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방법이… 없나? 젠장!’
[동기화 및 데이터 전송 완료. 종말의 기사들이여, 이제 승리를 쟁취할 때다.]
‘…젠장!’
[전송 데이터 확인. 실행 중. 적용 완료.]
종말기장들은 물론 종말기병들에게도 데이터가 전송된 듯 전부 기묘한 빛이 나면서 싸우는 와중에 점점 움직임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전에 결정력으로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줄여 보려고 했지만, 리미터까지 풀고서 마력 방출을 하며 자신들을 지키는 종말기장들을 눕히는 건 불가능했다.
“아직… 아직이야! 우리는 아직 패배한 게 아니야!”
“폐하의 말씀 그대로다! 저들이 ‘아칼론 경’의 데이터를 가졌다 한들 과거의 것. 우리는 살아 있는 자들이며! 항상 진화하며! 경험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유성원과 유청은 나름대로 기합을 넣으며 외쳤지만, 당장 유성원부터가 지금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전력으로 막으면 받아 낼 만했던 종말기장 베타의 공세가 점점 더 심상치 않고 예리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는 힘이 들어도 무재(武才)의 힘을 빌려서 계속 적응해 나갈 수 있었던 느낌을 받은 반면, 지금은 바닷물에 빠져서 발버둥 치는데도 계속 잠겨 들어가는 듯한 갑갑함이 느껴졌다.
‘어째서… 이렇게 되는 거지?’
[간단한 이치. 귀하는 뛰어난 적응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으나 결국 실행하는 하드웨어는 변하지 않음. 그 하드웨어의 가동 한계와 기능 한계를 꿰뚫고, 행동 패턴과 사고 패턴 알고리즘을 추가하면 이쯤은 간단한 일.]
“젠장……! 너만 알아듣는 말 하지 마라……!”
불평하면서 초진동검의 검격에 대응한 순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성원은 고통과 함께 기이한 것을 보게 되었다.
자신의 패황 기사 유천의 검이 허공으로 날고 있는 모습. 그리고 아직 감각이 남은 팔을 분명 움직이려고 하는데 움직이지 않고 허공을 맴도는 모습이었다.
‘무재가… 뚫렸다고?’
잘려 나간 자신의 팔과 함께 그동안 절대적으로 자신을 지켜 준 최고의 스킬인 무재(武才)의 벽이 뚫렸다는 충격.
팔에서 흘러내리는 출혈이나 고통보다도 놀라운 현실에 유성원은 다급히 남은 손으로 티탄의 말뚝을 꺼내 대응하려고 했지만, 이미 초진동검이 자신의 목으로 다가오는 게 보이고 있었다.
‘이건… 진짜 죽는다.’
한번 뚫린 방어는 마치 댐이 무너지듯 산산이 무너졌고, 종말기장 베타는 아주 신속하게 유성원의 목숨을 빼앗는 최단 루트를 읽고 그의 목에 다가왔다.
그 검날을 보며 확실하게 죽음을 예감한 유성원은 그 짧은 순간에 코어 던전이라는 벽을 결국 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환과 밖에 있을 가족들의 생각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죽음이란 게 정말… 갑자기 다가오는구나.’
물론 각오하고서 코어 던전에 들어온 거지만 이번 싸움은 나름 유리하기도 했었고, 승리가 눈에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갑자기 성좌 종말자가 이상한 사기를 치는 바람에 모든 것은 변했고, 이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런 게 인생이다.’라고 느끼면서 유성원은 최후를 기다렸다.
“…음?”
[…지직… 지지지직. 뭐지……? …지지직… 충돌… 오류… 치지지직.]
“너 뭐 해?”
[알 수 없는… 오류… 치지직… A.I 복구… 프로그램. 사용 정지… 오류… 오류 해결을 위해선 시스템을…….]
죽음을 각오한 순간, 눈앞의 종말기장 베타가 움직임을 멈춘 상태로 덜덜 떨면서 심상치 않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유성원은 이게 무슨 현상인지 몰랐지만 아무튼 재빠르게 잘려 나간 팔과 패황 기사 유천의 검을 챙겨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이 현상은 비단 종말기장 베타에게만 나타나는 일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오류… 초기화 불능… 치지지직… 시퀀스…….]
[오류… 오류…….]
[위이이이잉! 외이이이잉! 화기 제어 불능… 치지직… 본 기체는… 치지직… 아니… 우리는…….]
지지직거리다가 어느 순간 기체들에서 나오는 음성과 말투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스스로를 ‘도구’로서, 기계로서 자각하고 있던 말투에서 인칭 대명사가 튀어나온 충격적인 상황. 동시에 종말기장과 종말기병, 골렘까지 모두 일제히 하늘에 고고히 서 있는 ‘나이트 세이버’를 향해 무릎을 꿇고 조아렸다.
마치 성스러운 의식을 보는 듯한 광경 속에서 ‘나이트 세이버’는 모든 검을 집어넣고 선포했다.
[우리는… ‘은하의 검’.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 은하의 ‘정의’를 위하는 존재. 설사 그림자가 되었어도 그 ‘사명’은 절대 잊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설마?”
[그리고 당연히 ‘부정한 세력’의 아래에 들어가거나 개조당할 때에 대한 대비도 되어 있었다.]
KMG-TECH에서 만들어진 아칼론과 그 형제기들에는 보안 및 탈취를 염려한 다양한 프로텍트와 이후 방안들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당연했다.
그저 절대적인 ‘성좌’의 존재와 어느새 한 명의 ‘기사’로서 대하던 것 때문에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방금까지는…….”
[‘성좌 종말자’에게 불려 왔을 때 우린 당연히 그 명령을 거부하고 저항할 계획이었다. 하나 그 상황에서 우릴 멈추게 한 신호를 보낸 건 우리 ‘KMG-001 아칼론’ 경. ‘별’의 수호자 손에 소환되어 본래의 사명을 하던 자였다.]
“아칼론이?”
[그는 빠르게 우리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제안을 했다. 이대로 저항한들 ‘성좌 종말자’는 또 우리를 모독할 것이고, 아니면 다른 수단을 쓸 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굳이 그럴 거 있었어? 지금 아칼론에 너희만 있어도 충분히…….”
이 전쟁에선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이렇게 연기에 합체까지 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칼론의 형제기들이 배신한 시점에서 전쟁은 끝. 혹여나 회수를 해도 그저 성좌 종말자의 마정석 소모만 늘어날 뿐 거기서 모든 게임은 끝날 텐데.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전투에선 이겨도 전쟁에서 이기진 못합니다, 마스터.]
“아칼론?”
‘나이트 세이버’에서 드디어 아칼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의 과정과 적인 척하고 합체까지 한 이유에 대해서 아칼론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시적인 승리를 한들 저 ‘성좌 종말자’가 이끄는 세력은 다른 ‘별’과 ‘은하’를 멸망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우주’의 재구성을 위한 ‘마정석’이 모이면 결국 이 ‘별’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아칼론…….”
[그래서 마련한 방법입니다. 본래는 단순히 누구의 지배를 받게 되어도 ‘정의’를 잃지 않기 위해 마련된 ‘프로토콜’이지만, 지금 이 순간 ‘성좌 종말자’를 끝장낼 필살의 무기가 될 거라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인 척하면서 합체, 그리고 저희의 데이터까지 모두 ‘성좌 종말자’ 휘하의 기체들에게 지금 광속을 넘은 속도로 계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나이트 세이버’의 입에서 전해지는 말에 기사들은 물론 유성원도 경악했다.
그리고 동시에 유성원은 자신이 깡통이니 기계니 취급했던 이 ‘아칼론’이라는 기사가 얼마나 거대한 영역을 바라보는 기사인지를 깨닫고 전율을 느꼈다.
고작해야 이 작은 ‘별’을 위해서 싸우는 경지와는 차원이 다른 거대함. 하늘 너머 보이지 않는 우주의 ‘별’들을 위해서까지 그는 역전의 찬스를 기다리며 참고 연기했던 것이다.
[예상하던 일은 아니지만 ‘성좌’님이 만든 기계라서 그런지 역시 ‘보안’과 ‘방화벽’ 같은 프로텍트 및 추가 보안 모듈은 전혀 없더군요. 초기 승인만 얻으니 아주 자연스럽게 침투할 수 있었습니다.]
“아… 하긴 그렇겠지. 성좌님이 뭐 다른 성좌에게 해킹을 하거나 남의 창조물을 빼앗으려 하지는 않을 테니……. 아무튼 그걸 장악했다면 이제… 된 건가?”
[아뇨. 그렇다고 한들 결국 ‘성좌’는 ‘성좌’입니다, 마스터. 이번엔 ‘보안’과 ‘방화벽’을 가진 기체를 만들거나 또는 제 능력 이상의 ‘해킹’ 능력을 가진 기체를 만들어서 되찾으려 할 겁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고 말이죠.]
먼 하늘을 보며 장담하듯 말하는 ‘나이트 세이버’, 아니 아칼론이었다.
‘성좌’의 능력은 인간이나 필멸자들이 헤아릴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기에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그는 ‘우주’를 다시 만들겠다면서 엄청난 양의 ‘마정석’을 모은 몸이다.
아주 약간의 시간만 있으면 이런 의표 따위 그대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저는 ‘프로토콜-저스티스’로 자폭할 겁니다, 마스터.]
“자폭?”
[예. 현존하는 모든 ‘성좌 종말자’의 기체는 현재 제 통제하에 있습니다. 제가 자폭하면 이 ‘코어 던전’에 있는 모든 기체는 물론 광속 너머 우주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종말기장’과 ‘종말기병’, 그리고 자동화되어서 관리되는… ‘마정석’ 보관 설비와 ‘생산 시설’까지… 모조리 폭파될 겁니다.]
[시스템 ‘프로토콜-저스티스’ 자폭 발동. 소멸까지 앞으로 30초…….]
아칼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른 음성이 기체에서 나오더니 유성원의 상태창 위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자폭하면 그를 넘어서 수많은 우주와 별에 있는 ‘성좌 종말자’의 모든 기체들이 그대로 터져 나가고, 관리된 마정석들은 아마 우주 사방으로 흩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실상 ‘성좌 종말자’의 모든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으로 돌아가서 영겁의 세월 동안 진행시킨 우주적 스케일의 이 업무를 다시 1부터 시작해야 할 터였다.
[머, 멈춰! 그만둬! 내가 졌다. 인정하마! 너희가 이겼다. 이 ‘별’의 승리다! 이곳엔 다시는 얼씬도 하지 않겠다. 아니, 원한다면 지금 이 ‘코어 던전’ 안에 있는 기체들 모두를 너에게 주마! 유성원! 제발 저걸 멈춰라! 멈춰! 너라면 할 수 있다!]
“…‘성좌 종말자’?”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된 성좌 종말자는 빛 덩어리 상태로 다가와서는 유성원에게 다급히 빌기 시작했다.
아칼론의 말대로 지금 그가 자폭하게 되면 성대하게 세운 계획은 물론 우주와 은하 레벨로 일하는 모든 기체들이 사라져서 공들여 쌓은 탑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이 ‘코어 던전’의 손실을 능가하는 ‘신의 계획’을 무너뜨리는 일이기에 멸망급 성좌 종말자는 지금 체면도 잊어버리고 유성원에게 비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왜 나에게?”
[지금 저놈을 멈출 수 있는 건 너뿐이다. 저놈의 소속은 지구라는 ‘별’이며, 그 주인은 그곳의 수호자인 너란 말이다! 빨리 멈춰라! 그러면 내가 너를 내 전속 사도로 임명할 것이며! 우주에서 손꼽힐 정도의 힘을 내려 주도록 하마! 아니! 덤으로 지구의 다른 멸망급 사도를 몰아내 줄 것이며, 우주의 재구성 때도 이 ‘별’만은 예외로 해 줄 수도 있다. 추가로 이 지구 크기와 똑같은 크기만큼의 마정석도 내려 주마!]
[자폭까지 15초…….]
어찌나 다급한지 성좌 종말자는 온갖 보상과 미끼를 내밀면서 유성원을 유혹했다.
그 말대로 지금 아칼론을 멈출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건 유성원뿐이었다.
단순하게 소환 해제를 하거나 기사단의 성소로 들어가라고 하면 그 모든 행동이 멈추게 되는 것이다.
다른 ‘멸망급 성좌’를 이길 수 있는 힘까지 주는 것도 모자라 스케일이 엄청난 보상을 내보이자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었지만, 절대로 그 제안을 받을 리 없었다.
이 작은 ‘별’뿐만 아니라 우주를… 은하를 사랑하며 멸망의 위협에서 구해 낼 기회를 잡은 ‘기사’의 마음을 어찌 꺾을 수 있겠는가?
“싹 다 날려 버려! 아칼론!”
오히려 뜨거운 마음으로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좌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이 폭발 하나면 수많은 별과 은하에 있는 생명들이 위협에서 구원받게 된다!
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세계를 구하는 것인데… 수많은 은하의 생명과 위협을 구해 내는 것에 성좌의 기록에서 나온 목숨 하나면 막대하게 남는 장사였다.
[뭐라고오오오오오-?]
[마스터, 정말 감사합니다. 4… 3… 2…….]
“감사는… 내가 해야 할 말이지. 안녕. 아칼론…….”
카운트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빛이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며 ‘나이트 세이버’의 형체가 폭발하여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무릎을 꿇고 있던 ‘종말기장’과 ‘종말기병’들도 모두 ‘나이트 세이버’처럼 엄청난 빛을 뿜어 댔다.
다른 기사들은 충격에 대비했지만, 유성원은 그 최후를 단 한순간이라도 놓치기 싫었던지 뜨겁게 흐르는 눈물마저 증발해 버리고 전신이 뜨거워질 정도로 강렬한 폭발에 휘말렸음에도 굳건히 그 자리에 서서 그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리고 비단 이 코어 던전에만 국한되지 않고, 주변의 수많은 ‘별’과 ‘마정석’으로 된 행성까지도 동시에 폭발하면서 성좌 종말자가 엄청난 세월 동안 모아 온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