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와, 이거 진짜 대박일 것 같아.”
“그렇습니까?”
“안 그러면 내가 어르신을 안 불렀지. 지금 부리나케 오고 계실걸?”
기술실로 바로 내려온 유성원은 먼저 폭시가 준 ‘폐기체’를 집어넣고 분석을 시작했다.
이게 어느 정도급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판국이었지만, 그래도 마정석 코어 엔진과 내부 프레임 및 설계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엄청난 성과였다.
“이거면 무기류들의 출력 문제도 해결되고, 성좌 종말자의 군단엔 미치지 못하는 마이너 카피라도 확실히 전력이 증강되겠지. 갑주나 무구를 만들려고 했는데 말이야.”
“그걸 천검군에게 무장시킬 계획이셨죠?”
“천검군뿐만 아니라 사령 군단에게도 주려고 했지. 화기 같은 건 아니더라도 갑옷과 무기만 바꿔도 전투력이 부쩍 오르잖아. 둘 다 경험이 풍부한 부대니까 말이지.”
물론 그들이 가진 장비가 나쁘다는 건 아니었지만, 기왕이면 경험 많고 전투력이 풍부한 부대인 그들에게 신장비를 주어서 전력을 증가시키는 건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기사들 또한 각자 능력이 출중했지만, 이제 상대해야 할 성좌는 매우 강력하기에 무장의 교체도 필요한 시기가 딱 겹치는 순간이었다.
“사실… 성좌 종말자는 우리 능력으로 잡을 수 있었던 수준이 아니었잖아? 아칼론의 희생 덕분이었으니, 두 번 다시는 그런 일 없게 해야지.”
“맞습니다, 폐하. 아, 오셨군요.”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급히 부른 건지… 헉!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한참 이야기하는 동안 연락을 받은 백가연 어르신이 급히 도착했고, 유성원은 그녀에게 폭시에게서 산 물건에 대해 설명해 주고 덤으로 받은 기체 또한 이어서 설명했다.
“덤으로 받은 물건이지만 어떻게 보면 더 큰 보상입니다. 본래도 성좌 종말자의 소재로 무장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샘플이 확실히 와 주니 무장 출력이라든가, 병기 개발도 순조로울 것 같습니다.”
“그거 좋은 이야기이지 않은가?”
“예. 좋은 이야기죠. 이 ‘마정석 기술이 담긴 오파츠’ 덕분에 단숨에 병기 기술 면에서 앞서게 되고, 전투력이 높아지는 거니……. 또, 지금 군사력도 다분히 올리도록 노력 중이거든요.”
중국의 경우는 유성원의 지시로 인해서, 인도의 경우는 이제 성좌에게 배신당했으니 남은 건 인간의 지혜밖에 없다는 기조 아래에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기술 개발과 군부 혁신부터 이루고 있었다.
각성자에 대해선 이제 별도의 능력자로만 취급하고, 최대한 군사력을 갖추어 다시는 악(惡) 성향 성좌에게 나약하게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아무튼 그쪽 분들에게도 일정량 제공해야겠지만 역시 천검군이랑 사령 군단, 제 기사들부터 무장을 싹 바꿔야겠어요. 성좌를 모으는 것도 좋지만, 기존에 있는 부대도 강화해야 하니까요.”
“그건 맞는 이야기지.”
“그리고 저 코어 엔진 복제해서 만들 수 있으면 기갑이라든가, 항공, 미사일 등등… 응용할 곳도 많을 것 같아요. 무기 기술만 해도 지금 우리가 상용화하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좋았거든요.”
그러면서 코어 던전 내부에서 상대했던 종말기장들의 무장들에 대해서 다시금 떠올리는 유성원이었다.
초진동검, 레일 라이플, 버스터 캐논 등등, 공격 무장도 훌륭했지만 탄탄한 코어 엔진을 기반으로 한 실드 무장을 비롯한 방호력도 상당히 만만치 않았다.
인간이 쓰도록 양산만 가능하다면 어쩌면 지금의 각성자 메타 자체를 바꿔 버릴 물건이었다.
“뭐, 이런저런 일이 생기겠지만 아무튼 당장이 급하니까요. 날로 강해져 가는 올림푸스 길드, 성좌 영원한 분노와 싸워야 하니…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죠.”
“자칫하면 세계 대전이 일어날 수 있을 텐데…….”
“그 빌미를 안 주려면 온전히 우리만 싸워야겠죠. 쩝~”
“몰래 미국 정부와 이야기하는 것도 좋을 걸세. 그쪽도 오랫동안 올림푸스 길드와 지내면서 이런저런 불만이 쌓여 있거든.”
“아, 그래요? 저는 그런 줄 전혀 몰랐는데…….”
“내 쪽으로 아주 몰래 들어온 이야기일세. 애당초 미국 정부가 성좌들의 존재를 좋아할 리 없지 않은가? 심지어 그것도 아주 구닥다리 이야기나 다름없는 올림푸스를 말이지.”
각성자의 시대에도 세계 최강국이었으며, 마정석 관련 연구 분야에서 톱을 달리면서 여전히 군사적 역량이 세계 최강이던 미국이었다.
하나 성좌의 시대가 되고 올림푸스 길드에게 그 위상을 빼앗긴 뒤 지금은 그저 올림푸스 길드의 중심지라는 존재감밖에 없었으며, UN에서 대변인 역할이라는 인식이었다.
“이성과 합리, 민주주의로 운영하던 세계 최강의 정부가 어느새 신의 꼭두각시가 되었으니, 그에 반발하는 자들이 없을 수 없지.”
“그렇게 보면 또 그렇네요. 근데 왜 지금까진 조용했던 거죠?”
“다른 대책이 없던 것이었지. 이미 세계 곳곳에 천공섬을 보내어 지배하고 있는 세계 최강의 길드 아닌가? 또 그들이 지금 미국 안보의 상징도 되었고 성좌 영원한 분노가 침략해 오는 태평양의 바닷길을 누구 덕에 안전하게 쓸 수 있게 되었는지도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아…….”
성좌 포세이돈의 결계와 그 기지를 갔었던 유성원인 만큼 그 뜻을 금방 깨달았다.
지금 세계는 알게 모르게 이미 올림푸스 길드에 빚을 지고 있으며, 그들이 없었으면 성좌 영원한 분노 같은 멸망급 성좌의 공세에 시시각각 이 ‘별’의 존폐를 위협당하고 있었으리라.
지구 멸망의 카운트다운을 막아 주고 있는 그들을 절대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누구도 쓰러뜨릴 수 없을 거라던 멸망급 성좌를 쓰러뜨린 새로운 존재가 나타났지.”
“아… 저군요.”
“그래, 그것도 하필이면 그 어떤 성좌에게도 기대지 않은 존재이며, 수많은 성좌를 벌써 이 별에서 퇴출시킨 자. 미국 정부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지. 아무튼 거기선 자네에 대해서 아주 크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네.”
들려온 것 중 아주 좋은 소식. 미국 정부까지 협조해 주면 이제 순수하게 올림푸스 길드와 자신들만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다른 부분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세계 3차 대전에 대한 두려움이었는데, 미국 정부가 내부에서 협조해 준다면 그 점을 막고서 오롯이 성좌와 올림푸스 길드의 토벌에만 집중할 수 있으리라.
“…그쪽에도 뭔가 메시지를 보내야겠네요. 아오… 할 일이 왜 이렇게 많냐?”
“하지만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갈수록 성공률이 높아지게 되네. 자네… 1년도 안 남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죠. 씁…….”
성좌 복수의 티탄과 손잡고 예정한 결행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만큼 해야 할 일이 점점 늘어 가면서도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불안감 역시 솟아오르고 있었다.
가끔은 이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잘한 성좌들이나 몰아내면서 현 상황을 유지한다거나, 아니면 그냥 다음 세대에 맡겨 버리고 자신은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래, 올림푸스 길드가 흥하면 좀 어떤가? 세계는 평화로울 거고, 자신은 중국, 인도와 함께 아시아권을 돌보면서 평화로운 치세를 이어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분명 들었고, 이는 큰 유혹이었다.
아시아의 제왕이라 불릴 정도로 높은 자리까지 왔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냥 오래오래 평화롭게 잘 살았습니다, 로 엔딩 짓고 싶었다.
‘…그럴 순 없지. 치울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데까진 가야지. 남이 하게 어떻게 둬?’
자신이 검을 쥐고 있는 한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알기에 유성원은 마음을 다잡고 성좌 종말자의 기술과 미국 정부, 그리고 기존에 하던 업무까지 계속 해내기로 하였다.
***
D-Day까지 약 9개월, 평양 사령부.
신장비 개발, 외부 성좌 세력과의 교섭, 국가 운영, 정부와의 협상 등등… 할 일은 많은데 손은 한정적이어서 고생인 유성원이 홀로 3개월간 분투하던 어느 날, 반가운 소식이 하나 들어왔다.
바로 성좌와 계약하러 나갔던 아이들 중 한 명이 계약을 마치고 복귀한 것이었다.
“하영이가?”
“예, 폐하.”
“당장 가 봐야지!”
그 소식을 들은 유성원은 서류도 내팽개치고 양딸을 맞이하기 위해 득달같이 뛰어갔다.
사령부 밖으로 나가자, 어디서 야생 생활이라도 한 듯 꾀죄죄하고 더러운 몰골을 한 하영이와 그녀를 수행하는 크록베인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자신도 약 한 달간 야생 생활을 했지만, 아이가 그렇게 고생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아, 아빠아!”
“그래, 고생 많이 했구나. 일단 들어가자. 자세한 건 씻고 밥 먹고 난 다음에 들어도 돼.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지금 바로 시켜다가… 아니다. 내가 엘드라엔 타고 날아가서 가져와도 되겠다. 다녀올 테니까 뭐든 말만 하렴! 엘드라엔!”
“아뇨. 그건 괜찮아요. 그보다 저… 성좌 산거정 님이랑 계약했어요.”
“성좌 산거… 정?”
“예.”
성좌 산거정. 서울 강남 남쪽에 거주하는 성좌로 수인과 도적, 야만인들로 구성된 이 세력의 목표는 그저 모든 것을 빼앗는 약탈. 성좌 아래 모인 자들은 모두 도적단 같은 존재들, 돈과 마정석을 비롯한 보물을 노리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서울 쪽의 주요 적대적 성좌이지만 그 약소한 세력 때문인지 주로 레벨 업을 위한 경험치 장소로 쓰였는데, 강남 신도시에 한번 쳐들어온 이후 다시 얌전해진 곳이었다.
“으음… 크, 크흠! 일단 씻고 난 뒤에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꾸나.”
“예, 아빠!”
자세한 내막은 몰랐지만, 섣불리 판단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우선 정비할 시간을 주는 유성원이었다.
그렇지만 성좌 산거정에 대해선 그다지 좋은 경험이 없었기에 찜찜한 것은 사실이었다.
다른 성좌도 아니고, 약탈과 금전을 선호하는 성좌라니. 기사도니 어쩌니에 찌든 유성원으로선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읏챠, 그래, 어떻게 계약을 맺었니? 혹시 이상한 독소 조항이나 사기 조건 같은 거에 걸리지 않았겠지? 크록베인, 너도 뭐라고 좀 해 봐.”
[…별거… 없었다.]
“정말로?”
[아가씨가… 약탈한… 물건의 10분의 1만 십일조로 바치라고 했다. 그러면 된다고 했다……. 그 외엔… 용병처럼… 돈 주고 고용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고용한 애들이 약탈한 물건은 모두 자기들 소유라고…….]
‘도적놈들 집단이라서 그런가? 좀 날도둑 같은 조항만 빼면 그럭저럭이네.’
성좌 산거정에 대한 편견이 깊었는지, 막상 듣고 보니 썩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물론 약탈한 물건이 자기 거라는 조항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급하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라고 생각하면 너그러이 고려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렇게 크록베인에게 미리 어느 정도 설명을 들은 다음 씻고 올라온 하영이에게 이어서 설명을 들었다.
‘일단 여기까진… 크록베인이 설명해 준 대로군.’
“…그래서 말이죠. 결국 세상은 강자가 다 해 먹는 곳이기도 하고, 그래서 힘만 있으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하니까~ 너 우리 동료가 돼라! 라고 성좌님의 말이 나오고, 상납금에 따라 힘 주고, 회수는 절대 안 한다니 걱정 말라고 해서… 그냥 계약했어요.”
“으음… 근데 여기선 영 힘을 못 쓰는 분이라서 그런 것 같은데…….”
“그야 그분은 ‘보물’을 ‘약탈’하는 게 목적이지, 이기거나 지는 건 상관 안 하신다고 하니까요. 아무튼 이 ‘별’의 판국은 망했으니 그거라도 뒤집으려면 큰 거 한탕 해야 하는데, 큰 배에 탈 생각이라고 하시네요.”
“으으으으음…….”
하영이의 이야기를 통해 유성원은 성좌 산거정 측의 목적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약탈’이 주라는 점에서 좀 우려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성좌 세력은 맞으며, 하나라도 더 모아야 하는 판국에선 이거저거 가릴 수가 없는 게 그들의 처지인 만큼 하영이의 말을 이해해 주고, 그녀에게 조심하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