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일단 이 대화의 대전제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저희는 당신들과 함께 힘을 합쳐서 올림푸스 길드를 막고 싶습니다.”
“그것참 반가운 소리군요. 저희도 그걸 바라고 있었습니다. 정말 공교롭게도… 성좌 종말자를 피똥 싸면서 잡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서 말이죠. 하지만 그… 힘을 합친다는 거에 대해서 좀 엄격히 구분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 그 부분은 대충 알고 있습니다. 이 동맹이 저희와 임시로 맺는 것인데, 올림푸스 길드가 끝장나면 어떻게 할 거냐, 이 말씀이시죠?”
유성원은 커류라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성좌 복수의 티탄도 엄연히 ‘멸망급 성좌’. 올림푸스 길드를 힘겹게 잡고 나니 이번엔 산 넘어 산이라고, 더 큰 상대를 맞닥뜨려야 하는 미래는 그리 반갑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우려를 잘 아는 커류가 먼저 그것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는 애초부터 이 ‘별’에 그리 관심이 없습니다. 성좌 복수의 티탄의 목적은 단 하나, 저 올림푸스 길드에 모인 성좌들을 모조리 끝장내는 것입니다.”
“…끝장이요?”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으음… 당신들이 성좌 종말자에게 했던 것 같은 정도의 일이면 되겠네요. 아주 솜씨가 훌륭하더군요.”
“아… 그거 말이군요.”
성좌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것이나 야망 같은 것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인도에서 도망쳤던 가장 약한 성좌들에게도,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진 성좌 종말자에게도 있었다.
그리고 기사 아칼론의 희생으로 유성원이 성좌 종말자의 코어 던전에서 억겁의 세월 동안 쌓아 온 그의 야망을 단 한 방에 날려 버린 일이 바로 얼마 전에 벌어졌다.
“그것 때문에 저희가 당신들과 손잡을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이들이라면 올림푸스의 그놈들을 싹 쓸어버릴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으음, 그러면 하나만 묻죠. 올림푸스 길드가 멸망하고, 그 성좌들이 떠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당연히 저희도 떠날 겁니다. 그리고 그놈들을 계속 쫓을 거고 말이죠.”
“성좌에 맹세코?”
“물론입니다.”
성좌에 대한 맹세를 했으니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리라.
그럼 이제 양측 모두 순수하게 올림푸스 길드의 타도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상태였기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으음… 함께 힘을 합치자는 건 좋지만 말입니다. 막상 뭘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지금 저희로서는 올림푸스 길드를 직접 공격하는 행위를 전혀 하지 못하는데…….”
“성좌 포세이돈이 친 성좌 영원한 분노의 결계를 깨십시오.”
“…아니, 정신 나갔습니까?”
커류의 말에 당황한 유성원이 벌떡 일어서면서 소리쳤다.
성좌 영원한 분노. 두말하면 입이 아픈… 지금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최강의 멸망급 성좌였다.
휘하 군단은 최하가 A급인 거대한 마수들로 구성되어 있고, 다른 성좌들처럼 오직 사도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진체(眞體)’로서 활동하는, 말 그대로 별을 먹는 성좌인 괴물이다.
현재 성좌 포세이돈과 그의 사도들이 결계로 막아서 그의 포식을 최대한 줄이고 있는데 그것을 풀어 주자니. 제정신으로 내뱉는 의견인지 의심이 되는 유성원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나 그것 외엔 딱히 변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지구의 인간들은 ‘성좌’에 대한 의심 때문에 모조리 올림푸스 길드로 가고 있어서 올림푸스 길드는 나날이 강해지고 있고, 당신은 인류를 지킨다는 그들과 정면으로 싸울 수도 없는 상태. 다른 조력자나 협력자를 찾으려고 해도 세력 차가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죠.”
“…….”
“아니면 다른 세력을 잡아서 자신의 힘을 키우고자 하니, 그 정도 급이 맞는 건 오직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뿐인데… 그는 물리적으로 잡을 수 있는 자가 아니지요.”
“…큭!”
또 다른 멸망급이라 불리는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는 다른 멸망급과는 조금 다른 특이한 성좌였다.
다른 멸망급들도 물론 우주를 재구성하겠다는 성좌 종말자, ‘별’을 먹어 치우는 성좌 영원한 분노, 신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성좌 복수의 티탄. 이런 식으로 가지각색이었지만,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는 많이 특이했다.
“예. 아프리카, 유럽에 전선을 펴고 있다는데… 사실… 그게 그냥 전선이 아니죠.”
유성원은 조용히 휴대폰을 열어서 화면을 틀었다.
거기엔 거대한 빌딩과 빽빽한 건축물들이 가득한 전형적인 도심의 풍경이 보였는데, 수많은 건물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계속해서 건설되는 중이었다.
언뜻 보면 그냥 평범하게 굴러가는 도시의 풍경 같지만, 그 거대한 도시 뒤에 보이는 킬리만자로 산을 본 순간 다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리라.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다들… 처음에 이름만 들으면 오래된 도시에서 사람들을 덮치고 다니는 집단 같은 느낌이지만 현실은… 강철과 콘크리트로 된 마천루를 마구잡이로 만들어 대는 ‘도시 개발’로 별을 침략하는 습격자.”
물론 전쟁과 전란도 있기 때문에 단순히 ‘도시 개발’로 습격한다고 전체적으로 말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아프리카 전역의 자연을 모조리 없애 버리는 일을 하니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반발이 있었다.
하나, 잦은 내전과 부정부패로 가득한 정부를 가졌던 아프리카 각 국가의 국민들은 자신들도 미디어나 인터넷으로 접하는 더 좋은 환경과 평화를 원했고, 자연스럽게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를 지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은 그동안… 아니, 식민지 시절 이후 해방이 되었어도 계속해서 정치적 혼란과 내전으로 상처만 입어 왔죠. 그 원인은 하나로 줄이지 못하지만 아무튼 그쪽 사람들은 계속… 평화와 번영을 원했고, 결국 대부분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그 뒤로 EU는 물론 중동과 분쟁을 시작했죠.”
생태계 보존이니 동물 보호니 암만 떠들어 대 봤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륙이었던 아프리카 주민들은 자신들도 평화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항변하면서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아래로 들어가서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 결과 아프리카 대륙은 이제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사막, 사바나, 동물의 왕국 같은 이미지에서 점점 벗어나서 킬리만자로 산 주변까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여 가고 있었다.
“아무튼… 그쪽에도 지금 수십억 인구들이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를 섬기면서 거대한 경제 공통체까지 만들고 있는 상황이라 딱히 변수가 없으니, 결국 올림푸스 길드를 엎을 수 있는 건 성좌 영원한 분노급뿐…….”
“으으으음… 하지만 너무 위험한 전략 같은데 말이죠.”
“뭐, 성좌 영원한 분노가 ‘별’을 먹는 짐승이지만 그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른 게 아닙니다. 그리고 풀려나면… 지금 흐름이 완전히 바뀌게 되겠죠.”
성좌 영원한 분노가 결계에서 풀려나면 분명 올림푸스 길드에 대규모로 비상이 걸릴 것이다.
바다를 먹고, 육지를 먹고, ‘별’을 먹는 짐승. 성좌의 진체(眞體)가 날뛸 테니 그것을 막으려고 세계 각지에 흩어진 헌터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물론 대책을 세워야 하니 아주 혼란스러울 터였다.
“자연히 우리를 막고 있는 전선이 약해질 것이고, 우리는 해방이 되고 당신들과 협력해서 이중 전선을 만들면 됩니다.”
‘…계획은 상당히 그럴싸한데 말이지.’
하지만 계획이 좋다고 현실성이 높은 것은 아니었다.
정말 그들의 말대로 유성원이 포세이돈의 결계를 부숴서 성좌 영원한 분노를 풀어 놓으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가 의문인 상황.
또한 상황이 정말로 이 커류라는 남자의 말대로 풀릴지도 의문이지만, 결국 성좌 영원한 분노를 쓰러뜨릴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성좌 영원한 분노를 과연 올림푸스 길드가 쓰러뜨릴 수 있을지가 의문이네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성좌 영원한 분노를 쓰러뜨리고 기진맥진한 그들을 우리 둘이서 마무리 짓는 건데…….”
“반대로 성좌 영원한 분노가 이겨 버리면 어쩌냐는 거지요?”
“예. 솔직히 멸망급이… 괜히 멸망급이겠습니까?”
“그러지 않기 위해서 이제 유성원 님께서 결계를 비밀리에 깨시고, 올림푸스 길드를 도와서 성좌 영원한 분노를 상대하시면 되죠.”
“그럼 그사이에…….”
“저희가 올림푸스 길드의 뒤를 치고 말이죠.”
“그러다가 저희에게 성좌 영원한 분노를 맡기고 그쪽에 올인하면요?”
“그러지 않게 공략 수위를 조절해 주셔야죠.”
커류의 말에 유성원은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건 분명 이론은 좋지만 실천하기 더럽게 어려운 내용이었다.
일단 올림푸스 길드의 감시나 예언 같은 것을 뚫고서 포세이돈의 결계를 부수는 것부터가 난관인데, 거기에다가 자신이 부숴 놓고 올림푸스 길드와 협력하는 척하면서 성좌 복수의 티탄 쪽과 연계하며 싸워야 한다.
심지어 그것도 올림푸스 길드에게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까지 추가로 붙는다.
“…이건 거의 미션 임파서블인데요.”
“불가능인… 미션은 아닐 텐데요? 왜 먼저 불가능이라고 하시는 건지?”
“아니… 그… 영화 제목입니다. 크흠! 아무튼 이건 어려워도 너무 어렵습니다. 일단 올림푸스 길드의 시선을 피해서 연락을 주고받을 방법부터가 문제예요.”
“연락을 안 주고받으면서 한다면? 서로의 움직임을 보고 각자 알아서 하는 거죠.”
“그럼 서로 정보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야겠네요.”
“어차피 저희도 나름 멸망급으로 소문나 있으니 문제없겠죠. 아무튼 어쩌시겠습니까? 가능하면 지금 당장 대답을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상당히 무리해서 온 거라서 말이죠.”
올림푸스 길드에 들킬 염려도 있지만, 애초에 성좌 복수의 티탄은 지금 올림푸스 길드에게 견제당하고 있어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런 만큼 이렇게 비밀 사절을 한 번 보낸 것도 꽤 무리한 거라 가능하면 빠르게 대답을 가져가야만 했다.
“음, 잠시 회의 좀 하겠습니다. 한 한 시간 정도만 기다려 주세요.”
“예, 그러지요.”
결국 혼자서 판단을 내리기 힘들었던 유성원은 다른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서 기사들을 호출했다.
멤버는 유청, 가울프부터 시작해서 고블린 제국의 멀블린까지. 두뇌파들을 모두 소집한 다음 성좌 복수의 티탄의 사절인 커류가 한 이야기를 그들에게 최대한 빠르게 설명했다.
“계획은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이걸 실행하는 게 아무리 봐도 위험해 보이거든? 게다가 리스크도 엄청 크고 말이야.”
“저는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좌 복수의 티탄이 맹세까지 한 판국인데……. 이 연합 전선만큼 확률이 높은 계획은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흠… 나는 반대네. 이거 우리에게만 너무 리스크가 높아. 성좌 포세이돈의 결계를 깨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그다음에도 풀려난 성좌 영원한 분노와 전쟁까지? 대놓고 우릴 이용해 먹는 것 같은데?]
“차라리 성좌 포세이돈의 결계는 놔두고 성좌 복수의 티탄과 함께 올림푸스 길드와 전쟁하는 건 어떨까요? 양면 전쟁을 한다면 그게 더 편해 보입니다만?”
“그 방안은 무리입니다, 섬멸 경. 올림푸스 길드는 지금 지구의 안전을 지키는 걸로 세계에서 명성이 높은 세력입니다. 그곳에 전쟁을 거는 건 온 인류를 적으로 돌리는 거나 마찬가지이죠. 저희와 노선이 같은데 적으로 돌릴 수 없는 자들입니다.”
“으으으음… 복잡한 문제군요.”
유능한 유성원의 기사들도 서로 찬반이 갈릴 정도로 이번 사안은 어려운 이야기였다.
도무지 한 시간 만에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유성원은 한 시간 안에 이 대화들을 종합해서 정리해야만 했다.
이대로 올림푸스 길드를 놔둬도 문제가 생기고, 제안을 받지 않아도 그냥 싸우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 생각이 드는 와중에 어느새 멀블린이 자신의 옆에 와 있는 것을 발견한 유성원이었다.
“…언제 왔어? 무슨 일이야?”
“예, 폐하. 송구하오나 한 말씀 올리고자 왔사옵니다. 그… 이번에 계획하시는 일에… 다른 성좌나 세력은 끼면 아니 되는 이유라도 혹시 있으십니까?”
“아니, 없지… 아!”
멀블린의 지적에 유성원은 눈이 번뜩 뜨였다.
그래, 둘이 안 되면 셋이 하면 된다.
간단한 이치 아닌가? 자신들과 성좌 복수의 티탄만이 아니더라도 올림푸스 길드를 싫어하는 성좌는 분명 있을 것이다.
일전에 성좌 종말자와의 싸움에서 성좌 진황의 힘을 빌린 것처럼 다른 협력자를 찾는다는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유성원은 벌떡 일어나 대기하고 있는 커류에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