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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243화 (243/293)

[243화]

그래, 딱히 부정하지 않은 이상 유성원 헌터가 성좌 종말자를 쓰러뜨렸다는 사실이 세계로 퍼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코어 던전에서 무사히 나와서 현재 인도 뉴델리에서 요양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변국은 물론이고 각국 길드에서 사람들을 보내 그를 만나려고 했지만, 유성원은 문을 닫고 만나 주지 않는 스탠스를 취했다.

“…지금 할 일도 많은데 일을 늘릴 순 없지. 여기부터 정리해야 하니 말이야. 내가 말하라는 대로 알려 놨지?”

“예. 중환자실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고 말해 놨습니다, 폐하.”

“굿잡. 아, 근데 이거 한 손 쓰기 불편하네. 재활을 덜해서 그런가…….”

“사실 멸망급 성좌를 상대로 팔 하나면 오히려 싼 편이죠.”

“그건… 그러네. 후우~ 그나저나 일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원래 이렇게 많았어? 나한테 주는 서류는 대부분…….”

“폐하, 그… 폐하는 이제 인구 약 20억의 정점에 서신 분이십니다.”

유청의 말에 유성원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하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유청은 진지한 표정 그대로 세계 지도를 가져오더니 붉은 펜으로 직직 그으면서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북부, 또 중국 북부 전역, 거기에 인도까지 모두 폐하의 영향 아래에 있는 나라들입니다. 그 인구를 합치면 충분히 20억이 되죠.”

“…나는 전혀 내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거야?”

“그렇게 생각 안 하셔도 주변에선 그렇게 느낄 겁니다. 이미 도망쳤던 브라만과 크샤트리아들 모두 입국 금지시킨 것부터 심각한 내정 간섭이라 생각하게 될 테니까요. 물론 폐하의 진의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지만 말이죠.”

“어차피 밖에서 인정받으니 마니 하는 건 별로 상관 안 하는 거야. 하아~ 아무튼 일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네.”

조직이 다 짜여 있던 중국과 다르게 성좌 및 지배층들이 다 떠나 버린 인도의 조직은 하나하나 다시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그나마 수십 년 전 성좌의 시대가 오기 전 인도에서 일하던 지식인과 공무원, 교수들을 쥐 잡듯이 찾아낸 다음 그들이 몰래 보관해 오던 자료와 물건들을 써서 일이 한층 수월해진 것이었다.

“진작 좀 나오지. 남아 있는 브라만이랑 크샤트리아로 기본 구조 짠 거 땜에 골치인데…….”

“대책이 없으니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새로운 긴급 조치 법안과 무력시위를 통해 물러나게 해서 다행입니다. 일단 대부분의 전력은… 재보충이 가능한 덕분에 말이죠.”

“사실상… 아칼론 하나의 희생으로 끝났지.”

유성원이 다친 것과 아칼론이 자폭한 것을 빼면 소환한 기사들은 전원 중상. 죽은 천검군 병사나 다른 성좌의 사도들의 경우 마력만 있으면 재소환하는 식으로 다시 불러낼 수 있었기에 지장 없었다.

아칼론의 경우 스스로가 희생하여 멸망급 성좌의 야망에 치명적 타격을 주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하긴… 상위급 헌터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전력을 잃는 거라고 하니까 우린 정말로 대단한 거지.”

“예, 폐하.”

멸망급 성좌를 쓰러뜨렸음에도 전력 손실이 크지 않다? 이 점이 그 어떤 이득보다 더 큰 이득이리라.

그 외에도 얻은 이득을 생각하면 지금 인도, 호주, 동남아시아 전역에 있는 성좌 종말자의 골렘들과 ‘종말기병’과 ‘종말기장’이 남긴 잔해와 마정석까지 있었다.

“이건 또 이거대로 문제네.”

“예. 회수하는 데 시간이 문제라서…….”

당연히 이 모든 것들은 법적으론 유성원의 것이었지만 엄청나게 퍼져 있는 탓에 회수가 힘들며, 다른 헌터들이나 스캐빈저들이 미친 듯이 차지하려 하고 있어서 문제였다.

마정석은 별로 건질 수 없었지만, 종말기병과 종말기장들의 잔해에서 나오는 희귀 금속은 가치가 높았기에 그것을 노리고자 온 것이었다.

“하지만 천군대장군이 사령 군단을 이끌고 회수하기 시작한 이상 쉽게 빼앗기진 않을 겁니다.”

“그래. 천군대장군 솜씨라면 믿을 수 있지. 게다가 물량도 물량이고, 여차하면 추가로 투입하면 되니까……. 문제는 역시 인도인가? 그럼 한동안 내가 여기 있어 주는 게 좋겠네.”

“그렇겠지요.”

인도의 ‘성좌’들도 도망친 강력한 악신을 잡았다는 명성은 사람들에게 압도적인 희망을 줄 것이며, 그가 있는 한 시민들을 버리고 도망간 브라만과 크샤트리아들은 절대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고 난 뒤, 재선거를 통해 의회와 정부 수립을 하고 난 다음 적당히 수교를 맺고 돌아가면 그걸로 끝인 계획이었다.

“근데 문제는 호주네. 동남아 남쪽도 그렇지만, 장기간 성좌 종말자가 있던 땅의 피해가 심각하다며?”

“예. 섬의 생태는 완전히 멸망한 상태입니다. 땅은 완전히 죽은 곳이 되었죠. 사막도 그보단 더 생명이 넘칠 정도로 말이죠.”

기계로 ‘별’의 생명을 뽑아내 마정석을 만들던 성좌 종말자의 지배 아래 수십 년간 있었던 만큼 이미 호주 대륙은 생명력 하나 없는 황폐화된 땅이 되고 말았다.

강줄기와 풀 한 포기 하나 없는 땅이 된 그곳에 과연 누가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땅을 되살릴지 그것도 문제였다.

“그… 원래 호주에 있던 시민과 정부 수반은? 어떻게 한대?”

“일단 좀 더 조사를 하고, 드루이드나 주술사들과 함께 성좌 진황 쪽과 접촉하고, 아니면 스스로 살아날 때까지 영구히 침입 금지령을 내려서 포기하겠다고 합니다.”

“…하긴 가만히 놔두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지. 옛날에도 코… 머시기 하는 역병 돌았을 때, 사람들이 안 가니까 오히려 환경이 나아지더만…….”

땅이 황폐화되었어도 다행히도 생명의 보고인 바다가 멀쩡히 있었으며, 호주에 다시 비가 내리고 순환하면서 서서히 돌아오길 비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유성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각일 뿐, 호주 정부가 하는 일을 방해할 순 없었다.

“잘되길 빌어야지. 후우~ 그리고… 이건 역시 UN의 서찰인가?”

“예. 위중한 상처 치유라고 하니 결국 다들 서찰로 남기더군요. 아, 그리고 가족분들이 곧 보러 오실 거랍니다.”

“아… 그럴 필요 없는데. 나도 이제 서임받은 기사라서 성소를 쓸 수 있거든. 지금 본국에 기사가 누군가 있지?”

“예, 있죠. 아~”

“걔한테 포탈 열어 달라고 해서 그리로 나가면 단숨에 갈 수 있어. 이거 생각해 보니 엄청 메리트 같더라.”

모든 기사단의 성소의 기준점은 유성원이지만, 반대로 휘하 기사들만 미리 어디론가 보내서 그들에게 성소 문을 열게 하면 유성원도 이제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오… 그것참 좋은… 전략, 전술적으로 엄청난 이득이군요.”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디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고 다닐 수 있으니까. 이번 코어 던전 공략 최대의 성과이지. 아무튼 급한 일 끝나면 내가 당장 한국 간다고 전해 줘. 그러니 올 필요 없다고 해.”

“예. 알겠습니다, 폐하.”

그렇게 유청에게 연락을 맡긴 유성원은 한시라도 빨리 가족들을 볼 시간을 만들기 위해 체크해야 할 서류를 열고 확인을 시작했다.

***

같은 시각, 대한민국 청와대.

멸망급 성좌가 쓰러짐으로써 세계에 퍼지는 영향은 보통 큰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절대적인 힘을 가져서 쓰러뜨리지 못하거나 쓰러뜨리려면 엄청난 힘과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고 여기던 성좌의 세력.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을 뿌리는 그들을 못 잡고 막아 내던 게 한계였는데, 고작 두각을 드러낸 지 얼마 되지 않은 헌터가 잡아 버린 것이었다.

“우리가 알던… 상식이 일그러지고 있어요. 멸망급 성좌를 대체 얼마 만에 잡은 거죠?”

“아니, 그보다 대체 어떻게 잡은 건지를 의심해야지 않나?”

“아시아의 제왕의 자리가 더욱 공고해지겠군요. 인구 20억의 정점에 선 남자라니…….”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수반, 대법원장과 의원들 모두 표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분명 한국인인 그가 지구의 해악이었던 ‘멸망급 성좌’를 잡은 것까진 좋았지만, 그의 노선은 정부나 기업들이 원하는 방향에서 계속해서 엇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특별 자치 구역으로 허용해 달라고 하더군요. 어차피 현행법으로는 지금 새롭게 개발하는 영역이라든가, 현실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말이죠.”

“따라오지 못하는 건 맞잖습니까? 얼마 전 전선 도시에서 두홍 그룹이 일으킨 임금 체불 사고, 그거 어떻게 되었습니까? 본래라면 이거저거 재판이다 뭐다 따지는데, 전선 도시는 사건 입증과 수사를 직접 마치더니 그냥 그 책임자인 두홍 그룹 회장 손자를 평양에 있는 특별 감옥에 12년 형으로 집어넣어 버렸잖습니까? 그게 만약 서울이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끽해야 1년? 집행유예? 아니지! 재판 기간 동안 피해자들 피 말리고 압박하면서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을 거 아닙니까? 애초에 수사대들의 의욕부터가 달라요. 거기는…….”

“크, 크흠! 자, 잠깐만! 장 의원님, 지금 그건 여기서 논할 사안이 아닌 걸로……. 크흠! 비교한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논할 것은 그들이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아니라…….”

“현실을 좀 보세요. 저기! 전선 도시와 평양 신도시로 가려는 인원이 얼마인지! 신청자만 1천만 명! 심사 대기자들은 아예 텐트까지 쳐 가면서 하루 고작 1천여 명 심사 가능한 심사 대기장 앞에 수만 명이 줄 서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좁게 말하면 ‘메리트’, 넓게 말하면 대한민국보단 전선 도시가 더 살기 좋다는 의미.

심지어 이젠 기업과 재벌들도 유성원에게 굽혀야 할 입장이 된 처지였다.

인구 20억을 지배할 수 있는 정부와 군사 조직을 통제하는 정점이 된 자의 눈 밖에 난다는 건 그만큼의 시장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으며 경쟁 기업에게 비상할 수 있는 발판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건 맞지만 그래도… 우리가 뭘 하는 속도보다 그가 뭘 하는 속도가 너무 빠른 탓 아닙니까? 법안을 무슨 인스턴트 요리처럼 낼 수는 없는 일이잖습니까?”

“좋습니다. 법안은 둘째 치죠. 그럼 치안과 재판은 어떻습니까? 그토록 판례를 잊으라고 했는데도! 마약 사건으로 체포된 자들 중 한 명도 실형을 안 받지 않았습니까? 또 경찰 및 공무원 개혁은 어떻고요? 채용 제도부터 바꾼다는데 온갖 논란만 인다면서 제자리걸음만 계속이지 않습니까?”

“아니, 그건 당연히 반대하는 이들이 많아서…….”

“계속 이렇게 되면… 정말로 우린 아무것도 아니게 될지도 모릅니다. 국민이 없는 정부? 국민이 없이 공무원과 경찰 조직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심지어 대학 교수들도 이미 평양 도시에 세우는 대학에 가려고 너도 나도 난리인데! 그냥 대학 교수들도 아니고 국내 손꼽히는 대학에 있는 교수들이 거기도 줄 서 있습니다! 네! 그들도 미래가 보이는 거죠! 이 나라는 끝나 간다고!”

국민도, 기업도, 지식인도 모두 등 돌리고 떠나면 남는 게 뭐가 되겠는가?

여기 있는 정부 수반, 국회의원, 판사, 국방부 사람들 모두 그냥 아무것도 아닌 자들이 되어 버린다.

결국 유성원은 나라에 손 하나 안 대고 오직 메리트만으로 나라를 멸망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그를 막을 수 있는 힘이나 권한도 없다.

발버둥 쳐 봤자 그저 유성원 측이 뭔가 할 수 있는 명분만 내줄 뿐 다른 걸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더 이상 남은 시간이 없습니다. 멸망급을 한번 잡은 이상 그는 세계의 영웅이며 지구를 구원한 자라서 국제 사회에서 신분이 달라진 상황입니다. 스스로 무슨 악당처럼 세계를 지배하겠다! 이러고 선포하지 않는 이상은 앞으로 그렇게 기억될 거고 대우를 받게 될 겁니다!”

“…진짜 이번엔 심각히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있는 자리에서 나가고, 이 대한민국 전체가 유성원 헌터에게 먹히면 과연 그가 우릴 써 줄 것 같습니까? 블랙리스트 적어 두고 죽이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설사 국민이 남아도 세수와 의무를 다할 사람이 남지 않을 테니…….”

이대로 방치하면 결국 나라의 형태만 유지한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 정부만 남고, 종국엔 유성원의 집단에 흡수되거나 아니면 그냥 허수아비 정부로 남게 되는 미래뿐이었다.

아니, 허수아비로 남으면 그래도 직위는 유지되니 그게 싫을 경우 유성원은 더 강한 압박을 하거나 없애려 할 수도 있으리라.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지만, 이젠 너무나 압도적으로 커 버린 규모와 ‘공평한 세금과 법 처리’를 비롯한 메리트만으로 그는 총이나 칼 하나 쓰지 않고 대한민국을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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