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228화 (228/293)

[228화]

그리고 다음 날.

어제 성좌 바유의 브라만이 예상했듯이 판돈이 생긴 성좌 바유는 신나서 또 새로운 결투를 잡아 왔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 내용이 참 어이가 없었는데, 또다시 성좌 인드라 측과 신성 전쟁을 하기로 한 거야 둘째 치고, 이전에 있던 작은 촌 도시에 기껏 딴 도시와 백성까지 판돈으로 내건 올인 도박이라는 점이었다.

“…….”

“…하아아아~ 예. 말이 안 나오시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기왕 재계약한 거 믿고 한 번 더 써 본다고… 올인을 하셔서…….”

“예, 그… 뭐라 말을 하기가 어렵네요. 참…….”

“하아아아~”

불량한 아들을 둬서 걱정이 많은 어머니처럼 한숨을 쉬는 성좌 바유의 브라만을 보며 유성원은 자신들이 골랐지만 참 대단한 성좌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도 성좌인 만큼 함부로 모독을 하거나 비난하기가 뭐해 침묵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다음 상대는 누구죠? 저쪽이야 우리 쪽에 그… 크샤… 크… 크리스피 치킨은 저뿐이라서 더 말할 의미가 없지만요.”

“크샤트리아입니다. 뭐, 외국분이시니 어쩔 수 없지만… 다음 상대도 그… A급입니다.”

“예? A급인가요? 으음… 뭐, 그럴 수도 있죠.”

아슬아슬하게 혹은 운이 좋아서 한 번 이겼다고 착각할 만한 여지를 준 만큼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줬을 수도 있다.

성좌 인드라급이면 이미 다른 곳에서 벌이는 신성 전쟁도 여러 개일 테니 S급 크샤트리아를 파견하기가 애매했으리라.

어쨌든 싸우는 상대인 유성원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상대는 이번에도… 전투 주술사군요.”

“예. 다만 저번과 다른 건… 이번엔 체술보다도 주술 쪽에 집중하는 타입이라 캐스터일 것 같습니다.”

“그에 따라 준비하도록 하죠.”

“저기, 그리고…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덕분에 저희가 구원받았으니 그에 대한 성의를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아뇨. 일을 받은 이상 그것을 완수하기 위한 준비와 계획은 모두 저희가 할 테니 괜찮습니다.”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며 다가오는 성좌 바유의 브라만이었지만, 유성원은 진짜 용병인 양 칼같이 냉정한 어조로 거절했다.

이용할 생각이라면 본격적으로 우호도를 올리는 게 좋았지만, 이쪽에서 먼저 들어가 봐야 상대는 결국 카스트 제도에 심취해 있는 자들이다.

‘먼저 다가가면 결국 카스트 제도 아래로 취급당하겠지.’

그래서야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역으로 이용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유성원 측의 계획은 그들을 승승장구하게 만들어 주는 한편 적절히 감정적인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그들이 먼저 입장을 바꿔 고개 숙이고 들어올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식사, 물, 술 모두 저희가 따로 마련하겠습니다. 거주지도… 전에 묵었던 거기면 충분합니다. 새로 작성한 계약서만 가져다주시면 됩니다. 가자, 레그혼.”

“아… 예.”

그렇게 유성원은 협의를 마친 뒤 자신의 크샤트리아 저택으로 돌아갔다.

성좌 바유의 브라만은 가면을 써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홀로 처량하게 유성원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자신의 일을 하러 떠났다.

***

일주일 뒤.

콜카타 근방 도시 폐허.

“…휴우~ 이겼다.”

엉망진창이 된 폐허 속에서 유성원은 하늘을 향해 주먹을 뻗어 올리고 있었다.

그의 발치엔 로브와 지팡이를 든 남성이 엉망이 된 채로 기절해 있었는데, 바로 오늘 상대하기로 한 성좌 인드라의 A급 크샤트리아 사텐드라였다.

“사텐드라가 졌다고? 제길! 처음의 그건 운이 아니었단 말인가?”

“맙소사. 이게 무슨…….”

“아냐. 이번에도 운이다. 보라고. 저 멍청한 녀석이 무너지는 건물을 이용해서 시야를 가린 다음 기습을 한 거란 말이지. 그냥 사텐드라가 멍청했을 뿐이야.”

승패가 갈린 시점, 브라만들이 있는 가장 높은 자리보다 살짝 낮은 곳에 떠 있는 거대한 배 위에는 성좌 인드라의 크샤트리아들이 모여 거대한 모니터로 이번 신성 전쟁을 관람하고 있었는데, 자신들 쪽 출전자가 또다시 져 버린 것이었다.

성좌 바유에게 2연패. 또다시 판돈을 끌어모은 성좌 바유로 인해 이번엔 더 많은 영토와 백성을 잃은 것은 물론 크샤트리아 일부까지 내주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우리 성좌 인드라 님이 가지신 것의 극히 일부다. 그동안 커다란 배에 타고 있다고 안심하던 놈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겠지.”

“아이라바타 도 님.”

“오오!”

“그 말씀이 맞습니다.”

배 위의 가장 상석에 오만하게 앉아 있던 남자가 입을 열자, 다른 크샤트리아들은 일제히 고개를 조아리거나 예를 차리면서 그 말에 호응했다.

새하얀 코끼리의 탈을 쓰고 있는 그는 성좌 인드라의 사도이며, S급 크샤트리아로 인드라가 타는 코끼리 아이라바타의 이름을 딴 사내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아래로 내려가면서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 이변도 있어야 재미있는 법이지. 또 성좌 바유 님 또한 엄연히 성좌 중 한 분. 이런 이변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다만 용서 못하는 건 자신의 승급과 명예를 위해서 제대로 상대를 알아보지도 않고 싸움에 참여했다는 점이겠지. S급 대전에 감히 A급이 나선 건 어딜 봐도 욕심이었지. 비록 상대가 A급 정도로 보인다고 해도 말이야.”

“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번 싸움도 아슬아슬한 승리를 연기한 만큼 유성원의 역량은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A급 상위 크샤트리아 정도로 생각하는 아이라바타 도였다.

그는 팔을 휘두르면서 이 공중배 안에 있는 다른 크샤트리아에게 선언했다.

“아무튼 성좌 바유 님의 성격상 또다시 신성 전쟁을 신청하려 할 것이다. 다음에 도전할 녀석은 저 ‘빨간 놈’에 대해 단순히 외국에서 온 용병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확실하게 판단해서 승리를 쟁취하도록 전해라. 알았나?”

“예!”

그의 말이 끝나자 우렁차게 대답하는 성좌 인드라의 크샤트리아들이었다.

자신들의 성좌의 이름을 드높이고, 공훈을 얻기 위한 신성 전쟁인 만큼 반드시 승리해야만 했다.

“그나저나 이번에 실패한 저 녀석은 어떻게 할까? 일단 ‘각성’한 크샤트리아이니 강등은 불가능하겠고. 으음~ 역시 ‘그곳’에 보내는 수밖에 없나? 위대한 인드라 님의 명예를 떨어뜨린 저 녀석에게는 그게 합당한 처분이겠지.”

“곧바로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패배자의 처분이 정해지고, 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화면상으로 성좌 바유의 브라만과 이야기를 나누는 유성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신성 전쟁판에 용병 헌터들이 끼는 건 흔한 일이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엄청난 대가나 비싼 수임료를 받기 마련이다.

근데 문제는 성좌 바유는 다혈질이라서 그동안 무모할 정도로 신성 전쟁에 재산과 신도들을 꼬라박았는데, 저 정도로 강한 용병을 어디서 구했냐는 점이었다.

“그 성좌님이 비상금을 남겨 둘 성격도 아니신데 말이지. 으음… 뭔가 냄새가 나. 몰래 알아봐야겠어.”

그렇게 생각한 그는 품에서 은은한 빛을 내는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무어라 적고는 둘둘 말아서 끈으로 묶었다.

그러고는 종이비행기를 날리듯 슝~ 하고 날리자, 둘둘 말린 종이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어디론가 향해 갔다.

***

한 달 뒤.

콜카타 크샤트리아 거주구 저택.

그 뒤로 유성원은 두 번의 연승을 더 성공, 늘 올인한 성좌 바유의 영역과 신민은 배에서 또 배로 늘었고, 기어이 콜카타 지역 전부를 손에 넣는 데 성공하게 된다.

지역 변방에 찌그러져 있던 성좌 세력에게 ‘주’ 단위의 영토를 복원시켜 준 유성원은 이제 거의 성좌 바유 교단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정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나이트 레드 님. 이걸로 저희는 과거의 영광을 되살릴 기반을 찾은 것 같습니다.”

“예, 축하드립니다. 그… 이제는 헌터… 아, 크샤트리아 분들도 꽤 생겼죠?”

“예. 콜카타를 지키는 크샤트리아들도 받았고, 그 아래 계급도 많아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브라만이 저 혼자가 아니라는 거지요. 휴우~ 드디어…….”

가면 뒤였지만 성좌 바유의 세력이 회복되어 기뻐하는 것이 충분히 느껴졌다.

지금 이곳 콜카타의 크샤트리아 거주구에 마련된 저택만 해도 거대한 마당과 정원에 여러 성좌들을 찬양하는 예술품들이 즐비해 있었고, 수십 명의 수드라들이 그곳을 돌아다니면서 시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은혜도 은혜이고, 더 편히 지내시라고 이 저택에 모신 겁니다. 추가로 계약도 할 겸해서 말이죠.”

“마음은 고맙지만 용병은 어디까지나 용병. 계약상 받은 거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다음 계약 말입니다만, 그건 잠시 보류해도 되겠습니까?”

“예? 어, 어째서요?”

유성원이 계약을 보류할 것을 말하자, 성좌 바유의 브라만은 당황했는지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승승장구했던 것은 나이트 레드, 그가 모든 신성 전쟁에서 연전연승해서였는데, 갑자기 계약을 보류한다니 놀랐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들의 성좌 바유는 또 승승장구하니 신나서 새로운 신성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여기저기 찔러 대는 상태였다.

그런 만큼 유성원의 존재는 더더욱 중요했다.

“그야 다른 의뢰도 생각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 몸은 하나인데 여러 군데에서 계약이 들어오면 결국 하나밖에 수행할 수 없으니 말이죠.”

“여러… 계약?”

“예. 여기서 일이 잘 풀리다 보니 명성이 퍼져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더군요. 그래서 보수랑 이것저것 검토를 해 봐야 할 것 같아서요.”

“저기, 그러면 저희는?”

“그래도 지금은 성좌 인드라 님 측 의뢰는 없으니까 당장은 적으로 만나지 않겠네요. 하지만 또 돌다 보면 아마 만날 수도 있겠죠. 그러면 저택으로 돌아가서 검토를…….”

꼬옥…….

사무적으로 냉랭하게 말하곤 뒤돌아가려는 순간, 유성원의 팔을 붙잡는 작은 힘이 느껴졌다.

가면과 면포 덕분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떨리는 손길에서 절박한 감정이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낀 유성원이었다.

“저, 저기… 그러면 대우를 더 좋게 해 드리는 건 어떨는지요. 계약금은 물론이고 이 저택도 그냥 드리겠습니다. 무, 물론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동안뿐이지만. 그리고… 그리고…….”

그러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다급히 이야기하는 성좌 바유의 브라만. 그럴 만도 한 것이 유성원 정도면 용병으로서 상당히 이상적인 축이었다.

일단 총 전적 5전 5승을 이룰 정도의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냉정해 보이는 저 성격도 상당히 맘에 든 그녀였다.

보통 힘을 가진 자들은 무뢰배 같은 특성을 가지거나 조금만 띄워 줘도 오만하게 굴고 자신이 우위라 생각되면 온갖 요구를 해 대는 데 반해, 유성원은 철저히 계약을 준수하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이었기에 더욱 그를 오래 붙들고 싶어 했다.

‘게다가 지금 크샤트리아들을 얻었다곤 하지만 성좌 바유 님을 진심으로 섬기는지도 의심스럽고… 하아아~’

물론 그들도 성좌 간의 계약으로 넘어온 몸들이라서 딱히 반발하진 않을 테지만, 그래도 오히려 계약을 철저히 지키는 유성원 쪽이 더 믿음직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그런 만큼 유성원과의 계약을 연장하고 싶은 그녀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그가 호감을 가질 만한 것이 있나 찾아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