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시작했군.”
“그러게요. 진짜 대박 사건이 터져 버리고 말았어요. 우와아아…….”
그리고 이 현장에는 수많은 기자들과 한국에 주재하고 있던 외신 기자들까지 모두 모여 전장의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간도 크게 전장 가까운 곳에서 이리저리 보려 하는 게 위험해 보이긴 했지만, 기자들 중에서도 일부는 프리랜서 헌터를 대동하거나 각성자 출신도 있어서 생각만큼 위험하진 않았다.
일부는 아예 첨단 촬영 기구에 고급 인챈트까지 해서 가져왔기에 보다 생생하게 실시간 현장의 상황을 국민들에게 전할 수 있었다.
“대박 사건으로 끝나면 다행이지. 이거 재수 없으면 세계 대전감이겠는데?”
“세계… 대전요?”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저 제우스 꼬추 새끼가 건드린 사람이 누군데? 그냥 단순한 양딸이 아니야. 저 유성원 헌터가 외부 원정을 갔을 때, 공식적으로 후계자라고 점찍고 대리 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아가씨라고. 조직의 미래를 건드린 셈이니…….”
“그럼 차라리 그… 뤼카이온을 넘겨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일단 누가 봐도 잘못은 명백히 그놈이 한 것 같은데…….”
“그게 쉬우면 얼마나 좋겠냐? 근데 그 제우스 꼬추 놈의 가치가 보통이냐? 떡만 치면 각성자가 쑴풍쑴풍 만들어지는 최고급 종마인데? 올림푸스 길드의 강점 중 하나이고… 성좌 제우스의 체면이 있잖아. 이건 재판장도 못 가… 정의의 여신도 도망치고 싶어 할걸? 하나는 성좌 슬레이어, 다른 하나는 열두 성좌의 정점. 어휴~ 내가 판사라면 자살한다.”
피해자, 가해자 모두 범상치 않다 보니 일반적인 법정에 절대 못 오를 상황이었고, 결국 먼저 무력을 사용한 쪽은 유성원이었다.
물론 명분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상황인 만큼 현재 뉴스라든가 국제 보도 관련으로는 대부분 터질 게 터진 것처럼 올림푸스 길드를 비난하고 있었고, 빨리 그들의 행동과 결단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아무튼 드디어 임자 만난 거지. 어이, 내부 상황은 어때?”
“압도적인데요? 와아~ S급으로 분명한 기사들도 기사들이지만, 그 아래 병력들도 질적으론 압도하고 있네요. 역시 신장비인가?”
“그뿐만 아니라 저기 보세요. 우리 국군 마정석 전차가 초라해 보일 정도로 개쩌는 물건이 나왔어요. 신형 헬기는 저거 미사일은 아닌데… 계속 쏘네. 와아… 밀덕들 흥분하겠는데?”
전황에 대해선 굳이 길게 말할 게 필요가 없는 듯 압도적으로 유성원 측이 밀고 가는 상황이었다.
빌딩은 진작 진압되었고, 천공섬도 유성원이 상륙하고 거기서 나온 기사들이 침투조로 내부를 휩쓸었으며, 천공섬 외부에 있는 부유 장치와 엔진, 대응하기 위한 포탑 파괴 등등 압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홈그라운드 이점일까요? 와아~ 난공불락이라고 하던 천공섬이 얻어터지는 걸 실제로 보다니…….”
“모르지. 그보다 내부는 어때?”
“내부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파죽지세. 그야말로 테이큰 찍고 있네요. 지금 유성원 헌터가 최전선에 서서 유피테르 가드고, 헌터고 다 때려잡고 있습니다.”
“올림푸스 길드 쪽은 아직도?”
“예. 지금 그쪽 소식 방송을 보는데, 아직도 대응 발표나 회견이 없다고 하네요. 회의 중이라고 합니다. 다만 지금 공격하는 행위에 대해선 비난 성명만 날렸네요.”
“그런다고 멈출 양반이겠냐? 애초에 남의 집 딸내미… 그것도 후계자를 납치했는데, 때리지 말라는 것도 웃긴 일이지. 그러게 진작 제우스 꼬추 놈 관리를 하든가 말이지. 와, 신나게 후려 까는구먼.”
드론과 퍼밀리어, 소환수로 추적하면서 유성원의 실황을 찍고 있는 기자였는데, 그야말로 유성원 무쌍. S급 헌터에 비견되며 성좌 제우스의 정예라고 소문난 유피테르 가드들을 모조리 두들겨 패 버리면서 전진, 또 전진!
마법이 날아오는 것을 몸으로 받아 내면서, 다른 헌터들은 적당히 봐주며 제압하는 반면 유피테르 가드들을 자비 없이 패 죽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젠장, 쓸데없이 크기만 해 가지고! 어딨는 거야? 그 제우스 꼬추는! 감지나 탐지 같은 거 안 돼?”
“예. 송구합니다만, 놈은 제우스의 사도라곤 해도 각성자에 못 미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돌겠네. 그 유피테르 가드 추적은… 아니, 그놈들은 결국 장기말이니까 의미 없나? 자칫하면 시간만 더 줄 가능성이 크니…….”
보통 각성자나 헌터를 탐지하는 기준은 가진 마력이나 힘이었는데, 뤼카이온은 제우스의 사도이지만 그 권능과 힘이 오직 단 ‘하나’의 기능에만 제약되어 있어서 탐색이 불가능했다.
남은 건 신의 가호나 그런 방향으로 찾아야 하는데, 유성원 측은 그런 힘이나 능력을 가진 이가 몇 명 없었다.
“섬멸 경이라면 추적이 가능할 텐데… 부를까요? 아니면…….”
“아니, 걔들 다 아영이 찾는 곳에 갔잖아. 됐어. 이 섬 싹 다 엎어 버리면 알아서 기어 나오겠지. 어차피 싸움이 되지도 않으니까…….”
하나 그쪽은 모두 유피테르 가드를 찾는 쪽으로 보내 놓은 상황. 일의 우선도는 무조건 아영이의 안전 확인이었기에 자신들은 좀 귀찮아도 일을 하는 게 나았다.
어차피 이 천공섬에서의 싸움은 이미 승기가 넘어온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싸우는 동시에 각종 전투 보고가 실시간으로 유성원의 귀에 들어왔고, 또 지금 새로운 무장을 하고 소환되는 천검군 정예 기사들 또한 압도하고 있는 상황. 뤼카이온의 확보는 이제 시간문제였다.
***
“제3방벽, 17번 구역, 13개의 방어선이 돌파당했고, 빌딩과 이곳 천공섬 방어 시스템이 각지에서 무력화, 그리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른 건가? 하아아~』
“그… 그게… 하하하.”
같은 시각, 뤼카이온은 옆에서 묵묵히 보고를 하는 유피테르 가드의 말과 화면 속에서 자신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올림푸스 길드 간부들의 시선에 위장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평소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한숨만 푸욱 쉬고 끝내던 양반들이 오늘은 진짜로 죽이고 싶다는 살의를 보내오고 있었다.
“아니, 아니… 그래도 설마 저렇게까지 막 나갈 줄은 몰랐죠. 하하하. 아, 아무튼 지금 저에 대해 화내시기 전에 대책부터 마련하셔야죠? 저 죽으면 큰일 나지 않습니까? 하하핫.”
그래, 아무리 못 미덥고, 짜증 나고, 사고만 쳐도 뤼카이온에겐 죽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이유가 존재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저 망할 종마 새끼에게 귀중한 유피테르 가드를 붙여서 밖에 내놓을 게 아니라 그냥 적당한 실험실 안에다 가둬 놓고 종마 기계로 만들었을 테니 말이다.
올림푸스 길드의 간부들은 일단 그를 살려야 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더 이상 책망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하나 지금 방법이 없네. 저 유성원 헌터 놈, 철저하게 우리와 싸울 걸 대비하고 있었어. 봉쇄 조치가 너무 완벽하네. 공중, 지상, 해상 모든 지원을 철저히 봉쇄했고, 마법 쪽도 결계를 세워 놨어. 억지로 뚫어도 되긴 하지만 그랬다간 자칫 세계 대전으로 확전될 수 있어서 미국 정부가 극렬히 반대하고 있네.』
“그, 그러면 저는?”
『그래서 지금 긴급 수단을 사용하려고 준비 중이네. 비용이 비싼 거라 쉽게 사용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지. 이미 출발했네. 그러니 조금만 더 버티게. 이제 약… 30분 정도면 도착하니. 어떻게든 시간을 더 끌었어야 했는데… 공격을 시작할 줄이야.』
“30분? 아니, 지금 3분도 버티기 힘들거든? 유피테르 가드 놈이 설명한 거 못 들었어? 저거 아주 작정했다니까요. 나 죽이려고!”
『그 30분짜리 수단도 너 하나 살리려고 급히 준비한 방법이야! 적당히 징징대게! 가능한 한 유피테르 가드들 안에 숨어 있다가 만나면 뭐라도 협상거리를 던지든가, 이야기를 던져서 버텨! 지금 우리로선 이게 최선이라고!』
올림푸스 길드 간부 중 하나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버럭 화를 내며 뤼카이온을 향해 소리쳤다.
그들로서도 최선을 다해서 구하려고 노력하는데, 저렇게 징징대고 자빠져 있으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아무튼 지금부터 30분, 어떻게든 버텨야 했지만 아무 능력 없는 그로서는 오직 이 천공섬과 빌딩의 방어 시설만을 믿어야 했는데 들려오는 소식은 모두 재앙뿐이었다.
“작전 목표를 수정, 지원이 오는 30분의 시간 동안 버티겠습니다. 각 블록 폐쇄 후 전력 차단 개시, 전 병력 중앙 통제실을 지키기 위해 포메이션을 재정비한다. 비상 예비 전력을 가동! 그리고 뤼카이온 님은 이곳에 계시면 위험하니 비상 탈출 벙커로 가십시오. 어떻게든 30분을 버티려면 그곳이 제일입니다.”
“젠장! 아, 알았어!”
결국 남아 있는 유피테르 가드의 지시 아래 뤼카이온은 중앙 통제실을 떠나서 여차하면 사출해서 도망칠 수 있는 비상 벙커로 향했다.
물론 사출해도 이미 주변을 비롯해서 사방이 유성원 헌터의 세력으로 둘러싸인 상황이라 의미 없었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30분을 버텨야만 살 수 있었기에 이거라도 감지덕지였다.
“여차하면 발사할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뤼카이온 님.”
“어, 어… 그, 그래! 후우~ 30분… 30분… 30분… 제발…….”
두 손을 꽈악 잡고, 뤼카이온은 이 지옥 같은 30분이 얼른 지나가길 빌었다.
하나 바깥의 폭풍은 더 거세지기만 할 뿐이었다.
이미 전력상으론 상대가 안 되기에 병력들은 지키러 나서도 불도저처럼 돌진하는 유성원의 시간 벌기 이상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차폐된 방어벽들이 시간 끄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
“아… 슬슬 짜증 나려 한다. 그냥 패황천검류 갈길까?”
“폐하, 그것을 사용하려면 천공섬에 침입한 다른 아군 병력들도 퇴각시켜야 합니다.”
“후우~ 그럼 어쩔 수 없지. 흡!”
콰아아앙!
티탄의 말뚝을 휘둘러서 방어벽을 우그러뜨린 다음 벌려서 넘어가는 유성원이었다.
어떻게든 중앙 통제실만 장악하면 그 뤼카이온이라는 녀석의 위치를 찾는 건 시간문제였기에 최대한 빨리 가려고 하였다.
방어벽이 시간을 끈다고 해도 해 봐야 기껏해야 1분 남짓. 유성원의 진격은 막힘이 없었고, 약 15분 만에 드디어 중앙 통제실에 도달하게 되었다.
“휴우~ 드디어 도착했네. 성가시게 만들고 있어, 진짜…….”
“와, 왔다. 자, 잠시만! 이야기를…….”
“남의 집 딸내미나 납치하는 비겁한 외도 놈들에게 들을 말은 없다. 정의의 이름 아래 그대로 죽어라. 알아보는 건 우리가 하겠다.”
이야기를 할 거였다면 진작 했을 것이다. 한시가 급한 유성원은 안의 스태프들과 헌터, 각성자들을 모두 없애라는 지시를 내렸다.
처음부터 반항하지 않고 뤼카이온을 내밀었다면 모를까, 이렇게까지 하는 건 시간을 끈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앙 통제실에 있는 직원과 남은 유피테르 가드를 처치한 유성원은 티탄의 말뚝에 묻은 피를 털어 낸 뒤 곧바로 뤼카이온의 위치를 물었다.
“음, 놈은 어디로 갔지?”
“찾고 있습니다. 보자… 비상 탈출 벙커들이 작동을 시작했습니다. 총… 800기에 달하는 벙커들이 모두 사출될 예정입니다.”
천공섬의 비상 탈출 장치. 한 대라면 눈치채겠지만 놈들도 바보가 아닌지라 동시에 800대나 되는 벙커를 사출해서 어떻게든 뤼카이온이 안전하게 도망치도록 하였다.
대체 제우스의 꼬추가 뭐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유성원은 질린 표정으로 관제실 컴퓨터를 잡고 있는 부하에게 물었다.
“정지 못 시키나? 아니면 그놈이 탄 것의 식별은?”
“죄송합니다. 그 둘 다 불가능합니다.”
“다 격추시킬까… 아니, 이거 민간인도 타고 있잖아? 그러면 예상 착륙 지점 다 찍어서 우리 쪽 시스템 맵에 띄워. 거기로 애들 다 보낸다.”
“그 정도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여기 점령한 인원은 계속해서 수색에 참여해. 나는 바깥에 있는 병력들을 이끌고 저 사출 벙커 800대를 잡으러 가겠다.”
긴급한 상황이 되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 유성원은 곧바로 중앙 통제실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밖에 있는 부하들에게 현 상황을 알렸고, 자신도 엘드라엔을 타고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사출되어 날아가는 벙커들이 보였다.
멀리서 보니 장관이 따로 없었지만, 그 제우스의 꼬추 놈이 그중 하나에 숨어 있으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잡아서 고자로 만들어 버려야 하는데. 다행히 이젠 우리도 물량이 밀리진 않아서 수색 인원을 흩어서 보내 놨으니까 비행 궤도보다 빠르게 가면 잡히겠… 음?”
우르릉!
날아가는 벙커들을 쫓을 계획과 통신을 주고받는 사이, 갑자기 마른하늘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라도 오려는 건가? 하고 하늘을 살짝 올려다보니 다시 한 번 더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어디론가 번쩍이며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번개… 제우스? 설마?”
신경과민일지도 모르지만 유성원은 일말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이미 저 천공섬을 버리더라도 뤼카이온을 탈출시킨 만큼 성좌 제우스의 사도들이 농간을 부려서 지원군을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그는 곧바로 무전기와 전화기를 들어서 모든 병력을 저 천둥소리와 번개가 향한 곳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