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좋지
“아아… 어제는 소고기에 송이버섯을 먹었던 것 같은데…….”
서민서는 고개를 툭 떨어뜨렸다.
“역시 꿈이죠? 꿈이었던 거죠? 그럼 그렇지. 나한테는 삼각김밥이 어울리지.”
녀석은 커다란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삼각김밥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한입에 삼각김밥 절반을 물어뜯으며 대답했다.
“맞아. 꿈이야. 어제 나한테 300만 원 빌려준 것도 꿈이고.”
순간, 서민서의 눈에 희번득 광기가 돌았다.
“아, 안 돼! 주, 죽여 버릴 거야!”
“뭐, 뭐야? 다짜고짜?”
“아무튼 죽일 거야!”
[만상공감]으로 전해지는 감각은 이랬다.
가슴이 아리고 심장이 쿵쿵 뛰고 식은땀이 흐른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물었다.
“너… 반쯤은 진심 같은데?”
그러자 서민서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하죠! 맞아. 시민 선배, 초능력이 최하급 독심술이죠? 똑똑히 잘 읽어요. 저 진심이에요. 그게 어떤 돈인데! 어떤 돈인데! 안 갚으면 진짜 안 돼요!”
최하급 독심술이라…….
그러고 보니 이 시기에는 다들 [만상공감]을 그저 최하급 독심술 정도로만 알았다. 나조차도 그랬다. 나중에 타키넷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보기 전까지는 그랬지.
“어어? 대답 안 해요?”
잠시 생각에 빠져 있었더니 서민서가 진짜 울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하이고… 하여튼 지지리도 가난하다. 명색이 초능력자라지만 우리 같은 최하급들은 딱히 일반인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애초에 얘나 나나 빚수저를 쥐고 태어난 애들이기도 하고.
“걱정 마.”
내가 안심시키자, 서민서가 가만히 내 눈을 내려다보다가 겨우 어깨에 힘을 풀었다.
“그럼 됐어요.”
쿵쿵 뛰던 서민서의 심장이 겨우 조금 안정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초긴장 상태였다. 그런데도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삼각김밥을 뜯어먹었다. 어휴. 그렇게 불안해하면서도 빌려줬다는 게 용하다 용해.
내가 옆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니까 서민서는 샐쭉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그런데 나는 왜 불러냈어요? 나한테 빌린 돈으로 삼각김밥 사 주러?”
“아니. 쇼핑하러.”
서민서의 눈이 가늘어졌다.
“쇼오핑? 나한테 간곡하게 300만 원을 빌려간 사람이 쇼오오오핑?”
“응. 돈 갚으려면 던전 들어가야 할 것 아냐? 살아남으려면 좋은 장비가 필요하잖아.”
“그건 그런데…….”
“그런 거지.”
“…아니, 근데 그럼 나는 왜 불러냈냐니까요? 알아서 사면 되지.”
나는 다 먹은 삼각김밥 포장지를 쓰레기통에 쑤셔 넣으며 녀석의 등을 툭, 쳤다.
“내 장비 사는 김에 네 장비도 좀 볼까 하고.”
“예에?”
내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 일단 조용하고 따라와라, 인마.
* * *
“자네… 또 왔군.”
전당포 할아버지가 흘러내린 안경 위로 나를 한 번 살피고 내 뒤를 따라온 서민서를 흘깃 또 한 번 살폈다. 서민서가 어색하게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한다.
“애인?”
나는 할아버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물건들을 꺼내 놓았다. 일일이 대답할 필요가 없다. 닳을 대로 닳은 사람들 사이에선 물어보는 사람이 상전이고 대답하는 놈이 하인인 법이다. 나는 몰라도 이 할아버지는 확실히 닳았다. 방심은 금물.
“물건 팔러 왔습니다.”
주르르 늘어놓은 물건들. 오늘 아침나절 동안 열심히 광을 냈더니 새것처럼 반짝거렸다.
장검 한 자루와 던전 소재의 까만 가죽 갑옷 두 벌이 가장 큰 물건이고, 그 밖에 비도, 각반 등의 보조 무장들도 있다. 모두 킬러들에게서 수거한 것이었다. 킬러들은 전혀 눈에 띄지 않을 만한 대중적인 공산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추적당할 염려는 없었다.
서민서는 내가 꺼낸 물건들을 보고 어디서 난 건지 의아한 모양이었지만, 눈치 있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흠…….”
전당포 할아버지는 눈을 내리깔며 물건들을 살폈다.
그래. 그래야지.
대중적인 공산품이라지만 명색이 프로 헌터급의 킬러들이 사용하던 무장이다. 핸드메이드가 아니라서 내게는 별 쓸모가 없지만, 충분히 명품으로 분류되는 브랜드 제품들이었다.
“시세 뻔히 아니까 알아서 잘 쳐 주세요.”
하지만 내가 툭 던지니까.
“시세를 알면 그대로 팔지 뭘 나더러 잘 쳐 주래?”
탁 하고 받아치는 솜씨가 역시 만만치 않다.
“그래도 한번 봐야죠. 얼마나 믿을 만한지. 계속 거래해도 되겠는지.”
“지랄…….”
할아버지는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팍팍 지으면서도 나를 내쫓진 않았다. 결국 기 싸움에서는 내가 이긴 거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좋은 물건을 보고 안 사고 배겨?
“다 해서 800만.”
하지만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그만 입맛이 뚝 떨어졌다. 하. 정말 징한 영감이네, 이거.
나는 할아버지를 노려보며 말했다.
“1,000만, 아니 1,200만은 주셔야겠습니다.”
“중고를?”
할아버지의 되물음에 나는 아무 말없이 늘어놓은 물건들을 다시 보따리에 싸기 시작했다.
“나 참. 중고? 현금이나 다름없는 브랜드 제품을 때 빼고 광까지 내서 왔더니 중고 취급을 해 버리네.”
시장통에서 성질 안 부리는 사람은 호인이 아니라 호구일 뿐이다.
잘됐다. 안 그래도 오늘쯤 한번 잡으려고 했지 내가.
화난 기색을 풀풀 풍기면서 보따리를 챙기고 있자 그제서야 할아버지가 나를 잡았다.
“아, 왜 그래. 내가 시세를 잘 몰라서 그랬지. 그래, 자네가 허튼소리 할 사람은 아니지. 1,000만으로 해, 1,000만.”
1,000만이라…….
그게 시세긴 하지만 괘씸해서 그 가격에 받을 수가 없다.
“안 해요. 한두 번도 아니고 기회만 보면 가격을 막… 됐어요. 내가 어디 갈 데가 없어서 여기랑 거래하나…….”
“에헤이. 미안해. 시세를 몰랐다니까?”
사과를 하든 말든 계속 물건을 챙기자 할아버지는 안절부절못했다. [만상공감]을 통해 전해지는 가슴을 콱 쪼이는 답답한 감각. 이건 틀림없이 불안감이었다.
나는 그 불안감을 더 조장하기로 했다.
“그래도 노인장이 운영하는 곳이라 믿고 해 보려고 했는데… 상인이 신용이 없으면 그게… 참 나.”
중얼중얼거리면서 아주 사기꾼 보듯이 했더니, 할아버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지, 그렇지. 나는 [만상공감]으로 할아버지가 지금 느끼는 감각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슬쩍슬쩍 자그마한 손짓 하나까지도 철저하게 조절했다. 꼭 말로 해야만 말이 아니다. 내 여기엔 다시는 안 온다, 소문도 나쁘게 낼 거다, 그런 느낌이 팍팍 들도록. 가슴이 철렁하도록. 온 몸으로 말을 걸었다.
결국 할아버지는 버티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을 실토했다.
“아, 알았어, 알았어. 사과의 의미로 1,200만 줄게. 그럼 나 거의 남는 것도 없어. 알잖아?”
보따리 싸서 나가 버리려는 내 팔을 잡는 할아버지.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딱 봐도 허름한 전당포. 물건들 관리도 잘 못해서 먼지 쌓인 이곳에, 내가 가져오는 깔끔하게 손질된 물건들은 즉시 판매가 가능한 상품이었다. 이렇게 브랜드 물건까지 가져오는 능력도 보여 줬는데 나를 그냥 놓친다? 그렇게까지 계산이 안 돌아가는 노인네는 아니었다.
“아, 그만 튕기고 좀 앉아 봐.”
“아… 진짜…….”
나는 못 이기는 척 인상을 팍팍 쓰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할아버지는 내 눈치를 살피며, 얼른 1,200만 원을 이체해 주었다.
“거, 주스라도 한잔하고 가.”
“됐어요.”
“한잔하고 가. 아가씨, 아가씨는 목 안 말라?”
“네? 저요?”
갑자기 서민서까지 끌어들이는 바람에 서민서가 화들짝 놀랐다. 나는 인상을 팍 쓰며 서민서를 데리고 전당포를 빠져나왔다. 할아버지는 문밖까지 따라나와 박카스 두 병을 쥐여 주며 말했다.
“또 와!”
이렇다. 막상 부딪쳐 보면 화들짝 쫄아서 안면 바꾸면서, 왜 그렇게들 선을 넘어 대는지…….
지난 생의 나는 호구처럼 세상을 위해 헌신했지만, 그때에도 거래에서만큼은 칼이었다. 거래를 잘해야 그걸 기반으로 더 많은 괴물을 죽일 수 있으니까.
그 시절, 나는 내 모든 것을 오로지 괴물을 죽이는 데 헌신했다. 시장 상인들 이익 따위 내 알 바 아니었고 정말 인정사정없이 거래를 했었다. 일단 [만상공감]이 있는 이상 거래에서 밀릴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와… 선배, 뭐예요? 1,200만 원? 요즘 뭐 범죄 저질러요? 아니, 그 전에 돈이 그렇게 많으면서 저한테 돈을 왜 또 빌려요?”
전당포를 나오자마자 서민서가 호들갑을 떨었다. 범죄보다 너한테 돈 빌린 게 더 신경 쓰이냐?
하여튼 징한 녀석이다.
“1,200이면 헌터 장비 풀세트로 사고도 몇백 남을 수준인데! 최고급 장비로 사도 되겠다! 아니지. 애초에 장비가 필요하다면서 그 좋은 브랜드 장비를 왜 팖? 아니 그것보다 대체 내 돈 300은 왜……!”
헌터 장비 풀세트라… 결국 우리 가난뱅이 서민서 씨의 상상력은 예비역들이 쓰는 장비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최고급이라고 해도 떡볶이냐 치즈떡볶이냐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캐비어는커녕 치킨까지도 생각이 못 미치는 것이다.
하지만 내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 그 탓에 지난 생에는 내 능력을 파악하는 게 늦을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계산을 해 보자.
지난번엔 과도 하나 사는 데 800만 원이 들었다.
이번엔 1,200만에 300만… 총 1,500만이 있다. 지난번 예산의 거의 두 배가 되는 이 돈을 가지고는 무엇을 살 수 있을까?
“지금 만지신 그 장갑은 597만 원입니다.”
파르르-
내 소매를 잡은 서민서의 손이 떨렸다. 녀석은 손끝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얼굴만큼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짐짓 태연한 표정을 연기하고 있는 게 대단하다.
전당포에서 자금을 마련한 이후에 바로 근처에 있는 던전숍 명품관을 찾아왔다. 돈도 많으면서 왜 또 돈을 빌렸냐며 이해가 안 간다고 징징대던 서민서는 이제 내가 왜 돈이 필요했는지 온몸으로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슨배… 미츴으요?”
얼굴은 여유롭게 생글거리면서 복화술을 하듯 잇소리를 내는 서민서였다.
“아니, 이 무슨 사치냐구요!”
그러다가 감정이 북받치는지 언성이 높아졌다가.
“슨배는 이런 허세 안 좋아흐는 줄 알았는데!”
주변을 의식했는지 다시 이를 악물고 말하다가 다시 언성이 높아졌다. 이건 단순히 내가 빌린 돈으로 사치를 해서 그런 게 아니다. 가난뱅이 서민서로서는 명품관 안에서 숨을 쉬는 것 자체가 숨이 벅차는 것이다. 일종의 패닉 상태.
그래서 돈까지 빌려서 데려온 거다. 본인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서민서는 지금보다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 가난뱅이에 겁쟁이 녀석이 스스로 나서서 장비에 투자하고 던전에 뛰어들 생각은 못 할 테니… 등을 좀 밀어 줄 필요가 있었다.
“좋은 물건을 써야 실력이 느는 거야.”
“우리 실력에 무슨… 돼지 발에 진주 목걸이 모름? 선배가 팔아 치운 중고 장비만 해도 차고 넘치는 물건이었거든요?”
“마인드가 그러니까 실력이 안 늘지.”
“하! 내가 선배보다 전사 평가가 나은데?”
아, 이땐 그랬었나?
하기야. 초능력만 봐도 [최하급 독심술] 따위보다는 [점멸]이 훨씬 더 전투에 유용했다.
서툰 목수가 연장 탓한다는 둥,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둥, 지난번에 뽀록으로 D급 잡았다고 기고만장한 거냐는 둥… 조잘조잘 떠들어 대는 서민서의 입을 막기 위해 나는 녀석의 눈에 선글라스 하나를 씌워 주었다.
“됐고, 이거 써 봐.”
“그건 만년빙 선글라스입니다. 349만 원입니다.”
“흐익! 난 선글라스 싫어한다고!”
도무지 우리를 손님으로 생각 안 하는 것인지… 선글라스를 집어 들자마자 경고라도 하듯이 가격을 말해 버리는 명품관 직원 탓에 서민서는 바짝 얼어붙고 말았다. 하지만…….
“어? 어어?”
작은 어깨가 화들짝 놀란다. 신세계를 구경하듯 좌우를 두리번거린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묘하게 차분해져 있었고, 호흡은 천천히 깊어졌다.
잠깐 사이에 한층 더 성숙해 버린 것처럼, 서민서가 내게 물었다.
“이거 뭐예요? 이거 왜 이렇죠?”
그런 서민서에게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