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암살이라. 하지만 그가 없으면 또 문제가 되는 게… 억제된 스캐빈저라든가? 지금 일본에서 난리 난 것처럼 타국의 헌터들이 진출해서 충돌하는 문제가 생깁니다만?”
“그러면 지금 이 호기를 놓치라는 겁니까?”
“없어지면 없어지는 대로 혼란이 생길 겁니다. 국내에 적어도 성좌 청룡급 길드가 생긴다면 모를까, 지금 그가 없어지면 곤란한 건 오히려 우리예요. 바퀴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입니다.”
“그러면 암살 논의는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유성원이 사라져도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니 더 할 말이 없어진 의원들은 침묵했고, 곧바로 이 화제는 폐기되었다.
분명 귀찮은 짓거리를 하는 미운 놈이기는 했지만, 기껏 되찾은 평화 구도와 발전 가능성을 깨 버릴 만큼 멍청한 인간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 토사구팽을 하려고 해도 적어도 먹고살 걱정은 없어져야 하는 거지, 사냥개를 잡고 아예 사냥을 못하게 되면 굶어 죽기 마련이었다.
“그럼 결국 지금까지의 논의는 쓸모없는 게 아닌지…….”
“하아아~ 답답하네요. 그러면 결국 다시… 유성원 헌터 놈이 바라는 대로 눈치 보면서 공정한 세금 부과를 하고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겁니까?”
‘알아서 잘해라.’라는 협박 문구보다 훨씬 쉽고 간단하게 원하는 것을 요약한 유성원 측의 요구. 쉬운 말이지만 너무나 힘든 한 문장이었다.
‘공정한 세금과 재판’이라는 말은 언뜻 보기엔 좋아 보였지만, 대기업 중심 발전을 이루고 자본주의 경제 시장에서 계층화된 사회 구조와 오랜 세월 동안 고위층들이 만들어 둔 카르텔을 부수라는 이야기였기에 쉽게 되는 게 아니었다.
“그거 때문에 지금 재판관들이 머리가 아플 지경이라고 합니다. 기업 관련 스캐빈저 의혹이나 대기업 가족들 마약 사건 같은 거 옛날이면 다 그냥 대충 집유 주고 말았는데… 이젠 그러면 유성원 헌터 측의 기사들이 떠서 끈 달린 스캐빈저를 조지거나 아니면 해당 기업 같은 곳을 전선 도시에서 퇴출시키고, 중국 수출을 막아 버리니…….”
“그러니까 더더욱 평양을 차지하려는 걸 막아야 한다니까요. 평양도 전선 도시처럼 만들면서 전국에 있는 인구들이 뭉치고 서울을 나가리 만들면 진짜 끝장입니다. 분명 지하에 스캐빈저들 수감 시설을 세우니까 전선 도시와 같은 대접을 해 달라고 요구하겠죠.”
“으윽! 상상만 해도 짜증 나고 머리가 아파 옵니다. 끄으으응……!”
서울이 대한민국 중심이 아닌, 유성원이 만드는 도시들에 인구가 몰리고 그곳이 대한민국의 중심이 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기 좋은 곳을 갈망하기 마련이며, 또한 공정한 법률과 세금이 부과된다면 더 좋고, 또 서울 못지않게 인프라와 일자리까지 있으면 가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특수 도시라는 이유로 토지 거래를 제한해서 투기 세력들을 막고, 공정하면서 엄격한 독립 법률로 치안과 질서를 잡는다.
거기에 막강한 경제력으로 만든 각종 인프라와 일자리로 서울을 능가하게 되면 서울은 그 가치가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유성원 헌터 측의 평양 쪽 개발 소식에 벌써부터 서울 집값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들어가는 데 제약이 있긴 하지만 들어가기만 하면 지금 서울보다 훨씬 살기가 좋다고 평가받고 있고, 전선 도시로 이미 보여 준 터라……. 벌써부터 움직임이 남다릅니다.”
“젠장!”
“게다가 기업들도 아마… 유성원 헌터에게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입장이 될 겁니다. 중국, 일본, 러시아 측도 꽉 잡고 있고, 대륙 간 철도 공사라든가 큰 사업을 쥐고 있으니 자식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겠죠. 하아아~”
“결론은… ‘그의 뜻대로 하자.’이군요.”
긴 이야기를 나눴지만 답은 형편없었다.
암살 같은 궁리도 지금처럼 그가 중태일 때나 가능하지, 몸을 회복하고 난 다음엔 꿈같은 이야기였다.
심지어 죽더라도 이미 후계 구도까지 완벽히 잡아 놨고, 유성원과 기사들을 빼고도 운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유성원의 말을 잘 듣는 것뿐이었다.
***
한 달 뒤, 평양.
아직 무리할 순 없지만 그래도 치료실에서 나와 움직일 수 있게 된 유성원은 평양 쪽에 신도시와 또 스캐빈저들을 수감하는 시설을 짓기 위한 현장을 감독하러 직접 나와 있었다.
세계 각지에 흩어진 이 목사의 복제들에 대해선 이미 대책을 보내 놓았기에 그쪽 관련은 이제 시간만 보내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유성원은 유청과 함께 현장을 돌아보면서 그에게 공사가 시작된 감옥에 대해 듣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감옥 이름을 나락으로 짓자고? 너무 암울한 거 아니야?”
“본디 처벌이란 두려움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온건주의니 교화니 하는 걸 부인하지는 않지만, 성좌 도살왕 계열 헌터들은 이미 그 단계를 생각할 놈들이 아니죠. 그러니 두려움을 주기 위해선 이 정도가 딱 좋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렇지. 그래서, 어떻게 만들 건데?”
“시설은 삼중으로 되어 있고, 지하 500미터에 2천 명 규모를 수감할 수 있는 감옥동을 건설할 겁니다. 프레임과 장벽은 모두 오리하르콘과 아다만티움 합금으로 S급 헌터 이상이 아니면 흠집을 내거나 부수는 건 불가능한 레벨입니다. 그리고 폭동이나 탈출이 불가능하게끔 모조리 개인실로 만들었으며 여차할 경우 감옥동의 생명 유지 시스템을 모두 차단해서 폐기해 버릴 수 있게 만들 예정입니다.”
혹시나 하는 사태로 폭동이 일어나면 그대로 지하 500미터에 파묻어서 몰살시켜 버리겠다는 과격한 계획이 담긴 감옥동이었다.
즉, 탈출은 절대 꿈도 꾸지 못하고, 들어오면 오직 얌전히 평생을 보내다가 죽거나 아니면 형기를 채운 다음 나오는 것만이 가능한 곳이며 여차할 경우 모두 몰살당하는 결말밖에 없었다.
“꽤나 과격하네. 어우… 하긴 그 정도는 되어야 스캐빈저들이 겁이라도 먹겠지.”
“예. 방은 모조리 독실이며, 하루 종일 각종 종교 방송만 나올 예정입니다. 식사는 배급 창구로만 나오며 화장실 또한 방 안에 있고 바닥, 천장, 모두 완충제로 만들었으며 스프링클러로 포션을 분사할 수 있게 만들어서 자살 가능성을 전부 차단했습니다. 애초에… 헌터라면 자살하기가 쉽지 않겠지만요. 폐하.”
“아주 좋아. 그 정도는 되어야 소문나면 두려워하겠지. 다만 영양실조라든가 우울증 같은 건?”
“걸리라죠? 라고 하고 싶지만, 일단 외부에 발표할 내용으로는 태양광과 유사한 전등 시설을 놓을 거라고 할 겁니다. 실제 제품도 있지만, 뭐~ 발주량을 좀 낮췄죠.”
세상이 천국이 되려면 어딘가에 지옥이 있어야 한다는 걸까?
사람에겐 두려움이 있어야 존중과 배려가 나온다는 걸 깨달은 건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 격리시켜야 할 시설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건지. 많은 생각을 담아서 짓는 지하 감옥이었다.
“하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수감했다가 괜히 스캐빈저 대연합 같은 게 아니냐는 소리를 안 듣겠지.”
“예. 그리고 이어서 새로운 아카데미아 설립 말입니다만, 역시 전선 도시에 만드는 게 좋다고……. 그리고 아이언 포트리스는 다시 본래의 목적인 인류의 최후를 대비하는 요람으로 쓸 생각입니다.”
“좋아좋아. 아주 잘 진행되고 있네. 후우우우~ 하지만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겠지.”
유성원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휴대폰을 열어 보았다.
이미 권력과 힘의 차이가 명백하기에 동아시아에 한해선 뭘 해도 그에게 반항할 곳이 없는 만큼 일이 술술 풀렸지만, 외부에선 또 다른 항의와 위협, 위험한 제안들이 슬슬 오기 시작했다.
근래 유례없는 성좌 토벌의 연속으로 좋은 일도 많았지만, 그만큼 위상이 높아지니 세계 멸망급 악 성향 성좌와의 싸움을 하는 전선에서 소식이 계속 들어오는 것이다.
“올림푸스 새끼들부터 시작해서… 유럽도 그렇고 인도에서는 호주 쪽 좀 같이 처리할래요? 라고 물어보니……. 자기들 멋대로 월드 클래스니 뭐니 하니까 머리가 아파.”
“하지만 그래도 반드시 쓰러뜨려야 할 상대이지요. 다른 성좌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라서 문제지만요.”
“그래. 그래서 더 문제지. 하아아~ 난 아직도 성좌 영원한 분노를 봤을 때의 충격이 가시질 않는다.”
태평양에 난 거대한 구멍.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것도 모자라서 지반까지 갉아먹는 거대한 입이 성좌 영원한 분노라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것이 ‘별을 먹는 입’이라고 하며 그 안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최소가 A급이며 대부분 S급에 준하는 강력한 몬스터들이라니,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런 존재가 하나가 아니라 총 넷이라니. 하나도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는데, 염병……. 그럼 이 망할 지구는 언제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는 거잖아.”
“그렇죠. 그리고 그러니까… 폐하를 이 ‘별’이 선택한 거고 말이죠.”
“…하아아아~”
부담감에 유성원은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궜다.
이번 싸움도 솔직히 ‘운’이 좋아서 성좌 도살왕을 이기는 조건을 알아냈기에 망정이었지, 패황천검류로도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전의를 절반 정도 상실했었다.
그저 쉽게 목숨을 내어 줄 수 없다는 그런 발버둥이 운 좋게 기회를 열었을 뿐이다.
“그나마 성좌 도살왕은 사도랑 이거저거 잡으면서 견적 냈던 놈이라 나은데, 멸망급은 진짜로 견적이 안 나온단 말이야. 하아아~ 성좌 영원한 분노, 그건 어떻게 잡냐? 에휴~”
“차근차근 해 나가면 됩니다. 산이 높아도 걸어서 올라가면 언젠가 닿듯이 말이죠.”
“말은 쉽지. 휴우우우~ 성좌와의 싸움은 완전히 난센스 게임 같은 싸움이잖아.”
각종 법칙이 어그러진 상태에서 답을 찾아 나가는 식의 게임.
아무리 물리적인 화력을 올리거나 스탯을 높이거나 무기를 좋은 것으로 바꾼다고 해도 소용없는 경우가 생기니, 뭘 어떻게 해야 개선이 될지 모르기에 더 두려운 것이었다.
싸울 때마다 운이 좋길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멸망급이면 더 엄청난 조건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위험했다.
“이럴 거면 나보다 좀 더 머리 좋은 녀석에게 맡기라고…….”
“저희는 폐하라서 여기까지 온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힘내시길 바랍니다.”
“아무튼 이거 끝나면 다음엔 어딜 노려야 할까? 만약 가정한다면 말이야.”
“일단 미국과 태평양 쪽은 올림푸스가 하도록 그대로 놔두시는 걸 추천합니다. 그럼 자연히 딱 둘이 남지요. 아프리카에 있는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와 호주에 있는 성좌 종말자군요.”
“…둘 다 이름부터가 무섭네. 후우~ 한다면 역시… 가까운 데가 낫겠지.”
조사도 조사였지만,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울수록 일이 편해지는 만큼 유성원의 선택은 ‘성좌 종말자’였다.
어차피 멸망급에선 만만한 게 하나도 없는 건 똑같았으니 말이다.
그것이 나올 줄 알았다는 건지 아니면 미리 넷 다 준비해 온 건지 유청은 자료를 꺼내 유성원에게 내밀었다.
“성좌 종말자. 현재 호주 대륙 전부를 차지한 상태이며, 주요 수하들은 모두 검은 그림자와 골렘 같은 것들로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지나오는 곳의 모든 것을 분해하고 에너지를 뽑아내서 마정석 형태로 바꾸어 비축하는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모든 것이라면?”
“그리고… 수상한 기계와 건축물들을 짓고서는 어떻게 만드는 건지 거기서 계속해서 마정석을 만들어 내더군요. 저희가 추정하기로는… ‘별’의 생명력을 뽑아서 마정석으로 계속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영역을 계속 확대하려고 하고 있죠.”
“와아…….”
성좌 영원한 분노가 물리적으로 ‘별’을 파먹는다면 성좌 종말자는 인간이 지하자원을 파먹듯이 ‘별’에서 생명력을 뽑아서 마정석을 만든다.
당연하지만 이걸 그대로 놔두면 ‘별’이 멸망하는 건 당연한 일.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할 것이다.
“호주는 멸망했고, 그들의 영향력은 이제 남극까지 미치고 있으며 뉴질랜드 또한 마찬가지로 멸망. 이후 오세아니아 전역을 먹고 인도, 동남아에 전선이 생겨서 저항 중인 상황입니다.”
“참, 세상 꼴 하고는……. 하아아아~ 하지만 저항하는 걸로 끝이 아니잖아.”
“예. 뭐~ 그러는 동안에도 성좌 종말자는 계속 이 지구에서 마력을 빼내고 있으니 말이죠.”
“쩝, 당분간 쉴 생각이 싹 사라지는군. 여유는 무슨 여유야. 에휴~”
멸망급 성좌들에 대해 듣자 쉴 맛이 싹 사라진 유성원은 곧바로 동남아와 인도 쪽에 갈 계획을 짜기 위해서 움직였다.
당장은 한국 내에서 할 일이 많아 미리 계획을 짜 두면 언제든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었고, 그리고 첫 멸망급 성좌와 싸우는 것이기에 더더욱 철저히 준비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