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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282화 (282/293)

[282화]

“근데 어떻게 뇌 쪽으로 가지?”

“두뇌에 산소를 공급하는 길을 먼저 찾아야겠지요. 이 거대한 성좌 영원한 분노의 신체 구조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요.”

성좌의 진체가 일반적인 생물 구조를 따를지가 의문이었지만, 일단 일반적인 상식에서는 그렇게 가야 한다는 걸 알려 주는 유청이었다.

“이 위인 입천장을 뚫는 건 안 되려나?”

“가능은 하겠지만… 문제는 덩치가 워낙 커서 말이죠.”

“시험해 보자. 블랙 칼리버 준비!”

일단 심플한 방법을 생각해 낸 유성원은 곧바로 포격을 지시, 머리 위로 검은 폭발이 일어나며 입천장이라 생각되는 부분에 구멍을 뚫었다.

피와 살점의 비가 내리는 동시에 블랙 칼리버의 폭발 범위만큼 구멍이 생겼지만 거기에서 또 괴수들이 쏟아져 내렸고, 거품이 부글부글 끓더니 재생까지 시작되었다.

“이건… 안 될 것 같네. 젠장! 적들 숫자만 늘었네!”

“예, 폐하. 뚫고 가려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저 재생력이 장난 아닙니다.”

“역시 성좌의 진체라는 건가……. 무조건 맞는 길을 찾아서 가라는 거군. 흣챠! 진짜 끝도 없이 몰려드네!”

어디로 가야 두뇌로 향할 수 있는지 모르는 시점에서 난감해하면서도 유성원은 계속해서 괴수들이 달려드는 것을 처리했다.

기사단의 성소도 통하지 않는 이상 결국 이 어두운 난관을 직접 돌파해야만 했다.

치열한 접전 속에서도 일단 조명탄과 레이더를 사용해서 최대한 시야도 밝히면서 조심스럽게 전진했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이렇게 소모전만 해선 안 될 텐데 말이지. 뭔가 방안이… 음? 저거 뭐지?”

“저건… 벌레 같습니다만?”

그렇게 한참을 싸우던 중 유성원은 살의 벽에 붙어서 기어 다니는 벌레 같은 것을 찾아냈다.

물론 형태가 벌레라는 말이지, 실제 크기는 인간보다 훨씬 커다랄 것으로 예상되는 사이즈로 거리가 꽤 되는데도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발견된 벌레는 지나다니는 괴수의 혓바닥에 잡아먹혀서 그대로 사라졌지만, 이건 꽤 중요한 단서였다.

“…하긴 체내니까 기생충이랑 세균 같은 게 있겠지? 근데 잠깐만, 저렇게 큰가?”

“성좌 영원한 분노의 진체가 크니 그에 맞는 사이즈가 된 거겠죠.”

“깊게 생각하면… 지는 거겠지. 아무튼 두뇌로 갈 단서는 잡았네.”

“단서만 잡았을 뿐, 실제 루트를 찾는 건 더 걸리겠지요. 벌레는 이곳에서 ‘살아갈 뿐’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저 사이즈면 그래도 길 문제는 없겠군요.”

괴수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래도 인간보다 훨씬 거대한 사이즈인 만큼 저 벌레들이 다니는 길이라면 충분히 유성원과 기사들이 이동할 수 있는 루트가 될 것이다.

또 여차하면 임시로 길을 뚫어서 재생하기 전에 이동하는 방법도 있기 때문에 확실히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 유성원은 기사들에게 지시해서 아까 전에 본 체내에 사는 기생충들을 본격적으로 찾아 나섰다.

***

일주일 뒤, 대한민국 서울 시청.

세계 각국의 대표들과 성좌의 사도들이 신아영의 초대를 받아 모두 모이기 시작했다.

천만다행인 것은 아프리카를 포함해서 모든 세계의 사절들이 그녀의 초대에 응했고,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모였다는 점이었다.

그들에게도 현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라든가, 어쩌면 이게 인류 최후의 국제 회의가 될지 모른다는 게 느껴졌을까? 아무튼 우선적인 조건이 채워졌다는 것에 신아영과 신소미는 만족해했다.

“…휴우~ 빠진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엄마. 아프리카, 미국, 중국 공산당, 러시아, 유럽 연합, 남미 등등… 올 수 있는 이들은 모두 다 온 것 같아요. 아프리카 쪽이 참여한 게 정말 의외이긴 하네요.”

유일하게 멸망급 성좌가 건재한지라 지배를 받고 있어서 안 올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아프리카 쪽 대표들도 와 있는 것을 보며 안심하는 신아영이었다.

“그렇구나. 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인 거 알지?”

“예! 후우우우~”

신아영은 크게 심호흡하면서 회의까지 남은 시간을 체크했다.

앞으로 30분 뒤, 저기 모여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인류’를 위한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 그녀로선 마음이 무거웠다.

현재 전황을 살펴보자면 여전히 유성원은 성좌 영원한 분노의 입안에 들어가서 아무 소식이 없었으며, 올림푸스 길드는 성좌 복수의 티탄과 피 토하는 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올림푸스 길드… 예상 이상으로 고전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엄마.”

“성좌 영원한 분노의 두 번째 머리가 지상에 강림했을 때 먹힌 천공섬과 헌터들의 피해가 막심했다고 하는구나.”

“아아… 그때…….”

백가연 어르신이 당하던 바로 그 순간, SS급 몬스터를 잡기 위해 모여 있던 헌터와 천공섬이 일제히 먹혀 버리면서 생긴 전력 공백에 올림푸스 길드는 현재 성좌 복수의 티탄에게 크게 고전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성좌 제우스도 사라진 판국에 대규모 전력의 공백은 성좌 복수의 티탄을 드디어 지상으로 해방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이 그래서 고민이 많다더구나. 성좌 복수의 티탄은 나오자마자 공개적으로 올림푸스의 성좌만 없애면 이 별에 용무는 없다고 하는 판국이고, 올림푸스 길드는 그동안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 것과 미국을 여전히 세계의 기둥으로 만든 점을 고려하라고 압박하고 있고 말이지.”

“어느 쪽이든 난감하겠네요.”

“그래서 지금 미국이 여기에 참석한 거지. 아무튼 이 회의, 쉽지 않을 거란다. 인간은 여태까지 피해를 입지 않고서 재앙을 막은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사실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그 참혹한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난 뒤 지금 기어이 제3차 세계 대전이라 불릴 수 있는 아프리카-유럽 전쟁이 일어났다.

이걸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막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오히려 성좌 영원한 분노가 나와 줘서 막아 준 게 다행일 정도였다.

“그래도… 해야죠. 그럼! 가 볼게요!”

“그래, 잘하렴. 우리 딸.”

마지막 점검을 끝내고 난 뒤, 신아영은 옷매무새를 추스르며 드디어 회의장으로 향했다.

서울 시청에서 대절한 대회의장 안에 모여 있는 세계 각국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몰렸고, 자신보다 훨씬 어른인 그들의 시선에 신아영은 또다시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참아 내야 했고, 이겨 내야만 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저희의 초청에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신아영. ‘별의 수호 기사’, ‘평양 사령부 및 신도시의 대표’, ‘북부 중국 국방자문위원장’, 그리고 ‘인도…….”

근 몇 년 만에 부쩍 늘어난 유성원의 칭호와 각종 직함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이 그 대리자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는 이 회의 자체가 유성원의 뜻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는 수이기도 했다.

만약 이 회의가 갓 20대 소녀가 연 것이라는 걸 알면 생각 이상으로 무시당할 게 뻔했기에 아버지의 위세를 좀 빌리고자 한 것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인류에 미친 위기 상황에 국가적 이해관계를 넘은 대응을 위함입니다. 부친께선 얼마 전 방송으로 자신이 들어간 이후 인류에 대한 걱정을 하셨듯이 성좌의 시대 이후 커진 증오, 각종 파괴적인 행위를 하는 적과 성좌의 지배 아래 혼란되어 온 인류의 정체성 등등… 많은 문제를 쌓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일부는 번영했지만 결국 인류 멸망을 목도하게 된 상황입니다. 멸망급 성좌의 공세. 성좌의 계시와 광기로 인해 시작된 전쟁으로 이성이 마비되어 이미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과거에서부터 어리석음으로 인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 많은 교훈과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 한 번도 막지 못했던 이 분쟁을 이번에야말로 막고자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쩌면 인류는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갈지도 모릅니다. 또한…….”

미리 준비한 긴 연설문을 읽어 내려가면서 신아영은 조심스럽게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이번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유럽, 미국, 아프리카 진영 측을 슬쩍 보니 다들 굳은 표정인 채로 서로를 바라볼 뿐, 신아영의 말에 전혀 집중을 안 하고 있었다.

역시나 쉽게 풀릴 감정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고, 지금 서로 쌓인 희생도 많은 데다 아직 승자와 패자도 정해지지 않은 시점이니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정말 어려운 미션이었지만 어쨌든 시도할 것은 다 해 봐야만 했다.

“크흠! 예, 압니다. 여기 대한민국도 중국, 일본과 분쟁의 역사와 증오가 쌓여 있기에 국가적인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유럽-아프리카 간의 분쟁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 아무리 옆집 사람이 밉다고 해도 같이 사는 아파트가 무너지려는데 싸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 ‘지구’는 모두의 삶의 터전입니다. 그러니 ‘인류’의 그 어떤 분쟁과 감정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쩌잔 말입니까?”

“현재 아버님께서 성좌 영원한 분노의 하나의 머리를 향해 원정 중이시고, 올림푸스 길드는 성좌 복수의 티탄과 결전 중입니다. 아버님이 공략 중이긴 하시지만 그 성패는 불분명한 만큼 우리는 그 원정의 실패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두가 손잡아야 합니다. 뻔한… 소리지만 말이죠.”

씁쓸한 마지막 말과 함께 신아영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함을 깨달았다.

이 어른들은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을 해 봤자, 먼저 나서서 사과하거나 잘못을 인정하는 법을 잊어버린 자들이니 말이다.

그리고 말해 봤자 안 될 거라 생각하며 모두들 먼저 포기해 버린다.

그러니 방법까지 확실하게 알려 줘야 한다.

“우선 아프리카와 유럽 전선은 휴전에서 정전으로 협정을 바꾸십시오. 그리고 ‘인류의 안전이 확보되는 순간까지 다시는 선제공격 및 무력 분쟁 활동을 하지 않겠다.’라는 조약에 서명을! 그리고 여기 참여한 모든 국가들이 이 조약의 증인이 됨과 동시에 깨어질 경우 경제적, 무력적 개입을 할 것을 명시해 놓을 겁니다.”

“으으음…….”

“물론 강제로 하니 마니 하는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제안일 뿐입니다. 아니면… 더 좋은 생각이 있으면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저를 비롯해서 아버지와 우리는 그저 평화로운 내일과 번영해 가는 미래를 그리고 싶습니다. 이 절망적인 기류 속에서 파괴와 멸망을 막아 내기 위해 스스로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제안을 하기보단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내일을, 그리고 공존을 목표로 하고 싶습니다.”

제안은 어디까지나 그럴싸한 떡밥일 뿐, 진심은 이쪽이었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제안을 내놓아 봐야 어차피 지금 다들 신경이 곤두서 있고, 감정적으로 날이 서 있는 판국에선 하자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결국 감성. 감성적으로 선 날은 감성으로 녹아내리게 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오신 대표님들, 성좌님 덕분에 번영했다곤 하지만 그 번영이 오직 성좌님 때문이었습니까? 모든 것이 기술만으로 가능했던 거라고 생각합니까? 척박하고 혹독한 땅에서 도시를 가꾸고 올린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우리도 유럽 못지않게, 혼란을 멈추고 잘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

“성좌님은 ‘신’적 존재이지만 ‘신’이 아닙니다. 이미 많은 자료와 상황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분들은 저희 ‘인류’에 무조건 우호적인 분들이 아닙니다. 비단 인류를 멸망시킬 거라고 설치는 멸망급을 비롯한 악 성향 성좌만이 아니다시피 말이죠.”

“지금 우리의 신을 모독하는 건가!”

“우리의 신요? 그분은 외부의 ‘신’이지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의 성좌와 ‘별’은 이 ‘지구’이니 이 ‘지구’가 우리의 신이겠지요. 그럼 그 ‘별의 수호 기사’인 저희 아버지는 신의 사자가 되겠군요. 하지만 어떻습니까? 얼마 전 방송에서 저희 아버지가 어떤 모습을 보이셨는지 다 아시잖습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인간적인 고뇌와 불평과 불만,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털어놓던 평범한 인간의 모습.

신의 사자이니, 황금의 기사니, 아시아의 제왕이니, 최강의 무력이니, 몸에 걸쳤던 압도적인 수식어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마 그 방송을 한 본인은 자신의 딸과 주변 사람들이 이것을 이용해서 성좌의 시대를 끝내고 있음을 전혀 상상도 못하리라.

“…….”

“여러분, 한 번만 더 생각합시다. 정말… 모두 지금 생각하는 걸 바라고 있습니까? 지금 쌓아 올리고 가진 것을 모두 내놓을 정도로 상대와 공멸하고 싶습니까? 폐허가 된 지구 위에서 원시 시대나 아니면 문명의 파편만을 끌어안고 수천 년간 반복해 온 문명의 발달 과정을 다시 반복해서 또 어리석은 역사를 쌓아 나가고 싶습니까? 아니, 어쩌면 다시 반복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아무 준비도 못하고 아버지가 원정에 실패해서 성좌 영원한 분노를 맞이한다면… 거기에 늘 역사에서 해 온 잘못을 또다시 반복한다면 말이죠.”

웅성웅성.

신아영의 호소에 좌중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이야기와 전혀 다른 말들이 오갔고, 그녀의 말마따나 성좌라는 존재는 신적이긴 하지만 더 이상 ‘신’이라고 지칭할 수 없는 존재였다.

대놓고 성좌의 꼭두각시라든가, 그들이 지구에 그저 놀러 온 존재랍시고 말했다면 모욕적이라면서 감정을 드러냈겠지만 스스로 깨닫게끔 돌려서 말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그렇게 잠시 신아영이 말이 없는 사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중 하나가 손을 올리고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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