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한 달 뒤.
‘왜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 안 되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분쟁은 어느덧 사상자만 1천만 명에 육박했지만 여전히 멈출 기색은 없었다.
처음엔 그래도 세계 모든 국가가 아프리카 대륙을 린치하면 쉽게 이길 줄 알고 이익 좀 얻어 보고자 손을 댔지만 아프리카의 저항은 유성원 헌터가 겪었다시피 매우 격렬했고, 도시 단위로 전략적인 방어 체계를 단단히 갖추고 있었으며, 개개인의 희생을 도외시하는 미친 전략으로 시체를 쌓으며 저항하고 있었다.
“폐하, 그… 한국 정부를 비롯해 인도, 중국에서 폐하의 고견에 감탄하는 보고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번 전쟁이 생각 이상으로 늪이 되었는데 거기서 먼저 발을 빼서 말이죠.”
“하아아아~ 그걸 좋아해야 하냐?”
“적어도 나쁜 일은 아니지요. 저희로서는요.”
“그건… 맞지. S급… 벌써 몇 명이나 죽었더라?”
천만이 넘는 사상자들이 생긴 격렬한 전쟁에서 S급이라고 무사할 리 없었다.
올림푸스, 유럽, 아프리카, 미국, 중국 공산당 등등… 참여한 세력의 S급 헌터 숫자만 약 100명. 그리고 그 싸움 와중에 죽은 S급 헌터 숫자만 자그마치 30명에 달했고, 추가로 약 20명이 부상 및 중태에 빠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먼저 발을 뺀 유성원에 대한 평가가 날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보고 참전 안 하냐고 따지지도 않는 게 웃길 따름이지.”
“그게 아마… 매몰 비용 때문에 그럴 겁니다. 실컷 인명 피해도 입고 투자도 했는데, 여기서 폐하보고 다시 끼라고 하면 여러모로 아깝고 짜증 나는 일이 되겠지요. 가뜩이나 거의 세계의 절반을 먹으셨는데 말이죠.”
“UN에서는 맨날 대화하자고 하는데… 가 봤더만 별로 진전도 없었지.”
생각 이상으로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해지자 UN에서는 전쟁 참여 국가를 포함한 모든 국가의 사절들을 모아 회의를 하고자 했지만, 시작부터가 이성적이 아닌 성좌의 신탁에 의해서 진행된 것이고 이미 여러 번 선을 넘어 버린 만큼 이야기가 휴전까지 쉽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혹시나 해서 한번 가 봤는데… 역시 개판이었다니까……. 게다가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인종끼리 아주 갈라져서 난리고 말이지.”
산 넘어 산이라고,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가 비웃을 상황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일단 세계적으로 이번 전쟁을 시작한 흑인들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졌으며 과거 우한 폐렴 사태처럼 타 인종을 향한 배척과 적대심이 강해져서 미국만 해도 총기 사건이나 폭행 사건이 이어지고 있었다.
정말 끔찍한 시대가 된 것이었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폐하. 이 혼란과 살육의 판에서 저희는 한발 물러나 있긴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전혀 멈출 기미를 안 보이는데 말이죠.”
“난 진짜 저러다가 서로 막 나가서 핵전쟁이 벌어질까 걱정스럽다. 일단 아프리카 쪽에서 공식적으로 핵무기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문제는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아래에서 충분히 과학 기술과 문명을 발전시켰기에 만들고도 남았다는 게 정설이니…….”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곳곳에 기사들을 파견한 거지만요.”
“그래. 적어도 우리가 성좌 영원한 분노를 풀어 주기 전엔 아무 일이 없어야 하니까…….”
어쩌다 보니 최후의 수단 비슷한 것이 되었지만, 아무튼 성좌 영원한 분노와 싸울 준비를 끝내고 직접 결계를 깨서 풀어 주기 전까지 세계에서 다른 사고가 터지질 않길 바라며 유성원은 그것을 위해 오늘도 기사들의 보고서를 받으며 하루의 무사함을 안도했다.
***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며, 흔히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이변이 일어나기도 한다.
모든 성좌가 각자 추구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위해 이 ‘별’을 침략하거나 혹은 사도를 만들어 협력하곤 했고, 당연히 그 성과에 따라 노력하거나 지혜를 짜내었다.
‘별’을 먹는 짐승이라 불리는 ‘별’인 성좌 영원한 분노 또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노력과 지혜라는 것을 아끼지 않는 성좌였다.
그동안 성좌 포세이돈의 결계에 막혀서 제대로 ‘별’을 먹지 못한 것처럼 보였고, 부하들만 보내는 선에서 그쳤지만 사실 그는 이 결계를 핑계로 이 ‘별’을 좀 더 쉽고 편하게 먹을 찬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르르르르르르… 그르르르……!]
해저 깊은 곳에서 짐승의 소리를 내는 성좌 영원한 분노였지만, 밖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당장 결계 밖에 돌아다니는 ‘인간’들만 해도 그 수가 줄었고, 이 지구 전체에서 서로 피부색 하나 가지고 싸우고 죽여 대는 꼴을 보면서 그 또한 뒤집어질 정도로 웃었으니 말이다.
[크오오오오오오오!]
아무튼 그동안은 억지로 힘을 써서 포세이돈의 결계를 돌파해 봐야 지긋지긋한 올림푸스 길드의 총공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공격을 받을 상황이라서 굳이 억지로 돌파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기들끼리 증오와 혐오로 싸워 대는 인류의 어리석은 상황, S급 사도들의 죽음, 올림푸스 길드의 약화, 그리고 자신을 노리는 별의 수호 기사의 준비가 완전히 되지 않은 지금이 이 ‘별’을 포식할 최적의 타이밍임을 알아챈 것이다.
[우르르르… 크르…….]
쿠우우우우우웅!
수많은 ‘별’과 우주를 아우르는 거대한 성좌 영원한 분노의 진체(眞體) 중에서도 이 지구를 포식하는 임무를 맡은 머리가 해상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섬의 차원을 넘어서 대륙만 한 괴수의 머리가 수면 위로 상승해서 그대로 포세이돈의 결계를 물리적으로 들이받아 충격을 주었다.
그 순간, 지구가 흔들린 것 같은 거대한 충격이 바다와 해저에 퍼지면서 파도를 일으키고 대지를 요동치게 만들며 근처에 있던 성좌 포세이돈의 신전과 해상 기지에까지 전달되었다.
[‘서, 성좌 영원한 분노’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계를 몸체로 두드립니다!]
“알았다! 대기 인원 전부 투입하고, 함대 출격 개시! 올 것이 왔다. 성좌 영원한 분노를 막아야 한다!”
[네!]
위이이이잉!
결계에 위험이 생기자 해상 기지에서 대기하던 포세이돈의 사도들과 헌터들은 일제히 출격, 전함과 항공모함들이 기동을 시작해서 곧바로 바다를 가르고 결계를 몸으로 두드리는 성좌 영원한 분노의 진체에게 향했고, 기지에선 성좌 영원한 분노에 대항하기 위해 특별 제작된 미사일들이 발사되는 장관을 이루었다.
“계속 발사해라. 상대는 성좌! 그것도 진체(眞體)다! S급, SS급, SSS급 몬스터의 규격을 아득히 뛰어넘는 저것은 하나의 ‘별’이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갈고닦은 모든 것들은 이 날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마라!”
“예! 12번 발사대, 13번 발사대! 재장전 완료! 발사합니다!”
“일일이 말하지 마! 성좌 영원한 분노가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모두 때려 부어라!”
“예!”
화력 투사부터 시작해서 포세이돈의 결계 밖에 도착한 함대에서도 포격과 헌터들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비록 화력에선 뒤질지라도 마법을 비롯한 마정석 무기로 성좌 영원한 분노의 진체(眞體)에 균열이 생긴 곳이나 약점, 그리고 계속해서 그의 몸에서 튀어나오는 A급 괴수들을 처리해 나간 것이었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처럼 성좌 영원한 분노가 결계에 부딪칠 때마다 수백 마리의 A급 괴수들이 튀어나와 또다시 결계를 부수기 위해 달라붙거나 헤엄치며 난동을 부렸다.
하나, 성좌 포세이돈의 가호를 받는 부하와 사도들에겐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닌 만큼 바다 위에서 능숙하게 움직이면서 괴수들을 처리해 나갔다.
“아주 날 잡으셨군. 끝이 없는데?”
“이거 지원 요청이 필요하겠는걸? 오늘 아주 제대로 날 잡아서 움직이는 것 같아!”
“지원 요청하고 있습니다. 천공섬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3시간 정도만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오늘 제대로 레벨 업 하는 날이다! 싹 다 갈겨 버려! 으랏챠!”
투창, 마법, 검기, 미사일, 총기. 이들 포세이돈의 사도들이 하는 공격은 모두 결계 안으로 들어가서 적들에게 피해를 주었으나 반대로 적들은 그물에 걸린 고기처럼 계속 아등바등하기만 했다. 하지만 성좌 포세이돈의 힘이 들어가는 만큼 절대 방심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수 시간을 계속해서 화력 투사를 통한 격전을 벌이자, 결국 물리적인 압박에 결계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고, 성좌 영원한 분노의 거대한 몸에 비하면 기생충이나 벼룩 정도로 작지만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거의 2~30미터급 되는 거대한 괴수들이 결계의 틈을 비집고 튀어나오려는 광경은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젠장! 오늘따라 유달리 난리군!”
“지원군을 더 불러야겠습니다!”
“아프리카 전선만 아니었어도! 젠장! 빨리 위에 보고해! 이거 심상치 않다!”
“아, 알겠습니다!”
최소 몸길이 10미터가 넘는 A급 이상의 괴수들이 결계에 달라붙어서 나오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며 성좌 포세이돈 휘하의 헌터들은 본국에 SOS를 보냈고, 미국과 동시에 올림푸스 길드는 이 비상 호출을 받아들였다.
“성좌 영원한 분노의 진체(眞體)가 결계를 공격 중이라고 합니다. 놈들도 공격할 때를 아는 건지 지금 공격하는 군세가 여느 때보다도 맹렬하고… 성좌의 진체(眞體)가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결계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 균열까지!”
[아, 알았다! 지금 회의 소집하고 있다. 우선 본국에 대기 중이던 전력을 모두 보내겠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 최대한 버텨 보겠습니다.”
쿠우우우우우우웅!
성좌 영원한 분노의 진체가 결계에 부딪치자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의 힘과 신의 힘이 격돌하면서 보이는 천재지변의 광경.
하늘을 메운 수많은 미사일과 광선, 마법들이 난타하면서 막아 내는 것이 중과부적이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곳 성좌 포세이돈의 사도와 헌터들은 물러설 수 없었으며 미력해 보이는 저항이라도 계속해 나갔다.
그들이 물러난다면 저 ‘별’을 먹는 ‘별’이 결계를 뚫고 나와 지구를 먹어 치울 것이 분명했기에 생명과 같은 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무조건 싸워야만 했다.
그리고 이 소식은 한창 검은 대륙군이 올라오는 아프리카 전선에서 싸우던 올림푸스 길드는 물론 세계 곳곳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아무 일 없길 바라며 오늘도 성좌 영원한 분노와 싸울 계획을 세우던 유성원 측에도 들어갔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성좌 영원한 분노가 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현재 포세이돈의 결계를 뚫기 위해 전투를 시작, 미국에선 올림푸스 길드가 전면적으로 상대하기 시작했으며 본래 유럽 전선으로 가려고 대기하던 부대와 천공섬들이 모두 그곳으로 모이고 있다고 합니다.”
“아니, 그 성좌님이 왜 갑자기 활동을 시작한 거래? 도발했어?”
“아무리 올림푸스라곤 하지만 지금 유럽에 전선을 구성하고 있는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상식적으로 보면 성좌 영원한 분노가 결계 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이 순간을 노린 것 같습니다.”
“노리다니. 그러면 그 성좌 포세이돈의 결계를 뚫을 수 있던 거였다는 건데……. 아! 멸망급이지! 그 성좌. 그러면 지금까지는… 못 뚫고 갇힌 척을 했다는 건가?”
“그런 셈이지요. ‘별’을 먹는 ‘별’, 상대는 포식자이니 나름 사냥의 지혜 정도는 가지고 있는 법이지요. 아마 성좌 포세이돈의 결계를 뚫을 수 있어도 지구를 먹기엔 저항이 거셀 거라 예상했을 겁니다. 그래서 결계를 못 뚫는 척 얌전히 있던 것이었겠지요.”
“…그리고 지금이 최고의 타이밍이라 생각하고 달려들기 시작한 건가? 아… 하긴, 맞네.”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대전으로 천만이 넘는 인간이 죽도록 싸우는 상황.
사상자 숫자가 중요한 것도 있었지만, 인류가 지금 서로에 대한 증오를 겹겹이 쌓은 바람에 협력이라는 단어를 내뱉기도 힘든 상황이니 확실히 ‘별’을 먹으려는 ‘성좌’로서는 최고의 타이밍을 잡은 것이리라.
“게다가 먼저 자리 잡고 있던 경쟁자 격인 다른 멸망급도 없어졌고, 다른 멸망급은 또 치열하게 싸우는 중인 데다 우리는 준비도 안 되어 있지. 제길! 최적의 타이밍이군.”
“예. 지금 움직이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죠. 폐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쩌긴. 우리도 준비를 안 했을 줄 아나? 대응하는 수밖에 없지. 하아아~”
유성원의 한숨과 함께 아이언 포트리스를 비롯한 모든 시설에 비상이 걸렸다.
가뜩이나 인류가 위기인 순간에 끼어든 성좌 영원한 분노의 공세. 이 ‘별’의 멸망을 부를 위기까지 겹쳐서 오자 유성원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