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7화 (7/212)

7. 청하

“전방에 섀플링 다섯 마리 출현!”

“머리 위 조심해! 해머코코넛 두 마리 이동 포착!”

“큭! 이런……! 쏜리프 세 마리 출현! 방패로 쳐 내!”

몰려드는 괴물들을 보고 처음에는 기뻐했던 예비역들의 얼굴이 점차 파리하게 질려 갔다. 불어나는 그린블러드들의 숫자가 심상치 않았다.

피이이잉-!

쌔애애액-!

급기야는 쏜리프들이 뾰족한 머리를 앞세운 채, 살벌한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타아앙-!

쏜리프를 방패로 튕겨 낸 탱거가 휘청휘청 다섯 걸음이나 밀려나고,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해머코코넛이 망치를 휘두르며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탱커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틀어 돌망치를 어깨 보호대로 받아 냈지만 우그러진 어깨 보호대 사이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전황을 살피던 원거리 딜러 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이거 못 버틴다. 구조 요청 보낼게!”

“보내! 빨리 보내!”

팅, 파아아앙!

붉은 불꽃이 키 높은 나무를 뚫고 올라가 폭발했다.

일대를 울리는 폭음과 나뭇잎들 사이로 보이는 붉은 섬광.

“엇? 구조 신호다.”

“왜 이렇게 그린블러드들이 없나 했더니 다 저쪽에 몰려 있었구만?”

구조 신호를 목격한 다른 예비역들이 구조 신호가 터진 장소를 향해 바쁘게 달려갔다.

* * *

“후우우… 이제 한숨 좀 돌리려나?”

하늘 저편으로 붉은 섬광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구조 신호. 이제야 목표한 숫자만큼의 괴물들이 모인 모양이었다.

쌔애애액-!

내가 보인 찰나의 틈을 노리고 쏜리프가 달려들었다. 커다란 나뭇잎같이 생긴 녀석의 머리에는 창처럼 뾰족한 초록빛 뿔이 달려 있고, 날아드는 속도는 석궁보다도 빨랐다.

원래 놈을 상대하는 정석은 방패로 놈을 쳐 내는 것이다. 위협적인 돌진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지는 쏜리프는 옆으로 비껴 쳐 내고 나면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때를 이용해 처리하는 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공략’이었다.

하지만 이미 [만상공감]을 극도로 발휘하고 있던 나는 그렇게 귀찮은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놈이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 이미 전부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미끄러지듯 놈의 뿔을 피하고 청하를 흔들었다. 사과를 깎듯이 놈의 잎사귀를 떠낸다.

사라라락-!

부드러운 촉감이 청아를 쥔 손아귀를 스쳐 지나가면, 피조차 튀지 않았다.

“키?”

쏜리프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나를 스쳐 지나가 땅바닥을 굴렀다. 놈의 몸이 갈라지고 초록색 피가 줄줄 흐르는 건 그다음의 일이었다.

울부짖는 쏜리프를 뒤로하고 섀플링의 가지들을 셀러리 쳐 내듯이 툭툭 자르고 놈의 단단한 이마에 청하를 박아 넣었다.

퍼석!

잘 익은 수박에 박히듯 청하가 들어갔다가 나오면 섀플링은 가지들을 축 늘어뜨린 채, 스르르 무너졌다.

“후우…….”

그제야 나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 냈다. 내 주위로는 그린블러드 일곱 마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로써 해치운 그린블러드의 수가 벌써 스무 마리째.

‘이러다가 어영부영 임무도 완수하겠네.’

적당히 놈들을 몰이할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전투를 많이 치렀다. 하지만 방금 구조 신호가 터졌으니 이제는 좀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예비역들과 그린블러드들이 다 그쪽으로 몰릴 테니까.

‘어쨌든 계획대로 되고 있어. 이제 빨리 세계수의 씨앗만 챙기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뒷목을 뻣뻣하게 만드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절로 [만상공감]이 발휘되고 무언가를 날쌔게 던지는 듯한 감각이 내 사지를 휘어감았다.

타앙!

코앞으로 바람이 불었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바로 옆에 서 있던 나무가 폭발하듯 출렁이더니 천천히 넘어갔다. 얼핏 시야에 들어왔던 것은 단검 한 자루.

‘고작 단검 한 자루로 아름드리나무 하나…….’

저렇게 큰 나무는 쏜리프 세 마리가 달려들어도 넘어뜨릴 수 없다. 예비역들이 들어오는 이런 E급 던전에서는 반칙과도 같은 파괴력.

식은땀이 흘렀다. [만상공감]이 아니었다면 박살이 난 것은 나무가 아니라 내 머리통이었을 것이다.

“어? 이걸 피하네?”

황당하다는 듯이 혹은 재밌다는 듯이 갸웃거리며 나타난 건 까막이라는 소년 킬러였다.

“이상하다? 아무리 봐도 마누스는 안 익힌 것 같은데… 아저씨, 방금 그건 어떻게 피했어요?”

까막은 칼날이 30cm쯤 되는 소도를 양손에 쥐며 질문을 던졌다. 놈의 주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 듯 상이 왜곡되어 보였다. 마누스 수련법을 익힌 이들의 특징. 역시나 어린 나이와 다르게 벌써 프로 헌터급의 실력을 갖춘 놈이었다.

“대답 안 해요? 대답하면 살려 줄 수도 있는데. 아니, 아니지. 죽고 싶어 하는 아저씨니까 반대로 말해야 하나? 대답하면 죽여 드릴게요. 고통 없이. 좋죠?”

까막이 혼자 헛소리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천천히 [만상공감]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까막의 호흡과 시선, 무게중심의 이동과 근육 수축. 모든 게 내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느끼려고 했던 건 놈의 감각이 아니었다.

‘후우… 다행이다.’

다행히 걱정하던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어깨의 긴장을 살짝 풀며 놈에게 말했다.

“혼자야?”

“네? 네에~ 여친 없어요. 근데 아저씨, 과도 하나 들고 겁나 잘 싸우더라요? 진짜 죽고 싶은 사람 맞아요? 내 단검은 왜 피했대?”

긴장감 없이 헛소리를 하는 놈의 말을 듣고 있다 보니 입가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야.”

“에이. 아무리 그래도 야는 좀 그렇죠. 언제 봤다고 반말?”

“고맙다. 제 발로 찾아와 줘서.”

“헐?”

내 목소리에 실린 적의를 눈치챘는지, 놈은 황당해했다.

그래. 한평생 인류를 위해 괴물과 싸웠던 나로서는 킬러라는 족속들을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지.

무서워 보이는 선임자가 있길래 쥐 죽은 듯이 지나가려고 했는데… 햇병아리가 이렇게 혼자 나서 준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까막이가 유명한 킬러가 되는 건 앞으로 한참 뒤의 일이지 지금이 아니다.

“뭐지? 아저씨, 뭘 믿고 그래? 마누스도 못 익혔잖아?”

까막은 나의 여유가 이해가 안 가는지 내 주위를 천천히 돌며 나를 살폈다.

마누스. 그놈의 마누스.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초월적인 힘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나는 흔히 ‘초능력’이라고 부르는 타고나는 힘. 그리고 또 하나는 ‘마누스’라고 부르는 노력으로 키울 수 있는 힘이었다.

초능력의 성장 조건이 베일에 싸여 있는 지금, 노력으로 획득할 수 있는 마누스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할지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다만, 마누스를 배우는 것은 끔찍하게 어려웠다. 초능력자들조차 다수가 평생 마누스를 익히지 못했다.

그런 만큼 마누스를 익힌 초능력자는 특별한 존재였고, 그것이 바로 프로 헌터의 자격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정말 지긋지긋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타키넷에서 사귄 친구들에게 지구의 마누스를 설명했다가 얼마나 큰 비웃음을 샀던가? 마누스를 익히기 위해 수십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바쳐 온 내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얼마나 깔깔거렸던가?

마누스. 인류가 신비를 그따위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 전쟁에서 지구가 승리하기가 어렵다는 증거였다.

“나한테 마누스 같은 건 없지만… 대신에 청하와 영력이 있지.”

청하를 놈에게 겨누며 말하자 까막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깨를 움찔 떨었다.

“청… 하? 그거, 그 과도 이름이야?”

어깨를 움츠린 채로 놈의 얼굴이 울긋불긋 이상해졌다.

“푸하하하! 그리고 영력? 그건 또 뭐야? 아저씨! 중2병이야? 푸핫!”

놈은 배를 잡고 웃으며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나의 청하가…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영력이… 영력이 끓어오른다!”

“푸하하하! 으아. 오글거려. 콘셉트 진짜 오지네.”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일각사슴의 가죽을 덧대 만든 청하의 손잡이가 푹신하게 내 악력을 받아 주었다. 그 따뜻함, 그 훌륭한 그립감이 나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이 새끼가… 감히 청하를 비웃어?’

“하하. 하하… 하…….”

한참 웃어 대던 까막이 활활 불타오르는 내 눈을 보더니 흥이 깨졌다는 듯이 썩은 표정을 지었다.

“하… 근데 아저씨, 그 표정은 진짜 좀 싸가지 없네?”

쿵!

사방에서 나뭇잎들이 우스스 떨어졌다. 저 멀리 있던 까막의 얼굴이 순식간에 확대된다. 사전에 실려 있는 마누스의 정의는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게 만드는 신비한 힘 또는 그것을 다루는 기술’이었다.

그러니까 정지 상태에서 한순간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돌진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움직임이 뻔하게 읽히는 것이다.

‘애송이답다. 가장 일반적인 <대시>네.’

소위 마누스는 일종의 게임 스킬과 비슷했다. 신비한 힘, 영력을 자유자재로 쓰는 게 아니라 정해진 방식으로만 사용한다. 그렇기에 마누스는 신비한 힘이자 그것을 다루는 기술로써 정의되는 것이다. 원시적이다. 뻔히 보이는 전조, 뻔한 동선, 저렇게 정해진 방식으로밖에 돌진할 수 없다니.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하지만 딱히 피할 이유도 없다.

청하에 내 쥐꼬리만 한 영력을 털어 넣었다. 현시점에서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개념, 영력이라는 이름의 신비가 나의 789만 원짜리 과도, 청하를 일깨웠다.

‘간다, 청하야.’

우우웅-

청하가 낮게 운다.

“수박 뚫기.”

수박 시식을 권하는 과일 가게 아저씨의 손에서, 과도는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단단한 수박 껍질을 뚫는다.

과도로 선보일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럽고 효율적인 찌르기.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스킬이라고 불러도 좋은, 완벽하고 효과적인 무언가였다. 거기에 청하의 도신을 타고 흐르는 내 영력은 그 찌르기를 신비의 영역으로 온전히 격상시켰다.

쩌어엉-!

“어?”

튀어나올 정도로 커진 까막의 눈이 분명히 보였다.

놈이 두 개의 소도를 엑스 자로 교차해 나를 베어 내려던 순간, 나는 청하를 그 교차 지점으로 찔러 넣었다.

놈이 사용한 마누스는 그저 <대시> 하나뿐이고, 결국 공격 자체는 속도에 기댄 어설픈 칼질에 지나지 않았다. 무기도 그냥 그런 품질이고.

그런 안일한 칼날이 영력으로 강화되고 최선의 투로로 뻗어지는 명품 과도, 청하를 당해 낼 리가 없다.

빠캉-!

청하의 칼끝과 만나는 순간, 까막의 소도는 유릿장처럼 깨져 버렸다. 조각난 칼날이 까막의 전신을 난자했다.

“큭!”

나도 강력한 힘의 충돌로 손아귀가 조금 찢겼지만, 괜찮다. 일각사슴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청하의 손잡이가 부드럽게 내 손을 받아 주며 그 이상의 피해를 막았으니까.

덕분에 쉬지 않고 바로 다음 공격을 뻗을 수 있었다.

승부는 이미 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까막의 자신만만하고 잔혹하던 눈동자가 와들와들 떨린다. 왜? 이제 청하가 좀 무섭냐?

“으, 으아아!”

어설픈 마누스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걸까? 녀석은 자신의 초능, [염동력]을 발휘했다. 준비 과정도 없고 정해진 형식도 없이, 강력하고도 자유로운 힘이 나를 밀쳐 낸다. 하지만 소용없다.

사라락-!

손목을 부드럽게 돌렸다.

영력을 잔뜩 머금은 청하는 흉악한 [염동력]마저 사과 깎듯이 떠냈다.

그 잠깐 사이에 따뜻한 빛을 뿜어내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던 까막의 눈동자가 공포로 못 박혔다.

“과… 과도로 염동력을 잘라?”

과도로 자기 무기를 박살 낸 걸 보고도 아직 그 소리야?

뭐, 하지만 나도 제법 감탄했다.

“초능력이 두 개였어? [염력]에 [치유]. 확실히 이름을 날릴 만했네.”

하지만, 오늘은 홀로 나와 마주쳤으니…….

“잘 가라.”

“으악! 안 돼!”

놈은 초능력을 마구 휘둘렀다. [염동력]이 나를 밀쳐 내고 내가 기껏 입힌 상처가 [치유]로 다시 아문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비참해질 뿐이었다. [염동력]은 청하에 잘려 후둑 후둑 떨어지고, 하나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두 개의 상처가 생기고, 다시 네 개로 불어난다.

“안 돼… 안 돼!”

피로 목욕을 하며.

놈의 마음은 서서히 그리고 완전하게 공포로 물들었다.

아랫배에서 힘이 빠지고 뜨뜻한 물이 아랫도리를 적신다.

놈의 기억이 아주 먼 과거로 돌아간다.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비참한 결말의 이유를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아… 그러지 말걸… 다시, 다시 한번만… 만약 다시 한번만 더 기회가…….’

고통이 후회를 낳고 후회는 반성을 낳았다.

털썩.

나는 혼절한 까막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피투성이였지만, 미세하게 숨이 이어졌다. 아직 죽지 않았다.

“후우…….”

한숨이 나왔다.

사실 죽이려고 했다. 그게 깔끔했으니까. 지난 생의 까막이라는 놈이 어떤 놈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번 생의 시작부터 후환을 남길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만상공감]에는 크나큰 부작용이 있다.

“이 새끼 이거 진짜 반성하고 있잖아?”

[만상공감]은 감각에 동조하는 것. 원래라면 그 내밀한 감정과 생각을 알 수 없겠지만… 죽기 직전에 발산하는 이 폭발적인 감각은 다르다. 주마등이라고 해야 할까? 한 생애 내내 겪어 온 모든 감각이 한순간에 덮쳐 오는 듯한 이 감각의 홍수 속에서는 사실상 상대와 나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다. 생각이 들리고 감정을 겪는다.

이 새끼 정말 절절하게 반성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지난 생은 몰라도 이번 생엔 아직 살인도 안 저질렀고… 그리고…….

“망할… 다시 한번만 기회를 달라니… 그건 반칙이잖아?”

한 번 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그 심정. 나는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나는 우연한 회귀로 그 기회를 잡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죽어 가는 까막이의 중얼거림이 가슴에 닿았다.

죽여야 할 대상을 깊이 공감하게 된다는 건 정말 못 할 짓이다. 나는 놈의 품을 뒤졌다.

“없기만 해 봐라. 그땐 나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곱게 접힌 까만 자루가 잡혔다.

있네?

“하아…….”

따악!

문득 너무 얄미워서 놈의 뒤통수를 때렸다. 놈은 눈도 못 뜨고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거린다.

“어린놈의 새끼가 벌써부터 이런 흉악한 물건을 들고 다니고.”

나는 놈의 뒷목을 잡고 달랑 들어서 통째로 까만 자루 속에 쑤셔넣었다. ‘보디색’이라는 물건이었다. 킬러들의 필수품. 시체나 가사 상태의 인간 한 명을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인식 왜곡 효과도 있어서 들고 다녀도 어지간하면 들키지 않는다.

나는 자루를 어깨에 걸쳤다.

그사이 숲속은 한층 더 한산해져 있었다. 내 의도대로 헌터와 그린블러드 간의 싸움이 더 치열해진 모양이었다. 이제 이대로 세계수의 씨앗을 챙기고 떠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예정에 없는 싸움으로 인해 처리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늘었다.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보호자도 처리해야 돼.”

내키지 않았다. 솔직히 진짜 내키지 않았다.

현직에서 일하는 킬러는 애송이인 까막과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하지만 이젠 피할 수 없다. 놈을 살려 놓으면 틀림없이 사방을 들쑤시고 다닐 거다. 자칫하면 꼬리를 잡힐 수도 있었다.

‘깔끔하게 지우고 넘어간다. 둘 다 사라지면 괴물들의 이상 준동으로 사망했다고 여길 거야.’

나는 한 손엔 어깨에 걸친 보디색을 걸머지고, 다른 한 손에는 청하를 꽉 쥐었다. 진짜 킬러를 잡기 위해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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