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프롤로그
참 거지 같은 삶이었다.
“아씨… 어딨지?”
품을 뒤져 밀봉되어 있던 연초 하나를 꺼낸다.
“햐… 냄새 좋네. 역시 비싼 물건은 달라.”
던전 부산물로 만든 연초라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다.
불을 붙여 크게 빨아들이고, 후- 숨을 뱉으면 사우나처럼 연기가 무럭무럭 난다.
“인생 마지막 사치네.”
빌어먹을 시대였다.
하루가 다르게 침공하는 괴물들. 매일 죽어 가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각성한 초능력 [만상공감].
타자他者의 감각을 내 것처럼 느끼는 그 초능력 때문에… 주변 사람이 죽을 때마다 나는 반쯤 미치광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니던 회사도 때려치웠다. 슬픔과 복수에 눈이 멀었다. 괴물 한 마리라도 더 죽이려고 형편없는 재능으로 아득바득 싸웠다.
그렇게 30년. 피땀으로 이뤄 낸 결과가 지금이다.
전투를 업으로 하는 초능력자 중 10퍼센트 안에 드는 존재. 나름 전문가라고 불려도 괜찮은 경력.
그래서 2류 헌터였다.
10퍼센트라는 건 어떻게 보면 대단해 보인다. 학교 다닐 때였다면 반에서 3, 4등쯤 하는 실력이니까.
하지만 실상 한군데 모아 놓고 보면, 널리고 널린 그저 그런 솜씨일 뿐이다. 일반인은 손도 못 대는 무서운 공을 던지는 사람이 리그에서는 반푼이 취급을 받다가 쫓겨나듯이… 유명 게임의 천상계라는 사람들이 10퍼센트 안에 드는 실력자인 플래티넘 티어를 브실골플이라고 싸잡아 무시하듯이.
그냥 그랬다. 2류헌터라는 건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인력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난 엑스트라였다.
내가 있으나 없으나 달라질 게 없는 싸움이었는데… 나는 거기에 내 모든 걸 희생했네?
진작부터 각오는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전부 허탈하고 억울하다.
“후우-”
한 모금을 깊게 빨고 아직 길게 남은 연초를 던졌다. 지평선 너머로 괴물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개새끼들. 좀 마저 피우게 해 주지.”
등 뒤로, 바벨의 탑에서 영력靈力이 줄기줄기 분출되고 있었다.
극비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 우리는 저것을 위해 죽지만 정작 저게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탑의 영력은 점점 격렬하게 폭발했고, 그 영력에 이끌린 괴물들은 물밀듯이 몰려왔다.
목숨을 바쳐 놈들을 저지하는 것, 그게 바로 엑스트라인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다들 만싱창이가 된 몸으로 무기를 들었다. 난전 중에 이리저리 섞여 들다 보니 하나같이 모르는 얼굴들이다.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만큼은 다들 비슷했다. 모두가 최후를 직감하고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능력은 지금처럼 쓰는 게 아니었는데…….’
나의 초능력 [만상공감]은 너무 느리게 발전했고.
참고할 만한 지식이나 선례도 없었고…….
나는 나의 가능성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만약, 다시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럼 지금보다 한 백 배쯤은 더 행복하지 않을까? 훨씬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정말… 그랬을까요?]
너무나 자연스럽길래, 나도 모르게 속으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어쩌면 완전 사기급 능력으로 키웠을지도 모른다. 진짜.’
[그런데 지금은 그냥 2류 헌터잖아요?]
‘별수 있어? 처음부터 방법이 틀려먹었는데… 그놈의 마누스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날려 먹은 세월이 십 년, 이십 년이냐?’
[마누스가 왜요? 기적을 가능하게 하는 신비한 힘. 또는 그 힘을 다루는 기술. 그야말로 신비의 결정체잖아요?]
‘뭐? 너 지금… 잠깐? 당신 뭐야?’
처음에 나는 그게 내 마음의 소리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절대 할 리가 없는 말을 꺼냈다. 소름이 확 끼쳤다. 마누스가 왜 문제냐고? 내가 그것 때문에 삽질한 게 얼만데……! 누구야? 아무리 2류라지만 나도 초능력자인데 어떻게 내 머릿속을 이렇게 쉽게……!
[흠… 뭐, 일단은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능력이 있고 그 능력 탓에 이렇게 거대한 가능태를 지니고 있다, 뭐 그런 얘기군요. 여전히 마누스가 왜 문제라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뭔 잡소리야?
머릿속에서 안 나가?
[믿어지진 않지만… 댁의 가능태가 너무 엄청나서 어쩔 수가 없네요. 어쩌면 그분보다도 더 클지도… 이건 속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당신의 회귀 비용은 아주 저렴해요. 당신이 엮은 인과는 참 보잘것없으니까요.]
뭐? 보잘것없어……?
‘너 설마… 지금 내 인생이 엑스트라 인생이었다고 막 그렇게 대놓고, 막 막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니지?’
[아뇨? 맞습니다. 엑스트라.]
‘뭐, 인마?’
[그래도 덕분에… 빠듯하게 당신도 끼워 넣을 수 있겠군요. 좀 무리를 해야 하긴 하지만.]
‘끼워 넣어? 아니 뭘 맘대로… 야, 너 안 꺼져? 일단 나와 봐.’
하지만 놈은 끝까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방금 막, 당신의 회귀를 결정했습니다. 생각한 대로 마음껏 살아 보시길 바랍니다. 그게 어쩌면… 세계를 구할지도 모르니까요.]
결정? 회귀?
네가 뭔데?
그게 내 마지막 생각이었다.
아아아아-
4중창, 16중창, 64중창-
돌연 귓가로 폭탄과도 같은 화음이 스쳐 지나갔다. 바벨의 탑에서 시작된 새하얀 폭발이 온 세상을 물들였다. 코앞까지 짓쳐 들어온 괴물들도, 이를 악물고 마주 달려 나가던 헌터들도 모두 새하얀 빛에 묻혀 지워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30년 전.
스물한 살의 내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