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뭐야, 이거?”
“뭐야? 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지?”
“맙소사, 직접 연결 포탈이라고? 그런 기술은 들어 보지도 못했는데?”
“젠장! 큰일이다!”
성소의 포탈을 넘어 유성원 앞에 펼쳐진 광경은 단숨에 불쾌함을 넘어서 분노 지수를 끌어 올리는 것이었다.
일단 어디선가 많이 본 익숙한 전사들과 싸우고 있는 가울프의 모습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딸인 신아영이 기절한 채로 납치당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는 놈들은 공교롭게도 유성원이 아는 놈들이었다.
올리브색과 갈색으로 이루어진 갑주에 청색 망토, 바로 성좌 제우스의 부하들인 유피테르 가드였다.
“유피테르 가드? 이게 무슨 짓… 이유를 묻… 아니, 물을 필요도 없겠지. 제우스 꼬추인지 X인지 모를 새끼한테 갖다 바치려고 납치하는 거지? 와, 진짜 어이가 없네. 노릴 사람을 잘못 골랐다는 생각을 안 하…….”
“…하아앗!”
“넌 또 뭐야?”
콰아아앙!
놈들은 유성원의 말을 듣지도 않고 일제히 움직여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유성원은 아무 대답 없이 할 일을 했고, 한 놈이 자신을 향해 무기를 들고 달려왔다.
그러자 분노에 가득 찬 유성원은 그것을 더 이상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걸로 간주하고 티탄의 말뚝을 휘둘러서 자신에게 달려오는 유피테르 가드 한 명을 때려눕혔다.
티탄의 말뚝에 뒤통수를 정통으로 맞은 유피테르 가드는 뇌수와 피를 쏟으며 그대로 땅을 굴렀지만, 다른 놈들은 이미 흩어진 지 오래였다.
“…가울프 경, 이 사태에 대해 설명 좀 해 보시지요.”
분노한 유성원은 그답지 않게 존댓말로 질문을 했고, 그 모습에 평소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깨달은 가울프는 자신의 어비스 나이트메어를 부르면서 아주 짧게 설명했다.
“설명이야 간단하지. 보고한 대로 찝쩍거리던 그 제우스의 꼬추 놈의 부하들이 추적하는 걸 감지하고 보고를 올렸으나 아무 조짐이 없어서 도주를 시작. 하나 놈들의 숫자가 많은지라 일제히 우리를 습격, 나는 거기에서 긴급 상황임을 인지하고 즉시 호출 권한을 사용하여 성소 포탈을 열고 계약자를 불렀다. 이게 전부다.”
가울프의 행동은 매우 합리적이었고, 기존에 정한 규칙대로 위험 단계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을 하였다.
문제라면 역시 유피테르 가드라고 하는 이 지구상에서 손꼽히는 전투 집단이 강습해 온 것이었다.
가울프가 붙어 있다곤 하지만 S급에 아슬아슬 턱걸이한 아영이로서는 다수의 유피테르 가드가 동시에 달려드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보고… 아, 젠장! 그래, 가울프, 일단 너는 추적해. 크록베인, 섬멸을 대동해도 좋아. 손이 모자라면 하영이랑 재영이, 수영이랑 함께 가도 돼. 아영이에게 추적기 있으니까 그거 쫓아가. 만약 전력 모자라면 유청에게 연락해서 더 불러도 돼.”
“계약자는 어떻게 할 건가?”
“어떻게 하긴. 나는 그 망할 제우스 꼬추 새끼가 외국으로 못 튀게 항공, 배, 지상의 교통수단, 그리고 저기 망할 천공섬까지 모조리 봉쇄 명령이랑 긴급 사태 때려야지. 시간 없으니 먼저 간다. 엘드라엔!”
유성원은 휴대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면서 급히 엘드라엔을 타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가울프 또한 지체하지 않고 어비스 나이트메어를 타고 유피테르 가드의 자취를 쫓으면서 다른 기사들을 불러 수색을 개시했다.
“나다. 전원 한국으로 결집. 상대는 올림푸스 길드, 일어난 사태는 현재 제우스의 사도인 유피테르 가드에 의해 아영이가 납치되었다. 유청, 천군대장군, 레그혼은 대기 병력을 제외한 가용한 모든 전력을 한국에 모아. 전선 도시와 평양 사령부는 즉시 전투태세를 갖추고 모든 천검군과 사령 군단을 올림푸스 길드 한국 지부 천공섬 앞으로 결집시켜. 신무장 다 갖고 나와도 좋아. 언론에도 보고 때리고 중국, 인도 채널 이용해서 그쪽 근처에 있는 올림푸스 천공섬에다 또 비상 때려.”
그리고 본래 결전의 날에 사용하기 위해 갈고닦아 온 전력을 모두 불러내는 유성원이었다.
그렇게 대응을 하면서도 분노와 함께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아영이에 대해선 당연히 자신이 지키고 돌봐야 하는 가족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공식 후계자이자 부재 시 유성원의 대리 임무를 수행하는 자라는 중요한 의미까지 있었다.
그걸 건드린다는 것은 유성원의 역린을 건드리는 거나 마찬가지이며 올림푸스 길드로서는 아무 득이 없는 행동이었다.
‘…일단 그 꼬추 자식을 잡아서 물어보면 되겠지.’
[폐하, 유청입니다. 보고는 들었습니다. 지금 곧장…….]
[여기는 천군대장군. 사령 군단 도착까지 약 17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레그혼이다. 깡그리 모아서 가는 중인데… 인간들이 아직도 우리가 적인 줄 아는 건지 길을 안 내줘. 네가 전화 좀 해 줘라.]
곳곳에서 들어오는 보고를 차례대로 들으며 날아가던 유성원의 시야에 어느덧 올림푸스 길드 한국 지부의 본산인 천공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
올림푸스 길드, 한국 지부 천공섬.
이 경악스러운 사태를 만든 뤼카이온은 현재 올림푸스 천공섬에서 빠르게 대응하는 유성원과 대한민국 정부 및 뉴스로 나오는 자신의 이야기를 보며 벌벌 떨고 있었다.
사실 원래 이런 짓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갑자기 길드 상부에서 자신을 한국 지부장 자리에서 교체한다고 한 것 때문에 몇 달간 공을 들인 일이 물거품이 되는 게 짜증이 난 데다, 어차피 사고 치고 도망치면 제아무리 유성원이라고 해도 올림푸스 길드에 전면 전쟁을 선포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 벌인 일이었다.
“근데 이 대응 속도 뭐냐고. 거의 함정 수사 레벨이잖아? 아무리 딸이라고 해도 너무한 거 아냐? 너희들, 일부러 나 엿 되라고 한 거지?”
“보고드린 대로 이 기지에서 작전 개시, 추적, 납치까지 걸린 시간이 도합 21분이었습니다. 작전 시퀀스 3에서 납치 시도를 하기 위해 현재 대한민국에 주둔하고 있는 유피테르 가드 8명 전원이 참전, 그리고 시작하고 단 9초 만에 타깃을 제압 완료했으나 12초 되는 시점에 유성원 헌터가 등장하여 추적당하기 시작, 한 명을 희생하여 도주할 수 있었지만 미션은 완수했습니다.”
“완수가 아니잖아, 이 먹통들아! 저거 어떻게 감당할 건데?”
“그건 저희 임무 및 영역이 아닙니다.”
유피테르 가드들의 답답한 소리를 들으면서 뤼카이온은 사태가 이렇게 된 것에 혼란스러워하며 밖을 바라보았다.
납치하라고 보낸 유피테르 가드들이 아직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올림푸스 길드 소유 빌딩과 천공섬 주변에 유성원 헌터가 자랑하는 기동 부대인 마수들, 사령 군단, 기사단이 모두 결집해서 포위망을 구성 중이었다.
‘아니, 진짜 말도 안 되잖아. 저 대응 속도 뭔데? 내가 노리는 걸 눈치채고 함정을 파 놓은 건가?’
“뤼카이온 님, 본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한국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얼른 와서 설명하라고 하십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 아니, 그보다 지금 설명을 요구할 때야? 닥치고 날 구해야지? 내가 어떤 몸인데! 자기들도 X 되기 싫으면 나한테 묻기 전에 알아서 뛰어야 할 거 아니야! 나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다 알면서!”
“그렇지만 일단은… 사정 청취라는 걸 해야 하니 말이죠. 그럼 제가 할까요?”
저 우직하고 눈치 없는 유피테르 가드에게 맡겼다가는 자신이 그동안 계획하고 실행한 일에 대해서 곧이곧대로 말할 것이고, 그랬다간 자신이 흥미와 자극을 이유로 일을 저지른 것을 들키기 때문에 절대 맡길 수 없었다.
“젠장!”
“뤼카이온 님, 위험합니다! 지금 저 밖에…….”
“뭐, 뭐야?”
크오오오오오!
유피테르 가드가 가리킨 창밖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황금의 용, 그리고 그 목 부분에는 황금의 기사가 거대한 말뚝을 손에 든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창문이 깨질 것처럼 무시무시하게 노려보는 그들을 본 뤼카이온은 식은땀을 흘리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일전에 호텔에서 봤을 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 완전무장을 한 것도 한 거지만, 저 거대한 용이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아랫도리의 힘이 풀릴 것 같았다.
“히이익! 이, 이를 어쩌지?”
“어떻게 할까요? 뤼카이온 님. 영격을 할까요? 아니면 지원 요청을 할까요? 현재 밖에선 뤼카이온 님을 내놓으라고 난리 중입니다만 저희는 일단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비대와 방어 시스템 모두 작동 중입니다.”
“그, 그… 나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자세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손을 댄 상대가 유성원 헌터의 딸이면서 세력 후계자인 만큼 보통 사태로 끝나지 않을 텐데, 아마 그들 손에 들어가서 재판을 받으면 잘해 봐야 평양 지하에 있다는 감옥에 갇혀서 평생을 보낼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면 딸에다가 후계자를 건드리려 했으니 손수 쳐 죽일지도 모르죠.”
유피테르 가드의 담담한 말이었지만, 어떻게 되든 결말은 X 되는 것밖에 남지 않은 듯하자 뤼카이온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온갖 패악질을 부려도 올림푸스 길드와 성좌 제우스의 사도라는 배경 때문에 누구도 대항하지 못하고 겁을 먹기만 했고, 이번에도 그냥 사고 친 뒤에 도망치면 결국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몰리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지, 지금 근처 국가 지부에 누가 있지? 지원 올 사람이 있나? 일본, 중국, 러시아 지부에 연락은?”
“이미 했습니다만, 그… 해양과 공중이 모두 봉쇄된 상태입니다. 지원 오려고 한 곳들 모두 유성원 경이 내린 명령 및 현장에서 저희 애들이 납치하는 장면이 담긴 뉴스 영상을 뿌리면서 명분까지 완전하게 세워 놨습니다. 지금 이 건물 내부에서도 그걸 보면서 뤼카이온 님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젠장! 그럼 뭔가 방법이 없을까? 나 죽으면 절대 안 되는데… 절대… 절대로 안 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건드리지 말걸…….”
자극이 필요하다면서 일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를 너무 얕본 것이 패착이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었고, 이대로 계속 농성할 수도 없던 그는 일단 상부에 보고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사무실로 들어가서 연락을 넣었다.
***
같은 시각.
밖에서는 현재 엘드라엔을 타고 빌딩과 천공섬 주변을 뱅뱅 돌면서 그곳을 노려보는 유성원이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 군대까지 그의 명령에 동원되어서 올림푸스 길드 주변의 포위망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으며 해군, 공군들도 유성원의 말에 언제든 공격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두 배치 완료했습니다, 폐하.]
“올림푸스 길드 쪽에서 말은?”
[일단 미국 쪽에 있는 공식 채널에선 뤼카이온에게 연락해서 자세한 경위를 묻는다고만 답하고 있습니다.]
“경위라……. 그게 공식 대답이지? 좋아. 그럼 우리가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지. 작전 개시한다. 오퍼레이션:제우스 포경 수술이다.”
[예, 폐하. 피난과 항복 권고 방송 후… 전 병력은 천공섬과 빌딩에 돌입, 안에 있는 ‘뤼카이온’을 잡겠습니다.]
“좋아.”
우우우우우웅!
커다란 사이렌 소리와 함께 빌딩과 천공섬에 모두 들릴 정도의 목소리와 방송까지 포함해서 피난과 항복 권고를 시작했다.
이것이 끝나는 즉시 천공섬과 빌딩 모두 제압에 들어가고, 뤼카이온은 사살 혹은 포획하는 작전이 시작된다.
인질로 아영이가 잡힌 거나 다름없는 상태라서 본래라면 이렇게 경거망동해선 안 되지만, 일단 가울프가 추적하고 있으며 여차할 경우 자신들도 뤼카이온을 인질로 잡아서 교환할 생각을 했기에 들어간 것이었다.
“설마 실전 테스트를 이렇게 하게 될 줄이야. 아무튼… 제우스 꼬추 놈, 반드시 잡아 주마.”
쐐에에에에엑! 파아앙! 콰아앙!
피난과 항복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천공섬과 빌딩을 향해서 미사일, 레이저, 레일건 등등 한국군과 유성원 휘하의 군대가 일제히 화력 투사를 시작, 그다음 지하 주차장과 공중 루트로 천검군 기사들과 사령 군단이 나눠서 돌입하여 내부를 진압해 나갔다.
“그럼 슬슬 나도 가 볼까?”
그리고 유성원 또한 엘드라엔의 고삐를 움켜잡고 천공섬 위로 날아오른 다음 급강하하여 돌입, 착륙하자마자 기사단의 성소 문을 열어서 유청을 비롯한 현재 가용한 기사 전력을 모조리 풀어 놓고 전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