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VIP 차원 쇼퍼-2화 (2/212)

2. 회귀하다

서민서.

같은 회사 1년 후임이자 고등학교 2년 후배였다.

고등학생 때 같은 방위조에 속하면서 이래저래 많이 친해졌다. 성적도 우수했고 [점멸]이라는 초능력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생긴 것도 귀여워서 인기가 많았다.

나중에 그 시절을 돌이켜보며 ‘내가 걜 좋아했었나?’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얘가 젊어서 죽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서러웠다.

“선배! 정신 차려요!”

그런데 죽은 지 30년은 된 녀석이 지금 내 뺨을 치네?

“서민서?”

나 죽었나? 그렇지 않다면 죽은 서민서가 어떻게 내 앞에 있지?

귀신을 본 기분이다.

그런데 서민서는 와들와들 떨리는 내 눈동자에서 뭘 느꼈는지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내 등을 짝! 소리 나게 때렸다.

“아! 고맙긴 한데 지금은 그럴 때 아니니까, 정신 차리라고요!”

지 기분에 따라 한 문장 속에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는 근본 없는 말투. 서민서가 틀림없긴 한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알아요, 알아. 내가 남자한테 고백받은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그걸 몰라?”

아니, 알긴 뭘 알아?

“선배 맘 안다니까? 알겠는데 지금은 일단 가요. 고백은 살아난 다음에 하든지 말든지 하고!”

내가? 너한테 무슨 고백을? 그런 적 없는데?

아니, 그 전에 넌 죽었잖아?!

뭐지? 몰래카메라인가? 꽁트인가? 지구가 멸망하고 있는데?

혼란에 빠져서 어버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무겁고 아프게.

“가요… 응? 내가 특별히 선배만큼은 긍정적으로 생각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지금은 도망치는 것만 생각하자고! 네? 아직 안 끝났어요! 제발… 벌써 죽을 것처럼… 그러지 말라고! 응?”

돌연, 가슴이 미어지게 아팠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아니었다. 내 초능력 [만상공감]으로 인해 눈앞의 서민서가 느끼고 있는 ‘감각’이 공유된 것이다. 그런데 서민서는 왜 이런 고통을 느끼지? 어디 다쳤나? 아니… 이건 감정 반응으로 인한 고통인가? 슬픔……? 초조함……?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지금 상황은 무슨 농담 따 먹는 상황도 아니고,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눈앞의 서민서는 현실이었다. 그녀에게서 전해지는 이 통증이 그 증거였다.

…왜?

그녀가 왜 고통스러워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만상공감]은 고통이라는 ‘감각’을 공유받는 것이지 고통을 일으키는 생각과 감정 그 전체를 공유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장이 뛰는데, 이게 사랑에 빠져서인지 아니면 겁이 나서인지 바로 분간이 안 된다는 의미다. 뭐, 격렬한 감정이 마구 폭발을 할 때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긴 했지만… 보통은 불가능했다.

그때 문득 왼쪽 허벅지가 화끈하게 아팠다. 어? 이건가? 하고 서민서의 허벅지를 보았지만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허벅지의 고통은 서민서의 것이 아니었다. 그제야 내 허벅지를 보았다. 길게 찢어진 옷, 뚝뚝 흐르는 핏물.

상처를 입은 건 나 자신이었다.

“으음…….”

신음이 절로 나왔다.

상처 자체도 심각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상처 부위였다.

왼쪽 허벅지.

던전에서 기동성의 저하는 치명적이다. 보통은 낙오와 사망으로 귀결되는.

그러니까 나는 지금, 생환이 불가능할 수도 있는,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제야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서민서가 고백이니 뭐니 헛소리를 했던 건, 죽어 가는 나에게 어떻게든 기운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 하여튼 30년 만에 다시 봐도 유머 감각이 떨어지는 녀석이었다.

“아……!”

그때, 나는 지금 상황이 ‘언제’인지 깨달았다.

2017년 3월 29일. 청계산 사마귀 던전.

서민서가… 죽은 날.

30년 전의 일이었는데 어제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던전을 스치고 가는 바람 소리. 이 지독한 냄새. 왼쪽 허벅지의 통증. 모든 게 소름 끼치도록 똑같다.

‘이거… 진짜인가?’

그제야 바벨의 탑 앞에서 들은 의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분명… [회귀]라고 했었어.’

회귀를 했다고?

만약 그렇다면 이제 곧 나타날 시간이었다. 서민서를 죽게 만든 그것이.

끼르르르륵!

파라라라락-!

포크로 칠판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고음과 함께, 지저분한 날갯소리 같은 것이 동굴 안을 가득 채웠다.

“미친! 또 나타났다고?”

“시불… 엄청나게 크네.”

“이게 어떻게 E급 던전이야? 던전 공무원들은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나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던 동료들이 일제히 멈춰 서서 악다구니를 썼다.

우리의 앞을 가로막은 건 2미터가 넘는 거대 사마귀였다. 놈은 유일한 통로를 가로막은 채, 지저분한 날개를 떨어 댔다. 사신의 낫과도 같은 두 개의 앞발이 희미한 불빛 속에서 번뜩였다. 그 거대함, 꿈틀거리는 힘.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숨이 턱 막혔다. 저건 D급 괴수다. 예비역 능력자에 불과한 우리는 절대 이길 수 없다. 30년 전의 나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

그리고 그때, 서민서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 지금은 똑똑히 들었다. 서민서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내가 막아야 돼…….”

그건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항거 불가능한 적을 만나 파티가 전멸할 위기에 빠졌을 때, 누군가가 희생해서 나머지를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한다.

누가 시키거나 눈치를 줘서 하는 게 아니다.

그때가 오면 저절로 알게 된다. ‘아, 이번엔 내가 희생할 차례구나.’ 서민서는 바로 그걸 느꼈고, 주저없이 행동했었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놈을 붙잡고 [점멸]을 사용했지. 생명력을 태워서 불가능할 정도로 먼 곳으로 공간을 도약했어… 우리를 추격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서민서는 내 기억에 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제가 막을게요! 다들……!”

하지만 나는 그 꼴을 두 번이나 보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헛소리 집어치워.”

스르릉-

칼을 꺼냈다. 부축받고 있던 팔을 뿌리쳤다.

“어, 어? 어딜 가는 거야?”

나를 부축하고 있던 또 다른 동료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하지만 대답할 겨를은 없었다.

욱씬-!

걸음을 옮길 때마다 왼쪽 허벅지를 타고 짜릿한 고통이 치솟았다. 하지만 괜찮다. 눈앞의 거대 사마귀는 기껏해야 D급 괴수. 30년 전의 우리에겐 재앙이나 다름없는 괴수였지만… 이게 정말 회귀이고, 내가 기억하는 30년의 세월이 사실이라면… 내가 저까짓 곤충 하나를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직 나의 초능력 [만상공감]은 제대로 성숙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 사용법만큼은 제대로 알고 있으니까.

절뚝이며 사마귀를 향해 걸었다.

놈과 나의 간격은 스무 걸음.

[만상공감]을 극도로 발휘했다. 스물한 살의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운용이겠지만… 무리하지 않고서는 이길 수가 없다.

쓰르르르-

온몸을 타고 가느다란 떨림이 퍼져 나간다. 이 떨림은 내 것이 아닌, 사마귀의 것이다. 사마귀의 호흡, 사마귀의 무릎에 실리는 무게, 놈의 앞다리에서 팽팽하게 당겨지는 근육, 그 하나하나가 내 것처럼 느껴진다.

절뚝절뚝.

열 걸음.

치르르르륵-!

몸을 타고 흐르는 떨림이 점점 격렬해졌다. 놈이 자세를 낮추고 무릎에 힘을 모은다. 놈이 나를 관찰하고 있다.

일곱 걸음.

꾸득!

나는 검 손잡이를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30년 만에 잡아 보는 구식 장검인데도, 평생을 함께한 애병처럼 손에 착 감긴다. 찌르면 콘크리트 벽을 뚫을 수 있고 베면 아름드리나무를 자를 수 있다. 이 검은 내가 바라는 그대로 움직여 줄 것이다. [만상공감]의 공감 능력은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는다.

‘뭐… 그래 봐야 딱 [습득물] 수준이지만.’

그 직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바로 지금!

휘청! 쓰러지듯 몸을 앞으로 던지며 오른발로 땅을 강하게 디뎠다. 다시 허리 힘으로 상체를 튕겨 올리며 칼을 휘둘렀다.

스칵-!

거대 사마귀의 날카로운 앞발이 내 머리카락만을 겨우 베고 지나갔다. 피했다!

‘당연하지.’

나는 놈의 공격 타이밍을 [만상공감]으로 정확하게 읽어 냈다. 이미 알고 있는 공격에 맞을 이유는 없다.

반면에 나는 놈이 신경 쓰지 못했던 감각의 사각지대를 파악했다. 약점을 노리는 치명적인 일격!

촤아악-!

내 칼이 놈의 배를 찢었다.

사마귀의 쩍 벌어진 배에서 지저분한 체액이 후드득 떨어졌다.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사마귀가 느끼는 떨림이 찌르르하게 등줄기를 떨고 지나간다.

‘여기서 끝이 아니야.’

나는 긴장을 놓지 않고 그대로 칼을 미끄러뜨려 다시 방향을 잡았다.

콱!

서걱!

푹, 푹!

괴수는 튼튼하다. 배 한번 썰었다고 죽지 않는다. 나는 연달아 사마귀의 머리를 찍고, 목을 치고, 더러운 날개를 찢고, 등줄기에 칼을 박아 넣었다. 놈은 2미터가 넘는 몸을 무력하게 떨며 죽어 갔다. 온몸에서 느껴지던 사마귀의 떨림이 점차 잦아든다.

“후욱… 훅…….”

죽였다.

확신과 함께 집중이 깨어지는 순간, 머리가 띵하게 어지러웠다. 휘청, 쓰러지려는 몸을 간신히 가누고 호흡을 골랐다.

[만상공감]을 무리하게 운용한 반작용이었다.

극심한 탈력감. 땅이 발목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고작 이 정도 초능력을 썼다고 이러는 거야?’

스물한 살의 나는 진짜 약해 빠졌었구나.

나로선 씁쓸하고 부끄러운 심정이었는데, 동료들이 볼 때는 그렇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미… 미친.”

“시불…….”

“와… 이게 뭐야? 소시민 씨, 이거 우연이야? 방금 무슨 프로 헌터 같았어!”

동료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서민서도 죽은 사마귀와 나를 번갈아 돌아보며 입을 벙긋거렸다.

“시, 시민 오빠?”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새 나왔다.

서민서가 살아 있다. 어쨌든 오늘은 내가 서민서를 살렸구나.

평생을 아득바득 싸워 2류 헌터가 되었던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뿌듯했다.

어쩐지 이 상황과 내 이름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 소시민蘇颸旼.

아득바득 살아왔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인생을 살았던 남자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하지만 이게 정말 회귀라면… 모든 기억을 가진 채로,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 거라면……! 이번엔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선선한 바람 시颸, 가을 하늘 민旼.

부모님이 남겨 준 이름의 본뜻처럼 막막하고 암울한 현실에 숨통을 탁 틔워 주는, 선선한 바람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

나는 서민서를 돌아보았다. 동그란 눈으로 아직까지도 사마귀와 나를 번갈아 보는 모습이 귀엽다.

녀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민서야.”

“어… 어?”

“부축 좀 해 주라.”

“아, 아, 여기요.”

서민서가 나를 부축했다.

“와… 소시민 씨, 초능력은 최하급 독심술 아니었어? 전투엔 거의 도움 안 된다고 들었는데… 어쩜 그렇게 귀신같이 움직였담? 설마 괴물의 마음을 읽은 거야? 역시 죽음의 순간에서 한계를 뛰어넘는구먼!”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고마워요, 소시민 님!”

동료들은 아까보다 훨씬 희망적인 얼굴이 되었다. 사기가 치솟았다.

‘살아남을 수 있다.’

‘모두가 함께 이 던전을 빠져나갈 수 있다.’

생각이 달라지니, 움직임부터가 달랐다. 적극적이고 신중하게 주변을 경계했고, 잰걸음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들 눈을 반짝이며 빛이 흘러나오는 던전 입구를 향해 걸었다.

다행히, 이제 별다른 위험이 없을 것이다. 30년 전엔, 죽은 서민서를 제외하면 다리를 다친 나조차도 별 탈 없이 던전을 빠져나갔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탈출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덕택에 나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여긴 어디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일단 한 가지는 분명했다.

‘바벨의 탑에서 진행 중이던 극비 프로젝트가… 회귀였어.’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종의 수를 써서 시간 자체를 되돌린 게 틀림없었다. 분명히 의문의 목소리는 ‘회귀’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지금의 상황 자체가 그 증거였다.

‘마지막 순간에 나를 회귀에 끼워 넣었다. 고작 2류 헌터인 나를.’

그렇다면 나 말고 회귀한 사람은 또 누굴까?

흑색전선의 권승리? 대기사 군다르? 성녀 나타시아? 그도 아니면 대마도사?

그럼… 그런 전설적인 영웅들이 나와 같이 회귀해서… 결국엔 모이게 되는 건가?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

‘허…….’

거기까지 생각하니 심장이 와들와들 떨리는 것 같았다. 방금 내가 떠올린 이들은 나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들이었다. 그런 영웅들이? 나랑 같이? 아무리 내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도… 거기에 낄 급이 되나?

그러고 보면 의문의 목소리도 분명 그렇게 말했다. ‘속아 줄 수밖에 없다.’

‘그놈도 확신은 못 했다.’

당연하지. 당장 나부터도 확신을 못 하겠다. 나는 고작 2류 헌터였을 뿐이니까.

‘그러고 보니 회귀 비용이 저렴하다고도 했었지?’

결국 영웅들을 회귀시키는 와중에 싼 맛에 나까지 끼워 넣었다는 소리였다. 어쩌면 나와 같이 회귀했다는 영웅들은(그게 한 명일지 다수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존재조차 알지 못할지도 몰랐다. 어쨌든 나는 계획에 없는 추가 인원이니까.

‘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건 또 자존심 상하네.’

하지만 그래도.

‘고맙다.’

덕택에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내 앞에 펼쳐진 제2의 인생.

‘지난번과는 많이 다를 거다.’

나는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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