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세계의 질서가 새로이 맞춰지는 과정 속에서 몇몇 이들은 이 혼란기에 자신의 이익을 얻고자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인도, 동남아, 호주에 있던 종말기장의 잔해와 공장의 잔해들이었다.
“쓸데없는 거 노리지 말고 오직 종말기장의 잔해랑 공장의 주요 자재만 노려야 한다. 마정석은 어차피 폭발했지만 그 종말기장이라는 기체는 SS급 헌터에 비견되는 능력을 갖고 있던 만큼 재질도 엄청 비싸게 팔린다. 알았나?”
“예!”
“다들 여기서 한탕 잘하면 평생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니까 집중해서 일 잘해라. 상륙하고 아주 잽싸게 움직여야 한다. 걸리면 그냥 뒤지는 거야. 늦는 녀석은 그냥 두고 갈 테니 다들 잘 알아 둬라. 싱란, 알았나?”
“예, 쑤이신 형님. 조국의 미래가 걸려 있는 이 임무, 꼭 해내고 말겠습니다.”
보통은 도적이나 해적 무리들이 이런 짓을 벌이지만 이번 경우는 워낙 큰 사업이기에 중국 공산당 정부도 이렇게 몰래 해적으로 위장시킨 헌터들을 보내서 끼어들려 하고 있었다.
멸망급 성좌가 남긴 잔해와 유산에 어떤 히든 피스가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도 있으며, 신소재와 무기 기술 등을 건져 어떻게든 국력을 신장시키기 위함이었다.
“알다시피 지금 우리 조국은 삼면… 아니, 이젠 사면으로 둘러싸여 제대로 힘을 회복 못하고 있다. 동으로는 한국, 서로는 성좌 진황, 남으로는 인도 및 동남아, 북으로는 회복해야 할 우리의 땅 중국 본토. 그들의 허락 없이는 사실상 섬이나 다름없는 상황. 이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선 이번 탐색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
“그래서 종말기장의 잔해를 주로 노리는 거군요.”
“그래. 아니면 놈들이 쓰던 골렘 생산 설비를 노려도 된다. 신소재, 신에너지, 아무튼 국익이 될 만한 건 모두 챙겨야 한다. 걸리는 놈은 그냥 해적인 척하고 뒤지고. 알았나?”
“예!”
그렇게 국가 소속 헌터이면서도 이들은 해적이나 다름없는 짓을 위해 동남아 어느 섬에 상륙했다.
상륙함에서 트럭과 장갑차를 꺼내어 탄 채 사전에 인공위성으로 관측한 자리로 이동. 골렘과 종말기병, 종말기장들의 잔해가 널린 곳에 도착한 그들은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말했듯이 골렘 잔해는 최대한 치워 버리고 종말기병, 종말기장, 그리고 공장 설비 위주로 챙기는 거 잊지 마라.”
“옙! 대장님.”
“대장이 아니라 여기서부턴 이제 두목님이다. 국가 공식적인 일이 아니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들은 각자 도구를 들고서 곧바로 작업을 개시했다.
종말기병, 종말기장의 잔해를 발견하면 곧바로 상위 헌터에게 인증을 받고 실어 나르고, 무기 같은 경우 부서졌지만 가능한 원본 상태로 보관하기 위해 별도의 케이스까지 가지고 와서 거기에 넣는 등 공을 들여 진행해 나갔다.
“오, 역시 장난 아니군. 종말기장 기체의 재질… 아다만티움이나 미스릴보다도 뛰어난 금속이야. 신조 병기에 맞먹는다는 게 헛소문이 아니었군.”
“가공할 수 있느냐가 문제 같은데……. 헌터 무장만 바꿔 줘도 훨씬 낫겠네요.”
“복제 생산만 가능하면 한 차원 다른 군사력이 나올 게야. 전투 영상을 보니까 이거 레일 건이든 고에너지 장비든 뭐든 아주 난사를 하더군. 온갖 첨단 에너지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이 바로 이 ‘금속’ 덕분이라는 게 과언이 아니야. 아무튼 계속해서 작업해. 여기 오래 있을 수 없으니까!”
“예.”
그렇게 그들은 한참 동안 골렘들 속을 뒤지면서 종말기장과 종말기병의 잔해와 공장 시설 잔해를 찾아내 최대한 장갑차와 트럭에 실어 넣었다.
그리고 야간에 시행한 이 작업은 어느덧 새벽이 다가오자 멈춰야 했다.
더 캐고 싶은 욕심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꾸물대다가는 목숨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빨리 도망쳐야만 했다.
“작업 그만! 해가 뜨기 전에 여기서 완전히 도망쳐야 해! 쥐고 있던 게 아무리 비싼 거라도 그만하고 빨리 움직여. 우리 임무는 이걸 본국에 전하는 것까지다! 그러니 어서 움직여!”
“예!”
임무를 마친 그들은 신속히 후퇴, 트럭과 장갑차를 기동하여 다시 해안에 있는 배로 돌아갔다.
배 쪽에도 아무 문제가 없는지 해안에서 대진 상태 그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휴우~ 다행히 무사히 돌아갈 것 같네요.”
“긴장을 늦추지 마라. 아무튼 보자… 베이징 13호, 들리는가? 여기는 쑤이신이다. 예정된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으니 회수해 주길 바란다.”
[알았다.]
배 쪽에서 통신과 함께 화물창 문이 열리고, 신속히 트럭과 장갑차들을 실은 다음 그대로 바다를 빠져나왔다.
작전은 성공했고, 그제야 그들은 긴장을 풀고 안도할 수 있었다.
아직 중국 영해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안전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임무가 아닌 이 배를 운전하는 운송팀의 일이었다.
“다들 수고 많았다. 물론 아직 완전히 작전이 끝난 건 아니지만 우리의 임무는 절반 이상 끝난 셈이다. 경비 인원만 빼고 나머지는 대기 상태로 들어가도 좋다.”
“예, 대장님!”
‘휴우~ 다행이군.’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쑤이신 대장은 안도하면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번 임무는 무난하게 끝난 것 같았지만 사실은 엄청 위험한 임무였다.
소문에 의하면 해안가와 내륙에 ‘사령 군단’과 기계, 악마와 야수들이 오가면서 감시한다고 했는데, 오늘 운 좋게 만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예 하나도 보지 못한 게 좀 묘하긴 하지만, 오히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자.’
만약 싸움이 일어났다면 귀중한 대원들을 잃었을 가능성도 컸다.
상대는 멸망급 성좌를 처리한 세력이면서 동시에 아시아에 명성이 자자한 성좌 세력의 잔재들. 쑤이신은 운으로라도 아예 보지 않은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중국 영해까지 앞으로 2~3시간. 이미 그쪽에서도 자신들을 맞이하기 위해 배를 보냈을 테니 그는 안심하고 눈을 붙였다.
[아아, 전 대원을 들으십시오. 방금 저희 배는 무사히 본국 영해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와아아아! 드디어인가?”
“작전 성공이군요, 대장!”
“휴우~”
그제야 쑤이신은 안도했고, 대원들도 순수하게 임무 성공을 자축했다.
처음에 브리핑하기로는 어려운 임무다, 무서운 임무다 말이 많았는데, 아무도 죽지 않고 무사히 영해에 돌아오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이거 생각 외로 별거 아니잖아? 처음에 엄청 겁주더니~”
“몰라. 아무튼 무사히 돌아왔으니 정말 다행이야.”
“그러게.”
‘다들 무사한 걸 보니 나도 좋군.’
[아아! 알려 드립니다. 지금 해류와 파도 상황이 좋지 않아 본국으로 가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안전엔 이상 없으니 안심하시고…….]
쑤이신 대장은 안도하는 부하들과 함께 방송을 들으면서 기뻐했다.
도착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는 내용이었지만, 배를 타면 으레 있는 일이었기에 그러려니 하면서 높으신 분들을 만날 준비를 시작했다.
“휴우~ 물건에 대해서 보고를 먼저…….”
“쑤이신 대장님! 대장님! 뭔가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해?”
“그, 그게 육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데, 뭔가 이상합니다. 저희가 돌아가야 할 기지가 아니라 일반인 땅으로 가는데… 위치를 알아보니 여기! 한국 영해 같습니다!”
“뭐?”
부하의 보고에 벌떡 일어난 쑤이신은 급히 달려갔다.
난데없이 한국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다급하게 배 위로 올라간 그는 조타실로 향했는데, 그곳엔 전혀 낯선 사람들이 배를 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조타실 구석엔 본래 이 배를 움직이던 사람들이 모두 밧줄로 묶이고 입을 막힌 채로 쌓여 있었다.
“젠장! 어떻게 된 건지 알겠군. 네놈들은 누구냐? 해적이냐? 어떻게 배에 잠입한 거지? 분명 레이더와 경보 시스템은 물론이고 결계까지 쳐 놨을 텐데……!”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화물선이었지만 나름 중국 최고의 헌터들이 타고 다니는 배이면서 목숨을 건 일답게 사전 준비와 보안은 철저하게 되어 있었다.
국민 감시 및 관리를 통해서 쌓은 노하우로 완성된 감시 시스템과 비싼 마법 스크롤을 투자해서 쓴 결계, 거기에 악마 퍼밀리어까지 동원해서 순찰까지 시키는 생물과 기계, 마법 모두를 동원한 것인데 그게 뚫릴 줄은 상상도 못한 것이었다.
쑤이신의 질문에 해군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로 배를 열심히 몰고 있는 자가 대답했다.
“기계라는 건 뭐든지 허점이 있기 마련이고, 결계는 결국 외부에서 들어오는 거만 체크하는 거라 그냥 안에 들어와 있으면 쓸모없다. 또 너희가 들어오고 나갈 때 틈이 두 번이나 있었으니 의미 없지. 마지막으로 퍼밀리어는… 쟤가 맛있다더라.”
“옴뇸뇸. 옴뇸뇸.”
“마, 맛?”
대답한 청년이 가리킨 쪽엔 블랙마켓에 마정석을 대량으로 주고 구입한 박쥐 형태의 퍼밀리어가 산 채로 씹어 먹히고 있었다.
씹어 먹고 있는 건 붉은 머리칼을 화려하게 기른 청년이었는데, 발톱이고 뼈고 상관없이 잔해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어 치우는 장면이 기괴할 따름이었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대로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면 자신들의 불법 행위가 알려지기에 반드시 막아야만 했다.
“젠장! 애들 다 불러! 저놈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신속히 배를 되찾고 돌아가야 한다!”
“예!”
부하에게 명령을 내린 쑤이신은 곧바로 죽일 기세로 배를 조종하는 청년에게 검을 휘둘렀다.
마력을 둘러서 푸른빛이 나는 검은 대상을 반으로 쪼갤 기세로 달려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쑤이신의 상상일 뿐. 청년은 한 손을 들어 두 손가락으로만 받아 내었다.
“뭐, 뭐야? 이익… 이익!”
검격을 손가락으로 막아 낸 것도 놀라웠지만, 쑤이신이 아무리 용을 써도 검이 빠지질 않았다.
이런 중요 임무의 대장으로 임명될 정도라면 하위이긴 해도 나름 S급에 도달한 헌터. 그런 만큼 웬만한 해적이나 스캐빈저들 정도는 상대도 되지 않는데, 공격이 너무 쉽게 막히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너, 너는 대체 누구냐? 아니지. 동양인에… 이 정도 무위, 게다가 우리 배에 쉽게 잠입할 능력을 가진 집단이라면 오직 하나! 네가 바로 유성원 헌터렷다!”
“와, 눈치 엄청 빠르네. 나는 가능하면 결정적인 순간까지 숨겨 보려고 했는데…….”
“이 무위가 숨겨질 거라고 생각합니까? 조금만 생각하면 답이 바로 나오죠.”
쑤이신의 말대로 숨기기엔 너무나 격차가 큰 것이 실패 요인이었다. 그것을 순순히 인정하면서 유성원은 모자를 벗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튼 우리가 할 발굴 작업을 대신 해 줘서 아주 고맙고 작업비는~ 음~ 저승길 편도 여행권입니다.”
‘젠장… 어떻게 해야? 아니, 이미 틀렸군.’
모자를 벗고 정체를 드러낸 유성원을 본 쑤이신은 어찌해야 할지 잠깐 갈등했지만, 이내 금방 포기했다.
상식적으로 멸망급 성좌의 코어 던전을 쳐부순 헌터를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했고, 그저 할 수 있는 건 항복해서 그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뿐이었다.
자신의 목숨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조국의 전력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항복하지요. 물건이랑 배는 싹 다 드릴 테니, 저랑 제 부하들은 부디 본국에 보내 주시길 바랍니다.”
“무슨 헛소리야. 도둑질을 했는데, 물건만 돌려준다고 없던 일로 해 달라는 건 너무 양심이 없지 않나? 애초에 실패하면 중국 정부는 분명 부인한다고 했을 테니… 처분은 우리 마음이지.”
“…그래서 어쩌실 겁니까?”
“당연히 도둑질을 한 것만큼 벌을 받아야지. 평양에 스캐빈저 및 각성자용으로 마련해 둔 감옥이 있어. 테스트도 할 겸 거기 갇히게 될 거야. 그래, 훔친 물건의 가치랑 귀중함을 생각하면 아주 오래 지내게 되겠지.”
쑤이신은 그 말의 정확한 의미는 몰랐지만, ‘아주 오래’라는 뉘앙스에서 이대로 당하면 두 번 다시 세상을 못 볼 것 같은 예감을 감지했다.
그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지금 죽음을 맞이하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한 그는 항복하겠다는 자신의 말도 뒤엎고 인벤토리에서 여분의 무기를 꺼내어 유성원을 노리고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