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이, 이런, 큰일이군. 설마 또 다른 SS급 한 마리가 나온 건… 빨리!’
쏴아아아아아아아!
무언가가 바닷속에 있다는 걸 알아챈 그녀는 어떻게든 주변에 의사를 전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입을 열거나 다른 수단을 써서 알리기도 전에 그 바다 밑에 있는 ‘검은 그림자’는 스스로 파도를 일으키면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었다.
‘저, 저건……!’
거대한 테라 웨일을 통째로 들어 올리면서 나타난 것은 거대한 섬. 마치 신화로 내려온 바닷속 땅이 부상하는 것처럼 실체를 드러낸 그림자는 계속해서 그 영역을 넓히며 빠른 속도로 점점 커지고 또 커지고 커져 갔다.
그 광경을 바라본 백가연은 그것이 무엇인지 눈치챘지만 이미 ‘그것은’ 그녀의 시야를 가득 메우는 것을 넘어서 주변의 바다를 모두 육지로 만들어 버리며 부상했다.
‘이건… 성좌 영원한 분노의 또 다른 머…….’
거기까지 생각하던 차, 그녀의 시야는 모두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먼 곳에서 이 광경을 보는 올림푸스 길드 사람들과 연합 함대는 경악에 빠졌다.
거대한 바닷속에서 나와 한참 싸우던 함대와 테라 웨일과 천공섬 다섯을 삼켜 버린 거대한 머리를 바라봤기 때문이다.
성좌 포세이돈의 결계에서 발악하는 성좌 영원한 분노의 머리보다 훨씬 더 큰 괴수의 머리였던 것이다.
“맙소사… 이게 무슨……. 아! 이럴 때가 아니지! 피해는? 피해 상황을 보고해라! 게, 게다가 저건 대체 뭐냐?”
“그, 그게… 이, 일단 저, 저저… 저건! 분석 결과… 성좌 영원한 분노의 머리입니다! 판별, 분류, 분석 모두가 같습니다!”
“뭐? …그럼 설마?”
“예. 성좌 영원한 분노가! 진체(眞體)인 머리를 하나 더 불러낸 겁니다!”
보고를 들으면서도 함대 사령관은 충격이 너무 큰지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늘을 뚫을 듯 뻗어 올라간 크기도 크기였지만, 단숨에 거대한 바다 위에 섬이 하나가 떠오른 것 같은 성좌 영원한 분노의 진체의 위용에 너무나 작은 인간의 존재라는 것이 느껴지는 건 물론 천공섬들이 먹히거나 그 진체의 몸부림에 맥없이 부서지는 게 경악스러웠다.
“설마 이런 수를 쓸 줄이야…….”
“성좌 포세이돈 님의 결계가 위험합니다! 파괴율 급상승! 테라 웨일과는 차원이 다른 압력과 힘이 가해지면서 붕괴 앞으로… 앞으로… 아니! 지금 파괴됩니다!”
“아르테미스의 천공섬, 아레스의 천공섬, 헤르메스의 천공섬! 아폴론의 천공섬, 헤라의 천공섬! 및 기타 헌터들 및 먹혀 들어간 이들의 신호가 모두 끊겼습니다! 또 결계가 부서지면서 안에 있던 성좌 영원한 분노의 진체와 괴수들이 모두 나오는 중! 함대 피해 파악은 아직 되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나 급박해서…….”
“하데스의 천공섬은 지금 붕괴 중! 무너집니다! 이런 제기랄! 그리고 성좌 포세이돈의 결계도! 지금 막 붕괴되었습니다.”
[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크오오오오오오옹!]
자신의 승리를 알리는 듯 천지를 울리는 성좌 영원한 분노의 포효가 세상에 울려 퍼진다.
결계가 부서지면서 나온 다른 하나의 머리와 함께 두 머리는 마치 자신들에게 저항한 인간들을 비웃은 것인 양 포효했고, 그들의 몸에서 숨어 있던 벌레가 튀어나오듯 A급, S급 괴수들이 떼로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괴수들이 몰려오는 중! 그리고… 그리고! 전열은 이미 붕괴가 된 상황이라 현 시점에서 대응하기 힘듭니다!”
“성좌 영원한 분노! 현재 입을 연채로 포식 중! 머리 둘로… 바다를… 바다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아니, 머리 하나가 더 나온다니! 이런… 이런 일이…….”
올림푸스 길드의 간부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성좌 영원한 분노의 진체를 바라보았다.
머리 하나를 더 부를 수 있던 거라면 왜 굳이 지금까지 이렇게 번거롭게 한 것일까?
지금까지 저 신은 그저 자신들을 갖고 놀았던 것일까?
2개의 진체는 이제 인간을 비웃는 것을 멈추고, 더 이상 싸울 의사를 보이지 않고 본래 하던 ‘별’의 포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바닷물이 끊임없이 빨려 들어간다… 대재앙이… 시작된 거야.”
“이제… 이제 어떻게 하지? 일단 미국 본토에 있는 길드에 연락을 넣어서 추가 지원 요청을… 그리고 다시 봉인을… 위해 해상 기지에 연락…….”
“본국에서 보고가 왔습니다. 타르타로스에서… 성좌 티탄의 복수가 다시 대규모 침공을 개시했다고 합니다.”
“…….”
어떻게 이토록 아귀가 딱딱 맞을 수 있단 말인가? 성좌 영원한 분노가 풀려난 것도 모자라서 그 타이밍에 맞춰서 성좌 티탄의 복수까지 침공하는 최악의 상황.
성좌의 시대 초기조차 있지 않았던 거대한 재앙의 홍수. 이것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사령관은 멘탈이 무너지는 것을 간신히 다 잡고 연락할 수 있는 곳에 모두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론 유성원의 지시로 원정에 참여한 함대에서도 일제히 이 사실을 그에게 알리며 일단 후퇴하기로 하였다.
***
같은 시각.
대한민국, 평양 사령부.
“뭐?”
한창 열심히 일하던 유성원은 방금 들은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전해 온 사람에게 되물었지만, 전달한 이는 안타까운 얼굴을 하면서도 다시 한 번 유성원에게 태평양 바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된 겁니다. 그… 래도 저희는 후방에서 괴수들을 잡다가 물러날 수 있어서 안전했지만, 어르신이… 천공섬에서 올림푸스 길드를 지원해 주다가 그만…….”
“젠장! 아니, 대체 무슨 상황이기에 연락도 안 하고! 그런 건 미리미리 알렸어야지!”
“그게… SS급 몬스터 테라 웨일과 SS급 몬스터 테라 블루윙 자체는 충분히 대응 가능한 수준이어서…….”
“젠장! 옆에 기사까지 뒀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젠장!”
사실 유성원이 보낸 함대와 군대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문제는 백가연 어르신의 실종이었다.
SS급 몬스터가 둘이나 나온 상황에서 베테랑 헌터인 그녀가 손을 보태 주기 위해 천공섬으로 가서 사격 지원을 하다가 새로이 튀어나온 성좌 영원한 분노의 두 번째 진체 머리에 그대로 먹혀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혀서… 끝장났다는 건가? 하지만 내가 옆에 붙여 둔 ‘천검군 기사’는 아직도 살아 있는 반응이던데? 그… 뭐라고 해야 하나? 아직 그 괴수 같은 놈의 배 속에 살아 있는 건 아닌가? 하지만 기사단의 성소 포탈은 열리지가 않으니, 이거 참…….”
“아마 그건… 성좌의 진체의 몸 안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엄연히 그건 ‘성좌’의 육체. 다른 우주나 차원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렇군. 아무튼 이럴 때가 아니지. 일단은 어르신을 구출하든 뭘 하든 해야 하니 출동 준비해야겠네. 후우우~ 제작된 블랙 칼리버, 몇 자루나 되냐?”
“400발 정도 됩니다. 본래 목표는 1천 발이니 40퍼센트 정도입니다, 폐하.”
“그거라도 갖고 가야겠네. 하아아~ 아무튼 배랑 물자 전부 롤아웃 시키고, 출동 준비 편성해 줘. 나는 좀 더 자세히 상황 파악을 하러 가 볼게.”
유청에게 일을 맡긴 유성원은 통신을 통해서 서울과 인도, 중국, 그리고 정말 싫지만 올림푸스 길드에까지 연락을 해서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리고 곧 하나둘 화면에 띄운 모니터에 각 기관과 조직의 대표들이 모습을 보였는데, 유독 올림푸스 길드 쪽엔 오늘 단 한 사람의 간부만 남아 있는 모습이었다.
“거기 많이 바쁜가 보네요?”
[예, 많이 바쁩니다. 용건은 간단히 하시죠.]
“상황 좀 알려 주시죠. 일단 성좌 영원한 분노를 막아야 하니까요. 이미 바다가 작살나고 있으니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겠습니다. 현재 상황을 말하자면 미 대륙 전역은 물론 현재 ‘성좌 영원한 분노’의 몸에서 튀어나온 괴수들이 바다를 건너서 육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체 둘은 각각 바다에서 활동하는데, 하나는 바닷물을 빨아들이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해저 아래의 지각을 파먹는 중입니다.]
“풀려나니 본격적으로 먹는다는 건가……? 그나저나 머리가 둘이라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결정적으로 이번 일이 재앙이 된 이유는 바로 새로이 등장한 또 하나의 성좌 영원한 분노의 머리. 그런 것이 갑자기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모두가 어처구니없게 당해 버리고 전선 자체가 붕괴된 것이었다.
이때까지 한 번도 없던 일이 갑자기 생긴 것에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 유성원은 올림푸스 길드 쪽에 물었고, 그들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 사안에 대해서 저희 사제와 점술가들이 있는 쪽에 물으니 그저 ‘영원한 분노’가 대가를 지불하고 ‘자신의 권리’를 사용했을 뿐이라고…….]
“권리?”
[쉽게 말해서… 다른 ‘성좌’님들에게 로비를 해서 ‘나 대가를 지불할 테니, 이 별에 머리 하나 더 보낸다?’ 해서 승낙받고 쓴 겁니다.]
“그게 돼?”
[…‘성좌’님들끼리의 거래이고 그분들끼리 합의하셨으면 어쩔 수 없지요.]
올림푸스 길드 간부의 말을 들으니 왜 이 ‘별’이 ‘성좌’라는 존재들을 싫어하고 자신을 이용해 배척하는지 다시금 알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아무튼 그럼 결국 성좌 영원한 분노가 성좌들에게 ‘로비질’을 한 것으로 인해서 아무런 전조나 예언이나 제약 없이 저 진체의 머리를 소환하다니. 허망해짐과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결국 저 ‘성좌’님은 실컷 포식하고 있다는 거군.”
[예. 시간당… 그러니까 서울 올림픽 경기장 백하고 수십 개분의 대지와 물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나마 해저 밑을 파고들고 있고, 바다 위라서 피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대로 지각을 파고 먹어 들어가면 지진, 해일 등의 자연재해가 덮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 대륙판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아무튼 시급히 조치를 부탁합니다. 저희는 현재… 타르타로스에서 몰려오는 ‘복수의 티탄’ 때문에 힘든 처지라서…….]
“뭐… 그러도록 하지요. 그쪽도 그럼 저희가 일하는 동안에… 아시죠?”
[물론입니다.]
둘 다 이 긴급한 상황에서 서로 뒤통수치지 말자는 암묵의 합의를 하게 되었다.
물론 사실은 칠 틈도 없는 거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아무도 모르는 만큼 미리 합의를 해 두어서 나쁠 건 없었다.
성좌 복수의 티탄의 부하들이 먼저 빠질 수도 있고, 아니면 유성원 측이 예상보다 빠르게 던전을 깰 수도 있는 등등… 여러 가능성이 존재하니 말이다.
“자, 그럼 우리는 준비하고 가 보자. 일단 우리 조직은 다시 아영이 대행 체제로 돌아가고, 그… 다른 분들은 해안 및 성좌 영원한 분노 휘하의 괴수들에 대비해 주세요. 보다시피 태평양권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가장 먼저 공격 타깃이 될 거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비상 체제로 움직이겠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받고 통신을 종료한 유성원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가족에게 연락을 하며 준비를 시작했다.
정말로 되는 일이 없고, 사태가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서 준비를 완전히 마치지 않은 채로 성좌 영원한 분노를 상대하게 된 것부터가 마음이 무겁지만, 그것보다도 유성원을 불안하게 만드는 건 역시 백가연 어르신의 안위였다.
“후우… 어르신, 무사하시려나.”
자신의 인생은 물론이고, 지금 자신이 힘들어도 이렇게 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 은인인 그분. 이 세상이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생각하는 인간으로만 가득하다고 믿었던 유성원에게 그 반대의 모습을 보여 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자 존경할 수 있는 분이었기에 유성원에게는 생각 이상으로 큰 의미를 지닌 사람이었다.
“어르신… 죽지 마세요. 어르신 같은 사람이 있어야 나도 일할 맛 난단 말입니다……. 아! 어? 아영이냐? 아빠다. 알다시피 지금 비상이 걸려서 말인데…….”
유성원은 전화를 받은 아영이에게 지휘권을 이임하고는 곧바로 출동 준비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