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걱정 마라, ‘종말기장 K(Kappa)’. 이미 ‘종말기장 A(Alpha)’가 다른 수를 준비해 놓았다. 현재 ‘종말기장 Σ(Sigma)’가 해로를 통해서 병력을 운반하고 있다.]
[바다인가? 알겠다.]
그렇다. 바닷길, 성좌 종말자의 군대는 애초부터 호주에서 시작해서 바다를 통해 인도네시아에 상륙해서 전쟁을 하던 자들이다.
그들이 육로를 선호하는 이유는 딱히 바닷길을 가는 게 힘들거나 무리여서가 아니라 마정석을 생산할 공장 지대를 만들면서 가야 하고, 지속적으로 병력 수로 밀어붙이는 전략을 선호하기 때문에 육로 루트를 쓰는 것일 뿐, 해로를 전혀 쓰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위대한 종말자 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이 은하의 종말을 위해 ‘종말기장 A(Alpha)’가 모든 상황을 계산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종말기장 K(kappa)’.]
[알았다. 임무 속행한다.]
철컥! 콰아아아앙!
보고를 마친 뒤, ‘종말기장 K’는 계속해서 레일 라이플을 발사했다.
그가 한 발을 쏠 때마다 헌터 한 명의 생명이 사라졌고, 종말의 군세의 진격 속도는 조금씩 빨라졌다.
그리고 점령된 땅에는 여지없이 기묘한 기계 부품을 가진 골렘들이 대지에 마정석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을 설치하여 별의 생명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
인도 케릴라, ‘성좌 아이야나르’의 신전.
성좌 종말자의 군세가 바다를 건너서 오는 것은 딱히 은밀한 작전이 아니었기에 해상에 주둔하고 있는 인도 해군의 레이더망에 즉시 걸리게 되었다.
항공모함급의 거대한 배 10대가 골렘들을 잔뜩 실은 채로 인도 남쪽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뭄바이에 있는 신전은 현재 패닉 상태에 빠졌다.
해로를 생각 안 한 건 아니며 이미 해군들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있던 바다 루트로 이렇게 대규모 상륙 작전을 강행할 줄은 상상도 못한 것이었다.
“어차피 배라면 그냥 침몰시켜 버리면 되지 않는가? 사령관은 대체 뭐 때문에 있는 자리인가?”
“그게… 이미 영해에 들어온 시점부터 미사일과 전함으로 공격을 했습니다만, 그 모든 일제 포격을 맞고도 배는 부서지지 않고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뭘 쏘든 간에 배에 무슨 무형의 장막 같은 게 쳐져서 함포 사격도, 미사일도 막히고… 딱 봐도 성좌님의 힘이거나 헌터의 스킬이나 마법 같은 것이 확실하기에 지금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러 온 겁니다, 브라만이시여!”
“저희 공군도 화력 지원을 이어서 했지만 배들에 일절 손상을 입힐 수 없었습니다.”
“끄으응…….”
마정석 기술까지 보급된 첨단 군대의 힘을 모두 사용했는데도 바다로 오는 성좌 종말자의 함대를 막지 못하니, 다음 대책을 위해 성좌에게 힘을 받은 크샤트리아와 브라만을 찾아 신전까지 오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위대하신 브라만이시여, 신의 사도로 임명된 크샤트리아이시여, 지금이야말로 그 카스트에 맞는 임무를 하셔야 할 때입니다.”
“으으으음! 아, 알았네. 걱정 말게. 곧장 크샤트리아들을 모두 불러서 남쪽 바다로 보내도록 하지. 스리랑카와 연계도 하고 말이야. 그러니 일단 할 수 있는 대로 화력 투사를 계속해서 막아 내도록 하게.”
“가,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공군과 해군 책임자들이 물러났고, 성좌 아이야나르의 브라만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크샤트리아들을 모두 소집, 신전과 도시를 지키기 위한 행위라고 하며 작전에 나서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곳 성좌 아이야나르의 크샤트리아는 등급에 상관없이 총 530명. 그리고 성좌 아이야나르의 최측근 사도인 카마르자트라고 하는 거한은 자신의 가슴을 치며 브라만을 안심시켰다.
“걱정 마십시오, 브라만이시여. 위대한 성좌님의 명예를 걸고, 놈들을 바닷속의 폐기물로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그 말만 들어도 믿음이 가네. 우리는 이곳에서 기도하고 있을 터이니 반드시 성공하게. 그리고 공군 사령관과 해군 사령관과의 공조에도 힘쓰고 말이야.”
“예! 그럼 얘들아, 가자! 요새 신성 전쟁도 없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적절한 상대가 와 주셨군. 하하핫!”
쾅!쾅!
그렇게 카마르자트라고 하는 남자는 호쾌하게 웃으면서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고는 휘하 크샤트리아들을 데리고 전장으로 향했다.
공군과 해군 사령관들이 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성좌 아이야나르는 엄연히 이 인도 남부 최강의 성좌로, 그들은 신성 전쟁을 수없이 치르면서 수많은 헌터를 때려눕히고 이 자리를 차지한 실력자들이었다.
그들은 곧장 근처 비행장으로 향하여 수송기에 몸을 맡겼고, 그대로 하늘을 날아서 바다에 강하 작전을 할 생각이었다.
결국 요점은 성좌 종말자의 사도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병력을 운송해서 상륙하려는 배들을 막으면 되는 것이었기에 그들은 50명 단위로 배에 침투해서 배만 파괴하자는 작전을 구상해 내었다.
“작전의 요점은 배를 부수는 것이다. 어차피 소수가 넘어와도 다른 성좌의 크샤트리아들이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주목표를 부수면 다들 뒤도 안 돌아보고 바다를 건너든 하늘을 날든 해서 돌아오면 된다.”
압도적인 적과 싸워서 이기라고 명해 봐야 다들 진심으로 듣지 않을 것이고, 듣는다고 해도 무모하게 희생당하는 미래밖에 남지 않는다.
이는 카마르자트가 나름대로 머리를 쓴 것으로, 멸망급 성좌를 상대하는 일에 대한 다른 크샤트리아들의 불안을 잘 알기에 이런 수작을 부린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먼저 만나는 배에 강습하여 임무를 완수할 것이니 다들 걱정하지 마라!”
한 성좌의 크샤트리아의 정점이라면 누구보다도 모범이 되어야 하며 용맹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을 카마르자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신성 전쟁에서도 본래라면 가장 높은 등급의 크샤트리아의 전투는 마지막이곤 했지만, 그는 늘 첫 싸움을 열어 기세부터 잡길 좋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전쟁인 만큼 그는 가장 먼저 만나는 수송기에서 동료들과 함께 뛰어내리기로 하였다.
“자, 다들 봐 둬라! 이것이야말로 성좌님의 영광과 명예를 건 전쟁의 시작! 내 활약에 너희도 용기를 얻길 바란다! 그럼 먼저 가도록 하지! 나와 먼저 성좌의 명예를 드높일 자! 따르라!”
공군과의 연계로 화력 지원을 하면서 바다를 건너는 성좌 종말자의 배들의 상공에 다다른 수송기.
카마르자트가 먼저 맨몸으로 그곳을 향해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를 추종하거나 그의 말에 용기를 얻은 다른 크샤트리아들도 뒤를 이어서 강하했다.
“카마르자트 님을 따르라!”
“아이야나르 님을 위하여!”
“종말자의 침략을 막아 내자!”
‘좋아. 역시 사람은 모범을 보여야 하는 법이지. 흠! 희생은 날 테지만 여기서 바닷길을 막아야만 육지로 연결된 북부에서 전선을 구축해서 막을 테니 반드시 성공해야 할 것이다. 물론 살아남기도 해야 하고 말이지!’
카마르자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래에 자리한 적 함선을 바라보았다.
항공모함처럼 생긴 외양에 갑판 위에는 익히 보던 성좌 종말자의 골렘들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그 위에 특이하게 생긴 검은 강철 골렘 하나가 있었지만, 거기선 아무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고 얌전히 있었기에 위험하거나 특이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카마르자트였다.
그러던 중 눈앞에 반투명으로 된 마력의 장벽이 보이자 그는 이것이 군인들이 이야기하던 것임을 짐작했다.
“아! 이거였군. 하지만 느껴지는 마력으로 보아 이까짓 것쯤이야. 흐아앗!”
콰직! 쨍그랑!
따로 스킬을 쓸 것도 없이 마력을 모아서 주먹을 휘두르기만 했는데, 마력의 장벽은 부서져 버렸다.
이래 봬도 한 성좌의 최고 사도, 그리고 남부 크샤트리아의 정점으로 불리는 몸.
S급 헌터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힘을 가진 카마르자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장벽을 부수고 계속해서 낙하하며 함선에 착지할 준비를 하던 찰나였다.
[임무 위험 레벨 상승. 함선 경호 임무 부여. 엔진 가동. 시스템 체크 시작.]
그런데 갑자기 배 위에서 엄청난 마력의 파장이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놀란 카마르자트는 눈을 크게 뜨고 배 위의 골렘들을 살펴보았는데, 아까 전 보았던 특이하게 생긴 골렘에서 엄청난 마력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뭐지? 저, 저건?’
[‘종말기장 Σ(Sigma)’, 임무를 시작한다. ‘트윈 펄스 블래스터’ 개방.]
철컹! 위이이이이잉!
기묘한 모양의 긴 쇳덩이가 그 골렘의 어깨에서 튀어나와서 카마르자트를 조준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과학 지식에 전무한 신정 일치의 나라에 살던 그라고 해도 그 무기가 자신을 노리는 화기라는 것쯤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끝부분에 밝은 빛과 엄청난 마력 파장이 모이면서 큰 위험이 느껴졌다.
[타깃 록 온. 발사 시퀀스. 5… 4…….]
“이, 이런 젠… 아이야나르시여! 저에게… 신념을 지킬 힘을! 우오오!”
[2… 1… 발사.]
콰아아아아!
대낮에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영롱한 푸른빛의 줄기 둘이 카마르자트를 향해 날아갔고, 그는 스킬을 사용해서 필사적으로 막아 내었다.
몸에 마력을 두르는 스킬을 사용한 덕분에 조금 힘들지만 충분히 버틸 만했다.
이제 지상까지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고, 땅에 닿으면 저런 무서운 사격 병기를 함부로 쓰지 못할 것이기에 배만 파괴하고 도망치면 될 거라는 계산과 함께 카마르자트는 버티고 또 버티는데…….
[‘성좌 아이야나르’가 ‘결국 여기도 성좌 종말자에게 먹히겠네.’ 하며 한탄합니다.]
“신이시… 여?”
[‘성좌 아이야나르’는 ‘미안하지만 난 이제 이 별에서 떠난다.’라고 말합니다.]
“그, 그게 무슨…….”
눈앞에 뜨는 성좌의 상태창에 카마르자트는 눈이 커지면서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서서히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힘으로 쓰던 마력의 존재가 사라지면서 트윈 펄스 블래스터의 빛이 자신의 몸을 태우는 고통이 느껴졌다.
“이, 이럴 순… 이럴 순 없어! 신이시여! 신이시여! 왜 저희를 버리시나이까? 신…….”
콰아아아아! 화르륵!
마지막까지 신을 찾으며 절규하는 카마르자트였지만, 결국 마력이 사라지자마자 순식간에 재도 안 남기고 푸른빛에 산화되어 버렸다.
그리고 뒤이어 내려오던 성좌 아이야나르의 헌터들도 자신들의 스킬과 스테이터스로 제어하던 착지가 어긋나자, 낙하 장비 없이 고공에서 내려오던 대가를 그대로 치러야만 했다.
“끄악!”
“아아악!”
“신이시… 컥!”
퍽! 퍽! 퍽!
함선 갑판에 떨어진 사람들은 마치 땅에 케첩이 떨어진 듯 붉은 피 웅덩이를 남기며 터져 나갔고, 바다에 떨어진 경우 또한 공중에서 떨어진 가속도와 바닷물의 표면 장력과의 충격에 기절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건 분석. 현 위험 단계 레벨 하락. ‘종말기장 Σ(Sigma)’, 다시 휴면 모드에 들어감.]
철그럭 철컥! 철컥!
주변을 스캔한 ‘종말기장 Σ(Sigma)’는 성좌가 떠남으로써 지금 이 전장에 헌터의 위협이라는 게 사라지자 양 어깨 쪽에 내놓은 트윈 펄스 블래스터를 집어넣고 다시 대기 모드에 들어갔다.
그리고 동시에 성좌가 인간들을 버리고 떠난 증거는 이 전장뿐만 아니라 성좌 아이야나르의 신전에 있는 브라만에게까지 전해졌고, 성좌 종말자의 침략보다 더 무서운 소식인 신이 자신들을 버렸다는 사실에 브라만은 공포에 가득 차서 절규했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성좌 아이야나르시여! 성좌 아이야나르시여! 성좌 아이야나르시여-!”
애타게 신을 찾는 목소리를 내어 보지만 성좌의 답변은 오지 않았다.
그래, 커다란 목적이나 원하는 것을 위해 사도에게 신경 써 주고 같이 싸우는 성좌가 있는가 하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버리는 성좌도 있는 법이다.
그저 이 ‘별’의 인간들은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바다로 다가온 성좌 종말자의 군대는 무사히 인도 남부 해안에 상륙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