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좋은 친구
갑자기 던전이 열리고 괴물들이 침공을 시작한 게 1997년이었다. 벌써 20년이 지난 셈이다.
그 격동의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 성인은 물론이고 청소년들까지도 병역의 의무를 나눠져야만 했고, 그 중에서도 초능력을 각성한 이들은 던전 안으로 내몰려야만 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들었다.
싸움과 전쟁, 죽음과 부상이 야만적이고 충격적인 일로 여겨지던 시절이.
사람이 백 단위로 죽는 일이 발생하면 재난으로 여겨지고 사회 전체가 충격을 먹던 시절이.
미성년자들은 반드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믿던 시절이.
지금은 그때와는 많은 게 달랐다. 누구나 전투에 나가고, 친구나 가족 중에 반드시 전사한 이가 있을 것이며, 심심치 않게 100명씩 1,000명씩 몰살도 당했다. 그런 게 일상이었다. 어쩌면 평화로운 과거를 살았던 사람에게는 말세처럼 느껴질 정도로 큰 변화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삶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그건 지금으로부터 30년 뒤, 지구가 지금보다 훨씬 더 궁지에 몰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사람들은 먹고살아야 했고, 때론 꾸미고 데이트를 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했다. 100명씩 1,000명씩 죽으면 슬펐지만, 슬퍼도 밥은 먹어야 했으니 또 일을 하러 나갔다.
전쟁에서 패해도 일상은 일상이었고 끝장나기 전까지는 담담히 이어졌다.
달라진 건 그저 가격뿐이었다.
프로 헌터들은 던전 속으로 들어가 목숨 걸고 임무를 완수한다. 전리품을 판매한 대금과 국가로부터 받은 포상금으로 삶을 영위했다. 그렇게 벌어들이는 소득이 얼마나 될까?
D급 던전을 전전하는 3류 헌터들을 기준으로 보면 전공 점수용 공략을 제외해도 한 달에 네다섯 번 정도 던전에 들어가고, 거기서 소모품 비용을 제하면 400만 원 정도를 번다.
예비역 초능력자가 건설 노가다로 하루에 7만 원쯤 버는 세상에서 그건 상당한 고소득이지만, 전투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그렇게 큰돈도 아니었다.
바뀐 세상에서 노동의 가치는 물론 목숨의 값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모두가 안보라는 거대한 비용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임금과 기업의 이익은 하락했지만 정작 물가는 올라갔다. 폭등한 건 오로지 세금과 아주 뛰어난 극소수 헌터의 몸값뿐이었다. 대다수가 가난했고, 고되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다들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건.
모두가 나를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발아래 놓인 거대한 도끼와 갑옷을 바라보고 있었다. 던전 공무원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속삭였다.
“어째 2순위자가 1순위자보다 보상이 더 큰 것 같지 않아?”
“D급 던전에서 오파츠가 나오다니…….”
“근데 대체 오파츠가 뭐야?”
흔히 발견되지 않는 보물. 프로 헌터라곤 해도 3류에 불과한 이들로서는 그 이름조차 들어 보지도 못한 보물이었다.
그런 침묵 속에서 금천구 오크 던전을 책임지고 있는 던전 사무관이 내 앞으로 나서며 명함을 건넸다.
“반갑습니다, 헌터님. 던전 사무관 오필수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현재 2순위자인 소시민 헌터님에게는 오파츠 도끼와 갑옷에 대한 소유권이 있습니다. 3순위자인 서민서 헌터님에게는 오크 대전사의 사체에 대한 소유권이 있고요.”
소유권 분배는 1차적으로 괴물과 주고받은 에너지값(일명 딜량과 받은 피해량)을 계산하는 마누스 수정의 판정을 따랐고, 구체적인 분배 방식은 참여자들 간의 협상으로 이루어졌다.
1순위자인 최치국이 타키온만을 챙기는 것에 합의를 한 상황에서 도끼와 갑옷은 당연히 내 것이었다. 3순위자라고는 하지만 마누스 수정의 측정에서 기여도가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난 서민서는 대전사의 사체만을 갖는 것에 동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민서의 몫은 결코 작지 않았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와… 저게 다 얼마야.”
오크 대전사의 사체 하나만 해도 400만 원은 넉넉히 나올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프로 헌터의 한 달 치 월급에 육박하는 셈. 거기에 임무 달성 수당이 300만 원 정도는 될 거고, 그 밖의 오크 부산물에 대한 몫을 나눠 받으면 추가로 50은 나올 터.
이번 던전행에서 서민서가 벌어들일 돈은 무려 750만 원. 프로 헌터 월급의 두 달 치에 육박한다. 말이 두 달이지, 위험한 전장을 8~10번은 가야 벌 수 있는 돈이라 생각하면 엄청난 것이었다.
서민서랑 내가 다니는 회사의 월급을 기준으로 하면 무려 네 달 치다. 그걸 하루만에 벌었다. 서민서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건 당연했다. 300만 원에 안색이 꺼멓게 죽던 녀석인데 300 하고도 450이 더 생기게 되었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그조차도 내가 챙긴 오파츠 두 개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던전 공무원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시민 헌터님,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오파츠는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구매합니다. 도끼와 갑옷을 합쳐서 삼천오백만에 구매하겠습니다. 물론 세금은 없습니다.”
“와아…….”
일대가 술렁거렸다. 새 물건도 아니고 오크가 쓰던 물건, 심지어 그 크기가 너무 커서 사람이 쓰기엔 어려운 물건이었다. 기껏해야 연구용으로 쓰이고 분해해서 팔아 치우는 데 쓰일 물건인데, 그게 3,500만? 서민서랑 내 월급으로 치면 2년 치 연봉에 근접한다. 서민서조차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장담컨대, 이보다 비싸게 쳐 주는 곳은 없을 겁니다. 저희 정부는 침략자들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이렇게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는 사무관. 그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정부보다 비싸게 사 줄 곳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스물한 살의 애송이인 내가 발품 판다고 해서 넘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지금의 내가 3,500만보다 더 비싸게 팔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주위를 슥 둘러보았다. 그중에서도 유독 근질근질한 표정으로 서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20대 후반, 잘나가는 탐험가처럼 턱수염을 기른 잘생긴 헌터였다. 헌터 무리 중에서도 오파츠가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봤던 인물. 그가 복잡한 눈빛으로 오크 대전사의 도끼와 갑옷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보물 사냥꾼 김민수.’
처음에는 아리송했는데 자세히 보니 확실했다. 보물 사냥꾼. 온갖 던전을 전전하며 던전의 비밀과 보물을 캐내는 족속.
지금이야 3류 수준이겠지만 나중에는 1류 소리를 듣게 되는 실력자였다. 지난 생에는 한두 번 정도 던전공략도 함께했던 사이였기에 늦게라도 알아볼 수 있었다. 물론 그때는 그쪽이 갑이고 내가 을이었지만…….
나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뭔가를 갈등하는 듯하던 그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 날 바라보았다. 허공에서 우리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의 얼굴에 어떤 결심이 스쳐 지나갔다.
“선생님!”
그가 빠른 걸음으로 내 앞에 와서 섰다.
[보물 사냥꾼 김민수.]
돈은 별로 안 들였을 것 같지만, 공들여서 디자인한 티가 나는 명함을 건네며 그가 말했다.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이런 오파츠에 환장하는 사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4,000만, 아니 4,500만에도 팔 수 있습니다! 수수료는 안 주셔도 됩니다! 이런 물건 취급하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기회가 될 수 있어서……! 믿어 주십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보통 이렇게 접근하는 사람은 90퍼센트는 사기꾼이고 나머지 10퍼센트만이 싹수가 보이는 인재였지만… 물론 김민수는 후자다. 슬쩍 웃음이 나온다.
‘일이 이렇게 풀리네.’
나의 초능력 [만상공감]에는 많은 돈과 자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돈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불리는 데에는 ‘좋은 친구’가 필수인 법. 나는 기꺼이 그의 손을 잡았다.
“나흘. 나흘 안에 4,500만. 해내면 수수료로 300만 드릴게요.”
김민수는 수수료가 필요 없다고 했지만, 한 번 보고 말 사이도 아닌데 그렇게 야박하게 굴 수는 없지. 해야 할 일을 잘한다면 그 대가는 남부럽지 않게 지불한다. 그게 ‘측근’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니까.
“아니, 선생님……!”
닭 쫓던 개가 된 던전 사무관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정말 감사합니다!”
김민수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어두운 골목길에 뜬금없이 나 있는 새카만 철문이었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표시와 함께 ‘조용한 사무소’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대체 뭐 하는 곳인지 호기심이 들면서도 어쩐지 음침해서 그 앞을 빨리 지나가고 싶어지는 그런 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안은 생각보다 깔끔하고 쾌적하다. 대리석 바닥에, 조명도 환하고 잘 가꿔진 화분도 있다. 복도를 쭉 따라 가장 깊숙한 방까지 들어가면 명품 소파와 기품 있는 나무 책상이 있고, 그곳에 바로 조용한 사무소의 대표인 허묵이 있었다.
“우리 친애하는 신규 고객님께선 뭐 하고 계시나?”
분명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는데, 어디선가 유령처럼 대답이 들려왔다.
“오늘은 금천구 오크 던전에서 오파츠를 가진 오크 대전사를 처치했다고 합니다.”
“휘유- 그 나이에 대단하네.”
허묵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대리석 바닥 위로 늘어진 책상 그림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각도가 1도 정도 어긋나잖아. 자세 똑바로 안 잡아?”
“잘못했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스르르-
책상 그림자가 물결치듯 일렁이더니 미세하게 각도를 바꾸었다. 그림자 속에서 언뜻 사람의 눈동자가 비쳤다가 사라졌다.
“됐네. 이제 자연스러워졌어.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써. 그래야 1류가 되는 거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다른 그림자들의 각도와 책상 그림자의 각도가 위화감 없이 잘 어우러지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본 허묵은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근데 우리 신규 고객님 말야. 뭐 나온 것 없어? 이상하잖아. 국가 헌터 장학생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걸 감안해도 요 한 달 사이에 말도 안 되게 강해졌단 것 아냐? 그리고 열여섯짜리한테서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나오는 거야? 부모님 집이 부자인 것도 아니더만.”
“죄송합니다. 아직 최치국에 대한 조사에는 진전이 없습니다. 다만… 어쩌면 관련이 있을 수도 있는 정황 하나를 잡기는 했습니다.”
“뭔데?”
“길동 그린블러드 던전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지. 직원 하나랑 인턴 하나가 실종됐잖아. 신규 고객님이 깐깐하게 굴면서 전수조사 요청했고.”
“그 자리에 소시민이라는 예비역 헌터도 있었습니다.”
“예비역? 근데?”
고작 예비역까지 내가 알아야 하냐는 듯한 허묵의 말투에 그림자는 빠르게 대답했다.
“그 예비역 헌터가 이번에 최치국이 들어간 D급 던전에서 2순위 기여자가 되었습니다.”
“하아?”
허묵의 눈썹이 올라갔다. 입가가 옆으로 길게 찢어지며 웃음을 그렸다.
“일주일 전만 해도 예비역 헌터였던 놈이… 갑자기 D급에서 2순위? 갑자기 터무니없이 강해졌잖아? 와… 이거 어디서 본 스토린데?”
“예. 강해졌다는 것만 보면 최치국과 비슷합니다.”
“심지어… 그린블러드 던전에 이어 금천구 오크 던전이라… 우리 신규 고객님이 주목하고 있는 던전들하고도 동선이 겹치네?”
“예.”
“냄새가 나. 진한 냄새가 나… 마침 우리 직원들도 실종이 되었고…….”
사실 너무나 조잡한 추리였다. 막연한 상관관계가 발견됐을 뿐이지 그 사이에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여전히 수많은 반론이 가능했다.
하지만 허묵은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중견 킬러 회사의 대표였고, 킬러는 육감에 충실한 족속이었다.
“그놈 뭔가 있어. 아무튼 뭔가 있어.”
“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아냐. 내가 직접 만날 테니까 이틀 내로 세팅해 놔.”
“네.”
발치의 그림자가 한 번 일렁이더니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텅 빈 방에서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허묵이 품에서 에메랄드 같기도 하고 초콜릿 같기도 한 초록빛 씨앗을 꺼냈다. 그건 최치국이 ‘말살’을 의뢰했던 세계수의 씨앗이었다.
“너희는 어떤 사람들이지? 좋은 친구? 아니면… 아. 궁금하다, 정말.”
세계수의 씨앗을 손바닥에 놓고 굴리며, 허묵은 싱긋싱긋 웃었다.
택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기대되고 긴장되는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