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다음 날, 아이언 포트리스.
개발부 회담, 인도와 중국 정부 브리핑, 대한민국 정부와의 회담, 평양 사령부 방문, 러시아 전선 재배치, 가족 회담……. 몸이 10개라도 부족할 일정 앞에서 유성원은 오늘도 살아가기 위해서 눈을 뜨고 일어나 부스스한 정신을 깨우려 커피 한 잔과 함께 아침을 맞이한다.
“하아~ 일정 너무 빡빡한데? 이러다가 몸이 굳는 거 아닌가 몰라.”
“하하하, 그래도 잠은 주무시고 식사는 할 수 있잖습니까?”
“그렇게 말하니 무섭네. 아무튼… 일단 뉴스나 볼까?”
『긴급 소식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지속적으로 분쟁이 일어나고 있던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측이 어제부터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전진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입니다. 자세한 소식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단 명분으로는 ‘성좌’가 ‘자신의 백성들의 뜻’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각지 전문가들은 이것은 확실한 ‘아프리카 통일’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합니다. 이어서…….』
뉴스를 틀자마자 나오는 것은 또 다른 전쟁의 소식. 어제 큰 돈을 입금해 주었던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가 갑자기 지구 반대편에서 대규모 군사 활동을 시작했다는 내용으로, 화면에는 마정석 기술로 개발된 전차와 화기를 비롯한 수많은 병사들이 전투하는 장면이 보이고 있었다.
“으음… 올림푸스 길드가 빠지니까 움직였나 보네. 그러면 어제 그 돈은 그냥 진짜로 주식이니 금융이니 한 게 아니라 얌전히 있어 주세요, 라는 성의 표시였던 건가?”
“그런 셈이겠네요. 통찰력이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폐하.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군요.”
“시끄러. 으음… 이거 그럼 그냥 지켜봐야 하나? 우리 여유 없잖아.”
이제 성좌 영원한 분노의 결계를 푸는 게 몇 달 안 남은 상황.
올림푸스 길드의 명성을 떨어뜨렸다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대응도 그렇고, 성좌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생긴 이 판국에선 잠시 인식이 떨어진 것뿐이지, 올림푸스 길드만큼 성좌가 많고 강한 곳은 없기에 결국 사람들의 발길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기존에 세워 놓은 계획은 계속 진행해야만 했다.
“그렇죠. 지금 다른 일에 손댈 여유는 없습니다.”
“게다가 받아먹은 것도 있으니까……. 근데 어르신이 반대할까 걱정이네.”
“어르신 말입니까?”
“그래. 근본을 따지자면… 우리가 그분 덕을 많이 봤으니까. 아이언 포트리스도 애초에 거기로 넘어간 한국인 출신들이 남겨 두고 간 거니 말이야.”
“그것참 복잡해지겠군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전쟁에 대해서 손쓸 시간도, 여유도, 명분도 하나 없는 유성원은 백가연 어르신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하며 어느새 식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는 다시 오늘의 일과를 시작했다.
***
아프리카-터키 국경.
한국이 막 아침을 맞이했을 무렵, 터키는 아직 어두운 밤이었다.
하나 전쟁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고,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의 명령 아래 움직이는 일명 ‘검은 대륙 군단’은 하늘을 조명탄으로 밝히면서 끝없이 전진하는 중이었다.
그것을 상대하는 터키군과 헌터 길드들은 유례없는 막강한 전력이 진군해 오는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들이 왜 자신들을 공격하는지도 알 수 없어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저놈들은!”
“알게 뭐야. 자기들은 그저 성좌의 뜻이랍시고 오는데! 젠장! 이거 막을 수 있나?”
“카라한 대대 전멸! 놈들의 전력이 너무나 압도적입니다. 지상군, 공중군, 그리고 각성자들까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터키군 지휘 통제실에서는 현재 압도적인 검은 대륙군을 상대로 처참하게 밀리는 전선을 보며 한탄과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량도 물량이지만, 사용하는 군 장비도 레벨 차이가 엄청 심하게 나는 듯했다.
자신들도 엄연히 자체 개발 혹은 유럽과 미국에서 최신형까진 아니어도 동세대 마정석 전차와 헬기를 비롯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장비를 군 전력에 포함시켰는데, 전혀 상대가 되지 않고 있었다.
“이건 정찰대와 드론으로 찍어 온 적군의 사진입니다. 보다시피 일반 병사 무장은 큰 차이가 없지만 기갑, 헬기, 수송 차량이 완전히 다릅니다. 특히 이 수송 차량과 전차들을 보시면 반중력 장치인지 호버크래프트인지 모르겠으나 지상에서 떠 있는 채로 이동하고 있어서 산, 강과 같은 험준한 지형을 그냥 돌파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병력에서도 밀리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현재 아프리카 쪽과 협상하려고 대화를 계속하고 있지만 놈들은 아무것도 요구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오로지 목적은… 세계를 검게 정복하는 것이라고 하며, 모든 백인들을 2등 시민으로 만들 것이라고 합니다.”
“그건 또 무슨 미친 소리야? 그걸 왜 우리한테 따져? 유럽이나 갈 것이지.”
“그… 이미 유럽으로도 검은 대륙군이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여기 지금까지… 나온 지중해 전반 모든 나라를 향해서 말이죠. 심지어 영국까지도 상륙군을 보내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기가 차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터키 군사령관이었다.
명분부터가 이해가 안 되고 웃긴 전쟁인데, 심지어 유럽 전체와 싸우겠다는 이 패기는 또 무엇인가?
이 정도면 이미 세계 대전이라고 부를 만한 규모가 된 거나 마찬가지. 그는 이 사태가 과연 어떻게 될지 불안해하며 정부에 보고를 올리기로 했다.
***
통합 아프리카군이라 불리는 통칭 검은 대륙군은 일단 정부 소속이긴 하지만 결국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의 후원으로 만들어졌기에 사실상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의 사도 군대나 다름없었다.
휘하에 있는 스카이스크래퍼 블랙 레이더스를 비롯한 5개의 대형 회사를 통해서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데 힘을 썼고, 아프리카의 국민들을 통합시키고 발전을 이룩하여 진정한 신으로 떠받들어지는 존재였다.
“듣고 있나? 제군들! 이건 복수의 전쟁이다! 우리 검은 민족들은 그동안 세계 평화니 질서니 떠드는 저 위선자 백인들에게 계속 속고 있었다. 제국주의의 총칼은 결국 자본주의라는 무기로 바뀐 채로 계속해서 우리를 속이고 경제의 노예로 삼았던 것이다. 하나 이젠 다르다!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님의 인도로! 우리 검은 민족은 다시 하나가 되었으며 이제 세계를 노릴 힘이 주어진 것이다.”
“와아아아아!”
“저 UN이니, 국제기구니, 봉사 단체니, 동물 보호니 하는 것들은 우리를 나약한 가축으로 만들고 우리에게 여러 족쇄를 채우고 있었다. 반면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가? 우리가 원하던 부유함과 행복, 편안함을 모두 지원해 주셨으며 분열돼 있던 이 대륙의 13억 인구를 하나로 뭉치게 해 주셨다. 맞는가?”
“맞습니다아아아!”
“히틀러라는 인물 하나로 자신들의 죄악을 부정하고 가려 왔던 저 가증스러운 백인 놈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박을 때가 왔다. 그대들의 희생은 우리 자식들과 미래를 위한 교두보가 될 것이다. 우리 검은 대륙에 구원을 펼친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님을 위해! 검은 대륙군이여! 물러서지 말고 싸워라!”
“와아아아아아아아!”
추가 병력 투입 전, 군의 사기를 끌어 올리는 사령관의 연설이 끝나고 검은 대륙군은 각자 차량과 수송기, 배를 통해 각 전선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것과 달리 압도적인 물량과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의 회사에서 개발하고 생산해서 지원해 주는 최신형 군용 장비 덕분에 유럽 전선의 공세는 압도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었다.
“훌륭한 연설이셨습니다, 사령관님.”
“오, 모를란테 부장님. 허허허, 부끄럽습니다. 아무튼 전황 보고를 계속해야겠지요.”
“예. 어떻습니까?”
“최초에 회의한 대로 ‘리비아’의 그 길드는 포위망만 두껍게 한 채로 주변으로 둘러서 빠져나가서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터키, 이탈리아, 스웨덴, 영국 이렇게 4개 국가에 각각 3만에서 5만씩 각성자 부대를 포함해서 투입했으며 시작은 좋은 상황입니다.”
선제공격도 공격이지만, 일단 군 장비 및 병력들이 상륙에 성공하고 나면 적 도시와 생활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어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령관의 얼굴에는 금방 불안함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바로 전선의 넓이였다.
“그런데… 정말 이대로 해도 되겠습니까? 아무리 저희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힘을 하나로 모았다곤 하지만 이건 전선이 너무 넓은 게 아닐지? 게다가 유럽 전체에 이렇게 큰 도발을 하게 되면 러시아라든가… 미국이라든가, 외부에서 지원이 오는 게 아닐지도 걱정스럽습니다. 너무 무리한 게 아닐지…….”
“전혀 아닙니다. 그리고 러시아라면 모를까, 미국은 손쓰지 못하게 해 놨습니다. 아시아의 제왕이라 불리는 유성원 헌터가 있으니 말이죠.”
“그… 그럼 그 사람이 역으로 우리 전쟁에 손대거나 하는 건?”
“음~ 가능성이 없진 않습니다만, 보험은 들어 놨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 쪽에 손을 대면 우리도 보복할 수 있으니 걱정 마시고 유럽 전선에만 신경 쓰십시오. 여차하면 저희가 나설 테니 말이죠.”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잠시 연락을 좀 하러…….”
모를란테 부장의 말에 사령관은 안심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전선 상황을 전하기 위해 먼저 일어나서 컴퓨터와 전화기를 들고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를란테 부장은 그대로 한쪽 벽면에 걸린 세계 지도를 바라보았다.
유럽. 증오스러운 제국주의자 백인들이 지배하는 땅, 자신들을 노예로 만든 자들이 사는 땅.
이제 그 역사는 완전히 뒤집히고, 세계 역사의 주류는 자신들 검은 민족이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미소 짓는 그였다.
검은 대륙군을 상대로 하는 유럽 군대는 던전과 몬스터, 성좌를 거쳐 가면서 다시 증강되어서 약하진 않았고, 또 한때 세계를 좌지우지한 뼈대 깊은 ‘명문 길드’까지 있어서 잘 막아 낼 거라 의심치 않았다.
군 장비에 있어선 이쪽도 만만치 않게 마정석 관련 기술을 개발한 만큼 화력도 장비도 뒤처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 저 깜둥이 새끼들! 왜 이렇게 끈질긴 건데! 무슨 좀비물이야? 젠장! 뒤질 뻔했네.”
“장비나 그런 건 어떻게 맞춰 나가겠는데… 무슨 자살 특공대도 아니고, 그냥 꼬라박아 버리니 미치겠네.”
“물량 공세는 짱깨들이나 하는 줄 알았는데…….”
영국 해안 방어선에서 상륙을 저지하는 영국군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은 건지 미친 듯이 뛰어오는 검은 대륙군을 상대로 고개를 저으며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쉬지도 않는 건지 아니면 죽은 만큼 또 인구를 보충해서 오는 건지 해안에 계속해서 상륙 중이었다.
“해군은 뭐 하는 건데? 게다가 저기! 사이사이에 각성자들도 오고 있고, 마법으로 방어막 치면서 뛰어오잖아.”
“우리 쪽 각성자는 뭐 하는데?”
“뭐 하긴. 싸우는 중이지.”
영국군과 검은 대륙군이 화력과 물량의 싸움을 보여 주는 가운데, 이제 초인이라 할 수 있는 각성자와 헌터 길드 사람들은 각자의 나라를 위해서 전쟁에 투입되어 전장의 판도를 바꿀 조커 카드로서 싸우는 중이었다.
검은 대륙군 속에는 아프리카 전통 복장을 입은 주술사와 마법사가 전진을 도와주고 있었으며, 영국군 안에도 로브를 입은 마법사와 피리를 불며 대형 창을 휘두르는 전사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꿰뚫는 비용의 발톱(Piercing Drake talon)!”
콰드드득!
용의 형상을 한 투구를 쓴 전사가 내지른 창의 일격에 전방 10미터가량의 땅이 파이면서 그곳에 있던 검은 대륙군의 병사들이 그대로 살점과 피를 튀기며 가루가 되어 버렸다.
한순간에 15명가량의 병사를 전멸시킨 그는 창에 묻은 피를 털면서 적군의 기세를 줄이려고 살의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검은 대륙군은 전혀 놀라지 않은 채 그에게 계속 총을 쏘면서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젠장, 뭐야? 저 깜둥이들… 정신 지배라도 받는 건가? 두려움 자체가 사라진 것 같잖아? 설마 저 주술사 짓인가?’
“쏴라. 그리고 계속해서 전진해라!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님의 땅을 넓혀야 한다!”
‘광신도잖아. 이건!’
아무리 용감하더라도 인간의 본능이라는 게 있을 거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건 아주 극소수의 인간들뿐인데, 저 검은 대륙군은 죄다 맛이 간 채로 계속해서 몰아붙이고 있었고 죽은 아군의 시체를 방패 삼아 전진해 왔다.
하나 각성자답게 그들을 능수능란하게 상대하며 총격은 창으로 막아 내긴 했지만, 그래도 끝없이 몰려와서 미칠 지경이었다.
답답한 그는 좀 더 강한 화력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헬멧에 붙은 통신기를 통해 연락을 취했다.
“이거 아무리 봐도 마법으로 잡아야 할 것 같은데? 깜둥이 새끼들, 바퀴벌레처럼 몰려오고 있어.”
[이미 시도하고 있어. 하지만 적에도 주술사랑 마법사들이 있어서 마법을 방해하는 중이야. 적에도 각성자가 꽤 많아. 심지어 저들은 아예 국가 소속이라 연계가 우리보다 좋아. 우리 용기사들이 가려고 했는데, 투창을 엄청 잘 던지더라.]
“공군은?”
[제공권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야. 지금 전투기끼리 계속 싸우는 중… 상대도 항공모함까지 끌고 왔고…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 쪽이 좀 밀리는 상황이야.]
“젠장! 그럼 그냥 핵이라도 던지든가! 이거 끝이 없어. 나 죽을 것 같아!”
[그건 엄연히 금지 무기잖아. 게다가 지금 핵 없는 국가가 어디 있니? 아니, 핵이 아니더라도 ‘마정석’을 가지고 미사일을 만들어서 폭발력을 상승시키면 충분히 핵보다 더한 위력이 나오는데 그걸 만드는 곳이 없지. 그래서 그와 관련된 조약이… 여보세요? 여보세요? 데이비드?]
데이비드라 불린 이는 그 이상 대답이 없었다.
이미 살아 있는 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창으로 적의 총탄을 막고 싸우는 그였지만 그 공세를 막아 내던 중 그 사이에 들어온 총탄 하나를 막지 못했고, 그것이 심장을 꿰뚫으면서 그대로 즉사하여 허망하게 땅에 쓰러졌다. 그러자 검은 대륙군은 환호하면서 그의 시체를 짓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통신기에선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대답은 오직 군인들의 발소리와 총소리, 폭발 소리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