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20화 (20/212)

20. 거래

나에게는 허장성세가 통하지 않는다.

[만상공감]으로 전달되는 사내의 감각은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꽉 조여들고 목구멍은 바짝바짝 마른다.

알 것 같았다, 지금 사내가 어떤 상황인지.

“이 친구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됐다. 가라. 꼴을 보아하니 일자리도 못 구한 것 같은데, 그냥 소멸하든가. 오늘? 아니면 내일? 어차피 더 못 버티지?”

손 떼겠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더니, 사내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걸 어떻게…….”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이래 봬도 지난 생에서 7년 이상을 타키넷의 밑바닥에서 굴러먹은 몸이다. 이런 놈들 사정은 뻔했다.

“뒷골목 모퉁이에서 손님 기다리는 놈들 사정이야 다 똑같지. 너… 여기서 타키온 벌겠다고 용병질 했지?”

놈의 어깨가 또다시 움찔!

“거기서 도망쳤지?”

다시 한번 움찔!

“꼭 그런 애들 있지. 아마 너네 차원에서는 제법 유명한 강자였을 거야. 자기 차원을 벗어나서 타키넷에도 왔겠다, 용병질 하면 금방 타키온 벌 수 있겠다 싶었겠지.”

하지만 누누이 말하지만 이곳은 타키넷. 차원 문명들의 교류장. 무엇 하나 만만한 게 없는 세상이었다.

“근데 의뢰 목표와 마주하는 순간, 이거 잘못됐다 싶었지?”

“…….”

사내는 더 이상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였을 뿐이었다.

소위 노는 물이 다르다는 것이다.

1인용 RPG에서 엔딩 봤다고 멀티 게임에서 거들먹거리는 꼴이었다.

타키넷에서 칼밥으로 먹고살려면 정말 아주아주 싸움을 잘해야 했다. 하지만 많은 이가 주제를 모르고 높은 보상에 혹해서 용병 계약을 맺었다가 역으로 위약금을 토해 내고 피눈물을 쏟았다.

문제는 타키넷에 존재하는 것 그 자체로 존재 유지 비용, 일명 세금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여기서 활동할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면 보통 이틀에 타키온 한 알.

숙소 없이 길바닥에 자는 건 그렇다고 쳐도 이틀에 한 알씩 들어가는 세금을 부담하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소멸하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가려 해도 통행료가 최소 한 알은 들어간다. 수중에 타키온이 하나도 없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지만 땅을 아무리 파 봐도 타키온은 단 한 알도 나오지 않는다. 똥줄이 탈 수밖에 없었다.

뭐… 나한테는 잘된 일이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든 아니면 여기서 버티면서 손실을 본 것을 만회하든, 어쨌든 당장 타키온이 필요한 것 아냐? 그 타키온 내가 줄 수 있다고. 알지? 이런 거래 기회조차 쉽게 오는 게 아니다?”

사실 거래 기회는 눈치만 좋으면 쉽게 잡을 수 있는 편이다. 하지만 오자마자 용병 일로 밑천 털리고 오갈 데 없게 된 절박한 이에게는 절대 쉽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크윽…….”

사내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자, 이제 채찍을 실컷 쳤으니 당근을 줄 차례였다.

“그리고 잘 생각해 봐. 그 보물이 너한테는 대단한 것 같겠지만… 여기 타키넷에서는 흔한 물건이야. 일단 이 위기만 넘기고 열심히 하면 금방 그 이상으로 벌어 갈 수 있을걸?”

그리고 이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저 정도 물건은 이 빈민가에서조차 평균 이하의 물건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물건이나마 어떻게든 싸게 사기 위해 열심히 약을 치고 있는 중이고. 어떻게 보면 없는 놈들끼리 벌이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구차하고 가난한 거래이다.

잃는 것도 얻는 것도, 타키넷의 보편적 기준에서 보면 사실 초라한 수준이었다.

마침내 사내의 목소리가 한풀 꺾였다.

“…그래서 얼마를 주겠다는 거지?”

“일단 물건을 봐야지.”

내 말에 사내는 주저주저하며 어깨를 들췄다. 어깨에는 깃털 문신이 하나 있었는데, 사내가 그 문신에 손을 가져다 대자 문신이 사라지고 대신 새하얀 깃털 하나가 뽑혀 나왔다. 문신으로 보관하는 형태라… 점점 더 탐이 난다.

나는 그 깃털을 손끝으로 잡고 [만상공감]으로 그 기능을 읽어 냈다.

“흠… 초능력이 담긴 물건이구나.”

내 한마디에 사내의 눈이 커졌다. 지구에서는 초능력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차원 문명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의미는 ‘권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드물고 귀한 힘이었다. 그걸 단숨에 알아차린 것에 놀란 것이리라. 사내의 얼굴에 슬며시 자부심이 피어올랐다.

“이제 너도 알겠지? 그게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

“하지만 내구성이 너무 약하네. 오래 못 쓰겠어. 되팔 수도 없고… 역시 제대로 된 물건은 아니야.”

“그, 그럴 리가…….”

사내가 말을 더듬었다. 처음에 물건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해 주고 곧바로 치명적인 단점을 말해 주니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주저없이 몰아쳤다.

“일곱 알.”

사내가 펄쩍 뛰었다.

“말도 안 돼! 아무리 그래도 최소 스무 알은……!”

“아직 정신 못 차렸네. 누가 스무 알을 줘?”

사실 충분히 스무 알에… 아니 잘만 판다면 서른 알에도 팔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당장 타키온 한 알이 없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장담한다. 이 타키넷에서 상대의 다급한 상황을 알고도 제 가격에 거래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못 미더우면 지금이라도 들고 가서 다른 사람한테 스무 알 받고 팔아 보든지.”

내 말에 담긴 확신에 기가 죽었는지 사내가 엉거주춤 말했다.

“그, 그러면 얼마에 사겠다는 거냐? 일곱 알은 절대 안 된다.”

“알았어, 알았어. 열 알.”

“말도 안 돼! 최소한 열다섯 알은……!”

“열 알.”

“하지만……!”

“열.”

사내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두 자리’ 였을 것이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한 자릿수 가격에 팔 수는 없었겠지. 그래서 나는 딱 열 알을 불렀다. 애초에 더 부를 타키온도 없다. 거래가 엎어지면 다른 기회를 또 잡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세게 나갔다.

결국 사내는 고개를 떨구었다.

“네필림의 날개… 라는 것이다. 기왕 가져갔으니 잘 사용해라…….”

손바닥 크기의 새하얀 깃털이 내 손에 들어왔다. 어깨에 가져다 대니 스르르 흡수되고 깃털 모양의 문신이 남았다.

‘타키온 11알을 쓰고 돌아오려고 했는데 10알만 썼네.’

타키넷에서의 첫 번째 거래는 비용을 무려 10퍼센트나 아낀 훌륭한 거래가 되었다.

만족감이 스르르 밀려왔다.

‘밑천 마련하는 데에는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싸다!’

내구성이 떨어지는 게 흠이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득이었다. 어차피 지금 수준에서는 오래 사용할 고만고만한 장비보다는 내구성은 약해도 성능은 좋은, 굵고 짧은 장비가 더 나았다.

거래를 끝내고 터덜터덜 사라지는 후드 사내의 등을 바라보다가 나는 맹렬한 시선을 느꼈다. 까막이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고 있었다.

“뭐 궁금한 것 있어?”

까막은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을 던졌다.

“정말 여기엔 저런 보물이 흔한가요?”

“흔해. 지나가던 개새끼도 저런 물건 하나는 물고 다녀.”

“…놀랍네요. 이곳은 대체 어떤 곳인 거죠?”

“타키넷의 빈민가. 정식 명칭은…….”

나는 말을 멈추고 까막의 눈을 바라보았다.

낯선 세상에 와서 겁먹고 긴장할 줄로만 알았는데… 어떻게 된 녀석인지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 한마디가 녀석의 호기심에 불을 지핀 모양이었다.

“쓰레기 거리. 타키넷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형편없는 지역이지.”

“쓰레기 거리… 그게 이 정도라는 거죠?”

녀석은 내 말을 반복하며 미소를 지었다. 거참, 낙천적인 녀석일세.

나는 손뼉을 짝! 쳐서 녀석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자, 여기가 앞으로 네가 지내게 될 곳이야. 너에겐 지구로 돌아갈 수단도 없어.”

“뭘 하면 되죠?”

“여기 머물면서 정보들을 수집해. 어디서 어떤 물건들을 살 수 있는지. 일자리는 어떤 게 있는지. 그 정보들이 쓸모가 있으면 나는 너에게 여기서 체류할 수 있게 비용을 줄 거야.”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비용은 현물로 지급이 된다. 그러니까 너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 물건들을 제값 받고 팔아야 돼. 저 반푼이처럼 헐값에 팔면 안 돼.”

“네. 맡겨만 주세요.”

허, 이놈 보게. 나는 눈을 끔뻑거렸다.

나는 녀석을 타키넷의 현지 요원으로 사용할 작정이었다. 대놓고 이용하겠다는 선언이었고, 녀석으로서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일을 똑바로 못하면 이 낯선 곳에서 죽게 될 거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얘한테는 킬러라는 원죄가 있으니까 막 굴리려는 건데… 사실은 매우 비인도적인 처우였다.

그런데도 까막은 넙죽넙죽 대답만 잘했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잘 포장된 만년필 한 자루를 까막에게 건네주었다. 한 자루에 300만 원을 넘기는 수제 만년필이었다. 오크 던전 임무 달성 보상금으로 겨우 살 수 있었다. 하얀색 아우라를 두르고 있는 [수집물] 수준의 명품 만년필.

나는 까막에게 잉크는 어떻게 채우는지, 필감은 어떻게 느끼고 필압이 왜 중요한지 등을 설명해 주고 말했다.

“이건 마법사들에게 팔아.”

“네.”

“잘 기억해. 지구의 특산물은 이런 수공예품이야. 그 점을 강조해.”

“왜 그렇죠?”

“지구의 장인들이 만든 물건에는 아우라가 잘 깃들거든. 이 만년필에도 아우라가 있고.”

“아우라…….”

“여기 타키넷의 주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야. 지금은 그냥 외워.”

“네.”

“지금 이건 전혀 길들지 않은 물건이야. 길이 들었다면 훨씬 비싸지겠지만… 신품은 신품대로 가치가 있어. 하나당 타키온 다섯 알은 받을 수 있을 거야. 최소 그 정도는 받고 팔아. 그게 네 생활비다. 타키온 한 알이면 하루에 한 끼씩 열흘간 밥은 먹을 수 있을 거고, 네 실력이면… 7일에 한 번씩 타키온 한 알이 저절로 사라질 거야. 그건 세금이야.”

“네.”

“빠듯하게… 20일 정도 버틸 수 있겠네. 그 전엔 돌아올게. 돌아와서, 네가 모아 놓은 정보 보고 쓸 만하면 다음 생활비를 줄 거야.”

“네.”

진짜 신기한 놈이었다. 명백히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었는데도 녀석은 불만을 보이기는커녕 긴장조차 하지 않았다. 하라는 대로 다 하겠다고 척척 대답한다.

‘만약 이 녀석이 이렇게 남아서 나 대신 발품 팔아 주면… 완전 이득이긴 한데…….’

오히려 너무 대답을 잘하니 불안해졌다. 어이 너, 내 말 이해한 것 맞아?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잘할 수 있어?”

“네. 많이 해 봤어요.”

응? 많이 해 봤다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살아남으며 정보도 모으고 물건도 팔아야 하는 그런 어려운 일을? 심지어 잠은 길에서 자고 밥도 하루에 한 끼씩만 겨우 먹어야 하는데?

‘킬러여서 첩보 교육이라도 받았나?’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내 눈빛을 느꼈는지 까막이가 천진하게 웃으며 답했다.

“진짜예요. 회사 들어가기 전에 앵벌이 많이 해 봤어요.”

어?

앵벌이?

나쁜 어른들이 불쌍한 고아 데려다가 지하철 같은 데서 물건 팔게 하고 돈 뺏는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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