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킬리만자로 시티, 스카이스크래퍼 블랙 레이더스 빌딩.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성좌 영원한 분노의 활동에 대해 알아차렸고, 다른 간부들 모두 모여서 긴장한 얼굴로 올림푸스 길드의 비밀 채널로 올라온 영상을 보며 경악하는 중이었다.
성좌 영원한 분노. 자신들이 섬기는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와 동급인 멸망급의 진체(眞體)가 뿜어내는 위용과 그 거대함에 다들 경악하며 몇 번이나 그 몸부림을 받아 내는 포세이돈의 결계였지만, 위태로워 보였다.
대지와 바다를 흔들고 하늘마저 가릴 듯한 거대한 위용, 그리고 그 아래로 몰려오는 수많은 괴수들을 보며 간부들은 긴장한 얼굴이었다.
“모를란테 부장은 아직도 병상에 누워 있나?”
“그렇다네. 아직도 병원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네.”
“그럼 이번엔 우리 넷이서 정해야겠군. 현 상황에 대해선 다 알고 있겠지만, 성좌 영원한 분노가 깨어난 긴급 상황이라 올림푸스 길드 및 유럽에서 휴전 제안이 들어왔네. 아무리 우리 검은 민족을 위한 전쟁이 중요하다고 해도… 별의 안전부터 확보해야 하는 거니 말이네.”
“음… 그럼 휴전 조약은 받아들이는 걸로?”
모여 있는 다른 회사의 네 간부들은 우선 유럽이 제안한 휴전 협상에는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하지만 이다음 사안이 더 중요한 것이었는데, 바로 이어서 전해져 온 또 한 장의 서류에 적힌 문제였다.
“그럼 이 다음 제안이 문제인데… 으음, 어떻게 생각들 하십니까? 연합군 제안 말입니다. 성좌 영원한 분노가 성좌 포세이돈의 결계를 뚫기 전에 모두 힘을 합쳐서 일단 성좌를 퇴치하자는 건데… 이쪽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휴전은 그렇다 쳐도 이 제안은 좀 그렇다고 보는데? 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릴지 어떻게 아나?”
“저도 동감입니다. 인류의 위협이 되는 적 앞에서 일단 서로 물러나는 건 납득할 수 있지만, 연합이라니요. 그래 놓고 은근슬쩍 뒤통수를 칠지 누가 압니까?”
“맞습니다.”
멸망급 중에서도 최강이자 최악의 정점을 달리는 ‘별’을 먹는 ‘성좌 영원한 분노’는 자칫 풀려날 경우 바다를 비롯한 지구를 ‘먹게’ 될 것이기에 결계가 뚫리기 전에 막는 게 가장 좋다.
만약 결계에서 풀려날 경우 바다라든가 지각을 먹어 치우면 ‘지구’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며, 환경 변화로 인한 재해가 일어나기도 하고, 또 ‘별’을 먹어 치운 영향으로 성좌 영원한 분노의 세력이 더 강성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전 인류가 협력해서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의 부하이자 이번 아프리카-유럽 사태를 시작한 이들 입장으로서는 이 연합 제안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일단 이미 감정적으로 전 세계, 다른 민족과 척을 지기로 한 이상 이 연합을 받아들이는 건 무리. 그리고 연합을 한다고 한들 언제 어디서 자신들의 뒤통수를 칠지 모르기에 두려운 그들이었다.
“그럼 이건 역시 거절하는 걸로?”
“당연하죠. 이 기회에 군을 재정비해서 언제든 다시 싸울 준비를 하지요.”
“한데 그러다가… 혹시라도 다른 인간들이 지면 어떻게 하죠? 올림푸스와 다른 세력들이 무너진다거나, 다른 변수가 일어나면? 성좌 영원한 분노가 지구를 먹는 걸 관망할 순 없잖습니까?”
“그러면 지금 그 흰둥이들과 손잡고 싸우잔 말이오?”
“일단 지구의 위기잖습니까! 게다가 결계가 무너져서 ‘별’이 일부 먹히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릅니다.”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휘하 간부들은 연합군에 참여할지 말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 나갔지만, 어느 한쪽 의견으로 쉽게 기울어지지가 않았다.
일단 의견 자체도 2 대 2로 갈라져 있기도 하고, 또 양측 말 모두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능하면 감정은 잠시 접어 두고서 연합군에 참여해서 성좌 영원한 분노를 막자는 의견이 좀 더 나았지만, 거기엔 또 다른 문제가 끼어 있었다.
“자칫하면 우리가 전쟁을 연 명분이 희석되고 위대한 성좌님의 뜻이 흐트러질 수 있어요! 성좌님의 지시와 인도로 이루어진 이 전쟁에 의심이 생긴단 말입니다. 절대 그러진 않겠지만 인도처럼! 사람들이 더 이상 성좌를 믿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가뜩이나 지금 사상자가 넘쳐 나서 시민들의 반발도 크고 연일 시위와 공장 파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군 같은 것에 들어서 만일 인류가 힘을 합쳐서 성좌 영원한 분노를 몰아내면 반전 여론이 더욱 거세질 게 분명합니다.”
모자라는 S급 및 A급 헌터의 숫자를 메우기 위해 인명을 경시하는 희생적인 전략. 구 일본 제국이 했던 가미카제처럼 사람을 갈아 먹는 전략으로 지금까지의 불리한 전세를 메워 온 만큼 국내에서 가족과 친지를 잃은 사람들의 반전 여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게 된 것이었다.
처음엔 똑같이 증오에 빠져서 조국을 위해, 아프리카를 위해 싸우라고 말하던 시민들이 전투가 길어지고 매일매일 날아오는 전사 통지서와 유해는커녕 군번줄도 무사히 돌아오지 않는 자식들의 죽음으로 인해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서서히 일어난 ‘전쟁 비판’은 근래에 성좌를 스스로 버린 ‘인도’의 재앙을 떠올리기에 충분했고, 각 회사 간부들은 전쟁을 멈추면 장래엔 인도처럼 될까 걱정스러운 생각도 있었다.
지금 여기 간부들의 목적은 전쟁에서의 승리뿐이라는 것엔 이견이 없고, 그저 순서의 차이만 있는 정도였다.
“말씀은 맞습니다만, 그래도 일단 지구부터 챙겨야지요. 저 성좌 영원한 분노가 어디 대화나 됩니까? 그저 끝없이 먹기만 하는 재앙입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역시 이 건은… 그분에게 맡기는 걸로 하지요.”
더 이상의 의견 나눔이 시간 낭비라 생각되자 결국 결정은 성좌에게 맡기는 간부들이었고, 그들은 동시에 리모컨을 들어 이 아프리카의 위대한 성좌인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를 불렀다.
[다 보고 있었다. 걱정 마라. 내가 결정을 내릴 것이니… 너희는 안심하고 따르면 되느니라.]
“여, 역시!”
화면에 나온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는 이전의 광기 넘치던 모습은 하나도 없고, 경건한 어조로 자신의 사도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줄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는 나름 성좌 영원한 분노에 대해 인간들보다 훨씬 잘 알기에 지금 이 상황에선 일단 사도들을 시켜 힘을 합쳐서 저 우주 규모의 괴물을 물러나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너무 재미없을 거고… ‘너’도 싫겠지? 근데 놔두면 저거 답이 있으려나 모르겠는데…….]
[…….]
[문제없다고? 하긴 그래. ‘별의 수호 기사’가 있으니 웬만해서는 처리할 수 있겠지. 그럼~ 하던 대로 한다?]
[…….]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동의를 받은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는 적절한 멘트를 빠르게 생각해 낸 다음 자신의 결정을 기다리는 저 가련한 인간들에게 적당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나의 뜻은 결코 굽혀선 안 될 것이니라. 그 어떤 파도와 고난이 몰아쳐도 너희는 이겨 낼 수 있을지니, 걱정이 된다면 그 올림푸스 길드와 다른 자들이 무너지고 난 다음 대처하면 될 것이로다. 그러니 힘을 비축하고 간교한 목소리를 무시하고서 본래의 임무에 집중하라.]
“알겠습니다!”
“과연, 휴식하고 군을 정비하면서 동시에 성좌 영원한 분노의 영격을 준비하라는 거군.”
“으음… 성좌님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를란테 부장의 곁에 있는 친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 주게나.”
그렇게 아프리카는 또다시 혼란을 요구하는 성좌의 의지에 따라 휴전 조약만 승낙을 하고 내부 단속과 군사력 정비에 들어갔다.
이들의 결정은 휴전임에도 유럽 여러 국가들에겐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게 되었고, 결국 지구의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인류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기 위해 상당한 전력을 유럽과 아프리카 전선에 남겨 둬야만 했다.
그야말로 성좌 영원한 분노에겐 최고의 상황이었다.
***
대한민국, 서울.
성좌 영원한 분노의 공격에 유성원 측의 대응은 우선 인도, 중국, 한국에 걸친 3국의 연합으로 된 함대를 구성해서 가용 가능한 전력으로 철저히 지원하기로 한 거였다.
그리고 그 함대를 이끌 임시 사령관직은 백가연 어르신에게 맡긴 뒤, 현재 유성원은 기술부와 다른 헌터들의 준비 진행 상황을 살피면서 한참 인수인계 중인 그녀에게 사죄를 했다.
“으으… 정말 죄송합니다. 그… 다국적 연합 함대고, 또 한국 함대도 맡겨야 하는지라. 사람들을 잘 따르게 할 인망과 관록을 가진 분이 어르신밖에 안 계셔서 말이죠. 그냥 제 말이면 철석같이 듣는 기사 애들이랑 다른 게 인간들인지라.”
“아닐세. 그래도 결계를 깨서 성좌 영원한 분노를 이용하려던 자네가 지금 급히 대응해 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깨는 건 우리가 대응할 준비가 되면 한다고 했잖아요. 근데 안 되었으니… 이건 도와야지요. 아무튼 전 여기서 남은 작업들이랑 신무기 테스트랑 제작 현장 돌면서 도와줘야 해서 말이죠. 후우~ 어떻게든 단축하려고 하는데… 역시 제가 있는 편이 나을 것 같더라고요. 성좌 제우스 문제 때문에 올림푸스 길드랑 신경전 하면 피곤할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그렇지. 고의로 노리고 한 건 아니지만 엄연히 올림푸스 길드의 핵심 성좌를 리타이어시켰으니 납득이 가는군.”
뤼카이온의 문제로 인한 분쟁으로 성좌 제우스를 우연이라지만 날려 버린 유성원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함대를 지휘하고 가서 그들과 협동 전선을 펼치기엔 서로 간에 신뢰가 부족하며, 자칫하면 아군끼리 싸우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 자신은 성좌 영원한 분노의 대응을 위해 한국에 계속 남아 있고 백가연 어르신을 보내려는 것이었다.
“물론 지원 함대이고, 무기라든가 그런 게 뻔~ 하니 결국 하위 괴수 잡는 일이나 돕겠죠. 거기에 천검군 기사도 한 명 붙여 드릴 테니 여차하면 부르세요. 바로 날아갈게요. 오늘부턴 비상 체제로 들어가서 저도 완전 무장하고 대기하니까요.”
“딸의 일 때문에 상당히 민감해져 있구먼. 너무 그렇게 걱정할 거 없네. 내 처신은 내가 알아서 할 거고, 여차하면 연락하겠네.”
“진짜로! 정말 진짜로 조심하세요.”
유성원은 당부에 또 당부를 했다.
딸내미만큼이나 이 어르신 또한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 마음이 느껴졌는지 백가연은 미소와 함께 유성원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늙은이 걱정은 하덜 말게. 오히려 자네가 더 걱정이지. 준비를 한다곤 했지만 그렇다고 승률이 100퍼센트도 아닌데, 또 멸망급과 싸워야 하지 않나? 그거 부담감이 더 클 텐데?”
“뭐… 그런 거 걱정하던 게 하루 이틀 일입니까?”
“하루 이틀이 아니라지만 이번엔 특히 걱정스럽지. 상대가 상대이니 말일세. 다른 멸망급과는 차원이 달라. 애초에 멸망급이라는 규격의 원조이기도 하며, 다른 성좌들도 모두 두려워하는 최악의 존재일세.”
“…더 안다고 다를 건 없죠. 후우우~”
성좌 청룡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많은 성좌들과 싸우고, 코어 던전에도 들어가서 싸웠던가?
이젠 누구의 조언을 들을 게 아니라, 오히려 던전과 코어 던전에 가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야 할 정도로 전문가가 다 된 그였다.
“알았네. 이제 자네가 나보다 더 코어 던전에 대해선 잘 알 테니 말이지. 그럼 난 미팅과 편제에 관해서 준비하러 국방부로 가겠네. 자네야말로… 단단히 준비하게나.”
“물론이죠. 걱정 마세… 요, 라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눈 뒤, 백가연 어르신이 먼저 일어나서 국방부로 향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남아 있는 유성원은 계속해서 신무기 개발, 공정 및 기사들의 무장 테스트 자료를 보면서 어떻게든 기존 준비 기간보다 더 빨리 하기 위해 사람들을 닦달하려고 하는데, 한창 일하던 중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어라? 댁은? 그… 러니까…….”
“프로메테우스의 사도, 커류입니다. 아주 오랜만입니다. 이변이 일어났기에 다시 왔지요.”
거대한 키와 체구를 가진 남성. 마지막 멸망급 성좌, 성좌 복수의 티탄의 사도인 커류였다.
본래라면 앞으로 약 몇 달 뒤 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서 성좌 영원한 분노의 결계를 깨고 대응할 생각이었는데, 그보다 일찍 성좌 영원한 분노가 활동하는 바람에 예정이 깨어진 상황이라 그가 올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한 듯 그리 놀라지 않는 유성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