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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268화 (268/293)

[268화]

“내가 색맹이 아닌 이상에야 이걸 잘못 볼 리가 없거든? 여기 계신 분이 들고 있는 사람 피부라든가 얼굴이 누가 봐도 아시안 맞지?”

“그… 한국 국적만 아니면 되지 않겠습니까?”

“오, 예리한데? 근데 우리가 그것도 알아보지 않고 왔을까? 여기 목만 남으신 분 시신도 챙겼고 신원 확인, DNA 검사까지 끝내고 오는 길이거든. 성명, 이탄기. 야호 스타스 무역 회사 사원. 출장 때문에 왔다가 난데없이 일어난 전쟁 때문에 피난을 못 갔고, 호텔에 숨어서 지내는데 점령한 너희 군대가 모든 사람을 끌어내고 멋대로 강제 노역을 시키다가 결국 쓰러진 그를 너희 검은 대륙군이라는 놈이 본보기로 손수 처형했지.”

“그… 그렇군요.”

“자, 아무튼… 변명 타임 줄게. 일단 해 봐. 안 그러면 나 너희가 준 돈 반납하고 이 망할 전쟁에 끼어들어야 할 판이거든.”

유성원은 팔짱을 끼고서 모를란테 부장에게 기회를 주었지만, 지금 이렇게 증거까지 싹 다 챙겨 온 마당에 변명이라고 댈 수 있는 게 없었다.

물론 전쟁 범죄를 저지른 것은 어디까지나 현장에 있던 망할 졸병과 군인 놈들의 짓이라고 밀어붙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결국 유성원 측의 참전을 유도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저기… 저희는 분명 군율로 백인 이외에는 건드리지 말라고 전했습니다만, 그 현장에 있는 멍청이들이…….”

“그래서 말리거나 아니면 처형하거나, 체포하거나, 뭐 하긴 했나?”

“그게 저희도 안 지 얼마 안 돼서… 지금 전쟁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바빠서…….”

“즉, 현 시점에선 아무것도 한 게 없고, 지금도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거네. 하아아~ 바빠 죽겠는데……! 진짜!”

모를란테 부장에게 진심으로 짜증을 내는 유성원이었다.

이 중요한 시기에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니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단호하게 제안했다.

“아무튼 이미 판 엎어졌으니까 일단 군 한 번 물러.”

“예? 물리라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물리면 그래도 본전은 건지니까 하는 말이야. 사실 우리도 참여하기 싫고, 너희도 일단 판이 개판됐으니까 물러서 다시 군대 놈들 정훈 교육 시키고, 전쟁 범죄 일으킨 놈들 싹 다 고문 포함해서 제대로 처형하고 피해자들한테 보상해 준 다음에 다시 전쟁 시작해.”

“그게 말이나 됩니까?”

“안 그러면 어떻게 할 건데? 상황이 개꼬였는데, 너희들이 지금 이거 수정 안 하면… 나는 올림푸스랑 같이 손잡고서 여기 와서 깽판 쳐야 할 판인데? 나도 힘쓰기 싫으니까 제안하는 거야.”

짜증이 섞여서 말은 험했지만 유성원의 제안은 어느 정도 합리적인 의견이기도 했다.

물론 그 시점은 어디까지나 중요한 결전을 앞두고 참전하고 싶지 않은 유성원 측 기준이긴 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결국 유성원 측도 이 망할 전쟁에 참전해야 하기 때문에 아프리카 입장으로서도 좋을 게 없었다.

“아무튼… 제안은 제안일 뿐이고, 너희들도 검토해야 하니까 24시간 안에 답변 내라. 답변 없으면 무시한 걸로 판단하고 우리는 우리 일 하러 갈 테니까 말이지. 이상! 그리고 돈은 미리 반납하고 간다. 혹시 몰라서 달러로 가져왔다.”

“아,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유성원은 인벤토리에서 가방 수십 개를 꺼내 떨어뜨리더니 기사단의 성소 포탈을 열고 그대로 한국으로 단번에 돌아가 버렸다.

남아 있던 모를란테 부장은 산더미처럼 쌓인 가방과 그가 남긴 동양인을 참수하는 사진을 번갈아 보면서 더럽혀진 성전(聖戰)에 대해 고뇌하는 동시에 다른 4개 회사의 간부들을 소집했다.

***

스카이스크래퍼 블랙 레이더스를 비롯해 데스티니 타임즈, 트루스 비전, 네오 스페셜, 와일드 마스크. 아프리카를 주름잡고 있는 이 5개 조직의 주요 간부들이 모두 모를란테 부장의 명령에 따라 스카이스크래퍼 블랙 레이더스 회사의 건물로 소집되었다.

“다들 성전의 진행으로 바쁘신 시기인 건 알지만 지금 상황이 꼬여 버렸습니다. 전선에 있는 멍청이들 때문에 우리의 성전이 더럽혀지고 외부 개입이 추가될 여지가 생겼어요.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일단 제안으로는 한 번 진군을 멈추고 회군을 해서 처벌부터 확실히 하고, 재교육을 시킨 다음에 다시 진격하는 방안이 있는데…….”

“그건 좋지 않습니다. 기껏 선제공격으로 사기도 높고 전과도 높은 판국인데, 갑자기 그런 일로 진군을 중지시키고 용맹하게 싸운 전사들을 벌하면 앞으로 전쟁을 어떻게 합니까?”

“저도 데스티니 타임즈의 수왈라 전무의 말에 동의합니다. 더구나 이번 선제공격에 엄청난 비용이 소모되었기도 하고, 또 우리가 공격을 멈추고 상대가 정비하기 시작하면 우리에게 더 큰 희생이 생길지 모릅니다.”

“으음, 하지만 모를란테 부장의 말처럼 이대로 전쟁 범죄를 묵인한 채로 강행해 봐야 과거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이나 독일처럼 얻어맞을 일밖에 안 남습니다. 그러면 결국 전후 독일처럼 국토가 다시 찢어질지도 모르죠. 그러니 저는 일단 진군을 멈추고 명분을 다지고 가는 게 좋다고 봅니다.”

“나도 동의합니다.”

웅성웅성…….

참여한 4명의 간부들 중 이대로 진군을 지속하자는 쪽이 2명, 반대로 잠시 멈춰서 명분을 다지자는 쪽이 2명. 결국 이들을 모은 모를란테 부장의 의견에 따라서 결정되겠지만, 단순히 머릿수가 많다고 해서 일을 그쪽으로 진행하는 조직이 아니었다.

“이렇게 팽팽하니 결국 그분의 뜻에 맡기는 것으로?”

“그게 가장 낫겠죠.”

“압도적으로 의견이 기운다면 모를까, 이렇게 긴가민가한 상황에선 그분의 뜻만큼 확실한 게 없으니…….”

2 대 2, 혹은 3 대 2 같은 팽팽한 상황에선 결국 단 한 사람의 생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들은 곧바로 이 의문의 답을 성좌에게서 찾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섯 모두의 합의가 끝나자, 다들 동시에 각자의 인벤토리에서 리모컨을 꺼내서는 전기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모니터를 향해서 눌렀다.

그러자 그 TV는 마치 전기가 연결된 것처럼 지지직거리더니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의 문양이 나타나고 위대한 신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너희의 고뇌, 의문, 이미 내가 다 보고, 그리고 들었노라. 하나 걱정 마라, 방황하는 자들아. 늘 그렇듯 너희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해 줄 것이니라.]

“오오… 여, 역시!”

“감사합니다, 우리의 신이시여!”

[회장님이라고 칭하라 하지 않았더냐?]

“아,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뭐, 좋다. 그것이 너희의 ‘한계’겠지. 잘 일러 줄 테니 확실히 실행하도록.]

회장이라는 칭호가 뭐가 좋은 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호칭을 또다시 정정한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에게서 위대한 신탁이 떨어졌다.

한 글자, 한 글자 뇌리에 새기려고 귀를 기울이는 모를란테 부장을 포함한 다섯 간부들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표정이 기묘해져 갔다.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을 때의 기묘함. 하지만 의심은 곧바로 지워질 수밖에 없었다.

위대하신 성좌님의 말씀, 틀릴 수가 없는 진실이니 말이다.

‘그래, 성좌님의 말을 의심할 필요가 없지.’

‘우리 성좌님… 아니, 회장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그야말로 계시다.’

‘사실 살짝 불안한 감이 있었는데, 성좌님의 혜안이 날 눈뜨게 하는구나.’

‘그래, 역시 아무 문제없는 것이었어.’

‘성좌님, 성좌님, 성좌님이 우릴 지켜봐 주신다.’

다섯 간부 모두 성좌의 말에 일절 의심을 품지 않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 인도에서 신도들의 뒤통수를 치고 도망친 성좌의 존재에 대해 알고 약간의 의심을 품는 불경한 자들이 있었고, 자신들의 성좌인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님에 대해 생각을 해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어불성설이었다.

‘그래,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이 암울하던 검은 대륙에 평화와 구원을 가져다주신 분이다. 어찌 의심하겠는가?’

각성자의 시대가 되고 던전과 마정석이라는 새로운 에너지원이 나왔을 때도 이 아프리카 대륙은 여전히 가난과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쓰레기장 한 곳에 내려와 검은 민족을 해방하기 위해 각성자들을 만들어 주시고, 이후 아프리카 대륙을 통일하는 데 큰 힘을 써 준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님의 숭고하며 순수한 선의에 누가 감히 의심을 품으랴?

“그럼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그… 회, 회장님!”

“회장님, 감사합니다!”

“당신이 있기에 이 아프리카는 구원받았습니다.”

어두운 터널을 돌파하여 빛을 본 듯한 감격과 감동 속에서 간부들은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하고 각자 전화와 컴퓨터를 이용해서 곧바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하나 그들이 연락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가 있는 화면의 노이즈 사이에 순간적으로 누군가의 날카로운 미소가 스쳐 지나갔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다시 화면 속 노이즈에 뒤덮였다.

***

이틀 뒤, 아이언 포트리스.

아직 모를란테 부장에게서 답변은 오지 않았지만 유럽에 상륙한 검은 대륙군의 움직임은 더 이상 대답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유성원에게 알려 주었다.

자신이 왔다 가니 오히려 진군 속도가 늘고, 기존의 낮밤을 가리지 않던 전투는 더더욱 치열해지는 한편 이제는 아예 포로로 잡거나 강제 노역을 실시하지도 않고 그냥 모조리 죽여 없애 버린 다음에 진군을 한다는 소식이 들어온 것이다.

“아주 제대로 선 넘네.”

“선 넘었군요.”

“이젠 감출 생각도 없는 건가? 진짜 미쳐 돌아가네. 와… 역겹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사진과 영상은 충격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아니, 차라리 지옥의 형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리라.

놈들은 총알도 아까운 건지, 어디서 만들어 온 건지 모를 거대한 분쇄기에 사람을 갈아서 다진 고기로 만들고 있었다.

흔히 동영상 사이트 같은 곳에서 나오는 병아리를 갈아 버리는 기계의 확대 버전 같은 것으로,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 유청마저도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릴 만큼 끔찍한 장면이었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요?”

“나도 알고 싶다. 그냥 미친 것 같은데? 아니, 내가 이상한 제안을 했나? 너무 막 나가는데?”

막 나가도 너무 막 나가는 장면에 어안이 벙벙해진 두 사람.

이 정도면 그냥 전 세계에 선전포고를 던진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으로, 아프리카를 멸망시키려고 작정했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거기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하지 못할 판단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기에 곧바로 배후를 의심하게 되었다.

“이거 100퍼센트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짓이지?”

“음… 그럴까요? 아프리카엔 모를란테 부장 외에도 다른 회사를 이끄는 간부들도 있으니, 그들의 생각이 달라서 이런 폭주를 일으킨 걸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럼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가 한마디 하지 않았을까? 지금 그가 완벽한 아프리카의 신이잖아. 만약 사도들이나 지배하는 애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합리적인 판단 정도는 하지 않을까?”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역시 여기 성좌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같군요.”

유청의 말에 유성원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멸망급이라 불리는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일단 그에게 붙은 ‘멸망급’이라는 칭호는 과도한 아프리카 지역 개발과 각종 생명체의 멸종, 끝없는 유럽과의 경제, 무력 분쟁으로 인해 붙은 것이었지만, 지금 이 수(手)야말로 진짜 인류 멸망을 가져올지 모르는 판단이었다.

“일단 이 미친 행위에 대해 대응하는 건 대응하는 거고…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치?”

“이건 생각보다 더 심각한 사태일 수 있습니다, 폐하. 어쩌면 인류에 큰 증오를 또 남길 겁니다.”

“…그럼 더더욱 빨리 움직여야겠군. 후우우~ 이러니 올림푸스 계획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네.”

올림푸스 길드와 싸우는 계획이 계속해서 틀어지는 느낌을 받은 유성원은 한숨을 쉬면서 일단 오늘 일정을 모두 취소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장 채비를 마치고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 숨겨 둔 기사에게 연락을 해서 포탈을 열고 그쪽으로 긴급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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