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6화 (6/212)

6. 그린블러드

던전 입구는 파란색으로 출렁이는 게이트였다. 게이트가 파란색일 때는 내부에 있는 괴물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이때 들어가서 놈들의 개체 수를 줄이고 충분히 약해졌다 싶을 때 최종적으로 던전 클리어를 하는 게 안보 전략의 핵심이었다.

오늘의 임무는 일단 개체 수를 줄이는 것까지.

던전 공무원이 신호를 주었다. 우리는 일제히 포탈을 향해 달렸다. 다른 이들은 세 명씩 모여서 손이나 어깨를 맞대고 달렸고 나만 혼자 달렸다. 철컹철컹- 칼과 보호구가 부딪치며 만들어 내는 소음이 요란하다.

“우와아아!”

“아아아아!”

긴장을 떨치려는 건지, 누군가 소리를 지르자 다른 이들도 따라서 함성을 질렀다. 파란 포탈은 성문처럼 거대해서 백여 명이 일제히 달려들어도 넉넉했다.

꿀렁꿀렁-

점액질 괴물처럼 꿀렁대며 달려드는 사람들을 삼키는 포탈. 마침내 내 몸에도 그 꿀렁이는 것이 닿았다. 남태평양의 바다 한복판으로 뛰어든 듯, 사방이 파랗고 포근하다.

쏴아아-

하지만 편안한 부유감은 잠시, 물이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휘릭- 반전하더니 높은 나무들이 가득한 숲속 한복판이 나타났다.

타앗-!

“후우…….”

재빨리 몸을 뒤집어서 가볍게 착지했다. 다행히 부상을 입지 않았다.

숲속은 적막하고, 축축한 공기를 통해 생명력 왕성한 나무들의 향기가 쌉싸름하게 풍겨 왔다.

저절로 긴장이 된다.

나무가 많고 생명력이 왕성하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현재 우리는 그 왕성한 생명력 속으로 뛰어든 침입자들일 뿐이니까.

“일단은… 출구를 파악해야지.”

근처에서 가장 커다란 나무를 골라 기어올랐다. 그래도 나름 능력자로서 일반인들보다 월등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무렵에야 겨우 나무의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다.

아찔하게 높은 나무 위에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던전의 하늘이 으레 그렇듯 태양이 없었다. 실리콘처럼 희뿌연 하늘이 전체적으로 은은한 빛을 뿌리고 있을 뿐. 그중에 지구로 향하는 게이트가 있는 곳에는 몹시도 그리운, 바다처럼 푸른 빛이 석양처럼 내리고 있었다.

“저쪽이네.”

출구 위치를 파악하고 난 뒤, 방향을 살폈다.

“어디 보자… 나무들이 가지를 길게 뻗은 쪽이 남쪽이지.”

나무들은 태양을 따라 가지를 뻗기 때문에 남쪽 가지가 무성했다. 던전에는 태양이 없지만, 어째서인지 나무들은 지구와 다를 바 없이 한쪽으로 가지를 무성하게 냈다. 때문에 던전 속의 환경은 구현된 세상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다른 세상의 일부를 떼어 온 것이라는 가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아무튼… 가지 방향으로 본 결과 출구는 남동쪽이었다.

“출구가 남동쪽이라는 건, 세계수의 씨앗은…….”

나는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반대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쩐지 주변보다 더 키가 큰 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 북서쪽. 그린블러드 던전의 코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

수십년 전의 기억이지만 여전히 생생했다. 그곳에 세계수의 씨앗이 있다.

“아저씨!”

막 방향을 잡고 이동하려는데, 누군가 큰 목소리를 냈다. 언제 괴물들이 습격할지 모르는 장소에서 저렇게 대놓고 소리를 치다니?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까만 가죽 갑옷을 입은 소년이 나무 꼭대기, 가느다란 가지에 사뿐히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 정말 죽고 싶어요? 제가 죽여 드릴까요?”

천진무구하게 빙글빙글 웃고 있는 꼬마. 시선이 마주치자 등골이 쭈뼛하고 당겨 왔다. 진득한 살기. 심지어 강하다.

‘위험…….’

무시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를 자극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만사에 의욕 없는 사람처럼 손을 흔들어 주고 나무 아래로 내려갔다.

“아저씨! 저 아직 사람 안 죽여 봤단 말이에요. 네? 진짜 안 아프게 해 드릴게요!”

멀어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소리치는 소년. 그 옆으로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까막아, 나대지 말고 임무에 집중해라. 새로운 고정 고객이 생길 수도 있는 중요한 임무다.”

“아, 그래서 바로 안 죽이고 묻는 거잖아요.”

“아예 눈에 띌 짓을 하지 마.”

“아, 진짜. 선배! 고작 E급 던전에 우리 둘이 들어왔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사수면 사수답게 이럴 때 저 첫 경험도 시켜 주고 그래야 되는 것 아니에요?”

“오늘은 사냥하는 날 아니다.”

“쉬엄쉬엄 찾아도 되잖아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면서…….”

“그러니까 혹시나 있는지 꼼꼼히 찾아야 돼. 잠재적 고정 고객이라고 고정 고객.”

놈들은 내가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나는 [만상공감]으로 놈들의 감각을 공유했기에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놈들의 정체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킬러들이 왜?’

인류의 명운을 건 전쟁을 하는 중이라고 해도, 아니… 오히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는 일은 더 많아졌다. 100명이 죽어 나갈 갈등을 1명의 암살로 갈음할 수 있다면 아주 효율적인 것이니까. 킬러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킬러들은 강했다.

‘프로 헌터…….’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다가 전공 점수 때문에 1년에 십며칠씩 강제로 던전에 들어가는 예비역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훨씬 위험한, D급 이상의 던전을 1년에 최소 60일 이상 전전하는 자들. 던전 공략에 따른 보상금과 거기서 나오는 전리품을 팔아 고소득을 올리는 진짜배기 전사들. 그들마저 암살하는 게 킬러였다. 그 강함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나 저 까막이라고 불린 소년은… 내 예상이 맞다면 나중에는 꽤나 이름을 날리게 되는 킬러였다.

‘원래 이 던전에 킬러들이 같이 들어왔던가? 암살도 아니고 뭔가를 찾기 위해? 설마……?’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지만, 애써 침착함을 가장해 나무를 내려갔다. 발이 땅에 닿을 때쯤, 나는 최악의 가설을 정리했다.

‘하필이면 이런 별 볼 일 없는 던전에 킬러를 파견을 했다…….’

내가 아는 한 이 던전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은 하나밖에 없었다.

‘누군가 세계수의 씨앗을 찾고 있다!’

하지만 세계수의 씨앗이 지닌 가치가 알려지는 건 지금으로부터 한참 뒤의 일. 결국 자연스레 한 가지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또 다른 회귀자. 그들이 움직였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 * *

그린블러드 던전에는 그 이름처럼 초록색 피를 가진 괴물들이 등장했다. 개개의 전투력은 약하지만 이 숲속에서 싸워 보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놈들이었다.

이번 임무의 개인별 달성 기준은 종류 불문 50마리의 괴물을 처치하는 것.

위험도는 10. 사망 확률이 교통사고 확률의 열 배 정도라는 뜻이었다. 500명이 참가하면 한 명이 죽는다. 예비역 헌터들이 맡는 임무들 중에서는 상위에 랭크되는 위험도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위험한 만큼 전공 점수도 다른 임무보다 후하게 떨어졌다. 짧고 굵게 전공 점수를 모으겠다는 성격 불같은 사람들이 이런 임무에 지원한다.

그런 만큼 이곳의 예비역들은 빨리 머릿수를 채워서 빠져나가겠다는 투쟁심이 철철 끓어넘쳤다. 내 눈앞에 있는 파티들도 그랬다.

퍼억-!

까앙-!

“조심해!”

“뚫어!”

“잠깐만! 우리 너무 이목을 끄는 것 아니야?”

“아직 괜찮아! 차라리 지금 이목을 끌고 빨리 할당 채워서 나가는 게 훨씬 나아!”

“초반부터 파티가 세 개가 모인 건 천운이야! 이대로 좀만 무리해서 돌파하면 몇 시간 내로 임무 달성 각 잡을 수 있어!”

아홉 명의 예비역이 사방에서 몰려드는 괴물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잘 싸우네.’

튼튼한 방패와 갑옷으로 전면을 지켜 주는 탱커 다섯에 비싼 창을 날쌔게 다루는 근접 딜러 둘 그리고 활과 석궁을 사용하는 원거리 딜러 둘.

탱커가 다섯이나 있다 보니까 개개의 전투력이 떨어지는 그린블러드들로서는 쉽게 뚫지를 못했다. 하지만 이따금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리는 해머코코넛은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꽈앙!

탱커 하나가 허겁지겁 방패를 들어 올려 떨어져 내리는 해머코코넛의 망치를 받아 냈다.

앙증맞은 팔다리에 파인애플 같기도 하고 코코넛 같기도 한 몸통을 가진 귀엽고 동그란 괴물. 하지만 놈의 손에는 그 외모와는 달리 흉악한 돌망치가 들려 있었다.

그린블러드 던전에서 발생한 사상자의 80퍼센트는 이 해머코코넛에게 당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공격력과 은밀함을 자랑하는 놈이었다.

“크윽!”

방패가 우그러질 정도로 충격을 받은 탱커는 저릿저릿한 팔을 돌보지도 못하고 검을 휘둘렀다. 해머코코넛은 얄밉게 뒤로 물러섰다. 그 잠깐의 사이를 노리고 섀플링들이 달려들었다.

걸어다니는 묘목같이 생긴 섀플링들은 키는 성인 남성의 절반 정도였지만, 힘과 가지의 신축성이 좋아서 맞붙어 싸우다 보면 팔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짜증나는 괴물들이었다. 평소라면 탱커의 힘을 당해 낼 수 없겠지만, 해머코코넛의 공격을 막고 자세가 무너진 탱커는 놈들에게 딱 적당한 먹잇감이었다.

팍! 파팍!

“키이…….”

다행히 원거리 딜러들이 화살을 쏘아 섀플링들을 견제했다. 놈들은 가지를 휘둘러 화살을 튕겨 내며 물러섰다. 그중 가지에 화살이 꽂힌 섀플링들은 초록색 피를 터뜨리며 울부짖었다. 그 덕분에 겨우 자세를 바로잡은 탱커가 소리쳤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해머코코넛은 잡아야 돼! 놈들이 뛰어내릴 때마다 쫄려서 죽겠다고!”

“내가 태울게!”

마침 팀에 적절한 초능력자가 있었다. 원거리 딜러 하나가 활을 내리더니 해머코코넛을 쏘아보자 해머코코넛의 전신에서 화르륵 불꽃이 피어올랐다.

“키에에에!”

발화 능력을 선보인 예비역 헌터는 두통이 오는지 미간을 찌푸렸지만, 금세 후유증을 털어 내고 다시 화살을 걸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구성이야.’

이 던전 최고의 위협 요소인 해머코코넛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니,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저런 페이스로 한 8시간쯤 내리 싸우면 각자 할당량을 채워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아홉 명이서 1분에 한 마리씩 잡는 페이스면 예비역치고 퍽 괜찮은 실력이다.

‘어떻게 할까? 저들과 합류할까?’

원래의 작전은 괜찮은 파티를 발견하면, 실력을 보여 주고 거기에 합류해 전진하는 것이었다. 세계수의 씨앗이 있는 곳까지 나아가려면 혼자서는 좀 무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그랬다가는 늦을 수도 있어.’

하지만 이제는 그 계획을 폐기해야만 했다. 아까 봤던 킬러들이 마음에 걸렸다. 파티와 함께 느릿느릿 움직이다가 킬러가 먼저 세계수의 씨앗을 발견한다면? 그러면 인생 2회차가 시작부터 꼬여 버리는 것이다. 반드시 여기서 세계수의 씨앗을 확보해야만 했다.

결국 나는 더 위험하고 극단적인 방법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지만… 이번 생은 조금 더 이기적으로 살겠다고 마음을 먹지 않았던가?

‘좀 미안하지만… 너희도 빨리 할당량 채우고 싶잖아? 그래. 너희라면…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린블러드들을 불러들이며 패기 넘치게 싸우고 있는 예비역 무리를 눈에 한 번 더 담고, 나는 그들의 격전지를 우회해 넘어갔다.

이 던전의 구조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많은 그린블러드가 출몰하는 구조.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여도 그린블러드들이 꼬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후우우-

휘익-

문득 불어온 한 줄기 바람 사이로 돌멩이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섞여 들었다. 순간적으로 [만상공감]이 최고조로 발휘된다. 내 머리통을 노리는 해머코코넛의 모든 감각이 나와 공유되었다. 떨어져 내리며 균형을 잡는 놈의 짧은 팔다리, 놈의 손에 들린 돌도끼의 감촉 그리고 내 머리통을 바라보는 놈의 시선.

‘잡았다.’라고 외치는 듯 놈의 팔근육이 확신에 차서 돌도끼를 내리찍을 때, 내가 먼저 그 감각의 틈새를 치고 들어갔다.

휘릭!

딱 한 발자국이었다.

옆으로 비켜서며 청하를 휘둘렀다. 손잡이의 길이 11cm, 칼날의 길이 15cm. 작고 날렵한 과도를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따악! 내리쳤다. 사과를 쪼개듯이.

쩌억-!

짜릿한 손맛.

“키렉…….”

초록색 피가 후드득 떨어졌다, 앙증맞은 팔다리에 동글동글한 해머코코넛이 쩍 갈라져 초록색 내부를 드러낸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예비역 헌터들을 쩔쩔매게 하는 해머코코넛도 지금의 내게는 원 킬이다.

하지만 이런 놈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많은 괴물이 나타나기 시작할 거란 말이지.’

그래서 최대한 놈들을 끌어내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릴 작정이었다.

나는 널브러진 해머코코넛의 시체를 끌어서 적당한 곳에 던져 놓았다. 놈의 초록색 피가 내 몸에 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썼다.

그린블러드들은 초록색 피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기 때문에 저렇게 시체를 던져 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 그린블러드들이 다 이쪽으로 몰려들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도착한 놈들은 또 다른 곳에서 풍겨오는 초록색 피 냄새를 맡게 될 것이다.

헨젤과 그레텔의 빵 조각처럼, 징검다리를 놓듯 놈들의 시체를 던져 두면 놈들을 한 장소로 모을 수 있다.

작전은 간단했다.

‘최대한 큰 소란을 일으켜서 후방의 그린블러드들을 전방으로 빼내고…….’

그때 나는 후방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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