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성좌 도살왕의 격파로, 이제 동아시아에는 명실상부 단 하나의 악 성향 성좌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상황이 찾아오게 되었다.
물론 아직 성좌 진황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는 환경오염만 없으면 OK인지라 인간 문명과 협상할 요인이 있었고, 주적은 중국 공산당과 인도뿐이라 동아시아 정세와는 관련이 적은 편이었다.
아무튼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모두 대형 악(惡) 성향 성좌에게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청정 지역이 된 동아시아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것이었다.
“보자… 세계가 놀랐다. 유성원 헌터의 파죽지세(破竹之勢), 성좌 토벌,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그는 대체 무엇을 위해서 성좌 토벌을 하는 것인가? 아시아의 제왕, 동아시아 제패 완료. 이제 다음 행보는? 뉴스에 온통 아빠 이야기로 가득이네요.”
“가득일 수밖에 없지. 아으으…….”
“그래서 다음 행보는?”
“좀 쉬고 생각하려고……. 일단 북방 정벌이랑 정리 다 안 끝났잖아. 스캐빈저들은 아직 남았으니 말이야.”
휴식 외에도 할 일은 많았다.
우선 성좌 도살왕이 사라져서 그 계열 던전은 없어졌어도 야생 던전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만주 쪽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언더시티와 중국계 스캐빈저들이 있는 땅도 정리해야 하기에 많은 시간이 소모될 것이다.
“이제 거기서 잡은 패잔병 스캐빈저들을 어떻게 하느냐, 인데… 성좌 도살왕 계열은… 얄짤없지.”
“네. 그렇죠. 기본이 인신매매니까요.”
인간을 제물로 바쳐야 힘을 주는 성좌 도살왕이기에 인신매매는 물론 인육을 먹거나 하는 등등 끔찍한 범죄들을 저지른 놈들이 대부분. 또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놈들을 어디에 가두고 관리하냐는 것이었다.
“…뭐, 그런 시설을 만들긴 해야겠지. 귀찮다고 모두 죽이면 미래에 안 좋으니 말이야.”
“하지만 관리할 인력 같은 문제가 생기잖아요.”
“걱정 마. 마침 딱 적당한 게 있어. 보자… 레그혼?”
[불렀냐? 꼬꼭. 쳇! 너 같은 게 어떻게 그분을 이긴 건지. 원 참~]
유성원의 부름에 3미터의 거대한 닭의 모습을 한 수인이 그의 침대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초로 유성원에게 패배한 성좌 도살왕의 사도 레그혼. 이번 보상으로 받은 사도 소환으로 부를 수 있게 된 놈이었다.
과거 성좌 도살왕의 가호를 받던 스캐빈저들의 수감 관리를 맡을 부하로서는 아주 적합한 인재였다.
“히이익!”
“아, 너는 얘한테 안 좋은 기억이 있었지. 아무튼 스캐빈저들의 재판이나 수감은 문제없을 거야. 인권이고 나발이고 저버린 놈들이니 그렇게 조져야지. 장소는 평양으로 할 거야.”
“평양이요?”
“어. 어차피 한다면 우리 새 주둔지로 삼고 전선 도시로 확대하려고……. 벌써부터 김칫국 마시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말이지.”
북한 지역과 만주에 자리 잡았던 성좌 도살왕 세력이 사라졌으니, 이제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 세력들의 부동산 투기 열풍이 과해질 것은 뻔한 일이었다.
하나 그쯤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유성원은 아예 평양에다 새로이 길드 주둔지를 만들어 땅 투기 및 대기업들의 막 나가는 진출에 제동을 걸 생각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내 눈치를 보게 만드는 것 정도는 해야 하니… 무조건 해야지. 그러니 너는 바로 철도 연장 공사부터 해서 평양이랑 이어 놓고, 거기 사령부랑 스캐빈저들 감옥 시설 계획을 잡아 두렴.”
“예. 그럴게요, 아빠. 그럼 이제 업무 보러 가야 할 시간 됐으니, 일하러 가 볼게요.”
그렇게 아영이가 인사를 마치고 병실을 나갔고, 홀로 남은 유성원은 레그혼을 돌려보낸 뒤 천장을 바라보다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다음 조용히 손가락을 튕기면서 누군가를 불렀다.
“자, 나와, 이 목사. 사도로 승천했고 그 몸 바쳐서 소환한 성좌 도살왕의 화신이 나한테 졌으니 너도 소환이 되겠지?”
[허허허, 소환에 응하였네. 그러니까~ ‘별의 수호자’여?]
유성원의 말에 답변하면서 이 목사는 인간형 모습으로 그의 옆에 레그혼처럼 나타났다.
유성원이 말한 대로 그에게 패배한 사도였기에 다시 소환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것은 오직 승천을 한 오리지널 이 목사뿐이지만 말이다.
“자, 너도 졌으니까 이제 계산을 해야지. 안에 갖고 갔던 ‘황금 갈기 호’랑 인간들 다 뱉어 내. 그리고 지금 이 세상에 남겨 둔 꿍꿍이속 다 토해 내고 말이지.”
[쩝, 패자는 할 말이 없다곤 하지만 이거 참~ 요구 사항이 너무 많군.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미 그 ‘별’에서는 볼일이 끝났으니 말이야.]
“남의 ‘별’처럼 이야기하네?”
[승천한 몸이니 이미 그런 단계는 지났지. 허허허, 아무튼 어디에다 갖다 주면 되나? 미리 말하지만 이미 다 사용한 건 돌려줄 수 없으니 그렇게 알게.]
이미 승천해서 인간의 궤를 벗어난 이 목사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성좌 도살왕을 이겼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별’에서 추방하는 것뿐이지, 그를 물리적으로 아예 없앤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들은 천문 너머에 있는 초월적 존재들. 그 손에 승천한 시점에서 이 목사는 이미 승리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그런데, 댁 분신을 대체 얼마나 만들었고, 그것들 다 지금 뭐 하고 있어? 빨리 그것도 말해. 뭐, 어차피 이제 성좌 도살왕이 없어서 인간 복제해도 거래할 곳이 없지 않아?”
[왜 없다고 생각하지? 인간 복제야말로 인류의 꿈 중 하나일 텐데? 허허허. 그리고 나는 이렇게 승천했지만 내 복제들은 이미 세계 널리 퍼져 있는데 무슨 상관인가? 허허.]
“뭐? 이 양반이 대체 무슨 짓을?”
[무슨 짓? 허허허, 나는 그저 내 복제들의 자유 의지를 존중해 주었을 뿐이라네. 복제의 몸으로 신앙을 품어도 과연 승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 ‘별’이 과연 자신들에게서 무사할 것인가? 같은 걸 말이지.]
“…와, 진짜 댁은…….”
성좌 도살왕이 사라졌음에도 골치 아픈 짓거리를 남긴 이 목사를 유성원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기의 복제까지 만들어서 짜증 나게 만드는 그를 본 유성원은 다른 걸 하기 전에 이 인간의 분신들부터 잡든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빠르게 물었다.
“대체 몇 명이나 복제해서 뿌려 놓은 건데?”
[글쎄? 한 200명 정도? 원본인 내가 있기 때문에 복제가 쉽기도 했고, 이거저거 개량하느라 테스트를 많이 해서 많이 만들었지. 허허허.]
“미친…….”
[물론 200명 다 무사하진 않을 걸세. 기껏해야 지식과 신앙을 조금 가진 노인네일 뿐이니 말이야. 하지만 그 200명 중 누군가가 살아남아서 또다시 ‘승천’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는구먼. 허허허허!]
“젠장! 국제 수배 넣어야겠네. 아오! 머리 아파!”
이 목사의 웃음소리에 유성원은 진짜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추가로 연락을 넣어서 국제 수배까지 지시한 뒤에야 유성원은 안심하고 드러누워 요양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그 어느 성좌보다 더 짜증 나고 무서운 정부나 기업과의 신경전을 해야 할 테니 말이다.
***
한 달 뒤, 청와대.
성좌 도살왕의 세력이 완전히 사라진 이후,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가 있던 영토는 새로운 중국과 러시아, 한국이 복구 작업과 점령 작업을 모두 이어 나갔고, 전선 도시는 이제 본래의 역할이 사라지고, 새로운 역할을 위해 재편 작업에 들어가야만 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무서웠던 성좌 도살왕도 사라지고, 진짜 통일 대한민국의 영역을 확보하게 된 상황으로 기뻐해야만 했지만, 기존 성좌 용봉왕의 중국과 러시아와 국경이 이어지게 되면서 골치가 아파진 것은 물론 유성원 헌터의 영향력이 더더욱 커지게 되었다는 게 문제였다.
당장 한국 정부는 되찾은 영역만이라도 급히 신국토 개발에 들어가고자 했는데, 유성원 헌터 측의 반발 때문에 머리 아픈 상황에 당면하자 국무 회의까지 열게 되었다.
“그 아시겠지만… 유성원 헌터가 그… 내놓은 거라고 해야 할지, 일방적인 선포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받은 계획 때문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예, 봤습니다. 기존 평양 언더시티가 있던 땅에 새 주둔지랑 기지, 그리고 스캐빈저들을 수감하는 시설을 세운다고 하고, 기존 전선 도시와 직통 연결되는 철도를 또 건설해서 연계한다는군요. 또 전선 도시에는 새로운 아카데미아를 건설한다는 계획… 하아아~”
“아주 하고 싶은 거 다 하는군요. 젠장!”
“본래라면 국군과 경찰, 기업과 기존 북한 지역의 지방 공무원들과 함께 가서 정부 부처 건물부터 올려야만 했습니다만, 아예 선수를 쳐 버렸군요. 망할 자식!”
“아마 대놓고 북한 지역을 전선 도시처럼 투기를 막고 자신들의 통제하에 두려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명분으로 내세우는 야생 던전 처리와 스캐빈저 잔당 토벌, 수감 시설 제작이라는 것들로 정부가 무엇 하나 자신 있게 맡기엔 부담스러운 일들뿐이었다.
“아니, 맡는다고 해도… 그의 말을 거역하는 게 너무 뒷감당이… 후우~”
“군사권만 잡은 게 아니라 경제권도 잡고 있으니… 이거 참~”
“반항할 수가 없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도가 지나쳐요. 정부의 행동을 자기가 멋대로 막으니…….”
“3대 길드 시절엔 서로 견제 비슷한 거라도 했지, 지금 올림푸스 길드도 아예 그냥 한 수 접은 상황이니…….”
전설이었던 서울 길드도, 청룡 길드도 모두 사라진 지 오래다.
남은 올림푸스 길드는 어차피 한국에서 헌터 인력 수급에만 지장이 없으면 충돌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황금 갈기 호의 자료와 물자를 찾아서 돌려준지라 유성원 헌터에게 은혜를 입었기에 견제는 어불성설이었다.
“아! 답답하네. 이건 엄연히 주권 침해입니다. 국민들이 선거로 뽑은 정부에 대한 반역이라고요. 게다가 고작해야 헌터 길드 사람이 사법부, 행정부에 일일이 참견하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고!”
“그냥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온 거라고 하십시오. 언제는 했었나?”
“어허! 다들 진정합시다. 어쩔 수 없잖습니까? 우린 늘 강한 세력의 등쌀에 시달려 왔습니다. 과거인 미국, 근래엔 중국.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지혜를 짜냈어요. 그저 이번엔 유성원 헌터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의 취향이 일반적인 감성과 다르게 뒤틀린 것뿐이지요.”
‘좀 똑바로 해라.’라고 항의하는 게 어디가 일반적인 감성과 다른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유성원의 존재와 그가 주는 압박에 마음이 편치 않은 정부 요인과 국회의원들은 뭔가 다른 수를 쓰고 싶어 했다.
이는 기업에서도 마찬가지. 유성원 덕분에 성좌 도살왕에게서 해방되었고, 동아시아의 질서가 재편된 만큼 까놓고 말해서 이제 그는 방해물이었다.
“사실상 이쪽은 이제 그가 없다면 번영하는 일만 남았으니…….”
“평양 개발권, 수많은 건축 물량, 대동강 주변을 위시한 신강남 프로젝트… 꿀꺽.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현재 유성원 헌터는 성좌의 화신과 싸운 이후 중태에 빠져서 아직도 집중 치료실에서 치료 중이라고 합니다. 듣자하니 배 속 내부가 완전히 씹어먹혀서 회복이 늦다고 하죠.”
“으음… 그래서?”
“이미 그는 사냥을 끝낸 사냥개입니다. 토사구팽. 아시아의 제왕만 해도 빡치는데, 성좌 도살왕이 사라진 시점에서 이대로 놔두면 그의 지배 아래 우리는 정부이나 정부가 아니게 될 거고 정책이나 법안 같은 것에 대해 끊임없이 방해받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 이 시점에서 처리하자는 거죠.”
은근슬쩍 나온 흉악한 계획. 난데없이 나온 것이지만 정부 요인들과 국회의원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확실히 눈엣가시인 그를 지금 제거하면 성좌 도살왕도 없으니 북한 지역 개발 및 앞으로 찬란한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나 상상만 해서는 소용없고, 어떻게 현실로 만드냐가 중요한 것이었기에 의원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자에게 물었다.
“말은 쉽네만… 성좌를 이길 정도의 상대를 누가 없앤단 말인가? 물론 지금은 약하다곤 하지만…….”
“의뢰할 곳이 하나 있습니다. 성좌 세력 중 하나이지요. 바로 인도입니다. 성좌 세력들 중 성좌 용봉왕처럼 직접 인세를 통치하는 자들이지만 국제 사회 규칙을 따르고 존중하는 성좌 용봉왕과 다르게 신정을 주장하며 인간의 조직은 따르지 않는다는 곳이지요. 그곳이라면… 충분히 유성원 헌터를 없앨 이유가 있을 겁니다.”
성좌 용봉왕과는 다른 신정(神政)의 나라, 인도.
국제 사회의 규칙이나 합의를 존중하는 상식적인 성좌 용봉왕과 다르게 인간의 국가와 정치 체계를 완전히 거부하는 인도의 성좌들이었다.
그들은 인도를 나눠서 통치하고 있으며 모든 세계를 성좌의 신정으로 다스리는 걸 목표로 하는 자들. 의원의 말대로 충분히 의뢰를 받아 줄 가능성이 있는 곳이었다.