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놀러 왔어
물론, 닌자 갈고리는 결코 방어구나 공격 보조로 사용할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던져서 꼭대기에 걸고 끌어당겨서 벽을 올라간다는 가장 기초적인 사용법조차도 익히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런 물건을 방어구이자 공격 보조용으로 사용한다? 어지간히 피지컬이 좋아도 어림없는 소리.
하지만 나에겐 [만상공감]이 있었다. 물건과 교감하며 그 어떤 것이든 이상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해 주는 나의 초능력이 있는 이상, ‘다루기 어렵다.’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계산하에, 나는 마침내 내게 딱 맞는 닌자 갈고리 하나를 구매할 수 있었다.
바밀로사社의 핸드메이드 시리즈, 하피의 악몽. 그걸 줄여서 내가 붙인 이름 ‘악몽사슬’.
마침내 찾아낸 나의 닌자 갈고리.
그것은 묘하게 따뜻했다. 오우거의 힘줄과 태산소의 뿔을 한데 고아서 잘 섞은 후, 강철 그리고 골렘강과 슬라임합금강을 융합했다. 하피와 같은 비행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절벽 지형을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것으로, 하피의 날카로운 발톱에도 끄떡없는 내구성과 탄성, 물리 저항을 보여 준다. 무게는 일반 강철의 오 분의 일 수준으로 매우 가볍고, 사슬의 두께는 지름 8밀리 수준으로 아주 가늘었다. 끝을 살짝 늘어뜨리고 진자처럼 살살 흔들어 보면 휙- 휙- 하고 바람을 가르는 칼날처럼 완벽한 균형감을 보여 주었다.
닌자 갈고리답게 영력을 주입해서 수축시킨 채로 팔에 칭칭 감아 두면, 팔을 꽈아악 잡아 주는 느낌이 복서의 붕대처럼 든든했다.
초능력을 사용하는 장인이 손으로 직접 반죽하고 뽑아낸 합금 가락으로 사슬을 빚고, 갈고리는 망치로 단련했다. 무기도 아니면서 무려 1,079만 원이나 받는 이유가 있었다.
* * *
악몽사슬을 사 온 날부터 일주일간, 나는 수련에 몰두했다.
그 결과, 지금 ‘악몽사슬’에선 [수집물]을 상징하는 백색 아우라가 타오르고 있었다. 테두리 쪽에서부터 30% 정도는 하얗고 나머지 70%는 투명한 아우라였다.
‘30%. 적응 단계까지 길들였으니까, 당장 사용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어.’
끼릭-!
왼 주먹을 꾸욱 말아 쥐니 팔뚝에 칭칭 감긴 악몽사슬이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송곳니를 가진 짐승 같았다.
그 기세를 이어 품에서 청하를 꺼냈다. 청하의 아우라는 45% 정도 하얗게 물들었다.
‘아직도 적응 단계네… 길들이는 속도가 확연히 느려졌어. 능숙 단계까지는 진행하고 싶었는데.”
‘길들이기’는 [만상공감]이 가지고 있는 주요 효능 중 하나였다.
[만상공감]으로 물건과 교감을 하면 할수록 투명했던 아우라에 점점 색깔이 채워지며 그만큼 나에게 길이 들었다. 그리고 물건이 길들면 길들수록 나는 물건과의 교감을 통해 영력을 더 빨리 성장시킬 수 있었고, 그 물건에서 더 큰 힘을 끌어낼 수도 있었다. 그 효과는 25%, 50%, 75%, 100%를 기점으로 크게 변화했다.
테두리만 겨우 하얗던 아우라가 이제 각각 30% 그리고 45%까지 하얗게 변했다. 그 사이에 병아리 눈꼽만 하던 내 영력은 사람 눈꼽만 한 크기로 커졌다. 청하라도 50%까지 길들여서 능숙 단계로 만들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비벼 볼 만하다.’
이를 악물고 어깨에 힘을 주었다.
준비를 마치고 우뚝 선 내 앞에는 수백 년을 산 금천구 은행나무가 있고, 그 바로 옆으론 푸르른 게이트가 넘실거렸다.
여기가 바로 금천구 오크 던전의 입구였다.
“선배…….”
그런데 두 걸음쯤 뒤에서 따라오던 서민서가 착잡함과 수치스러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왜?”
“설마 진짜… 그러고 들어가는 거예요?”
서민서의 눈동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나도 나를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왼손에는 악몽사슬, 오른손에는 청하. 등에는 식량과 야전 장비들이 담긴 가방. 좋다. 든든하다.
“응. 완벽히 준비됐는데?”
“무기도 방어구도 없는데요?”
“있는데?”
“과도랑 닌자 갈고리가요?”
그렇게 지적하는 서민서는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할 것 없이 투구에 건틀릿, 갑옷에 장검과 활까지… 방어구와 무기로 꽁꽁 감싸여 있었다. 언뜻 던전과 상관없어 보이는 장비는 눈을 가리고 있는 백야의 안경뿐.
“응, 충분해.”
“아니! 원래 있던 장비들은 다 어쩌고요!”
“이거 사느라 다 팔았지.”
서민서가 자기 머리를 감싸쥐었다.
“맞다. 팔았지. 심지어 완전 좋아 보이는 브랜드 장비들까지 팔았지…….”
서민서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대신 산 게 그 과도랑 닌자 갈고리라고……?”
“응. 훌륭한 판단이었지.”
아아아. 서민서가 탄식했다.
“아. 모르겠어, 진짜. 선배가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면 진짜 같단 말이야! 아, 이건 진짜 말이 안 되는데… 이러고 오크 던전 들어가는 건 죽겠다는 건데… 아, 빨리 장난이라고 말해요!”
정신없이 말하는 녀석을 무시하고 나는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게이트 앞에 질서정연하게 도열하고 있던 헌터들이 우리를 돌아보며 한마디씩 지껄였다.
“뭐지?”
“아… 또 자살 희망자인가?”
“달랑 과도 하나라니. 참신하게 미친놈이네.”
“D급까지 와서 자살을 한다고? 신성한 노동의 현장에서 너무들 하는구먼.”
“근데 그 옆에는 뭐야? 장비를 보면 예비역 같은데… 허, 꼴에 선글라스는 좋은 것 썼네.”
“쟤 죽으면 선글라스는 내 거다. 건드리지 마라.”
“그럼 난 과도.”
“난 닌자 갈고리. 딱 봐도 저게 제일 비싸 보이는구먼.”
“보물 고블린인가?”
낄낄거리면서 우리를 깔보는 그들.
“크윽…….”
내 옆에 바싹 다가온 서민서는 그들의 눈빛에 잠시 위축되는 듯했지만, 오히려 마주 노려보며 독기를 피워 올렸다.
“누, 누가 죽는다는 거야? 선배는 이미 D급 괴수를 순식간에 토막 친 전적이 있는 사람인데……!”
아하? 말 안 듣고 까불대는 서민서가 왜 잠자코 오크 던전에 따라오나 했는데, 이제 보니 청계산 사마귀 던전에서 보여 줬던 내 실력을 믿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서민서가 아무리 독기를 피워 올려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사마귀가 수레 앞에서 뻗대는 것만큼이나 초라할 뿐이었다.
“크큭. 이봐, 아가씨. 오크가 어떤 놈들인 줄은 알아?”
“전신 갑옷까진 어떻게 이해해 보겠는데, 그 가냘픈 검을 들고 뭘 하자는 거야?”
“그걸로 오크 놈들 두꺼운 근육을 뚫을 수 있겠어?”
비웃음이 서민서에게 집중되었다.
“뭐, 뭐예요?”
“아니, 그렇잖아. 오크를 상대하려면 든든한 어깨에 중병기가 필요하다는 건 상식이라고. 그걸 몰라?”
그렇게 말하는 헌터들은 모두 무식하게 큰 클레이모어나 도끼, 워해머 등을 무기로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크고 우람한 투구와 어깨 보호대를 찼다.
그 모습은 오크를 상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략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 민첩하고 터프한 오크들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도끼. 그 도끼를 튼튼한 어깨 보호대로 비껴 내고 중량이 큰 무기를 휘둘러 단단한 오크를 제압한다. 단순하지만 효율적이라고 알려진 오크 사냥 팁이었다.
“아, 알아요! 누가 그걸 모를 줄 알고……!”
“그럼 왜 그 모양인데?”
“이익……!”
그래. 물론 서민서는 알았을 것이다. 오크 던전에 갈 예정이라는 말을 들은 다음부터 열심히 검색을 했을 테니까. 그러니까 저렇게 가지고 있는 모든 방어구를 다 차고 나왔겠지. 다만 녀석에게는 오크 사냥에 필요한 장비들을 새로 구매할 여유자금이 없었을 뿐이다.
툭 툭.
서민서가 팔꿈치로 나를 툭툭 쳤다.
‘어떻게 해요?’
입 모양으로만 물었다. 더 이상 반박할 말이 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하겠어?
“괜찮아. 내가 찌르라고 할 때 찔러. 그럼 오크도 죽일 수 있어.”
결국 오크가 아무리 단단한다고 해도 초능력자가 전력으로 뿌리는 검에는 썰리게 되어 있다. 다만 실전에서 그게 잘 안 되는 이유는 놈들이 목을 내밀고 얌전히 있는 게 아니라 민첩하고 억세게 움직이며 공격을 흘리고 튕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해결책은 간단했다. 놈들을 저항 못 하게 만들면 서민서의 검으로도 충분히 놈들을 죽일 수 있다. 특히나 한 점으로 힘을 집중하는 찌르기라면 더더욱!
촤르륵!
왼 팔뚝에 감긴 악몽사슬을 한 번 더 굳세게 말아 쥐었다.
오늘 나는 오크들을 뚫고 타키온을 손에 거머쥘 작정이었다.
“그럼 제76회 금천구 오크 던전 타격 임무를 시작합니다. 대열을 정비해 주시고… 이번에도 모두 무사 귀환 하시기를 바랍니다.”
던전 공무원이 외쳤다. D급 던전이라서 그런지 E급 던전의 공무원과 달리 태도가 정중하고 목소리엔 기백이 있었다.
척! 척!
느슨하게 풀어져 있었던 헌터들도 임무 개시 소리를 듣자마자 자세와 눈빛을 날카롭게 곧추고 앞으로 동시에 발을 내디뎠다.
“어엇.”
그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서민서를 잡아 주니 녀석이 민망해하며 웃었다. 그런데 우리 뒤통수로 못마땅해하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아… 진짜 일할 맛 안 나네. 저쪽에도 웬 어린 놈이 장검 하나 달랑 들고 나타나더니… 죽고 싶으면 안 보이는 데 가서 조용히 죽지. 던전이 장난도 아니고…….”
그 말이 분했는지 서민서의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보다 다른 말이 신경 쓰였다.
‘장검 하나 들고 온 사람이 또 있다고?’
빠르게 주위를 살펴보니 과연 무리 앞쪽에서 차분하게 걷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16살은 되었을까 싶은 소년이 방어구 하나 없이 장검 하나만 손에 쥔 채 터벅터벅 게이트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 소년은 D급 던전에 도전하기엔 너무 어렸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무장이 너무 빈약했다.
‘뭐지? 정말 자살 희망자인가?’
하지만 무언가 마음에 걸렸다.
‘어쩐지… 얼굴이 낯이 익은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에 잠긴 사이, 어느새 눈앞으로는 푸르른 게이트가 일렁이고 있었다.
척척.
우리는 약 서른 명의 프로 헌터들 사이에 섞여 D급 오크 던전에 진입했다.
* * *
금천구 오크 던전은 강동구 그린블러드 던전과 달리 입장 인원이 여기저기 흩어지지 않았다. 30명이 들어가면 30명이 다 같이 움직이게 된다. 무대는 드넓은 평야. 그곳에서 오크들과 다대다 전투를 벌인다.
임무 충족 요건은 한 사람당 오크 10마리 사냥하기 혹은 오크 대전사 한 마리를 토벌하는 것.
최초 발견 시 금천구 오크 던전에는 무려 3만 마리의 오크들이 밀집해 있었다. 일망타진을 노리기에는 예상되는 피해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지난 1년간 일당십의 정예 헌터들을 투입해 빠르게 잘라 먹고 빠지는 식으로 착실하게 숫자를 줄여 온 것이다.
그렇게 1년 동안 3만 마리가 7천 마리가 될 때까지 지속된 임무. 당연히 이 임무만 반복 참여해 온, 속칭 ‘고인물’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고인물들은 제법 텃세도 부릴 줄 알았다.
게이트를 넘어가자 눈앞으로 광활한 평원이 펼쳐졌다. 그리고 100마리는 되어 보이는 오크 무리가 마침 앞을 지나가다 말고 우리 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키는 사람들보다 조금 작지만, 덩치는 훨씬 크다. 갈색에 찰흙을 대충 뭉개 놓은 듯한 커다란 대가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위협감이 느껴졌다.
서민서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 아까 찌르라고 하면 찌르기만 하랬죠?”
“응.”
“그, 근데 오크가 저렇게 많은데 괜찮을까요?”
“우리도 서른 명은 되잖아.”
“근데 다들 우리 싫어하는데…….”
서민서의 말대로였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눈을 마주쳐 오는 사람이 없다. 다들 우리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곤란하긴 곤란하네.”
나의 이번 던전 공략 목표는 타키온을 습득하는 것.
하지만 무리에게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타키온을 발견하기도, 가져오기도 어려웠다. 무리를 내 마음대로 이끌 수 있어야 타키온이 있는 곳으로 유도를 하든지 말든지 할 테니.
하지만 그렇다고 오크들이 드글거리는 이곳에서 혼자 움직이는 건 죽겠다는 소리와 다름이 없었다.
“어쩌죠?”
서민서는 겁먹은 목소리였다. 그래서 나는 녀석을 안심시켰다.
“설득해야지.”
“어떻게요?”
“실력으로.”
내가 던진 말을 서민서가 이해하기도 전에.
“뒤쳐지면 버리고 간다!”
“뛰어! 뛰어!”
갑자기 네 명의 헌터가 앞으로 치고 나오며 전면의 오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서른 명의 헌터들이 일제히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쿵! 쿵! 초능력자들이 힘껏 디디니 푸르른 초원 위로 풀들이 뜯겨 날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일단 뛰어.”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서민서의 손목을 잡고 무리를 따라 앞으로 내달렸다.
흙먼지 냄새. 전투 직전 긴장감으로 인한 땀 냄새.
‘반갑네.’
수십 년간 전쟁터만을 전전했던 지난 생.
내겐 이런 다대다의 전장이야말로 고향과 다름없었다.
차르륵-
그리고 지금 내 왼 팔뚝에는 악몽사슬이 든든하게 감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