그건 킬러들이 즐겨 쓰는 결계였다. 범위 내의 인간들은 의식을 날려 버리고, 범위 밖의 인간들에게는 범위 안을 인식할 수 없도록 암시를 불어넣는다. 초능력자들에게는 효과가 크게 반감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일을 도모하기에 이만큼 좋은 결계가 없었다.

‘그리고 꿈의 장막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꽤나 번듯한 킬러 회사라는 거지.’

뜨내기가 보유하고 있을 만한 장비가 아니었다. 그리고 꿈의 장막을 펼친 이상… 여차하면 무력을 사용할 마음도 있다는 뜻이었다.

기묘한 정적 속에서 단정하게 차려입은 회사원이 몸을 일으켰다.

“앗 뜨뜨뜨. 이건 다 좋은데 너무 뜨거워. 냉각 기능은 못 넣나.”

그는 검은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돌, 꿈의 장막을 휘휘 흔들어서 불꽃을 꺼뜨리고는 여유롭게 다가와 내 앞에 앉았다. 그 전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엠마는 절도 있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에 자리를 잡고 섰다. 누가 봐도 회사원으로 위장하고 있던 이 남자가 상급자였다.

그는 단정하던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삐뚜름하게 앉아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배짱 좋네?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누구긴 누구겠어. 킬러지. [만상공감]으로 킬러 특유의 감각을 느꼈다. 서민서를 따라 이 카페에 들어왔을 때부터, 저 킬러는 가게 한편에 앉아 있었다. 그때는 우연인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우리의 통화를 도청이라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하지만 이런 걸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다.

“그것보다는 찾아온 용건부터 말씀하시죠.”

남자의 질문을 대놓고 무시하자, 그가 웃음기를 싹 지우고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움직여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에메랄드빛에, 아몬드 초콜릿처럼 귀여운 씨앗이었다.

‘세계수의 씨앗!’

그걸 보는 순간, 나는 킬러 조직이 나를 찾아온 이유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다.

‘들켰구나, 내가 세계수의 씨앗을 챙겼다는 걸!’

절대 다른 회귀자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되는 사실을, 눈앞의 남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놈은 굳이 그 사실을 내게 알렸다.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베스트 시나리오다!’

혹시나 했던 가능성이 사실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마음의 동요를 감추고 무덤덤하게 눈앞의 킬러를 마주 보았다.

그가 말했다. 살기를 뿜어내며, 시선은 내게 고정하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다.

“너, 이게 뭔지 알지? 설명해 봐.”

그 살벌한 질문에 나는 저절로 지어지는 웃음을 억지로 억눌러야 했다.

가슴 깊이 안도감이 들었다.

만약 최치국이 이 킬러들에게 세계수의 씨앗을 모아 오라고 시켰다면? 모아 오면 그만이다. 그런데 왜 얘네는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세계수의 씨앗이 뭔지 궁금해하는 걸까? 이유는 뻔했다.

그러니 이게 베스트 시나리오인 것이다.

“왜요? 한 입 달라고요?”

내가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괴고 불손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킬러는 피시식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 물론 그는 그렇게 웃을 자격이 있었다.

‘이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킬러 회사 사장이겠네.’

딱 봐도 사장 쪽은 1류다. 내가 상대하기 어려운 수준.

하지만 나는 평온하기만 했다.

“사장님, 제가 일단 버릇을 좀 들여 놓겠습니다.”

심지어 사장의 뒤에 서 있던 엠마가 갑자기 단검을 뽑고 달려들 때에도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의 솜씨도 만만치 않다. 만약 어제 만났다면 당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오늘부터는 아니다.

피잉-!

왼팔 소매 속에 칭칭 감고 있던 악몽사슬을 풀어서 날리자 엠마가 단검을 휘둘러 사슬을 튕겨 냈다. 하지만 그걸 막아 버린 순간, 그녀는 이미 늦어 버린 것이다.

파드득-!

등 뒤로 돋아난 투명한 날개가 한 번 날갯짓을 하는 순간, 내 몸이 점멸하듯 앞으로 쏘아졌다. 그와 동시에 내 주먹이 그녀의 턱 끝에 걸렸다.

뻐어억-!

네필림의 날개를 이용한 순간 가속 이후의 턱 가격. 제아무리 2류에 올라선 킬러라고 해도, 뇌진탕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나는 그 틈을 노려 그녀의 머리를 테이블에 처박고 청하를 꺼내 그 턱밑에 붙였다. 네필림의 날개는 지구의 문명을 아득히 상회하는 물건인 데다가 [만상공감]의 효능으로 그 가능성이 극대화된 상태. 알았으면 몰랐을까, 갑자기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가속은 1류에 근접한 킬러 사장조차 반박자 늦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신뢰하는 수행원이 손쓸 새도 없이 제압된 모습을 보며, 남자의 눈은 크게 커졌다.

“너……? 마누스도 없이?”

그래. 내가 그 말 왜 안 하나 했지.

항상 적의 역량을 가늠해야 하는 킬러들은 상대의 마누스를 읽는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원시적인 마누스 감지법으로는 내 영력을 감지해 낼 수 없다.

나는 엠마를 완전히 제압해 둔 상태에서 킬러 사장을 향해 말했다.

“계속할까요? 아니면 젠틀 하게 서로 한 입씩 나눠 먹을래요?”

분명히 보여 줬다. 강제로 정보를 빼앗으려고 하면 킬러 회사 쪽도 절대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는 걸. 그리고 서로 무리하게 싸울 필요 없이 윈윈하는 방법이 있음을 말해 주었다. 예의를 지켜라. 그럼 나눠 먹을 수 있다.

당황한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던 남자는 문득 신사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그렸다.

“뭐… 일단 몇 마디 말쯤은 젠틀 하게 나눠 봐도 좋을 것 같군요.”

가식적인 존댓말은 덤이었다.

그래서 나는.

써컥!

“아악!”

완전히 제압당한 엠마의 오른손을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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