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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224화 (224/293)

[224화]

호주, 에어즈록.

유명한 거대 바위가 있는 이곳은 과거 토착 민족에게 신성한 장소로 불렸지만, 이제는 과거 자연이 만든 경이로운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검은 영혼과 그림자에 묶인 검정이나 하얀색의 돌로 이루어진 기괴한 골렘들이 세운 기둥과 기계로 인해 흉물스러워져 있었다.

이런 광경은 비단 이곳 에어즈록뿐만 아니라 호주 대륙 전역에 퍼져 있어서 마치 거대한 공업 단지를 연상시켰다.

설치한 기계에서 나오는 소음과 빛. 생물의 흔적은 없고 오직 기계 같은 골렘들만이 마정석을 가지고 다니면서 이곳 에어즈록 중심으로 모이는 게 전부였다.

[…작업 현황 보고.]

[‘종말기장(終末機將) 알파’ 보고. 예정대로 마정석 채취 순조로움. 예정 생산량에 완벽히 도달.]

[‘종말기장(終末機將) 베타’ 보고. 새로운 채취 기계 및 기지 생산 순조로움. 예정 생산량에 완벽히 도달.]

[‘종말기장(終末機將) 감마’ 보고. 채취 골렘들 제어 및 생산 순조로움. 예정 생산량에 완벽히 도달.]

[…….]

[…….]

[…….]

그리고 거대한 골렘들은 한 옥좌 아래 모여서 에어즈록 정상 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백색 비석을 향해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이 비석은 성좌 종말자와의 통신을 위한 것으로, 현재 그는 직접 이 땅에 강림하지 않고 통신으로만 지령을 내리는 중이었다.

비석에서 검은빛이 나오더니, 중후하면서 엄숙한 목소리가 그곳에서 흘러나왔다.

[순조롭군. 하던 일을 지속하도록. 그런데 전투 담당인 시그마의 보고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군.]

[‘종말기장(終末機將) 시그마’ 보고. 죄송합니다. 동남아, 인도 쪽의 ‘성좌’들과 인간 세력의 저항이 거셉니다. 더 많은 ‘종말기병(終末機兵)’을 생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다. 허락하지. 생산량을 30퍼센트 더 올리는 것을 허락한다.]

비석에서 허가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다른 종말기장들은 눈을 빛내면서 자신들의 주인이 내린 명을 이행하기 위한 계산을 실시했다.

그리고 곧바로 호주 대륙에 있는 모든 기계들이 불을 뿜기 시작하며 새로이 적용된 수치만큼 생산량을 올리기 위해 분주해졌다.

[전투 부문을 제외하곤 계속해서 일이 순조롭다. 다소 고전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건 나 말고도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이니 문제는 없지. 다만 이 ‘별’을 떠나게 된 ‘성좌’로부터 믿기 힘든 소식을 들었다. 바로 ‘별의 수호자’가 다음엔 우릴 노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별의 수호자’로 추정되는 인물, 유성원 헌터. 아직 공식 발표 없음. 현재 ‘성좌 도살왕’과의 전투 이후 요양 중인 상황으로 정보 확인.]

[알파, 바로 그 ‘도살왕’이 나에게 전한 것이다. 녀석에게 붙은 ‘사도’에게서 정보를 받아 나에게 알려 준 거지.]

[정보 갱신 완료.]

[경계 레벨을 올려라. 필시 우리가 전투 중인 동남아 전선으로 올 가능성도 있지만, 단독 작전으로 이곳에 침입할지도 모른다. 더불어 ‘A급 종말기병(終末機兵)’의 생산을 늘리도록 해라. 그리고 종말기장들이여, 우리 군단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놈들에게 보여 줘라.]

[명령 입력 완료.]

성좌 종말자의 지시에 골렘들은 눈 부분을 빛내면서 일어나 각자 움직였다.

이 별에서 생명 에너지를 뽑아내어 마정석으로 만드는 만큼 당연히 이 ‘별’의 존재가 자신을 가만두려 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미 수많은 ‘별’을 정복하여 생명을 뽑아낸 성좌 종말자는 오히려 이 ‘별의 수호자’는 느리다고 생각하며 늘 해 온 것처럼 대비하기 시작했다.

***

반년 뒤.

평양, 임시 사령부.

성좌 종말자를 노린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유성원의 일상은 생각보다 바빴다.

한국 내의 일상은 물론 성좌 용봉왕이 남긴 신중국 쪽도 운영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너무나 골치 아픈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중국이 한국 내보다도 더 문제였는데, 유청과 천검군 기사들과 함께 운영하며 노하우도 쌓았지만 임시 통치 기구는 다음 스텝을 안 밟으려 했던 것이다.

“이제 그만 선거하고! 정상 정부를 수립하라고!”

“이대로가 편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오! 위성 정부로 남기 싫을 거 아니야.”

“게다가 여태껏 수십 년간 성좌 용봉왕 님이 시키는 대로만 살아오던 국민들이 갑자기 자유민으로 돌아가면 혼란이 커질 겁니다. 이미 인원 구성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면서 혼란이 오기 시작했는데…….”

성좌가 사라진 초기엔 급한 대로 임시 기구를 세우고 국민들의 생활을 그대로 유지시킴으로써 혼란을 막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사람에게는 결국 수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하루에도 수만이 넘는 사람들이 삶과 죽음을 오가면서 계속 세대교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만큼 현 체제를 유지시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교육 기관부터 고쳤잖아. 이제부턴 성좌의 판단에 따르는 게 아니라 학습하고, 공정하게 시험 치고, 자연스럽게 되는 거라고 유청이…….”

“예. 유청 님 말대로 하려고 했지만 역시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또 이미 계층을 지역별로 갈라놓은 것 때문에 아이들을 모두 교육 기관에 모으는 것부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나한테 말해 봐야 쉽게 해결책이 안 나와.”

유성원의 머리도 결국 일반인 수준. 지능이 뛰어난 유청이나 다른 기사들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쉽게 풀리지 않을 문제였기에 유청이나 다른 기사들이 와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고민하는 선에서 그쳤다.

“이건 참 난감하군요. 이 시대의 사회 규범에 맞추기도 그렇고, 저희 식대로 하기도 그런데 말이죠.”

“그냥 집어치우고 싶은데…….”

“아무튼 일단 중요한 건 아이들의 교육입니다. 어른들은 급격하게 바꿀 수 없으니 정책 홍보와 지시, 매뉴얼로 대체하면 되지만 장차 자라날 아이들이 결국 변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장기간 타인의 지시를 받으며 살았던 게 문제라서 이걸 고치기가 너무 힘드네요. 진짜…….”

별의 기록에 남은 전설의 기사들에게도 이 문제는 어려운 듯 서로 갑론을박을 펼치며 이야기가 길어졌다.

각자 살아온 방식들이 다르다 보니 해결책이 나오기 힘들었고, 또 그들이 무얼 한들 직접 변화해야 하는 것은 결국 이 중국의 시민들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국방 면에서는 천군대장군을 비롯한 사령 군단이 있으니 안심한다고 쳐도…….”

“하지만 폐하께서는 이번에도 위험한 싸움을 하셨잖습니까? 그러면 이 기사분들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아니, 그럼 평생 얘네한테 의지하고 살래? 그러니까 빨리 너희끼리 정상화하라는 거잖아. 선거하고, 의회 만들고, 운영하고… 기본적인 건 다 배웠고, 역사 자료 넘쳐 나고. 대체 왜 못한다는 거야? 머리도 나보다 좋으면서~”

실제로 성좌 용봉왕 아래의 근위대장급들은 2개 국어, 3개 국어는 너끈히 할 정도의 능력자들이었다.

또한 배우는 건 순식간에 흡수할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은 역시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수십 년간 수동적으로 살다 보니 그 부분에 있어서는 변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첫 임기만이라도 임시 의회로 간다고 하고, 체제 정비하고 정식 선거 한다고 해. 국민들에게 홍보와 안내가 덜 되었다는 이유로 말이야. 뭐~ 국제 연합이나 UN에서 욕 좀 먹겠지만, 그 정도면 되겠지.”

“그, 그러겠습니다.”

“에휴~ 하라고 하는 건 또 잘해요. 아무튼 기사들 없어도 잘 돌아가게끔 잘 정리해 놔. 이상~”

중국 쪽에서의 머리 아픈 회의가 끝나고, 유성원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전용기를 탄 채로 본격적으로 인도-동남아시아 전선에 대한 자료를 보며 또 다른 회의를 시작했다.

멸망급 성좌에 대한 첫 공격이기에 지금까지보다 더욱 신중하게 준비해야 했고, 더 중요한 것은 인도 쪽에 있는 성좌 세력과 협동하는 것이었다.

“대장님, 인도-동남아 전선에 대한 보고입니다. 그… 이번에 다시 조사해 본 결과, 동남아 쪽은 그렇다 쳐도 인도 쪽이 좀 심각합니다.”

“왜요? 충선 아저씨, 출장 갔던 게 이상했어요?”

“인도가 그… 밖에서 보기와 다르게 내부가 상당히 혼란스럽습니다. 컬처 쇼크 오는 줄 알았다고 해야 하나?”

“왜요?”

인도 쪽과의 협력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서 최충선을 미리 보내어 살펴보게 했는데, 그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내민 보고서를 살펴보던 유성원은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사실입니다. 거기서 보고, 듣고, 겪은 걸 그대로 적은 거죠.”

“밖에는 이런 소식 전혀 없던데?”

“그야… 성좌 용봉왕보다 더한 신정 사회니까요.”

보고서에 나온 내용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지는 유성원이었다.

인도는 성좌의 시대 이후 완벽한 신정 일치 사회로 돌아온 상태였다. 정부는 국제 사회 협력을 위한 외교부만 멀쩡히 남아 있을 뿐 나머지는 신의 뜻대로 운영되는 형태라고 나와 있었다.

“카스트 제도까지 부활했고… 게다가 성좌마다 영토를 가진 봉건제 신정 사회? 맙소사, 이게 어떻게 지금까지 안 알려진 거지?”

“대부분 자국과 그 근처에 있는 성좌나 스캐빈저에 신경 쓰는 경우가 많았고, 일단 관광을 잘 안 하게 되었으니 말이죠. 그래 놓고 국제 사회 회의에선 멀쩡히 보이고…….”

“성좌 용봉왕과 비슷한 이유라는 거군. 하아아~ 이거 진짜 골 때리네.”

하지만 성좌 용봉왕은 지배를 하는 데 있어서 나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정상적으로 운영했는데, 이 인도는 더 심각했다.

성좌가 지배한다는 건 똑같았지만, 여기는 아예 봉건제처럼 도시 혹은 거대한 구획으로 나뉘어서 성좌들이 자기 영역을 정하고 거길 지배하는 형태였다.

봉건제 신성 사회. 심지어 다스리는 방법도 기가 막혔는데, 그냥 그들이 택한 브라만과 신관들에 의해서 하고 싶은 대로 다스리는 것이었다.

“와, 이건 심하네. 게다가 도시별로 아예 법이랑 제도가 다르다고?”

“예. 그렇다니까요. 카스트도 부활한 마당에 안 될 게 어디 있겠습니까? 심지어 그… 성좌가 운영하는 영역마다 신전도 다르고, 법도, 예절, 금지되는 식사까지 싹 다르다고요. 변신해서 돌아다녔기에 망정이지, 정말 장난 아니었습니다.”

“…대체 성좌의 시대 때 인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아~ 이건 더 심각하네. 그래도 하나 다행인 건 문명을 완전히 버리진 않았다는 거지만. 하아아~”

“그럼 뭐 합니까? 원시인에게 총 준다고 쏴집니까? 에휴~ 여기 신전이나 보십시오.”

사진에 나온 도시 전경은 산업화와 문명화로 인해 빌딩과 아파트가 가득 세워져 있었지만, 그 어떤 빌딩이나 아파트보다 훨씬 거대하게 지어진 신전의 모습을 보며 또 표정이 일그러지는 유성원이었다.

“우리나라 개독 양반들이 바라던 게 이런 사회일까? 브라만과 크샤트리아가 독점하고 지배하는 사회… 인데… 하아~”

“애초에 거기엔 ‘신’ 따위 없잖습니까? 맨날 하나님, 하나님 하는데… 성좌의 시대가 되니 하나님은 개뿔, 다 사기꾼인 거 들통나서 각성한 신도들에게 맞아 죽었죠. 그래서, 어쩌실 겁니까? 대장님.”

“하아아~ 골 때리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멸망급 성좌야. 그래도 협력… 아니, 이용할 수 있는 한 이용해야겠지. 문제는… 그… 내 여론은 어떻죠?”

유성원은 이제 확실히 성좌를 잡아 쓰러뜨린 성좌 슬레이어인 만큼 신정 일치 사회인 인도가 그를 받아 줄지가 문제였다.

가능하면 협력까진 무리여도 서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대화할 정도는 되어야 했기에 유성원은 우선 거기서 자신의 이미지가 어떤지 최충선에게 조심스레 물어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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