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돌아온 뒤]
유성원 헌터가 귀환한 이후 세계는 또 한 번 뒤집히게 되었다.
유례없는 ‘코어 던전’ 연속 클리어를 한 자이며, 올림푸스 길드도 처리 못하던 궁극의 멸망급 성좌인 성좌 영원한 분노를 완벽하게 지구에서 몰아낸 자로서 이젠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류의 영웅이자 인류 최강의 헌터, ‘지구의 수호신’이라는 이명이 모조리 붙게 되고, 또한 이 ‘지구’의 사도로서 선택받은 군대를 이끄는 그를 거역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수많은 기자들과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그와 만나기 위해서 줄을 서고, 뉴스 및 매체에서 러브콜이 쇄도했지만 유성원은 그것을 거부한 채 건강 문제를 핑계로 평양 사령부에 머물면서 한가롭게 8년간 못다 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나의 자매여! 저승에 가면… 너의 역기봉을… 내가 들어 줄…….』
『언니!』
“이 시리즈, 부활해서 정말 다행이야. 흑흑흑…….”
비 오는 전장을 배경으로 두 여성(?)이 뜨거운 우정을 나누고, 죽은 언니의 바벨봉을 들어 올리며 일어나는 장면에 유성원은 감격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오랫동안 애청하던 예능이 끝났었지만 자신이 ‘코어 던전’을 다녀온 8년 동안 드디어 시즌 2가 나왔었고, 현재 그는 그것을 정주행 중이었던 것이다.
누가 봐도 세계 최강의 헌터이자 인류의 수호신, 별의 수호 기사라는 남자의 모습이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저거 대체 무슨 재미로 보는 거예요? 웃음 포인트도 모르겠고, 어디가 감동적인지도 모르겠어.”
“그보다 저 늘어난 러닝셔츠에 줄무늬 사각 팬티 차림은 대한민국 아빠 국룰이라서 저러는 건가요? 예전엔 분명 저러지 않은 것 같았는데…….”
“아, 그건 어제 엄마랑 밤새도록 보냈으니까 그거 때문 같은데?”
“…저기, 얘들아, 약속 시간은 한 시간 뒤이지 않니? 왜 벌써부터 와 있니?”
8년 만에 가족 상봉을 한 만큼 시간을 그들에게 쓰는 거야 당연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약속 시간을 정해 두었기에 어제 격렬한(?) 밤을 보내고 자고 일어나서 ‘아주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저러니 압박이 돼서 결국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당연히 8년 만에 보는 거니까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으려고 하는 거죠!”
“…아니, 이제 어디 안 간다니까. 멸망급은 다 사라졌고, 기껏해야 남은 급들은 인류 통합으로 해결 가능한 수준이잖아. 그리고 국제 정세는 뭐, 내가 오니까 그냥 다 대가리 박는 형세이고 말이지.”
“성좌 영원한 분노에서 뭘 얻어 왔는지 모르니 두려워하는 거죠.”
그 말대로 성좌 종말자의 유산만으로 이미 한발 더 빠른 군사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는데, 거기에 성좌 영원한 분노까지 잡고 나온 상황이면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세계는 알아서 유성원에 대해 더 이상 대항하거나 거역할 생각을 버리고 다들 눈치만 보면서 그에 대해 알아내려고 난리였던 것이다.
“얻어 온 거라……. 별건 없고… 그냥 자기들 다시 부를 수 있는 권리라나? 초대장이래.”
“별로 좋지 않네요.”
“진짜 망하면 쓰라고 줬던 거니 말이지. 사실 내가 이긴 것도 아슬아슬하게 턱걸이한 거고 말이야.”
“너무 겸손한 거 아니에요?”
“하지만 이게 사실인걸? 하아암~ 아무튼 그렇게 고대하고 있는 귀여운 아이들이 있으니 일어날 수밖에 없겠네. 읏챠. 아, 물론 재영아, 너도 귀엽단다.”
“…그냥 남녀 차별을 해 주세요, 아버지. 이상한 의미로 들립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유성원은 결국 벌떡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마친 뒤, 아이들과 함께 사령부를 나섰다.
모두 다 실제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었지만 다들 유성원을 따랐으며 이제는 오랜 시간 동안 가족으로 보냈기에 다들 어색함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오히려 집단에서의 소외감을 미묘하게 느끼는 것은 유성원 본인일 정도로 말이다.
‘뭐, 8년이나 던전에 짱박혔었으니 어쩔 수 없지. 교감이고 뭐고… 얘네가 성장한 것도 못 봤으니 말이야. 오히려 아빠 취급해 주는 게 기묘할 따름이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또또 쓸데없는 생각 하는 거 아니죠?”
“아니, 그러니까 다들 너무 몰라보게 커서… 아직도 위화감이 가시질 않아서 말이야. 이전에도 아빠 노릇을 못했는데… 다 큰 너희에게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슨 말씀이세요. 아영이는 모르지만! 저희는 아빠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는데요! 그런 말씀 마세요.”
“아니, 오히려 은혜를 받은 것에 대해 그렇게 강박관념을 안 가져도 된단다. 아빠라는 건 그저 너희를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고, 너희를 구한 것은 나를 구한 것이기도 하니까…….”
던전과 몬스터 잡이에 바빠서 아버지다운 일도 제대로 못한 것을 내내 자각하고 있었기에 아이들에겐 부담을 갖지 말라고 계속 이야기하는 유성원이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평양 사령부로 나가니 거기엔 미리 준비된 외출용 트레일러가 있었는데, 그 앞엔 깔끔한 양복 차림을 한 낯선 청년들 셋이 쭈뼛거리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음? 저기, 댁들은 누구신지?”
“처, 처음 뵙겠습니다! 인류의 수호자이신 유성원 헌터님! 저, 저는 저기 유하영 양과 교제 중인 이경훈이라고 합니다. 그… 지, 직업은 A급 헌터이며, 성좌님은 없습니다. 그… 그리고……!”
“하?”
“안녕하십니까! 저는 유수영 양과 교제 중인 홍준철이라고 합니…….”
…난데없는 사내놈들의 자기소개에 유성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일단 처음 충격받은 것은 역시 8년이라는 시간 차이는 극복하기 힘들다는 점이었고, 둘째는 아직 마흔도 안 된 자신이 마치 장인어른 포지션이 된 것 같은 데 대한 충격이었고, 셋째는 이걸 지금까지 감춘 아이들의 표정이었다.
“어… 으음… 교제. 그렇지. 얘네도 애들은 아니니까… 으음… 그렇지, 그렇고말고……. 8년이나 지났으니 거의 10년이라 치면 강산도 바뀔 시간이니까 그렇지, 그렇지.”
“아빠? 그… 오늘은 그냥 소개만 시키려고 온 거니까요. 그러니…….”
“그래, 소개… 중요하지. 그렇지. 아주 중요하지. 하지만 역시 사내끼리 진정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한번 겨뤄 보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아빠?”
쿵!
자기도 모르게 티탄의 말뚝을 꺼내는 유성원. 그의 앞에 선 청년들은 그것을 보며 기겁했는데, 세계 최강의 헌터가 무기를 뽑기도 뽑았고,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투기가 일반 헌터 레벨을 아득히 상회했기 때문이다.
이제 SS급을 넘어 세계의 누구도 최초의 SSS급 헌터 지정을 거부할 수 없는 레벨을 안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고, 딸내미들은 모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빠를 말리려 하는데, 뒤에 있던 유재영만이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했다.
“봐, 내 말 맞잖아. 소개를 하려면 난동 부릴 수 없는 호텔 같은 데 가서 해야 했다니까…….”
“보고만 있지 말고 말리는 것 좀 도와줘. 아니, 아빠! 방금까진 아빠 대우가 어색하니 뭐니 했으면서 이럴 땐 왜 그러세요?”
“그건 그거고, 이건 보호자로서의 책무란다. 그… 누구더라? 그 제우스의 꼬추인지 딸딸이인지 하는 놈팡이 같은 놈이 붙으면 안 돼서 말이지.”
고오오오오!
그렇게 말하며 투기를 높이는 유성원. 인사하러 온 세 청년은 파래진 안색으로 살기 위해 각자 무기와 방어구를 꺼내 들며 각자 교제하는 여성진 쪽에 구원 요청을 보냈지만, 셋 다 미안하다는 표정만을 지으며 유성원을 말려 보려고 애쓰지만 당연히 무리였다.
“자, 그럼 시작할까? 정말 다행이네. 미리 나와서 약속 시간까지… 보자. 30분 여유 있으니까 딱 30분만 솜씨 구경하자. 응? 잘 버텨 봐. 도망치는 것도 OK란다.”
“도, 도망쳐! 빨리!”
“흩어지자! 그게 그나마 살(?) 확률이 높아.”
“…(이미 도망치는 중).”
그렇게 결국 평양 사령부엔 아주 작은(?) 사고가 일어나게 되었고, 아빠(?)의 책무를 다하려는 유성원의 난동으로 인한 피해가 조금… 아니, 많이 일어나서 유청과 신소미에게 혼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
이틀 뒤, 아이언 포트리스.
성좌의 배 속 안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백가연은 현재 아이언 포트리스에 머물면서 몸을 회복하고 다시 자신의 일을 하는 중이었다.
8년이나 성좌의 배 속에서 보내고 다시 나온 세상은 확실히 예전보다 나아진 상태여서 보람을 느끼는 것은 물론 그래도 역시나 할 일은 많아서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지만, 그래도 이런 풍경을 보니 일단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광경은 별로 좋지 않구먼.”
“히이잉… 자식새끼들 다 키워 봐야 소용없어.”
눈앞에 자신을 구해 주고, 현 인류 최고, 최강의 영웅인 유성원이 추하게 훌쩍거리면서 책상에 엎어져 있는 이 광경만 빼고 말이다.
분명 이젠 예전보다 훨씬 나아져서 자신의 책무와 인류와 정의에 대해 알고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바뀐 건 좋았지만, 고작 8년 만에 돌아온 가족들에게 사윗감 문제로 혼났다고 이렇게 질질 짜는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자네가 키운 자식도 아니지 않은가? 8년이나 던전에 짱박혀 있었으면서 말이지.”
“사실… 그게 맞는 말이지만 말이죠. 하아아~”
“아무튼 돌아가면 사과하고 식사나 같이 하면서 풀게나. 기껏 살아 돌아왔는데, 이제 와서 사이가 틀어지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예, 그렇게 하죠.”
“그건 그렇고… 이제부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세계 최강의 헌터이자 그 어느 국가도 범접하지 못하는 세력을 갖추게 된 유성원 헌터님?”
무려 2개의 멸망급을 없애고 돌아온 최강의 헌터. 올림푸스 길드도 멸망해 버렸으니 이제 그의 독주를 방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계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으음, 별로 생각해 둔 건 없어요. 당분간은 말이죠.”
“당분간이 어느 정도지?”
“죽기 직전 정도?”
“그게 뭔가, 대체~”
“어차피… 제가 뭘 바꿔 놓아 봐야 그건 제가 살아 있을 때까지만이에요. 차라리 지금 저는 최대한 손 안 대고 바라만 보고, 자기들이 알아서 바뀌게 해야죠.”
예전의 무책임한 태도와 일견 별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는 듯 아무 힘도 없는 서민이었을 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아서 무의미한 것이었고, 지금은 무기를 살짝 휘두르기만 해도 세계가 요동칠 정도이니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에서 그 의미가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백가연은 기껏 고민해서 나온 게 그런 의견이자 미심쩍은 눈빛을 했다.
“여태껏 했던 눈치 전략 말인가? 이때까지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다를 게 없진 않죠. 예전엔 그래도 상대해 볼 만한 자가 그랬는데, 지금은… 대항도 불가능한 압도적인 권력자가 그러니까요. 아, 물론 보험은 만들어 둘 거예요. 이거 보세요. 제가 이번에 마정석이랑 돈을 투자해서 공중 전함을 만들어 볼 계획인데요.”
“보험이 아닌 것 같은데? …자네, 혹시 그냥 이대로 두면서 싸움 기회를 만들어서 날뛸 생각인 겐가?”
“…아뇨아뇨. 하하하. 그럴 리가요. 어디까지나 보험이죠. 예, 보험요. 아무튼~ 여기에 개량형 블랙 칼리버 탄환을 실은 주포를 좌우에 각각 4개씩! 그리고 안에는 종말기장과 아칼론의 데이터를 통해서 자율 기동형 인간형 부대를 만들 거예요. 이름도 정했어요. 성좌 종말자와의 싸움에서 희생한 아칼론을 기리는 뜻에서 아칼론 기사단. 전함 이름도 아칼론 호!”
“그거… 정말로 보험 맞나?”
“예, 보험이죠. 보험 맞다니까요.”
“…….”
아무리 봐도 새로운 장난감을 만드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 유성원의 모습에 백가연은 여전히 미심쩍은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어차피 저런 기술 개발은 이러나저러나 해야 할 문제였기에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진 않았다.
그렇게 오늘도 평화로운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